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24)
00324 팍스 제니스 =========================================================================
제니스는 레이드에 임하기 전 여러 가지 변수를 대비해 다양한 작전을 세워두었다. 특히 괴수가 예상 외로 강력해서 어려움을 겪을 경우를 상정했다. 만약 섬멸이 불가능해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대비한 것이다.
철수 3안은 섬멸이 불가능하다고 조기 판단할 경우, 최대한 적은 손실로 공격대를 물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심지어 작전의 입안자인 장태준도 이 계획이 실행되기는 바라지 않았다.
‘돈을 뿌리는 대철수 작전.’
괴수가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에 조기에 최대한 피해를 줄이며 철수한다는 것. 말은 쉽지만 바다속에서 싸우다가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대규모 안전지대를 설치해서 괴수의 움직임을 최대한 억제한 틈에 도주한다는 것인데, 이게 철수 3안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안전지대를 설치하려면 결정 에너지가 필요하다. 결계는 괴수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도 있지만, 그 양이 충분하지는 않다. 그래서 미리 싣고 온 결정체를 전투 해역에 투하해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 작전을 대비해 여러 나라에서 징발해온 결정체가 돈으로 따지면 100조 원쯤 된다. 세계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모금을 한 것인데, 짧은 기간 안에 100조 원에 달하는 결정체가 모인 것이다.
장태준 및 참모진은 설마 하니 철수 3안을 시행하게 될 거라고는, 그리고 시행하더라도 설마 100조 원 전부를 다 뿌리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다급하다. 100조 원을 다 쓰고도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투하 완료!」
「알았어요!」
투하 직전 정효주도 수중장비복을 교체하고 다시 현장에 합류한 상태였다. 유지웅은 그녀에게 보호막을 걸었다. 쪼개진 퍼플 결정체가 보호막을 매개로 이어졌다. 그는 지체 없이 결계를 펼쳤다.
촤악!
촘촘한 빛의 그물선이 뻗어나갔다. 가는 선이 위에서 떨어지는 결정체들을 감쌌다. 하얗게 반짝이는 빛이 혈관을 흐르는 피처럼 쉴 새 없이 빠르게 선을 타고 움직였다. 그렇게 모인 힘이 유지웅에게 응집했다.
대원들은 물론이고 통제부도 초조하게 성공을 기원했다. 잠시 후 전투 해역의 수면이 하얗게 빛나는 것을 관측했다.
“성공이다!”
통제부에서는 뛸 듯이 기뻐했다. 장태준도 기뻤지만 내색하지 않고 얼른 지시를 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입니다. 안전지대 효과가 다하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헬기 편대는 서둘러 대원들 수용 작전을 실시하세요.”
하얗게 빛나는 수면 위로 수많은 헬기 편대가 스치듯이 낮게 호버링했다. 잠시 후 수면까지 올라온 대원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었다.
“공대장님은 어디에 있죠?”
“이미 브라우니에 올라타셨습니다. 정효주 탱커와 쿤겐, 메이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대원들 수용 작업도 한창이었다. 다행히 안전지대가 효과가 있었는지 상어 괴수는 움직임이 없었다.
안전지대가 블랙 몹에게 어떤 영향을 발휘하는지는 아직 검증된 바 없었다. 결정도 13만 5,000의 무지막지한 녀석이라면 더 예측이 힘들다. 하지만 꼼짝도 않는 것을 보면 효과는 있는 모양이다.
“100조 원을 쏟아부었는데 효과가 없으면 안 되지.”
통제부의 누군가가 그렇게 탄식했다. 예상 외로 피해가 없자 새삼 아까워진 모양이다. 원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기분이 다르다고 했으니.
바다에 설치한 안전지대는 고정되지도 않는다. 땅과 달리 물은 고정돼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문단은 해류를 따라서 안전지대를 형성한 에너지원이 흩어질 거라고 봤다.
‘빠르면 한 시간, 길어봤자 며칠.’
땅에 설치하는 안전지대는 오래 지속되기라도 하지, 이건 뭐 금방 없어져 버린다. 철수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100조 원을 쏟아부은 셈이다.
