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80)
00380 해충 대란 =========================================================================
흑석동 저택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제니스 팰러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대학교 부지를 통째로 매입해서 지은 저택이다 보니 한국 어느 부호의 저택도 그 규모를 따라가지 못한다.
본래 대지 면적만 39만㎡에 달했던 흑석동 저택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겠는지, 끊임없이 주변의 토지를 매입해서 저택 규모를 늘려가고 있었다. 최근에는 저택 동남쪽 일반인 거주구역을 공동 매입해서 확장 공사를 마무리 지었다.
「유지웅 공격대장, 국내 유례없는 대규모 개인 박물관 완공.」
「제니스 박물관, 일반인도 무료로 입장 가능.」
「약탈 문화재 1만 5,000여 점 전시 예정.」
이십대 초반 남짓한 나이에 까마득한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된 유지웅은 이미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청년들은 그의 행보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열광한다.
젊은이들은 그가 사치를 부려도 부러워할 뿐 질시하지 않는다. 그의 재산이 모두 정당한 절차를 통해 벌어들인 것이기 때문에 반감이 적은 것이다. 게다가 제니스는 가장 많은 기부 사업을 펼치는 단체 중 하나다.
처음 유지웅이 개인 박물관을 만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저 젊은 부자가 또 무슨 사치를 부리나 했다. 하지만 자세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다들 손뼉을 치며 좋아 했다.
―일본이 그로기 상태 빠졌을 때 제니스 회장이 일본에 있는 약탈 유물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던데? 개인 박물관에 전시하는 것도 다 그런 거더라고.
―근데 그거 불법 아니야?
―불법이든 합법이든 그게 무슨 상관? 우리 조상님들 물건 찾아온 사람한테 불법 잣대 들이대는 건 우습지 않나?
―1차로 공개하는 유물만 1만 5,000점이라는데, 그걸 다 사려면 얼마나 들었을까?
―일본 그로기 상태라서 유물 빼돌리는 거 돈 생각보다 적게 들었을 거라고 하던데? 진짜 줍는 놈이 임자라고, 돈 좀 있다는 국제 부호들 다들 정신없이 뛰어들었대잖아.
―우리 정부는 그때 뭐했음?
―뭐하긴, 이것저것 수습하느라 정신없었지.
―유지웅 공대장이 뛰어드니까 유물 수집자들 다들 꼬리 내리고 한국 건 다 양보했다던데. 제니스의 파워가 막강하긴 막강한가 봐.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이 약탈 유물 환수하니까 낫다. 외국 놈이 꽁꽁 숨겨두고 있는 것보단 억 배 나은 듯. 게다가 개인 박물관이긴 해도 일반인도 무료로 볼 수 있게 한다잖아.
―내가 공사할 때 일용직 일하러 가봤는데, 그건 개인 박물관 수준이 아님.
남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유지웅도 뭔가를 자꾸만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주로 수집하는 것은 차, 시계, 문화재다.
몇 차례에 걸친 레드 몹의 습격으로 일본이 쑥대밭이 되었을 때, 그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약탈 문화재 수집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뿐만이 아니라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일본에서 흘러나오는 유물들을 획득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국가 기반이 흔들리는 와중에, 유물의 가치가 제대로 매겨질 리가 없다. 유지웅은 엄청난 양의 한국 약탈 문화재를 수집했는데, 먼저 감정과 보관 처리가 끝난 것들만 1차로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멋지게 잘 지어졌네.”
“응. 그러게.”
유지웅 커플은 내부 단장 및 유물 전시까지 마친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직 일반인에게 문을 연 것은 아닌지라, 박물관 내부를 돌아다니는 손님은 둘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박물관에서 고용한 직원들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넘어서는 규모다 보니 필요 인력도 엄청났다. 유지웅은 일단 자문단 중 미술학을 전공한 박정후 교수를 관장 자리에 앉혔다.
제니스 자문단은 자리만 꽂아둬도 일 년에 10억의 보수와 무제한 연구자금 지원 혜택이 있다. 그뿐만 자신의 조언이 바로 국가를, 아니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는 명예가 뒤따른다.
안 그래도 그렇게 막강 파워를 지니고 있는데, 장차 국내 제일의 박물관이 될 것으로 보이는 관장 자리까지 떡하니 꿰찼으니, 풍문에 따르면 자문단 자리를 노리는 교수 및 전문가들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고 한다.
