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41)
00341 뉴 웨이브 =========================================================================
나미는 철조망을 부서뜨릴 듯이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에 잡힌 철조망은 너무나 간단하게 일그러졌다. 뜨거운 열기에 노출된 철조망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연기를 피워냈다.
착각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비비고 확인해도 착각이 아니었다. 비록 오랫동안 보지 못했어도, 제 새끼를 어찌 못 알아볼 수 있을까.
금방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달려가서 구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눌렀다.
‘땅에서는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어. 게다가 이 모습으로는 저 녀석도 이길 수 없어.’
그녀는 본래의 모습을 잃으면서 많은 것을 상실했다.
일단 힘이 매우 약해졌다. 꼬리지느러미를 다리로 변화시키고 있는 동안에는 더 약해진다. 인간의 껍데기를 얻고, 인간의 사회에 침투하기 위해 치른 대가다. 태생이 바다이기 때문인지, 땅 위에서는 낼 수 있는 파워도 현저하게 줄어든다.
본래 모습을 잃은 것, 꼬리가 다리로 변화한 것, 땅 위에 있다는 것, 이 세 가지 사실이 중첩되면서 쌓인 약화 때문에 아마 브라우니 상대하는 것도 버거울 것이다.
‘너의 힘은 억눌려 있어. 네 몸 속에 있는 레드 결정체가 변화하는 과정이라서일 거야. 그게 언제 끝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어. 짧으면 내일이라도 끝날 테고, 길면 몇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
레지나의 말을 떠올리며 나미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인간들의 손에 놀아나는 가여운 아이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지금 그녀가 새끼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 몸으로, 지금의 신분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새끼를 데리고 바다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전까지는, 참아야 한다.
* * *
“사육이 생각보다 신통치가 않군요.”
“말을 잘 안 듣나요?”
“그것은 아닙니다. 브라우니가 무서워서인지 잘 따르고 있습니다. 다만 지능이 높은 편이 아니라 무엇을 시키고 있는 건지,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이해도가 떨어집니다.”
“저능아라는 거군요.”
“너무 어린 개체라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모비딕과 종의 차이가 나서일 수도 있고요.”
세종시 연구단지에서 근래 최고의 화제는 새끼 상어 괴수 링컨이었다. 연구원들은 셋만 모였다 하면 그 이야기를 했다.
나미는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매 순간마다 새끼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엄마가 찾아 왔다고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싶었다.
“나미 연구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네? 아무 것도 아니에요.”
“요즘 이상해요. 자꾸 다른 생각에 빠지는 거 같고, 무슨 일 있어요?”
“그런 거 없습니다.”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차가워졌나 보다. 살짝 주눅 든 상대의 반응에 나미는 아차 싶었다. 지금까지 연구원 행세를 잘 해왔는데 사소한 걸로 의심을 사면 손해다.
“아니, 뭐…… 나는 그냥 걱정이 돼서…….”
남자 연구원은 우물쭈물했다. 나미의 불안과 달리 그는 뭔가를 의심하거나 하지 않았다. 관심이 있어서 말을 건넸는데 살짝 차가운 반응에 놀란 것뿐이었다.
퇴근길에 오른 나미는 곧바로 레지나를 찾아갔다.
“살아 있었어.”
“뭐가?”
“내 아이.”
“……?”
레지나는 잠시 흠칫 했다. 처음에는 의아해했으나 곧 이해한 듯이 표정이 변했다.
“너는 알고 있었지?”
“뭘?”
“내 아이가 살아있단 걸.”
“알고 있었지.”
“그럼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언제 물어봤어?”
“…….”
“넌 네 몸에 일어난 변화를 알기 위해 인간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했어. 그 뒤에 네 아이를 구하러 갈 거라고 생각했지.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묻지 않았을 뿐이야. 네가 아이가 죽었다고 알고 있는 줄은 몰랐어.”
레지나의 말은 옳았다. 나미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한 적이 없다.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 그것을 분석하기 위해 이용하는 거라고만 했을 뿐이다. 제니스에 대한 복수를 언급했다면 레지나가 비협조적으로 나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다.
