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35)
00335 뉴 웨이브 =========================================================================
“……인류 전체가 힘을 합쳐 싸워도 부족할 판에, 자기 집단,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위해 테러를 사주하고 또 저지르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테러 행위에 대한 UN의 제제 결의안이 오른 가운데, 유지웅은 특별히 양해를 얻어 단상에 올라 발언 기회를 가졌다. 그는 비서진에서 준비한 원고를 거침없이 읽어 내려갔다.
“어떻게 돈이 사람보다 우선할 수 있습니까? 인류사의 모든 비극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물질주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얼마 전 CIA가 한국에 가한 테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노골적으로 CIA를 언급하고 나서자 미국 대사의 표정이 불편하게 굳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들이 옳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테러를 저질렀다. 어디 조그만 나라가 공개적으로 그런 말을 하면 큰일 난다. 오히려 미국이 방방 뛰며 모욕을 받았다고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다.
헌데 말을 하는 대상이 유지웅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유일한 안전지대 설치자, 유일한 블랙 몹 슬레이어로 이미 시대의 아이콘이자 힘의 중심이 된 그의 비난은 커다란 힘을 가진다. 게다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아니고,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며 제재를 촉구하고 있지 않은가.
* * *
“대체 어디서 증거를 확보했지? 물증은 없었을 텐데?”
유지웅은 폐기하지 않은 비밀 지령서, 그리고 로버트 국장과 요원들 사이에 오간 녹취록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어느 것 하나도 빼도 박도 못하는 강력한 물증이었다.
덕분에 백악관은 난리가 났다. 비시는 CIA를 추궁했지만 로버트 국장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했다.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 말란 테러를 할 거면 차라리 증거라도 흘리지 말고 완벽하게 하던가!”
오죽하면 백악관이 그런 원망까지 할 정도였다. 대체 왜 하지 말란 짓을 했는지 이미 그건 원망의 초점을 비껴갔다. 차라리 이왕 할 거 제대로 처리라도 하던가, 이게 뭐냔 말이다.
“할 수 없습니다. CIA의 단독 범행임을 인정하고 부서의 완전한 폐지, 테러 피해에 대한 배상, 그리고 로버트 국장을 비롯해 관련 범죄자들을 인도하겠다고 제안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 위기를 잘 넘길 수 있겠나?”
“어렵습니다. 아마 추가 요구가 있을 겁니다. 그래도 일단 우리가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제니스 회장도 어느 정도 화가 풀어질 거 아닙니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하게. 로버트 국장의 행방은 아직도 불명인가?”
“예. FBI가 철저히 수색 중입니다만 어디로 숨었는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백악관은 일단 한국 정부를 통해서 유지웅에게 자신들이 보일 성의를 전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테러는 백악관의 의지가 아니라 CIA가 과잉 애국심 때문에 멋대로 저지른 짓이고, 그에 대한 사죄와 피해 배상, 관련자들을 넘겨주겠다고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되돌아온 건 용서가 아닌 철퇴였다.
“뭐야? SC컴퍼니의 공중분해? 경영진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제니스 회장 말로는 CIA가 SC컴퍼니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 저지른 테러도 SC컴퍼니의 사주를 받은 거라고 합니다. 메데세르프 회장이 연관되어 있으니 즉각 체포해서 조사해야 한다고…….”
“일단 FBI에 명령해서 메데세르프 회장부터 체포하게. 자세한 이야기는 그 뒤에 다시 하세.”
얼마나 급했으면 비시는 그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 경황을 따져보기도 전에 체포부터 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가? SC컴퍼니가 정말로 한국 테러에 연관되어 있나?”
“거대 결정체 자본 세력이 한국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도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다만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럴 만한 동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이 대단히 복잡해졌다. 애국심에 눈이 먼 CIA가 애먼 총질을 한 게 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미국 내 거대 결정체 자본가들이 얽혀 있는 사건이란다.
돈에 대한 끝없는 탐욕, 비시도 그것은 안다. 다국적 결정체 유통기업들이 소규모 국가에서 벌여온 횡포 등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다만 미국에 이익이 되기에 그동안 모른 체 외면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익이 감소하는 것을 참지 못한 그들이 제대로 큰 건을 터트렸다. 다른 곳도 아닌 한국을 건드리다니.