“그래도 애국자 취급받는 건 너무 민망하다. 나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닌데.”
사람들은 그가 구국의 결단을 내리고 사비를 털어 약탈 유물을 모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단순히 돈 많은 자의 수집 취미가 연장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왕이면 우리나라 거, 이왕이면 옛날에 뺏긴 거, 그런 것들을 모으는 게 더 재미날 것 같아서 모았다. 혼자 숨겨두고 보자니 아깝고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일반에 공개했다. 입장료를 안 받는 건 푼돈 받아봤자 관리하기도 귀찮고, 돈 안 받아야 더 많은 사람들한테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그게 모이고 모여 사람들에게 커다란 오해를 주었다. 착각을 심어줬다. 해명하기도 귀찮고, 좋게 착각하고 있는데 굳이 해명할 필요도 없어서 놔두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학교만 지으면 제니스 시티는 완성된다.”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하던 유지웅은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근데 우리나라는 땅이 너무 좁아서…… 특히 서울 인구밀도는 정말 지옥이야.”
차라리 옛 북한으로 갈까 싶은 마음도 든다. 통일 이후 북한은 중국이 가졌던 이권 문제 때문에 제대로 된 개발을 못하고 있다가, 최근 중국 붕괴 이후에야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지역이 개발이 안 된 척박한 땅이지만 그만큼 땅도 넓고 사람도 많다.
“에휴, 됐어. 여기에 생활 터전 있는데 이사 가는 것도 귀찮아, 귀찮아.”
현재 유지웅은 흑석동 저택의 북쪽, 서쪽, 남서쪽 등 각각 세 방향에 대규모 사립종합학교를 짓고 있었다. 각각의 학교는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초중고교 과정을 한 울타리 안에서 운영한다.
그의 아이가 훗날 다닐 학교를 짓고 있는 것인데, 수업료를 전액 무료로 한 것 때문에 또 한 번 사회가 들끓었다. 진정한 자선 사업이라며 모두가 입을 모아 칭송했다.
한 번은 왜 학교를 세 개나 짓는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대답하기 궁색했던 유지웅은 가까스로 이렇게 대답했다.
「하나는 너무 적은 것 같아서.」
그 말은 사람들 사이에서 올해 최고의 명언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식으로 칭송을 받으며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심지어 그의 부모마저 전화해서 잘한 짓이라며 격려를 해줬다.
속사정을 아는 정효주만 깔깔거렸을 뿐이다. 학교를 세 개나 짓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유지웅 커플은 아이에게 평범한 친구들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구름 위의 하늘만 보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편협해진다. 땅에 자라고 있는 조그만 새싹에도 관심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아이가 다닐 최고의 학교를 짓고, 수업료를 전액 면제함으로써 누구나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급우는 물론이고 교사까지 포함해서, 누구도 그가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게 한 뒤 학교에 다니게 할 것이다.
하지만 ‘제니스 가문의 자제가 우리 학교에 다닌다.’라는 소문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학교를 세 개나 짓는 것이다. ‘학교가 세 개인데, 설마 우리 학교에 다니겠어?’라는 마음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1/3의 확률은‘혹시 저 애가?’라고 의심을 하다가도, ‘에이, 설마.’하며 넘어갈 수 있게 해준다.
* * *
트리스티나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언젠가부터 아빠가 놀아주지 않는다. 다 컸으니까 이제 혼자 놔둬도 알아서 놀겠지, 하며 방치하는 것 같다. 빨리 크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아빠가 관심을 안 가져주는 건 싫다.
이상하게 속이 답답하다.
요즘 트리스티나는 뭔가 가슴이 허했다. 뭘 해도 즐겁지가 않았다. 물고기 친구들이랑 물장구 치고 놀아도, 뭐랄까, 유치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쟤들은 대체 언제 철들까? 아아, 나는 너무 조숙해. 친구들 중에서 나만 항상 혼자인 거 같아……. 하는 뭐 그런 거.
오늘도 아빠한테 짜증을 부렸다. 짜증을 부렸더니 또 어디 가서 먹이 하나를 잡아온다. 그래서 더 짜증을 냈다. 지금 다이어트 중인 것도 몰라요! 대체 누구를 돼지로 알고!
가끔 왜 이러지 싶기도 하다. 뭔가 고장 난 거 같은 느낌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로잡힌다. 아마 인간처럼 말을 할 수만 있다면, 근사한 시라도 썼을 것이다.