아무리 자기 돈이 아니라 해도 그 꼴을 보면 아까워죽겠는 게 사람 심정. 하물며 자기 손으로 직접 투하한 군인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 * *
“헉! 헉!”
유지웅은 헬멧을 벗자마자 숨을 헐떡였다. 정효주가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붙잡았다. 신랑이 저질 체력은 아니다. 그냥 군사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 허나 탱커인 그녀에 비하면 약골 중의 약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대성이라는 게 다 그렇다.
“젠장! 땅에서 싸우기만 했어도! 이 꼴은 안 났을 텐데!”
정효주는 표정이 어두웠다. 직접 피부로 부딪쳐봐서 그녀는 잘 안다. 과연 뭍에서 상대했으면 결과는 달랐을까? 그럴 것 같진 않았다.
신랑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지금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이다. 이런 대규모 전력으로 진 것으로 모자라, 100조 원에 달하는 결정체를 쏟아붓고 도망쳐야 한다는 게 비참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마음을 이해했다.
제니스가 약해서, 유지웅의 능력이 미달이라서 레이드가 실패한 게 아니다. 괴수가 너무 강력했던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해두면 될까.
“철수 상황은 어떻죠?”
「전원 수용했습니다. 곧 해역을 탈출할 겁니다.」
“안전지대가 얼마나 갈까요?”
「에너지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해류 영향이 예상수치보다 높은 것 같습니다. 서둘러 이탈해야 합니다.」
헬기 편대는 수십km 밖에 정박해 있는 순양함에 내려섰다. 지친 대원들이 헬기에서 내렸다. 120여 명의 대원들은 40척의 순양함에 각각 나눠 탔다. 빠른 수용 작전을 위해 가용한 헬기를 한꺼번에 투입했기 때문이었다.
“무시무시했다. 그런 놈은 난생 처음이었어.”
“히카리와 불원숭이도 엄청났었는데, 저 녀석은 아예 비교가 안 되네.”
“물속이라서 그래. 제약이 너무 심했어. 뭍이라면 달랐을 걸?”
“글쎄?”
그 말에는 대다수 대원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상어 괴수가 보인 위용이 강력했다.
“근데 우리 어떻게 탈출한 거지? 무슨 빛이 터지고 나서 괴수가 갑자기 꼼짝도 안 하던데.”
“작전 회의 때 뭐 들었어? 안전지대 설치하고 튄 거잖아.”
“정말? 물 속에 안전지대 설치가 가능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대. 얼마 못 가고 금방 없어지니까 소용이 없어서 그렇지.”
“근데 블랙 몹을 묶어두려면 보통 안전지대 가지고는 안 될 텐데? 안전지대 설치할 때 결정체 사용하지? 얼마나 썼을까?”
“돈으로 따지면 원가만 100조 원쯤 된다는데? 여러 나라에서 비축 물량으로 저장해둔 거 긁어모아서 다 뿌렸대.”
“와, 100조? 엄청나다.”
누가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도망치자고 100조 원을 바다에 뿌렸다는 거 아닌가?
“정비하고 나중에 다시 싸우겠지?”
누군가가 꺼낸 말에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말을 꺼냈던 대원이 재차 말했다.
“이길 수 있을까?”
“…….”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모두들 느끼고 있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이 강력한 놈이었다. 만약 또 싸운다면 잡을 수 있을까? 아니, 오늘처럼 무사히 도망칠 수나 있을까? 그때도 지금처럼 희생자가 안 나온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제니스는 블랙 몹을 몇 번 사냥한 적 있어. 히카리 때도 한 번 물러섰지만 결국 잡았잖아? 공대장님이 곧 방법을 찾아낼 거야.”
“내가 얼핏 들었는데 저 블랙 몹이 보통 블랙 몹이 아니래. 결정도만 13만 5,000이래. 근데 더 무서운 건 우리가 전에 잡은 블랙 몹이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괴수가 몸 속에 가진 결정 에너지가 너무 크면 감당을 못한다잖아. 그래서 블랙 몹은 자기 힘을 온전히 발휘 못한대. 하지만 저 녀석은 그게 아니라던데?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고전했던 거고.”