“지식의 습득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진짜 목적은 죽은, 아니 죽은 줄 알았던 아이의 복수였어?”
“……맞았어.”
이제 와서 부정할 것도 아닌지라 나미는 순순히 긍정했다. 레지나는 안경을 고쳐 쓰고 말을 이었다.
“난 제니스의 도움을 간접적으로 받은 적이 있어. 제니스를 치는 것은 도울 수 없어. 나도 사람인 걸.”
“…….”
“하지만 새끼를 되찾는 것뿐이라면 도와줄 수 있어. 자, 매우 중요하니까 신중하게 생각해서 대답해. 새끼를 되찾은 다음 어떻게 할 거야?”
나미는 이를 악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드시 새끼의 복수를 할 거라고 독을 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의 이유 따위도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아이를 되찾는 것. 그리고…….
“바다로 돌아갈 거야.”
“그 다음엔?”
“바다에서 나오지 않겠어. 원래 그곳이 우리의 생활 터전이었으니까. 인간들과 부딪치지도 않겠어. 더 이상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 내 아이를 찾고, 바다로 같이 돌아갈 수 있기만 하면 돼.”
레지나는 알았다는 듯이 끄덕였다.
“우리의 약속이 하나 더 늘어났네.”
“도와줄 거지?”
“물론이지.”
“어떡하면 되지?”
레지나는 이미 방법을 다 생각해둔 듯이 곧장 대답했다.
“제니스 회장을 먼저 찾아 가.”
* * *
“사육에 참가하고 싶다고요?”
돌연 나미가 찾아와서 그런 부탁을 하자 유지웅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정체 연구학자인 나미가 왜 링컨의 사육에? 아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론물리학과 로봇공학만큼의 차이가 있는 업무 아닌가?
“네. 제가 괴수 사육에 전부터 관심이 많았습니다. 경력 하나 없는 제가 중요한 임무를 맡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단순 업무라 해도 좋습니다. 꼭 참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MIT까지 나온 인재를 겨우 그런 거에 써먹는 건 너무 낭비인데…….”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괴수 사육에 관심이 있어서 참여하고 싶은 겁니다. 허락해 주세요.”
“나야 상관없지만, 괜찮겠어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면 많이 고될 텐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사람들에게는 말을 해두죠.”
유지웅은 천재 과학자의 변덕, 혹은 취미의 연장 정도로 이해했다.
나미가 괴수 훈련에 통제관 보조로 참여한다는 소식에 효웅산업 연구팀은 술렁거렸다. 그녀는 뭇 남자들의 선망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혹시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들 불안해했다.
“괴수 사육에 참가한다고요? 그건 이론결정학이랑 완전히 다른 분야일 텐데? 그냥 맹수 조련이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럼 회사는 어떻게 한대요? 나가는 건가요?”
“나가는 건 아니라던데? 회사는 회사대로 다니고, 괴수 훈련에도 참가하는 거라고만. 회장님한테 직접 허락을 받았대.”
“회장님한테? 역시 미인은 다르네. 우리는 감히 독대 신청 같은 건 꿈도 못 꾸는데 말이야.”
드디어 나미가 첫 훈련에 참가하는 날이 되었다. 그녀는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나미 씨, 조심해요. 똑같이 괴수를 다루기는 해도 이론과학자의 업무와는 완전히 다르니까. 그렇다고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요.”
“예.”
40대의 남성 통제관이 친절하게 대했다. 나미는 고무장화를 신고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철조망 안에 들어섰다. 브라우니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괜히 심장이 뛰었다. 다행히 브라우니는 그녀에게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한테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캬아악!
물 위로 머리를 드러낸 괴수 링컨이 나미를 보고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으르렁거렸다. 나미는 깜짝 놀랐다.
“아, 진정해요. 원래 처음 보는 사람이 나타나면 저래요. 일단 경계하고 보는 거죠.”
“……처음 보는 사람? 경계하는 거라고요?”
“네. 경계심을 좀 푸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나미 씨는 미인이니까 금방 친해질 거예요.”
통제관이 아부하듯이 낯간지러운 소리를 했지만 그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머리가 멍해졌다. 설마 했지만 그래도 알아봐주기를 기대했었는데. 그 희망이 여지없이 부서지며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갔다.
