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39)
00339 뉴 웨이브 =========================================================================
‘붉은 색?’
하얀 벽에 등을 기대고, 나미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누가 보면 사색을 취하는 줄 알리라. 그러나 그녀는 벽 뒤에서 울리는 대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나는 숙성된 것일까?’
꼭 감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살며시 눈을 뜨고, 주먹을 힘껏 쥐어본다.
지난 일 년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처음 해변에서 깨어났을 때, 나미는 인간으로 치면 어린 아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최초로 접한 인간은 그녀를 발견한 어떤 어머니와 아이였다. 그녀는 무작정 상대가 하는 말을 따라만 했다. 신기하게도 말을 따라하면 따라할수록 혼탁했던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묘한 쾌감이 되어 그녀를 자극했고, 그녀는 더욱 상대의 말을 따라했다.
그러나 아이 어머니가 조그맣고 딱딱한 물체를 꺼내 뭐라고 말을 하고, 잠시 후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놀란 나미는 그대로 바다 속으로 몸을 던져 도망쳤다.
나중에서야 나미는 아이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고, 그 요란한 소리는 사이렌 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인간의 언어를 배우고 사회 관습을 이해한 다음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 모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경찰은 헛것을 보고 신고한 것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나미는 꼬리를 다리로 변화시키는 것을 배웠다. 완벽한 인간의 모습은 인간들 사이에 스며들기 좋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꼬리를 감추면 힘이 급격히 약해진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인간을 만나며, 인간의 언어를 배웠다. 인간의 관습을 배우고, 사회 구조를 이해했다.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가면서 빠른 속도로 지식을 습득했다.
‘나는 무엇일까?’
인간의 언어가 능숙해졌을 무렵, 나미는 문득 그런 의문을 떠올렸다. 그 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신의 과거 기억과 일치하는 사건을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인간들이 베링 샤크라 부르는 생물이었다.’
하나의 의문이 해결되자 다른 의문들이 해결되는 스피드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나는 인간들이 괴수라 부르는 생물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미는 괴수였던 시절과 지금 모습을 갖게 된 시기 사이에 있었던 간극을 떠올렸다.
‘나는 인간과 싸워서 패배했다.’
패배와 싸움, 그 원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나는…… 아이를 찾으려고…….’
새끼의 단말마를 듣던 순간을 인간의 사고로 치환하는 순간 나미는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맛보았다. 뇌가 느끼는 상실감 및 스트레스, 그것은 아마 인간으로 치면 슬픔이라고 불러야 할 감정이었으나, 나미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약한 인간의 몸이 된 대가라고만 생각했다.
‘내 아이는 죽었다.’
나미는 혹시 아이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다방면으로 찾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얻을 수 없었다. 미국이 새끼 상어 괴수를 포획했다고 대대적으로 떠든 것을 마지막으로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시기적으로 새끼의 단말마를 들은 게 그 직후이니, 아마도 그때 아이는 죽은 것이리라.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는 얻을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었다. 인간 사회는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알고 싶은 것도 알지 못하는 제한이 있었다.
그래서 나미는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빠른 속도로 인간 사회에 적응했다.
인간들 말에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나미는 제니스에 침투했다.
MIT에서 조기에 학위를 딴 천재 과학자로 신분을 위장하는 것은 쉬웠다. 그러나 행세를 하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였다. 아무리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어설픈 흉내 내기로 효웅산업에 입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하고자 한다면 아주 못할 것은 없다. 나미는 그것도 방법을 찾았다.
* * *
“현재까지 이론상 결정 에너지는 13만 5,000을 초과해서는 응집되지 못해. 결국 퍼플 결정체 상위 등급의 결정체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소리지. 이게 바로 응집 이론의 핵심 내용 중 하나야.”
안경을 쓰고, 금발을 대충 하나로 묶은 여자가 무표정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마 최윤 박사는 포화점에 다다른 결정체를 강제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 같아. 제니스 회장이 제공한 퍼플 결정체를 연구하면서 영감을 얻었겠지.”
“그게 바로 숙성?”
“그렇게 생각해.”
나미는 천천히 자신의 몸을 만졌다. 여자는 안경을 고쳐 쓰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니터 불빛이 안경테에 반사되며 무거운 느낌을 자아냈다. 화면에 떠오른 복잡한 차트가 안경 렌즈에 굴절되어 떠올랐다.
