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398)
00398 흔한 친구 =========================================================================
저녁놀이 깔린 서울은 휘황찬란한 네온 빛으로 가득했다. 하늘 위에서 저 야경을 내려다보며, 이 어린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안슐은 문득 궁금해졌다.
겨우 세 살. 그것도 만으로는 2년도 지나지 않은 아이. 그런 아이가 스스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가려고 한다.
이대로 성장하면 과연 어떤 인물이 될까? 그것을 상상하니 안슐은 몹시 즐거워졌다.
“아직은 어려울 수 있겠구나. 하지만 언젠가는 삼촌의 말을 이해할 날이 올 거야.”
“네.”
“이만 내려가자. 엄마가 기다리겠구나.”
헬기는 다시 고도를 낮추며 착륙장에 내렸다. 테레사는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안슐이 그녀에게 유세현을 내밀었다.
“도련님, 식사할 시간입니다.”
유세현을 바라보는 테레사의 표정은 부드러웠다. 평소의 딱딱하고 군기 잡힌 안색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마치 유세현의 존재가 그녀의 내면에 숨어 있는, 거의 죽어버린 거나 다름없는 모성애를 끄집어내는 것처럼.
집에 들어오자 유지웅이 물었다.
“어디를 갔다 왔어요?”
“잠시 하늘에서 야경 좀 보여줬지. 그렇지, 세현아?”
“네! 우리 집이 이렇게 큰 줄 오늘 처음 알았어요! 아빠, 진짜 부자군요!”
유지웅은 괜히 으쓱해져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하하, 우리 집이 좀 크긴 하지.”
가족용 식당에는 이미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유지웅을 비롯해서 전부 탁자에 둘러앉았다.
정효주는 손수 준비한 이유식을 유세현 앞에 차려놓고 수저로 조금씩 떠먹였다.
“아유, 우리 애기 잘 먹네. 많이 먹어.”
“너, 그런 말 하니까 아줌마 같다.”
“애 있으면 아줌마 맞지.”
“아, 그런가? 그럼 나도 아저씨네? 슬프다.”
“괜찮아요, 형부. 아무도 형부 아저씨로 안 봐요. 누가 봐도 샤프한 대학생이신데 뭐.”
“역시 처제 밖에 없어.”
“혜주 너, 또 갖고 싶은 거 생겼지?”
“에헤헤, 그렇게 티나?”
식사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안슐도 웃고 떠들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테레사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레이드 관련 주제가 오르면 한 마디씩 거들곤 했다.
“그러고 보니 언니, 이번이 마지막 학기네?”
“그러게. 한 것도 없는데 4년 금방이야.”
“그럼 언니 없는 캠퍼스에서 형부는 내 차지?”
“그래, 다른 여자 안 꼬이게 잘 감시해 줘.”
“언니도 그런 거 걱정하는구나?”
정혜주가 놀리듯이 말하자 정효주는 그냥 웃고 말았다.
식사를 마치고 2층의 거실로 갔다. 1층은 호텔 프론트처럼 공개된 곳이지만 2층은 손님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곳이다. 호텔 객실처럼 손님이 편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는데, 손님들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거실과 서재도 갖춰져 있었다.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정혜주는 안슐이 해주는, 알려지지 않은 세계 부호들의 숨은 이야기에 손뼉까지 치며 재미있어 했다.
“와, 의외네요. 그런 사람들은 되게 뭔가 다를 거 같은데, 결국 다 똑같이 사는구나.”
“이 친구를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요? 하긴, 이 친구는 부호 치고는 좀 특출 난 편이지만.”
“어떻게요?”
“예를 들자면…….”
대화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하품을 하는 사람이 둘 있었다. 바로 테레사와 유세현이다. 유세현은 테레사의 무릎 위에서 찰싹 달라붙은 채 가슴만 만지작거렸다.
“테레사.”
“네, 도련님. 왜 그러십니까?”
“나 책 읽고 싶어.”
“책이요?”
테레사는 의아했다. 유세현은 아직 글을 모른다. 책을 가져다 줘봐야 읽을 수 없다.