“나미 씨! 위험해요!”
그녀가 점점 다가오자 링컨은 더욱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낯선 이의 접근을 경계하는 맹수의 새끼였다. 나미는 통제관이 팔을 잡자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갑자기 왜 그래요? 함부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브라우니가 무서워서 말을 듣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매우 사납고 행동 이해력도 떨어지는 녀석이라고요.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우두커니 선 채 그녀는 링컨을 바라봤다. 통제관들이 몰려들며 훈련을 시작했다. 가슴에 돌을 얹은 채, 그녀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홀로 서 있었다.
* * *
나미는 매일같이 훈련에 참가했다. 비록 새끼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참가했다. 이렇게라도 새끼를 보고 싶었다. 다만 서글픈 것은 한 번 만져볼 수도 없다는 것일까.
통제관들도 누구 하나 링컨을 직접 만지지 않는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브라우니 때문에 말을 듣고 있어도 기본적으로 괴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 아닌가.
어두운 밤이었다.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달려와서 철조망을 뛰어넘었다. 바로 나미였다. 레지나가 감시 시스템을 해킹으로 무력화해놓았기에 들킬 걱정은 없었다. 지금쯤 한창 더미 화면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브라우니가 없다. 다른 일 때문에 잠깐 다른 곳에 올라갔다고 한다.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오늘 반드시 새끼를 데리고 도망쳐야 한다.
―크르르르…….
인기척을 느낀 링컨이 나지막하게 울부짖었다.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는 게 느껴진다. 나미는 조심스럽게 링컨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나야, 알아보겠니?”
―크르르…….
“못 알아보겠어? 나야, 엄마야.”
―크르르…….
나미는 어쩔 줄을 몰랐다. 빨리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새끼가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 말이라도 통하면 좋을 텐데, 지금의 몸이 되면서 새끼와 의사소통하는 수단도 상실해버렸다.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단추에 손을 가져갔다. 셔츠를 벗었다. 바지도 벗어 내렸다. 완전히 알몸이 된 그녀는 물속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붉은 머리카락이 탐스럽게 찰랑거리며 달빛을 반사했다.
―캬아아악!
놀란 새끼가 빠르게 돌진하며 박치기를 시도했다. 나미는 사뿐히 뛰어 새끼의 머리에 올라탔다. 새끼는 그녀를 떨어뜨리려고 마구 날뛰었다.
“무서워하지 마. 엄마야. 엄마가 찾으러 왔어.”
새끼는 더욱 거칠게 날뛰었다.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무서워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나미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그녀는 천천히 허공을 유영하며 수면 위로 내려앉았다. 하얀 빛이 그녀의 온몸을 감싸는가 싶더니, 하반신에 응집되며 더욱 맹렬한 광채를 뿜었다.
―크르르…….
뜻밖의 기현상에 새끼는 놀랐는지 낮은 위협음을 내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나미의 하체에 뭉쳐 있던 빛이 사그라졌다.
하얗고 가는 두 다리가 사라지고, 매끈한 하나의 꼬리지느러미가 대신 나타났다. 아이들이 봤다면, 인어라고 외칠 매혹적인 모습.
새끼는 위협음을 멈췄다. 녀석은 굳은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녀석의 눈빛은 나미의 꼬리지느러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수면 위에 꼬리를 딛고 선 그녀는 간절함을 담고 물었다.
“혹시 알아보겠니?”
아무런 미동도 없다. 나미는 조심스럽게, 수면 위를 유영하며 새끼에게 다가갔다. 항상 조그마해서 지느러미 하나로 안아주던 녀석이 지금은 자신보다 월등하게 컸다.
손을 뻗어 가만히 만져 본다. 거부하지 않는다. 파르르 떨리는 거대한 눈동자는 그녀의 꼬리지느러미에 고정돼 있었다.
그녀의 쓰다듦에 맞춰, 녀석이 머리를 흔든다. 왈칵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지느러미로 감싸안아줄 때마다, 새끼는 이렇게 머리를 비비곤 했었다.
“알아보는구나…….”
나미는 두 팔로 껴안듯이 새끼의 머리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