“전투 기록에 보면 베링 샤크, 즉 너의 당시 결정도는 13만 5,000을 기록하고 있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게 포화점일 거야. 네가 괴수에서 지금 그 모습으로 변화한 것도 아마 숙성의 한 과정이거나, 혹은 숙성으로 얻은 부작용이나 특수 능력인지도 모르지.”
나미는 무표정하게 듣고 있었다. 여자는 등을 돌려 나미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최윤의 가설대로라면 네 몸 속에 있는 결정체는 붉은색일 거야. 너는 블랙 몹이 아니라 블랙 몹보다 한 단계 더 위의 상위 등급 괴수가 되는 거지. 어쩌면 괴수의 최종 진화 형태가 지금 바로 그 모습일지도 모르겠어.”
“…….”
“나는 최윤의 가설이 옳다고 확신해. 네가 바로 그 증거로 존재하잖아? 네가 감정장비나 탐지장비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도 레드 결정체로 진화했기 때문일 거야.”
나미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한참을 생각했다. 여자는 말없이 그녀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나미는 생각을 정리하고 눈을 떴다.
“그럼 난 어떡해야 하지? 더 기다려야 할까?”
“응집 이론은 완성된 게 아니야.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 건 현재로서는 최윤뿐이야. 너에게 일어난 변화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기다려야하겠지.”
“기다려야 한다…….”
나미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네가 이 정도로 만족하고 물러난다면 나는 더 좋아. 이번에는 내 조건을 이행할 차례가 되니까.”
“약속은 지켜. 안심해도 돼.”
“믿고 있어. 아니, 너라도 믿고 매달려야 할 처지라고 해야 옳겠지…….”
힘없이 쓸쓸한 음성에 나미는 처음 그녀, 레지나를 만나던 때가 생각났다.
몇 개의 언어를 습득하고, 어느 정도 인간 사회의 구조를 이해한 나미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정체를 숨기고 인간들 사이에 숨어 있는 처지에서 아무에게나 함부로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적합한 대상을 찾았다. 인간들이 결정체학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서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너무 대중에 잘 알려진 대상은 오히려 위험했고, 너무 아는 게 적은 이는 납치하나 마나였다.
적당한 대상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레지나였다. 그녀는 조그만 대학의 교수로 있는 인물이었다. 가족도 없었다. 실종된다 하더라도 누구 하나 신경 쓸 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납치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 원인과 이유를 물었다.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조사할 수 있는 방도의 밑그림에 대해서도 물었다.
레지나가 나미의 말을 대뜸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꼬리를 드러내고, 괴수의 힘을 보여주자 마침내 믿게 되었다. 나미가 괴수임을 인정한 레지나는 대답 대신 반문했다.
‘내가 다 대답하고 쓸모가 없어지면 죽일 거지?’
입막음을 위해서 그럴 생각이었던 나미는 사실대로 말해야 할지 거짓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떤 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레지나는 나미의 망설임에서 바로 알아차렸다.
‘부탁이 있어. 사람 하나를 죽여 줘. 그럼 나도 네가 원하는 대로 다 말해주고 죽을 수 있어.’
나미는 강한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물어봤다.
‘그게 누군데?’
‘할아버지의 원수야.’
나미는 레지나를 죽이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둘은 같이 다니게 되었다. 나미는 레지나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완벽한 인간의 신분을 얻을 수 있게 된 것도 레지나 덕분이었다. 결정체 과학자로서 효웅산업에 입사할 수 있게 된 것도 전부 레지나의 공이었다.
레지나는 자신을 죽일 거냐고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둘 다 알았다. 나미가 그녀를 죽일 일은 없으리라는 것을.
둘 사이에는 묵언의 계약이 맺어졌다. 나미는 레지나를 통해 지식을 쌓고,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하나하나 조사해갔다. 그것이 끝나면 레지나가 원하는 인물이 죽을 것이다.
나미는 새끼를 잃은 원한은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 레지나에게 말해선 안 될 거라고 판단해서다. 레지나도 그에 관해 질문한 적이 없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네가 죽이고 싶다는 인물, 네 손으로 죽이는 건 불가능해?”
“…….”