“응. 책을 읽고 싶어. 그냥 막 읽고 싶어.”
“하지만 책을 읽으려면 글을 알아야 할 텐데…….”
“그러니까 테레사한테 배울래.”
어린 아이가, 그것도 만 20개월 밖에 안 된 아이가 먼저 글을 배우겠다고 나선다. 보통의 부모라면 펄쩍 뛰며 기뻐할 일이다. 우리 아이 신동 아니냐고.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가르쳐 드리죠.”
“지금부터. 당장 배울래.”
“그럴까요?”
언어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글자를 가르치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한국어 배우기가 좀 난해해서 그렇지, 테레사도 한글을 배울 때는 쉽게 배웠다.
테레사는 유세현을 안고 자기 방으로 갔다. 마침 한글을 배울 때 읽었던 교재가 아직 몇 권 남아 있었다. 그것을 토대로 테레사는 유세현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자, 따라해 보세요. 이건 기역, 니은, 디귿, 리을…….”
“기역, 니은, 디귿…….”
테레사가 커다란 태블릿PC 화면에 띄워주는 철자를 하나씩 읽어주자 유세현은 또랑또랑하게 들여다보며 따라했다.
어느덧 까맣게 물든 하늘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낭랑하게 글자를 읽어주는 테레사의 목소리와, 한 글자 한 글자 따라하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교대로 울렸다.
* * *
“근데 안슐 가문 재산은 얼마나 돼요?”
너 돈 얼마 있느냐. 이런 질문은 보편적으로 결례가 된다. 하지만 유지웅과 안슐 사이에서는 조금도 그렇지 않다. 둘 다 부에서는 이미 아득히 초월한 단계에 있는데다가, 서로가 서로의 재산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는 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너무 돈이 많다 보니 본인들도 정작 자기 돈이 얼만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지하크, 우리 가문 재산이 얼마나 되지? 비자금까지 합쳐서 말해보게.”
“재산 가치가 실시간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기에 정확히 얼마라고 말씀드리는 건 어렵습니다. 다만 작년 결산을 했을 때 약 1조 8,200억 달러 정도로 집계되었습니다. 현물과 현금, 해외 부동산, 보유한 기업 및 은닉 재산까지 모두 포함한 액수입니다.”
1달러가 약 1,000원 정도 하니까 1조 8,200억 달러면 대략 1,820조 원에 달한다. 입이 벌어질 만큼 어마어마한 액수지만 유지웅은 왠지 그렇게 많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자신도 곧 따라잡을 수 있을 듯했기 때문이다.
“은닉 재산이요? 안슐도 그런 게 있어요?”
“불법으로 은닉한 건 아니고, 그냥저냥 비상금 같은 걸세. 사유 재산을 전부 일반에 공개할 필요는 없지.”
“아, 그렇구나.”
“그 중 안슐 님의 개인 재산은 약 2,100억 달러 정도 됩니다.”
“그 정도라는군. 자네는 얼마나 되지? 이제는 자네가 나보다 더 부자 아닌가?”
“잠시만요. 내 돈이 얼마더라?”
유지웅은 패드컴퓨터를 가져와서 켰다. 무슨 프로그램을 가동하자 안슐이 뭔가 해서 물었다.
“뭐 하는 건가?”
“저는 실시간으로 재산 내역 확인할 수 있거든요. 재산 가짓수가 얼마 안 돼서요.”
“나도 보여주게.”
재산 가짓수가 엄청난 안슐에 비해, 유지웅은 가짓수 자체는 얼마 되지 않기에 비교적 파악이 쉬웠다.
“미국 대농장, 호남평야, 괴수들은 그 가치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니까 별개로 넘기고. 호오, 결정체 채권이 250조 원이나 되는군?”
“총액은 275조원인데 아직 250조 원 더 받아야 돼요. 제1예비대는 전원 상환했는데 나머지 예비대는 아직 상환율이 10%도 안 되거든요.”
