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9)
00039 나는 화나지 않았다 =========================================================================
유지웅은 부지런히 레이드를 다녔다. 전에는 사흘에 한 번 꼴로 나갔지만, 이제는 하루걸러 한 번 나갔다. 이틀 연속으로 거듭 나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차랑 집 팔자. 응?”
“안 돼! 마이 홈과 마이 카는 내 꿈이었다고!”
빚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정효주는 틈만 나면 재산을 정리하자고 졸라댔다. 그녀는 하루빨리 빚을 청산하고 싶었던 것이다.
“깎을 수 있다니까. 날 믿어.”
“누가 그걸 몰라? 하지만 7천억에서 깎아도 어마어마할 거 아냐? 깎아봤자 깎은 티도 안 나겠다!”
“걱정하지 마. 내가 그럴까 봐 최고로 비싼 변호사 샀어.”
변호사한테 돈을 많이 줄수록 형량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줄수록 채무액도 줄어들지 않을까? 유지웅은 고졸이지만 그 정도 이치는 알았다. 그가 스스로도 잘했다 생각한 게 있다면,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고 대리 업무를 맡겼다는 것이다.
막공에서 그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레드몹 슬레이어라는 영예로운 호칭까지 생겼다. 사실 그런 호칭 따위 없어도 아무 상관없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저희 막공에 와주세요!
―아니에요! 저희 막공부터 와주세요!
―저희 정공에 들어오세요!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온갖 러브콜이 쏟아졌다. 말하지 않아도 딜러들은 알아서 자기 몫의 세금을 그에게 냈다. 특히 정효주가 그 못지않게 굉장히 유명해졌다. 레드 타입 괴수의 공격을 버텨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정효주는 보호막 덕분이라고 해명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같은 보호막을 받은 다른 탱커들은 한 방 맞고 빈사 상태가 되었는데, 그녀는 꾸준히 버티지 않았던가?
보호막 강화는 둘만 아는 비밀이다. 그래서 다들 정효주의 탱커 능력을 오해했다. 정효주는 그런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유지웅이 누누이 강조했다.
“보호막 강화는 절대 밝혀져선 안 돼.”
“왜?”
“좋은 건 우리 둘만 알고 있어야 하니까.”
의외로 그녀는 그 대답에 납득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살림에 있어서만큼은 야무지다.
김장호 변호사가 의논을 위해 찾아왔다.
“결정체 가치가 가치인 만큼 현실적으로 한 푼도 물지 않고 전액 탕감할 수는 없습니다. 이쪽도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알고 있어요.”
“정부도 대단히 난처한 입장입니다. 그것을 잘 이용하면 충분한 이득을 노릴 수 있습니다.”
“저, 그런데 해외에서 귀화 제의 같은 것은 받은 적 없는데요?”
“하하, 그건 제가 지어낸 말이죠. 근데 아주 틀린 말도 아닐 겁니다. 레드 타입 결정체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막말로 유지웅 씨 소유의 발전소라도 지으면 그만이니까요. 그리고 보호막 능력의 가치는 다른 나라에서 높이 사고 있을 겁니다. 미국 같은 나라라면 충분히 7천억을 대납해줄 겁니다. 레드몹이 나타났을 때 국가안보를 지킬 수 있으니까요.”
김장호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이쪽이 그런 카드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과시하는 거죠. 그래야 저쪽의 입장이 좁혀집니다.”
“아, 다행이네요. 전 진짜로 이민 가야 되나 했어요. 우리 둘 다 한국어 말고는 못하는데.”
“이민 가봤자 그 나라한테 이용당하는 건 마찬가지예요. 차라리 한국 정부를 상대하는 게 더 쉽습니다.”
“얼마까지 탕감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소집 대원들에게 보상해줘야 할 총액이 약 500억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일단 500억을 부르긴 했지만 절충을 생각해서 일부러 팍 낮춰 부른 거지요. 대략 2천억 정도는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2천억…….”
유지웅은 일부러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김장호가 다 안다는 듯이 위로했다.
“이해합니다. 결정체가 아무리 비싸봤자 현금도 아니고 유지웅 씨한테는 소용없는 물건이죠. 딜러도 아니시니 장비로 가공해서 레이드에 쓸 수도 없을 테고요. 순전히 정부 과실로 억지로 가지게 됐는데 수천억을 물어줘야 하니, 얼마나 억울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최대한 낮춰 보겠습니다.”
“정말 그래요. 억울해 죽을 거 같아요.”
장비로 보호막을 강화할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 할 것 같다. 그게 밝혀졌다가는 변제액이 얼마나 증가할지 모른다.
“화가 많이 나시겠지만 현실적으로 보세요. 결정체를 이용하면 2천억의 지출은 충분히 메울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충분히 이득입니다. 그래도 최대한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 게 제 역할이겠죠.”
