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25)
00425 진격의 불곰 =========================================================================
“면죄부는 아직 있습니다.”
스위스, 그리고 이탈리아. 두 나라는 처음 러시아의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에 빠졌다. 갈등에 갈등을 거듭했다.
“이미 우리는 명확한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제안을 거부할 시, 스위스는 러시아군의 분노를 제일 먼저 받게 될 겁니다. 그 다음에는 한국의 철저한 경제적 제재를 받겠지요.”
그것이 절대 빈말이 아님을, 스위스 대통령과 이탈리아 총리는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몇 년 전, 중국을 산산조각 내버린 러시아 징벌 전쟁이 그 증거다.
중국 레이더 박해에서 빚어진 당시 러중 전쟁은 실제로는 중국의 레이더, 메이를 탐낸 한국을 대리해 러시아가 나선 것이다. 그 결과 중국은 다수의 조그만 소국가로 분열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스위스, 이탈리아에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러시아는 유럽의 이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바이러스 괴수 사태는 러시아의 무력행사를 정당화시켜주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명분이다.
한국이 브라우니를 제공하기만 해도 러시아는 움직일 수 있다. 저쪽은 괴수의 습격에서 안전한데, 이쪽은 괴수의 습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러시아는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CERC에 지분이 있습니다.”
“그 지분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 아니 유지웅 회장은 CERC를 철저하게 해체할 작정입니다. CERC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괴수에 관련 있는 모든 책임자, 모든 가문을 짓밟아 세상의 질서를 세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로스차일드는 더 이상 가문의 이름을 유지할 수 없을 겁니다.”
러시아 외교관은 설마 유지웅이 그렇게 할까 생각하면서도 일단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정도 오버는 상관없겠지?
“한국이 백신 때문에 CERC와 손을 잡을 거라 생각합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차라리 CERC, 로스차일드, 유럽을 철저히 짓밟고 빼앗으면 그만입니다. 그럴 힘도 있고, 실력도 있으며, 명분까지 이쪽에 있습니다. 유지웅 회장의 자존심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습니까? 우리 러시아도 한 수 접어주는 수준입니다.”
“…….”
“이번이 배를 갈아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러시아의 요구는 간단했다. 러시아군이 CERC를 점령하고, 압류한 물품과 포로를 이송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것.
CERC는 스위스에 있고, 스위스는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이탈리아는 지중해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두 나라가 고개를 숙이면 러시아는 간단히 압류물과 포로를 빼낼 수 있게 된다.
두 나라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유럽은 두 나라가 배를 갈아탄 것을 알 수 없다. 유럽의 잘잘못을 가릴 때 두 나라가 징벌 명단에서 빠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깨달을 수 있으리라.
“러시아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 * *
“이걸 다 어떻게 일주일 만에 빼낸 거죠?”
항공로로 도착한 화물의 양을 보고 유지웅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CERC이 워낙 거대한 과학도시다 보니, 부피가 작고 가치가 있는 시설물 위주로 빼냈음에도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대형 화물기 B-777 3기에서 끝도 없이 화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물품이 몇 배는 더 남아 있다고 한다.
러시아는 저장매체, 제어 컴퓨터, 핵심 고급 부품 등으로 우선순위를 매기고 계획된 약탈을 했다. 입자가속장치에 사용된 대형 전자석이나 통상 컴퓨터 회로 같은 것은 내버려두었다. 그런 것은 금전적 가치만 있을 뿐, 과학기술적 가치는 없다. 쉽게 말해 다른 데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부품 같은 것은 전부 버려둔 것이다.
“아무리 러시아가 대단하다 해도 2천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는 일주일 만에 불가능할 텐데. 유럽 한복판에서 항공기는 또 어떻게 띄웠대요?”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사전에 포섭했다고 합니다. 보안을 위해서 마지막까지 우리한테도 말하지 않았다는군요.”
“스위스? 러시아?”
“스위스는 CERC가 있는 나라죠. 스위스가 협조한다면 일주일 안에 주요 물품을 빼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 아직 유럽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태도 전환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독일, 프랑스 등도 어떻게 해서 그 짧은 시간 안에 러시아가 유럽의 눈을 피해 포로와 물품을 빼돌렸는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스위스와 이탈리아가 등을 돌렸으리라고는 아직 상상도 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일절 피해 없이 전원 투항했습니다. 포로 송환 요구에 유럽이 오히려 쩔쩔 매고 있습니다.”