보유한 블루 결정체가 90개(약 54조 원), 5조 1,589억 원에 매입한 에버튼 구단, 추정 가치가 30조 원에 달하는 효웅산업 지분 51%, 샀던 것도 기억 안 나는 일성전자의 지분 12%(25조 원).
그 밖에 제니스 보험재단, 얼마 전에 설립한 자선재단, 그리고 가치평가가 불가능한 연구단지가 있었다. 전용기인 A3와 V-23, 취미로 수집한 각종 수퍼카들은 아예 목록만 적혀 있을 뿐 가액평가도 하지 않았다.
여기에 제니스 공격대가 보유하고 있는, 호크아이를 비롯한 다수의 최첨단 레이드 지원장비도 있었다. 이것들은 개별 수량이 너무 많고 다양해서 마찬가지로 가액평가를 하지 않고 대략 어떤 종류의 물품이 몇 개 있다, 정도만 적혀 있었다. 그밖에 사립 박물관, 사립학교 재단 등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계좌 내역을 확인한 안슐은 크게 놀랐다.
“아니, 현금이 5조 원 밖에 없나?”
세상 사람들은 유지웅이 현금으로 수백조 원쯤 쌓아두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워낙 그의 재산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 현금 잔액은 달랑 5조 원 밖에 되지 않았다.
“그게, 일본에 돈을 많이 써서요. 문화재 수집 하는데 100조 원쯤 넘게 쓴 거 같아요. 거기다가 박물관도 짓고, 학교 재단도 세 개나 만들고 하다 보니까 현금 지출이 좀 많았어요.”
“현금 보유량이 너무 적군. 자네는 회사를 경영하지 않으니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그래도 현금 보유량을 조금 늘리게.”
“그래야할까요?”
“물론이지. 언제든 200억 달러쯤은 찾아 쓸 수 있게 준비를 해두는 게 좋네. 혹 급한 지출이 생길지 누가 아나? 현금이 이렇게 적어서야 유동 재산 관리가 영 불안해지네.”
“결정체 파는 거 귀찮아서 놔뒀는데, 몇 개 좀 팔아야겠다.”
안슐은 대견하다는 듯이 웃었다.
“아무튼 이제 자네가 확실히 제일 부자로군. 개인으로든, 가문으로든.”
“가문으로는 아직 멀지 않았나요?”
“호남평야와 자네가 거느린 괴수들의 가치가 측정 불가능한 수준 아닌가? 이미 자네의 재산은 가치를 매기는 게 의미가 없어. 내가 장담하지. 자네, 아니 자네 가문은 어느 가문과도 비교가 안 되는 거부일세. 우리 아부다비 가문도 이미 자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거야.”
유지웅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가문으로도 안슐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해왔지만, 별로 한 것도 없는 거 같은데 벌써?
“아무튼 이제 자네가 훨씬 더 큰 부자이니, 한턱이나 내게.”
“어, 그럴까요?”
아까부터 숨죽이며 듣고 있던 정혜주는 조용히 일어났다. 두 남자는 뭐라 그리 유쾌한지 웃고 떠들었다.
발코니로 나온 정혜주는 두 팔로 몸을 감쌌다. 오슬오슬 소름이 돋으려고 한다.
세상에, 뭐? 200억 달러쯤은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게 해둬야 하지 않느냐고?
“형부가 돈이 많긴 많구나…….”
세계 제일의 부자란 건 이미 알았다. 하지만 형부 재산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저 어림짐작으로 상상만 했을 뿐이다.
재산총액을 한 수백 조 원쯤으로 생각했는데, 이건 형부를 너무 과소평가한 게 미안해질 정도다. 옆에서 재산 목록만 대강 들어도 그 가치가 얼마나 될지 상상이 안 간다. 이건 웬만한 나라에 맞먹는 재산 가치가 아닌가?
“아이씨, 내가 먼저 태어날 걸.”
그렇게 언니 몰래 작게 투덜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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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족에서 제일 억울한 건 사실 혜주?
번호 하나 차이로 로또 1등을 못한 것쯤 될 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