―찌르르르…….
나지막한 노래를 흥얼거리며 트리스티나는 물가를 걸었다. 요즘 사람들이 뚝딱거리며 집을 넓혀줘서 고래 친구들이 아주 신바람이 났다. 자기 집 놀러오라고 자랑을 하는데, 트리스티나가 보기에는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 싶을 뿐이다.
친구들에게 저 푸른 하늘을 보여주고 싶다. 발로 잡고 한 번 날아볼까? 하지만 날개도 없는 녀석들이라 실수로 떨어뜨렸다가는 그대로 죽을 거 같다. 친구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첨벙, 첨벙!
그때 수면 위에 파동이 일렁거렸다. 트리스티나는 무슨 일이지 싶어 멈췄다. 새로 넓힌 호수에서 친구들 엄마 아빠가 몸을 나란히 붙인 채 유영하고 있었다.
뭘 하는 건가 싶어 트리스티나는 소리를 죽이고 자세히 쳐다봤다. 친구들 엄마 아빠가 몸을 비비며 뭔가를 하고 있었다. 저게 대체 뭐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둘 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 뭔가 기분 좋은 것을 하고 있는 거 같다.
저게 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트리스티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콩닥거렸다. 저런 걸 하면 기분이 좋아지나? 재미있을까?
트리스티나는 들키기 전에 후다닥 그 자리를 벗어났다.
흥분한 트리스티나는 얼른 아빠에게 날아갔다. 날개를 파닥파닥거리며 자신이 본 것을 설명했다. 아니,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놈의 구강구조는 복잡한 발음이 안 돼서 정교한 묘사가 불가능하다.
당연히 아빠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다. 트리스티나는 답답해서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러자 아빠가 날개를 펼치며 슥 일어났다. 트리스티나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저 넓은 날개가 거칠게 감싸면, 아프겠지?
근데 아빠가 하늘로 쑥 날아올랐다. 트리스티나는 멍해졌다. 잠시 후 아빠가 다시 돌아왔다. 입에는 뱀처럼 생긴 커다란 먹이를 물고 있었다.
―찌아아아앙!
트리스티나는 목이 찢어져라 고성을 내지르고는 등을 휙 돌렸다. 아빠 미워! 내가 돼지인 줄 알아! 나도 이제 다 컸다고! 뭐 그런 느낌?
물가로 날아가서 수면 위를 유영하는데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주변을 맴도는 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듯하다. 아마 인간이었으면 이렇게 말을 했으리라. 나도 내 속을 모르겠어, 하고.
날씨도 맑고 바람도 시원한데 뭔가 우울하다. 트리스티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만히 쳐다봤다. 친구 녀석들이 머리를 비비며 끙얼거린다.
그때였다.
―……?
뭔가 이상한 게 언뜻 보였다. 맹금형 괴수답게, 트리스티나는 눈이 매우 좋다. 호기심이 생긴 트리스티나는 빠르게 헤엄쳐서 그쪽을 향했다.
툭. 툭. 툭. 툭.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꼭 벼룩 뛰는 거 같은 소리? 트리스티나는 부리로 물가의 갈대를 헤집으며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이윽고 나타난 모습에 트리스티나의 눈이 커졌다.
조그만 벌레였다. 근데 처음 보는 모습이다. 검은색으로 빛나는 날개는 불에 구운 것처럼 맛있어 보인다. 아니, 녀석은 온몸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트리스티나는 잽싸게 부리로 녀석을 쪼았다. 그러자 놀란 녀석이 푸드득 하늘로 날아올랐다. 트리스티나는 심술이 났다. 이 녀석이 어디로 도망치려고!
녀석이 있는 힘껏 도망친다. 하지만 어림없다. 트리스티나는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올랐다. 지금이야말로, 아빠한테 배운 비행 솜씨를 써먹을 시간이다.
매처럼 쏜살같이 날아간 트리스티나는 죽을힘을 다해 도망가는 녀석을 가볍게 부리로 낚아챘다. 한입에 꿀꺽 삼키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맛있잖아, 이거?
이러다가 살찌겠다는 걱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트리스티나는 혹시 또 없나 하고 갸웃거리다가 귀에 익은 소리를 들었다.
툭. 툭. 툭. 툭.
============================ 작품 후기 ============================
-저, 점프 잘못한 거 같아요. 여기서 나갈래요.
-들어올 땐 맘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