“저라도 놀라겠네요. 기껏 진압했는데 이미 집은 다 털리고 난 뒤니까.”
“포로 과학자들은 어떻게 할까요?”
러시아는 과학자를 제외한 나머지 단순 인력은 포로로 삼지 않고 전원 석방했다. 포로로 삼은 과학자 수만 무려 600명 가까이 되었다.
현재 과학자들은 러시아의 택배, 아니 수송 작전의 결과로 한국에 도착한 상태였다. 아직 이들이 한국에 있다는 것은 러시아와 한국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남 국장님은 어떡하면 좋을 것 같아요?”
“바이러스 괴수 개발에 책임이 있는 자는 법정에 세워 엄히 죄를 묻고, 관련 없는 과학자는 회유해야 합니다.”
“회유가 가능하겠어요? 결정체 연구단지 만들 때 그렇게 스카웃 제의를 했는데도 CERC에 남은 사람들인데?”
“CERC는 이제 곧 세기의 범죄 집단이 될 겁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과학자라 해도 그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닐 겁니다. 그것을 떼어낼 기회를 주는 거죠.”
제니스가 CERC의 죄를 물어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나머지는 받아들인다면, 받아들인 사람들은 ‘바이러스 괴수와 관련이 없다.’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그 점을 알려주면 회유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세계적인 석학들입니다. 우리나라, 아니 제니스 연구단지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두뇌들입니다. 옥석을 골라내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죠. 그 부분도 남 국장님이 좀 맡아서 해주시겠어요?”
“……아, 네.”
일을 더 늘릴 마음은 없었는데? 그저 유지웅의 성정을 파악해서 그와 한국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제안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떠맡겨 버렸다.
“아주 좋은 조언을 해주셨네요. 여기 자문료요.”
유지웅이 수표를 내밀었다. 보니까 무려 10억짜리다. 말 한 마디 해주고 10억을 받다니, 이래도 되는 건가 싶다.
“저, 괜찮으신 건가요? 얼마 전에 최윤 사장님 때문에 현금이 마르셨다고…….”
“잠깐 바닥을 보였는데 금방 다시 차더라고요. 제니스 장비 채권 대금 들어왔거든요. 지금 현금 2조 넘게 있어요.”
남기철은 그만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지금 누가 누구 주머니를 걱정하는 건지 웃기다.
그래도 놀랍다. 현금이 바닥을 보인 게 불과 얼마 전인데, 다시 2조가 넘었다니.
유지웅의 전 자산은 1경을 상회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얼마 전 그는 최윤의 연구 자금 지원 때문에 유동 현금이 그만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그 때문에 잠깐이지만 지갑이 좀 고생을 했다.
하지만 회장님의 지갑은 다시 무섭게 차오른다. 장비 채권 대금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다시 2조 원을 넘어섰다.
그리고 현금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급할 때 충분히 여유 있게 쓸 수 있도록 현금의 보유량을 좀 늘릴 생각이었다.
“아참, 저 은행 하나 만들어도 되나요?”
“은행이요?”
남기철은 무슨 말인지 의아했다.
“저 한 200조쯤 현금 쌓아둘 생각인데, 남의 은행에 예치해두는 건 좀 그래서요. 그냥 제 개인 소유 은행 하나 만들어서 돼지 저금통으로 쓰려고 하는데, 괜찮겠죠?”
“……그러실 거면 소규모 저축 은행 하나 설립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현금을 보관할 본점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네요.”
참 괴이한 관계가 될 것 같아 그게 웃겼다. 그러니까 유지웅이 은행 오너고, 동시에 은행 고객이 된다는 소리 아닌가?
하기야 적은 돈도 아니고 200조 원까지 현금을 쌓아둘 작정이라니 저금통 겸 해서 은행을 하나 갖고 있는 게 나을 것 같긴 해 보인다. 물론 말이 200조지, 전부 원화로 쌓아두는 것은 아닐 것이다.
* * *
바이러스 괴수, 러시아의 CERC 습격, 유럽의 반격 등으로 세상이 시끄러운 가운데도 올 것은 왔다. 바로 12월 24일, 성탄절 이브가 온 것이다.
