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82)
00382 해충 대란 =========================================================================
트리스티나는 강한 바람을 일으키며 곤충 괴수 무리 몰이에 나섰다. 갑작스러운 천적의 등장에 녀석들은 우왕좌왕하며 무질서하게 달아나기 바빴다.
곤충 괴수 무리는 공격대가 막아설 때도 진형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너희는 막아서라, 우리는 갈 길 갈란다, 라는 식으로 그저 본능에 따라 진격했을 뿐이다.
하지만 트리스티나의 등장은 곤충 무리에 패닉을 가져왔다. 비록 뇌가 거의 없다시피 한 종이지만, 천적에 대한 두려움만큼은 세포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꺄우우우우웅!
트리스티나는 목청을 길게 빼며 울음소리를 냈다. 일종의 영역표시, 침 바르기, 뭐 그런 것이다. 사람의 말로 옮기자면, 저것들 다 내 꺼! 뭐 이 정도쯤?
곤충 괴수 무리는 우왕좌왕해서 한 자리를 빙빙 돌았다. 트리스티나는 본능적으로 녀석들이 멀리 벗어나지 못하게 방향을 바꿔가며 압박을 했고, 덕분에 무리는 이미 황폐화된 산 표면을 빙글빙글 돌면서 벗어나질 못했다.
맛있다! 정말 맛있다!
트리스티나는 신이 나서 산기슭을 따라 아슬아슬할 만큼 낮게 날며 녀석들을 먹어치웠다. 마치 플랑크톤을 먹는 정어리처럼, 입을 쩍 벌린 채 쏜살처럼 곤충 괴수 무리를 향해 쇄도했다.
트리스티나가 지나갈 때마다 곤충 괴수 무리들이 한 움큼씩 뱃속으로 사라졌다. 물론 한 움큼은 인간이 아니라 트리스티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이야기다.
―후욱, 훅…….
얼마나 먹어치웠을까. 트리스티나는 잠시 멈추고 부리를 늘어뜨린 채 헐떡거렸다. 오랜만에 격한 운동을 했더니 숨이 차고 온몸이 무거웠다.
트리스티나는 사냥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배가 고프면 언제나 브라우니가 먹이를 잡아다 줬다.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하려니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생각해보니 오늘 꽤 격하게 날아다녔던 것 같다. 맛있는 별미에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모르고 파닥거렸다.
―캬아악!
그때였다. 익숙한 포효와 함께 묵직하게 펄럭이는 날갯소리가 들렸다. 트리스티나는 얼른 머리를 들었다. 브라우니가 허공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브라우니는 머리를 휙휙 돌렸다. 트리스티나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곤충 괴수 무리가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트리스티나는 안절부절 못했다. 아깝고, 그리고 창피했다.
저거 다 놓치면 안 되는데, 아까운데! 그렇다고 아까 아빠가 잡아다준 먹이도 싫다 해놓고 쫓아가는 모습 보이면 창피하고, 어떡하지?
갑자기 브라우니가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다시 허공으로 상승했다. 자신을 보라는 듯이 트리스티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달아나는 곤충 괴수 무리를 향해서 입을 크게 벌렸다.
―캬오오오오!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는 것처럼 엄청난 굉음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어찌나 큰지 땅이 진동할 정도였다.
트리스티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브라우니를 올려다봤다. 지금 아빠가 뭔가 대단한 시범을 보이려는 것이 확실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방을 쩌렁쩌렁 뒤흔든 포효가 그치자, 죽어라 달아나던 곤충 괴수 무리가 한 마리도 남김없이 땅에 후두두둑 떨어진 채 바들바들 경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와, 아빠! 역시 대단해!
아빠가 사냥하는 것을 처음 본 트리스티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브라우니가 허공에서 날개를 크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이 날개 끝에서부터 일어나며 사방을 쓸어나갔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듯한 거센 바람이, 브라우니의 날개에서부터 일어나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갔다.
휘이이이잉!
하얀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며 점점 두텁게 변했다. 바람의 두께가 점점 커져나갔다. 트리스티나의 눈이 더 커졌다. 바람은 아직도 증식을 멈추지 않았다.