“SC컴퍼니에는 바보들만 있나? 제니스를 화나게 하면 얼마나 후환이 두려운지 몰랐단 말인가?”
“알았을 겁니다. 그래서 뒤에서 CIA를 부추긴 것이겠죠. 자기들은 연결고리를 없앴으니, 최악의 경우가 닥치더라도 무사할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그럼 뭐 하나? 이렇게 바로 걸려들었는데? 그리고 뭐, 최악의 경우라도 무사해? 조국을 미끼로 던져놓고 자기들만 무사하면 다란 말인가?”
“…….”
“제니스 회장이 자신 있게 메데세르프 회장부터 체포하라고 하지 않는가? 그가 주범 중 하나라는 게 아니고 뭔가?”
CIA만 버리면 될 줄 알았다. 근데 거기에 SC컴퍼니가 얽혀 있다고 한다. CIA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소리다.
“정말 SC컴퍼니의 공중분해를 원하던가?”
“네. 테러를 사주하는 그런 비도덕적인 기업이 존재하게 놔둬서는 일벌백계가 되지 않는다고…….”
참모진의 안색이 굳었다.
SC컴퍼니는 과거 다국적 정유기업으로 위명을 떨쳤던 엑슨모빌의 화신이다. 결정체 산업 등장 이후 엑슨모빌은 정유 사업을 버리고 결정체 유통업에 올인, 성공적인 변신을 꾀해서 지금은 결정체 유통기업 중에서 1, 2위를 다툰다. 미국이 아니라 전 세계를 기준으로 했을 때 말이다.
그런 기업이 도산한다? 과연 얼마나 큰 피해가 미국에 닥칠지 감히 추정조차 안 된다.
“만약 SC컴퍼니가 공중분해 된다면 그 피해는 얼마나 되겠나?”
“각하, 절대로 그것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기존 경영진 전원 해임에 관련 주주들 형사처벌 정도로 끝내야 합니다. 사실 CIA와 얽힌 주주와 경영진이 죄가 있는 거지, 회사 자체나 회사에 일하는 무수한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SC컴퍼니가 무너지면 미국 경제가 얼마나 무너질지 추산이 안 됩니다. 어떻게든 제니스 회장과 협상을 해서 회사의 공중분해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그 분야를 잘 모르는 비시가 보기에도 총 자산만 3,000억 달러가 넘는 대기업이 공중분해 되면 나라 경제에 어마어마한 재앙이 닥칠 것 같았다. 그래서 협상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 * *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이면 다 된다, 돈만 추구하면 끝이다, 라고 생각하는 일부 자본가들이 사회 기득권을 잡고 있다는 거지요. 물론 안 그런 좋은 부호들도 많습니다만, 메데세르프 회장 같은 사람은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될 악의 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할 수 있죠?”
“당연합니다. 저희도 이미 메데세르프 회장을 체포, 구금 중이고 다른 내부 관련자나 동조자가 있는지 철저한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엄한 처벌을 약속할 테니, SC컴퍼니의 공중분해만큼은…….”
“안 돼요. 테러 같은 큰 범죄를 저지르고도 주모자만 체포하고 회사가 무사하다면, 다음에도 다른 미끼를 내세워서 일을 저지를 거 아닌가요? 회사나 조직의 생리가 원래 그래요. 철저하게 짓밟아서 ‘아, 아무리 돈이 좋아도 나쁜 짓을 하면 안 되는구나’하는 걸 널리 널리 알려야 해요. 그래야 사회가 전반적으로 건강해져요.”
“그렇지만 총 자산 3,000억 달러짜리 회사가 붕괴하면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납니다. 그들에게는 아무 죄도 없지 않습니까?”
“그럼 회사를 팔아서 그들의 생계를 지원해줘야죠. 미국 정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고요. 범죄자한테 딸린 식구가 불쌍하다고 범죄자를 처벌하지 말자는 건 있을 수 없어요.”
협상을 위해 부통령이 직접 한국까지 날아왔지만 유지웅은 요지부동이었다.
“직원들의 생계 문제를 지원하는 것과 범죄의 재발 방지를 위해 철저히 처벌하는 건 별개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 둘을 연관 지으려고 하지 마세요.”
“회장님, 제발…….”
부통령은 일주일을 넘게 매달렸다. 좀처럼 뜻을 굽히려 들지 않던 유지웅이 결국 히든카드를 꺼냈다.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뭐든지 말씀만 해주십시오!”