“너는 죽어도 상관없다고 했어. 같이 죽을 각오로 네 손으로 실행하는 건 불가능해?”
나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걸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레지나의 제안에 알았다고 수락했을 뿐, 자세한 사정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인물에 관심을 가지는 보통 사람처럼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레지나는 생각했다. 이건 나미가 자꾸만 인간처럼 변해간다는 증거는 아닌가 하고.
숨길 것도 없고, 어차피 나중에는 알게 될 일이다. 레지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기회가 있었어. 하지만 물거품이 됐지.”
“무슨 뜻이지?”
“무기징역으로 복역 중이었는데 작년에 가석방으로 풀려났다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갔어.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할 거야. 그 놈이 교도소에 갇혀 있는 한, 절대 죽을 일은 없을 거야. 그래서 네 도움이 필요해.”
“이름은?”
“토미 에슨.”
안경 너머로 가벼운 살기가 반짝였다.
“전직 CIA 국장이야.”
* * *
세종시 결정체 연구단지가 마침내 완공되었다. 유지웅은 직접 완공을 축하하는 기념식에 참가했다. 기념식에는 시장과 시의회 의원들은 물론이고, 중앙 정부의 각료들과 대통령까지 참석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앞 다투어 축하 사절을 보내 잘 보이려고 노력했다.
“이 연구단지가 단지 결정체에 국한하지 않고, 기초과학을 비롯한 전반적인 과학 학문을 중점적으로 연구하여 이 나라의 백 년을 이끌어가는 핵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유지웅은 비서들이 써준 축사를 멋들어지게 낭독하고, 손수 테이프도 끊었다. 매스컴에서도 기념식을 생방송으로 대대적으로 방송하는 등 홍보에 열을 올렸다. 지역 시민은 물론이고 타지방에서도 구경꾼들이 밀려오는 바람에 세종시 전체가 하루 종일 들썩였다. 나중에 통계를 내보니, 무려 수십 만 이상의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UN사무총장을 비롯한 권위 있는 국제기구의 수장 및 여러 강대국 국가 정상들이 보낸 화환이 놓을 자리가 없이 빼곡히 놓인 것을 보고,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유지웅이 세계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인물인 건 알고 있지만, 그것을 피부로 실감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나라에서 보았을 때도 좀처럼 있기 힘든 경사라 온 나라가 잔치 분위기였다. 매스컴은 하루 종일 연구단지에 투입될 자본과 고용 효과, 지역 경제 상승효과 및 향후 이 나라의 과학 발전에 끼칠 영향력에 대해 지면을 할애했다.
유지웅은 밤새도록 연구원들과 어울려 파티를 벌였다. 날이 날이라 권하는 대로 사양 않고 마구 마셨다.
“으…… 머리야.”
한밤중에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고 유지웅은 눈을 떴다. 여기저기 연구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효주는 어디 갔지? 집에 혼자 갔나?”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이 안 난다. 연구원들 사기를 북돋워주느라 직접 어울려 술을 마시고 밤새 놀았더니, 언제 사라졌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유지웅은 조종사를 부를까 하다가 관뒀다. 까짓 거 이리 된 거 여기서 자고 내일 가지 뭐.
그렇게 생각한 그는 소파에 다시 냅다 드러누웠다. 그래도 연구소 오너라고 연구원들이 가장 좋은 자리에 눕혀준 모양이었다. 심지어 바닥에 누워서 코를 골고 있는 연구원도 보였다. 머리맡에는 반쯤 남은 양주병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회장님.”
그때였다.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에 그는 흠칫 놀라서 눈을 떴다.
============================ 작품 후기 ============================
1. 베링 샤크 레이드가 끝나고 작중에서 반년이 아닌 일 년이 흐른 것으로 수정했습니다.
2. 나미는 아직 링컨이 살아있다는 걸 모릅니다. 미국이 습격을 받은 이후 링컨에 대한 어떤 내용도 공표하지 않았기에, 일반인이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미는 새끼의 단말마를 들은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곧 새끼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3. 나미의 적응 과정을 1년 동안 하나하나 세밀하게 묘사하면 너무 지면이 늘어질 것 같아 과감하게 시간을 건너뛰고 이야기 전개 속도를 높였습니다. 그것이 자세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아 독자분들에게 혼란을 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연출이나 전개 방식이 미흡했다는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