하얗게 불어난 바람이 맹렬히 회전하며 전진했다. 어림잡아 직경이 수백 미터는 될 듯한 거대한 회오리였다. 마치 하늘과 땅을 잇고 있는 것처럼 그 끝이 높고, 보이지 않았다. 저만치 위에는 바람의 여파에 휩쓸린 구름이 빠르게 회전하며, 바람 중심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브라우니는 계속 날개를 퍼덕였다. 트리스티나는 그제야 브라우니의 날개를 자세히 살폈다. 날개 끝에서 계속해서 희미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단지 날개만으로 저런 바람을 만들어낸 게 아니었다. 몸속에 흐르는 강렬한 힘을 방출하여 날갯짓과 섞어 만들어낸 태풍이었던 것이다.
태풍은 기절한 곤충 괴수 무리 위로 당도했다.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곤충 괴수 무리를 허공으로 빨아들인다. 수없이 많은 곤충 괴수들이 태풍에 휩쓸려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태풍은 다시 크기를 줄였다. 위력이 줄어든 게 아니다. 폭을 좁히며, 기절한 곤충 괴수를 중심을 향해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태풍은 직경 십여 미터까지 줄어들었다. 새카만 곤충 괴수가 중심에 뭉쳐 맹렬히 회전했다.
그제야 브라우니는 날갯짓을 멈췄다. 그리고 잘 봤냐는 듯이 트리스티나를 쳐다봤다.
―찌르르! 찌르르르르!
트리스티나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기쁜 함성을 질렀다. 우와, 말도 안 돼! 뭐 이런 게 다 있어! 이게 바로 아빠의 힘?
단순하게 먹이를 쫓아다녔던 자신에 비하면 이건 정말 우아하고 굉장하지 않은가? 포효 한 방으로 녀석들을 죄다 기절시키고, 날갯짓 한 방으로 바람을 일으켜 전부 싹 긁어모으다니.
트리스티나는 어떻게 했는지 꼭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단 급한 것부터 처리해야 했다.
한달음에 바람 앞까지 날아간 트리스티나는 부리를 크게 벌리고 바람 안으로 집어넣었다.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날아다니던 먹이들이 쩍 벌린 부리 안으로 쉴 새 없이 들어왔다.
* * *
커다란 벽면 스크린에는 마치 영화 같은 장면이 흘러가고 있었다.
트리스티나가 곤충 괴수 무리를 쫓는다. 그때 브라우니가 나타난다. 브라우니는 포효로 간단히 곤충 괴수 무리를 기절시키고, 바람을 일으켜 녀석들을 한꺼번에 모은다. 트리스티나는 방방 뛰며 브라우니가 모은 녀석들을 먹어치운다.
한반도 금수강산이 허허벌판이 되면 어쩌나 걱정했던 것을 무색하게 만드는 광경이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나지막한 감탄사만 남발하던 대통령은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브라우니에게 저런 힘이 있었습니까?”
“강한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몇 번 확인 된 적이 있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먹이를 사냥한 것은 처음입니다. 저렇게 정교하게 바람을 통제하는 힘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이렇게 사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곤충 괴수 떼를 사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까요.”
“브라우니에게 이런 힘이 있는 줄 알았으면, 공격대를 소집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잠깐이지만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곤충 괴수 무리를 저렇게 간단히 해치우다니. 역시 벌레의 천적은 새라는 것을 깊숙이 깨닫게 된다.
“일단 혹시 잔존 무리가 있을지 모르니 소집은 해제하지 않겠습니다. 계속 해당 지역을 주시하세요.”
“알겠습니다.”
동원 공격대는 경계를 풀지 않고 수색에 나섰다. 결정도가 거의 없다시피 한 녀석들이라 극소수만 돌아다닐 경우에는 탐지장비가 잡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더 이상 곤충 괴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일단 떼를 지어 나타난 녀석들은 브라우니와 트리스티나가 전부 박멸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는 사이 유지웅이 드디어 도착했다. 그는 남기철을 통해 전용기 안에서 이미 어떻게 일이 진행되는지 보고받았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V-23을 타고 브라우니가 있는 괴수 사육소로 달려갔다.
“브라우니, 너 이 녀석!”
유지웅은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재주가 있었으면 이 주인님한테 재깍재깍 보고했어야지!”
그는 크게 칭찬하며 브라우니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브라우니는 얌전히 머리를 숙이고 있었고, 트리스티나는 옆에서 그의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고 있었다.
트리스티나는 아직 유지웅과 정효주를 무서워하는 편이었다. 바라보기만 해도 엄청나게 셀 것 같은 그런 기세가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이 녀석, 왜 그런 힘이 있었으면서 여태껏 숨긴 거야?”