“아니야. 그냥 결정도가 좀 높아서 그런 거야.”
“그럼 탱커 궁극기가 방어막 관통 못한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히카리도 탱커 궁극기에는 방어막이 뚫렸어.”
“…….”
일부 대원들이 계속 희망적인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미 가라앉은 분위기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격대 사기는 눈에 띄게 떨어진 상태였다.
누군가가 다시 말했다.
“그럼 만약 저 괴수 못 잡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
* * *
‘새끼를 잃은 분노 때문에 인간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 베링 샤크.’
‘인류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 미국,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제니스의 책임은 전혀 없는가?’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국제 여론을 장식했다. 상어 괴수에는 베링 샤크라는 명칭이 붙었다. 미국이 현재 사육 시도 중인 새끼 상어의 어미라는 게 알려지자, 미국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연합 공격대는 일단 해산했다. 다행히 인명, 함정 피해는 나지 않았다. 그러나 출혈은 컸다. 100조 원에 달하는 결정체를 바다에 쏟아부은 타격이 당분간 오래 갈 듯했다.
비축 결정체를 지원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몰랐던 나라들은 당황했다. 그렇다고 제니스 공격대에 배상 책임을 묻거나 구상권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공격대의 희생을 내지 않기 위해 사용한 것이니.
문제는 더 심각했다. 베링 해역이 봉쇄됨에 따라 해상로를 통한 물류가 막힌 것이다. 자원이나 제품을 실은 선박이 항구를 떠나지 못하고 묶여 있는 일이 빈번해졌다.
“미국은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한다.”
아시아권 국가들이 그렇게 맹비난하고 나섰다. 미국이 괜히 괴수를 사육한다고 새끼를 포획하고 어미를 놓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란 논설이었다.
“할 거면 한국처럼 깔끔하게 처리해서 인류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던가, 일처리를 어정쩡하게 하는 바람에 일이 이 지경이 된 거 아닌가?”
아시아 국가들의 비난은 그칠 줄을 몰랐다. 유럽 쪽은 적극적으로 미국을 비난하지는 않았으나, 아시아 국가들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이 친 사고가 핵폭탄이 되어 인류에 되돌아왔다고 생각했다.
백악관은 철야가 이어졌다. 참모진은 일절 퇴근도 못한 채 국정 회의로 밤낮을 보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가?”
“그게…… 한국 쪽에서 정보를 흘린 것 같습니다. 국제 여론 조장에도 적극 나서고 있고요.”
“한국이 대체 왜?”
비시의 반문에 참모진은 할 말이 없었다. 왜냐니,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한국 입장에서는 현명한 처사다. 레이드는 실패했고 100조 원에 달하는 결정체를 날려버렸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였기에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으나, 제니스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헌데 미국에 대한 비난 여론을 조장함으로써 초점을 돌린 것이다. CIA가 친 사고 때문에 유지웅이 미국에 감정이 안 좋은 상태이기도 했고.
지금 국제 여론은 미국을 쳐죽일 국가, 혹은 못 말리는 사고뭉치로 몰아가고 있었다. 왜 애꿎은 어미 상어 괴수를 건드려서 일을 이렇게 만들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류가 막힌 것 때문에 미국은 다시 다급해졌다. 물론 미국은 폐쇄 경제 체제 유지가 가능한 국가지만, 그 대신 지금까지 축적한 모든 영향력과 영광은 초기화되고 만다. 사태를 어떻게든 빨리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베링 샤크는 잡을 수 있다고 보나? 제니스가 다음 레이드 계획을 세우고 있긴 하나?”
루딘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아마 잡지 않을 겁니다.”
“아니, 어째서?”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안전 보장, 섬멸 수단이 없는 한 굳이 나서서 잡으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히카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해서 결국 잡지 않았나?”
“경우가 다릅니다. 히카리는 놔두면 한국 전체가 쓸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베링 샤크는 바다에 서식하는 괴수입니다. 건드리지 않으면 인명 피해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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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포기하면 됩니다. 참 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