“진짜…… 많이 화나지만 어쩌겠어요? 휴, 이 나라 국민으로서 적당히 양보도 할 줄 알아야죠.”
화가 나기는 무슨. 좋아 죽을 지경인데. 돈 주고도 못 사는 S급 장비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그것도 터무니없는 헐값으로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드디어 정부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유지웅은 결전을 준비하는 전사처럼 외출 준비를 했다. 정효주가 옷매무새를 봐주었다.
“잘하고 와.”
“응. 걱정하지 마.”
허리를 껴안고 살짝 키스한 다음 유지웅은 집을 나섰다. 밖에는 초능력 본부에서 보낸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뒷좌석에는 김장호 변호사가 먼저 타고 있었다.
“가시죠.”
직원이 정중히 안내했다. 유지웅은 끄덕이고는 뒷좌석에 올랐다. 김장호 변호사는 마지막까지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믿음직스러웠다. 이래서 사람들이 비싼 변호사를 쓰는구나 싶었다.
차가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어?”
밖을 내다보던 유지웅은 문득 의아했다. 차는 초능력 관리 본부로 향하지 않고 한적한 도로로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차가 도착한 곳은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고급 한식집이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차가 멈추자 이미 준비가 돼 있었는지 직원들이 나서서 둘을 맞아들였다. 유지웅은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김장호가 태연한 것을 보고 마음을 편안히 먹었다. 그리고 직원이 듣지 못하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왜 여기로 온 거죠? 원래 여기에서 만나기로 했나요?”
“저도 지금 알았습니다. 하지만 짐작은 갑니다. 누가 유지웅 씨를 보자고 했는지도 알 것 같군요.”
“그래요?”
별채에 있는 조용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장지문이 열리자 정갈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방이 나타났다. 그림에서나 볼 법한 전통 한옥이었다. 방에서는 한 노신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노신사 옆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남기철이었다.
“어서들 오시지요.”
노신사가 인자하게 웃으며 맞아들였다. 유지웅은 가볍게 목례하고 자리에 앉았다. 김장호가 그에게 작게 말했다.
“초능력 관리 위원회 상임의장 강우석 의원님이십니다.”
국회의원? 그런 높은 사람이 왜 여기에?
유지웅은 퍼뜩 긴장이 되었으나 태연한 척 했다.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무슨 상관인가. 빚만 깎을 수 있으면 됐지.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강우석입니다. 분에 넘치게 국회의원 직을 맡고 있습니다.”
“유지웅입니다.”
“알고 있어요.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보호막 능력자라는 것도 들었습니다.”
강우석이 가볍게 웃으며 남기철에게 눈짓했다. 남기철이 손뼉을 가볍게 치자 문이 열리며 종업원이 나타났다. 그들은 이미 준비된 요리들을 상에 실어 날랐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이 잘 차려진 진미들이었다.
“자자, 듭시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었지만 유지웅은 선뜻 젓가락이 나가지 않았다. 중요한 교섭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갈까. 김장호는 그런 부담감도 없는지 어느덧 강우석과 술잔까지 부딪치며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유지웅도 분위기에 이끌려 술 몇 잔을 주고받았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직원들이 유지웅 군한테 큰 실수를 했다고 들었어요. 나도 뒤늦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크게 야단쳤으니 마음을 풀길 바래요.”
“차관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 뭐라고 하시면 주눅 들어서 오히려 공무를 잘 못합니다.”
“김 변호사라도 이해해주니 다행입니다.”
유지웅은 듣기만 했다. 협상은 처음부터 김장호에게 위임한 상태. 자신은 그 과정을 지켜보고 최종 결정만 하면 된다.
“관련 법률을 토대로 검토해보니 유지웅 군에게 최고 50억까지 공로금을 지급할 수 있게 돼있더군요.”
“너무하군요. 핵 오염으로부터 울릉도와 동해 해양을 지켰는데도 말입니까?”
“법 규정이 없는 걸 어떡하겠습니까? 적용 가능한 모든 조항을 계산해 봐도 50억이 한계였습니다.”
좀 많이 짜다. 레드 타입 괴수 섬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국가안보를 구하고 귀중한 인재인 다른 공격대원들까지 살릴 수 있었는데, 그 공로금 상한선이 50억이라니.
“의원님 말씀은 결국 7천억에서 50억만 제하자는 취지 같습니다만, 제가 잘못 이해한 것입니까?”
“허허, 김 변호사. 나라 입장도 생각을 해주어야지요. 큰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려 재정 운영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본래 국가 예산안에 잡혀 있지 않던 공돈이지요. 문제가 생길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시작은 부드러웠지만 주고받는 내용은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유지웅은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이 편안하게 젓가락질을 했다.