“말을 할 줄 알면, 진작 말을 했겠지.”
“으아, 이 녀석한테 말 못 가르치나? 발음은 안 된다 해도 문자만 익힐 수 있어도 좋을 텐데.”
“너, 그거 너무 과한 욕심이다?”
그러면서 정효주는 브라우니를 힐끔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브라우니가 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흠칫했다.
“근데 한 번 가르쳐볼만 할 것 같기도 한데…….”
담당 전문가들 연구 결과로는 브라우니는 15살 인간에 맞먹는 지능을 가졌다고 한다. 복잡한 사람의 말도 어느 정도까지는 알아듣는다. 심지어 자기 의사표현도 한다.
물론 그것을 의사소통으로 보기는 어렵다. 눈치가 빨라서 말뜻을 이해하는 것이지, 언어 그 자체를 활용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니까.
“트리야, 너도 한 건 했구나.”
유지웅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뻗자 트리스티나는 고개를 높이 쳐들며 부르르 떨었다. 딱 봐도 겁에 질린 모습이다. 아무래도 브라우니가 자신을 외딴 섬에 숨겨두고 기르고 있다가 들켰던 시절의 기억이 생생한 모양이다.
그때 별로 윽박지르거나 한 것도 아닌데, 브라우니가 어떻게든 숨기려고 아등바등한 게 어린 새가슴에 상처를 크게 남겨놓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잘했어.”
상으로 주려고 가져온 블루 결정체를 내밀자 트리스티나는 바르르 떨던 것도 잊고 날개를 퍼덕거리며 좋아했다. 트리스티나는 언제 무서워했냐는 듯 덥석 블루 결정체를 물고는 그대로 꿀꺽 삼켰다.
결정 에너지가 고밀도로 압축된 결정체는 트리스티나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아무래도 괴수는 덩치가 커서 포만감은 있을지 몰라도, 결정체 자체가 주는 ‘진한 맛’보다는 좀 약한 게 있다. 사골은 원래 진할수록 맛난 법이니.
한국에 출현한 곤충 괴수 무리는 그렇게 브라우니와 트리스티나가 나서면서 간단히 진압되었다. 유지웅은 한시름 놓고 집으로 귀가해서 쉬려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면담 요청이 있었다.
“피곤하시겠지만, 대통령님께서 꼭 뵙고 의논할 게 있다고 하십니다.”
그렇게까지 정중하게 요청하는데 쉴래요 하고 돌아서기도 뭐해서 유지웅은 청와대를 방문했다.
“브라우니의 활약은 저도 처음부터 자세하게 지켜보았습니다.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게요. 대통령님께서 선견지명이 있으시네요. 만약 옛날에 잡아 죽였으면 이런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을 테죠.”
대통령은 어색하게 웃었다. 브라우니를 길들여서 써먹어보자고 한 것은 정부였다. 좋은 결과로 돌아와서 기분이 좋긴 한데, 공치사나 듣자고 그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요청이요? 설마?”
“짐작하시는군요. 이번 해 수확기까지만 브라우니를 빌려줄 수 없는지 문의해왔습니다.”
미국은 올 한해 농사를 망쳤다. 60% 이상의 농작물을 곤충 떼에 잃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 번 더 곤충 괴수가 출현하면, 남아있는 곡물까지 잃을 수 있다.
공격대를 동원하면 곤충 괴수를 죽일 수는 있겠지만 피해 없이 잡을 수는 없다. 공격대의 딜은 해당 지역을 전부 다 태워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라우니는 다르다. 곤충 괴수들을 안전한 지역으로 쫓아낼 수 있고, 기절시켜서 단숨에 박멸할 수도 있다.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박멸할 수 있는 것이다.
“행동이 참 빠르군요. 하루도 안 지났는데.”
“정보력이 뛰어난 나라니까요. 브라우니와 트리스티나가 곤충 괴수떼를 잡아내는 모습도 확인한 것 같습니다. 백악관은 지금 뒤집어졌다고 하더군요.”
수확철까지는 이제 두 달도 안 남았다. 유지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알았다고 하세요.”
아마 수락의 대가로 한국이 뭐 얻어내는 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지웅은 그런 푼돈에는 시큰둥했다. 이거 아버지가 되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참 너그러워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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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족이 어느덧 1주년이 되었습니다.
세월 참 빠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