부통령은 희색이 되었다. 드디어 협상 가능성이 보인 것이다.
“SC컴퍼니는 CIA를 사주해서 한국에 테러를 실행, 막대한 재산 피해와 인명 피해를 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시죠?”
“SC컴퍼니가 아니라 SC컴퍼니의 일부 경영진이…… 아, 아닙니다! 인정합니다! 인정하겠습니다!”
“이익 때문에 사람을 해치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물며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라면 더욱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본래라면 일벌백계를 위해 도산시켜야겠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수십 만 명의 일반 직원들을 위해 한 발짝 정도는 양보해줄 수도 있어요.”
말이 너무 길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부통령은 바짝 긴장했다. 저렇게 말이 쓸데없이 길다는 것은 무언가 엄청난 요구사항이 뒤따른다는 것이리라.
“테러 행위에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범죄자들이 보유한 SC컴퍼니 지분을 전부 압류해서 우리나라 피해자들에게 양도하세요. 아, 미국 정부의 사죄 추가배상, 관련자들의 형사 처벌은 당연히 별개로 진행되어야 하고요.”
부통령은 입을 떡 벌렸다. 언뜻 생각해봐도 배상 규모가 어마어마해질 것 같았다.
“왜요, 싫으세요?”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SC컴퍼니의 분해만은 막아야 한다. 차라리 범죄를 사주한 경영진의 지분을 내놓는 게 낫다.
“다시 말하지만, 지분 양도는 어디까지나 테러에 대한 징벌의 의미이지 그것으로 피해배상을 마무리 짓자는 건 아닙니다. 피해배상은 배상대로 따로 진행합니다. 아셨죠?”
“알겠습니다.”
어쨌든 협상에는 성공했다. 부통령은 서둘러 본국에 협상 결과를 보고했다. 비시 대통령이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그럼 한국에 줘야 할 SC컴퍼니 지분이 얼마지?”
“일단 메데세르프 회장이 5%를 갖고 있습니다. 그밖에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영진과 대주주를 조사 중입니다만, 그들을 다 합쳐도 15%는 넘지 않을 겁니다.”
“15%라…….”
“현 시가 기준으로 900억 달러에 달하는 양입니다.”
“엄청난 액수군. 그런데 피해배상과는 상관없는 징벌적 의미라고 했던가?”
“예.”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살인자가 피해자에게 전 재산으로 배상하는 법은 없다. 사형이든 뭐든 형사처벌을 받고, 법에 정해진 만큼 유족들에게 민사 배상을 하는 게 보편적이다.
그런데 유지웅은 범죄자들이 가진 주식을 전부 피해자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이건 마치 SC컴퍼니를 범죄 도구로 보고 몰수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시는 신음했다.
“어쩔 수 없지. SC컴퍼니가 도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분을 줘버리는 게 낫지.”
“그럼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리 하게.”
그렇게 극적으로 타협이 이뤄지고 다음 날, 한국 매스컴은 특종으로 이 사실을 다루었다.
「미국은 CIA의 테러 행위를 사죄하고 관련자들을 우리나라에 인도할 것과 CIA의 폐지, 테러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약속했습니다. 또한 CIA를 사주한 것으로 알려진 SC컴퍼니 대주주 및 경영진의 보유 지분을 몰수하여 테러 피해자들에게 인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 양은 전체 지분의 40%로서 시가 총액 2,400억 달러에 달하는 양으로…….」
한국 뉴스를 뒤늦게 접한 비시는 뒤집어질 듯이 놀랐다. 분명 국정 회의에서는 15%가 넘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한국은 왜 40%라고 떠들어대고 있단 말인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각하, 그게…… 조금 전 제니스 회장이 테러 사주에 관련된 SC컴퍼니 주주와 보유량 명단을 보냈는데 우리가 조사한 것보다 배 이상 많았습니다.”
“그게 확실한가? 제니스가 그냥 찔러보는 것은 아닌가?”
“녹취 파일 등 몇 가지 증거도 함께 동봉했는데 그들이 합동으로 모의를 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현직 경영진 대다수와 주요 주주들이 다수 관련되어 있습니다.”
비시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국내 1위의 결정체 유통기업, 미국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공룡 회사가 거의 반절로 뚝 떨어져 나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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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 BLESS 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