설전이 길어지고 있었다. 강우석은 웃는 낯으로 계속해서 국가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유지웅의 이해를 부탁했다. 김장호는 이쪽의 과실이 없는 만큼 양보에는 한계가 있다고 맞섰다. 굳이 빚을 만들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반론을 펼쳤다.
이미 상당한 접시가 비워져 있었다. 지루한 공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유지웅은 편안한 마음으로 구경했다.
지쳤다는 듯이 강우석이 화제를 바꿨다.
“사실 이 자리는 내가 나설 자리가 아니었어요.”
유지웅은 무슨 소린가 갸웃거렸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교섭이 만만치 않다고 보고가 올라와서 무슨 일인가 했어요. 단기 예산도 융통해야 하니 이 일도 시급히 처리해야 했고. 그래서 내가 직접 나서기로 한 겁니다.”
김장호는 태연히 응수했다.
“아무리 그래도 의뢰인이 7000억에 가까운 금액을 부담하라는 것은 지나칩니다. 지금 의뢰인이 가장 원하는 것은 결정체를 양도받지 않는 겁니다.”
“국가가 가져봐야 쓰지도 못할 거, 차라리 유지웅 군이 양도받는 게 낫지 않습니까? 그게 둘 다 이기는 길입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딜러도 아닌 의뢰인이 결정체를 어디다 쓴단 말입니까?”
“꼭 장비 가공을 하지 않아도 이익 창출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은 정부가 최대한 지원을 해주겠습니다.”
“번거롭기만 합니다. 의뢰인은 그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김장호의 논리는 유지웅과 이야기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현실적으로 결정체를 적당한 가격에 양도받을 수밖에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강짜를 부리고 있었다. 그게 더욱 믿음직했다.
사실 유지웅이 가장 원하는 것은 결정체를 인도받되 최대한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결정체로 장비를 가공한다면 보호막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딜러들이 장비에 목을 매는 것처럼 그도 좋은 장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밝히는 것은 유리한 협상 카드를 내버리는 짓이다.
“이쪽이 제시한 500억도 최대한 국가의 입장을 고려한 것입니다. 의뢰인은 결정체를 가져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가지고 싶어요! 진짜 갖고 싶다고요!’
“결정체가 비싼 건 알지만 의뢰인에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정부는 그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갖고 싶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변호사를 고용한 것은 잘한 짓 같다. 직접 협상을 했으면 얼마나 뜯겼을까?
“김 변호사, 그만하죠. 내가 졌어요. 3천억까지는 내 재량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 겁니다. 장비 가공을 못해도, 결정체를 활용하면 3천억 이상의 이익은 충분히 창출할 수 있을 겁니다. 이쯤에서 타협하죠. 이게 내 한계입니다.”
“곤란합니다. 의뢰인은 그만한 액수를 지불할 능력이 없습니다.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인수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김 변호사!”
설전이 다시 오간 끝에 최종적으로 1천억에 양도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대금은 유지웅이 매달 분할 납부하는 방식으로 결정했다. 협상을 끝냈을 때 강우석의 표정은 참으로 볼만했다.
수천억을 각오했던 대금이 1천억까지 줄어들었다. 한식집을 나서는 유지웅은 발걸음이 가벼우면서도 무거웠다. 아, 천억의 빚이라니? 어느 세월에 갚지?
김장호는 더 깎지 못한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좀 더 줄일 수 있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수고하셨어요. 그래도 2천억까지 생각하신다면서 거기서 더 깎으셨잖아요?”
사실 국가는 큰 손해를 봤다. 결정체는 발전소 등 활용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얼마든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유지웅에게 귀속되었다는 점에서 국가는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어떻게든 그에게 넘겨야 하는데, 귀속 반응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것 때문에 발목이 붙잡힌 것이다.
만약 유지웅이 혼자 협상을 했다면 제값 혹은 상당한 값을 치르고 양도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김장호가 나선 덕분에 7천억이 1천억까지 줄어들었다.
“잘 활용하면 지출 비용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강제 양도 받았다고 너무 불쾌해하지 마십시오.”
“괜찮아요. 화 안 났습니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 나라를 위해서 제가 조금쯤은 양보도 하고 그래야죠.”
1천억의 빚이 생겼지만 전혀 화나지 않았다. 헐값으로 S급 장비를 얻은 셈이니까.
============================ 작품 후기 ============================
와우 때문에 구상했던 글입니다.
컨셉은 개그입니다.
분위기 강약에 따라서 가끔 심각해질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개그/유머/코믹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포식자처럼 국제정치 이야기 같은 것도 거의 안 건드렸습니다.
앞으로도 레이드와 공격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려고 합니다.
사실 제일 가볍고 아무 생각없이 쓴 글인데 제가 쓴 글 중에서 반응이 젤 좋아서 저도 당황스럽네요.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