성탄절은 유지웅 커플에게 매우 특별하다. 정효주는 24일에 진통이 왔고, 25일 00시에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성탄절과 아이 생일을 같이 치르기로 했다.
유지웅은 일가친척 전원을 아이 생일파티에 초대했다. 아직 아이 생일이 되려면 하루가 더 남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덕분에 가사 고용인들은 아침부터 바쁘게 음식을 준비한다, 생일상을 차린다고 바빴다. 쉬는 날에 밤을 세워가며 일을 해야 하지만 그들은 불만이 없었다. 평소에 받는 급여도 상당한 수준이고, 이번에는 특별히 개인당 보너스가 100만 원씩 나왔기 때문이다.
흑석동 저택을 좀처럼 방문할 일이 없던 친가, 외가쪽 친척들은 으리으리한 저택 규모에 잔뜩 주눅이 들었다. 특히 유지웅의 사촌 형제들은 2층에 마련된 손님용 룸에 그저 감탄만 나타냈다.
“형, 정말 우리 여기서 자도 되는 거예요?”
“어. 2층은 전부 손님용 객실이야. 3층은 우리 침실이니까 올라가지 말고. 어차피 안 열려.”
“네, 알아요.”
본채 건물이 가로 180, 세로 60미터에 달하는데 한개 층을 통재로 부부 침실로 쓰고 있으니, 얼마나 호사스러울지는 상상이 안 갔다.
“네가 어릴 때 우리가 해준 것도 없는데, 신경 많이 써줘서 고맙다. 네 덕에 직장에서 어깨 펴고 산다.”
“아파트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돈이 사람을 참 무르게 만드나 보다. 갓 벼락부자가 되었을 때에는 어떻게든 얻어먹을 게 없나 눈을 빛내던 친척들이 전부 얌전한 양이 되어 있었다.
사실 친척들에게 신경 쓴 게 거의 없다 보니 유지웅은 그저 머리만 긁적였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왜 효주 앞에서 코브라 앞의 개구리처럼 어른들이 저리 얌전하게 굴지?
“아빠, 나 친구 들어오라고 해도 돼요? 지금 집 앞에 왔다는데요.”
“친구? 친구도 초대했어?”
유지웅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이제 만으로 두 살 된 아이가 벌써 친구가 있어? 유치원도 안 보냈는데?
“응. 나 생일 한다고 친구들 오라고 했어요. 맛있는 거 주고 싶어요.”
“집 앞에 있다고? 그럼 어서 오라고 해.”
“네. 테레사.”
아이가 테레사에게 뭔가를 부탁하자, 그녀는 곧 전화기를 꺼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뭔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잠시 후 버스 한 대가 정원을 가로질러 들어왔다. 버스에는 ‘희망보육원’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버스가 내리고 잠시 후 잔뜩 주눅이 든 남자가 내렸다. 아마 담당 교사인 모양이었다.
이윽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우르르 내렸다. 대부분 다섯 살이 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었다.
“우와, 너 집 엄청 크다.”
“맛있는 거 많아?”
“나 아침부터 굶었어!”
갑자기 분위기가 시끌시끌해지자 음식과 담화를 즐기던 친척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왔다.
정효주가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우리 세현이, 언제 친구 저렇게 많이 사귀었니?”
“놀이터에서 놀다가 쟤랑 만났어요. 쟤가 다른 친구들도 소개시켜줬어요.”
“장하네. 알아서 친구도 많이 사귀고. 세현이 나중에 크면 아빠처럼 엄청 인기 많은 남자 되겠다?”
아이에게 웃어주고 일어선 정효주는 가사책임자를 불러 짤막한 지시를 내렸다.
“큰 방 하나 비워서 세현이랑 친구들끼리 같이 놀 수 있게 해줘요. 맛있는 거 많이 들여 주시구요. 아무래도 아이들끼리 노는 게 낫겠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이들을 인솔해온 교사는 설마 유세현이 제니스 귀공자인 줄은 몰랐던 듯 안색이 새파래져 있었다.
“자, 따라 와! 우리끼리 놀자!”
“와, 신난다!”
아이가 친구들을 데리고 앞장을 섰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고 기뻐하며 따라갔다.
유지웅은 조금 어이가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척 보니 고아원 아이들이다. 하지만 고아 친구라는 것 때문에 편견을 가지거나 싫은 것은 아니다.
그가 놀랐던 것은 바로…….
“왜 여자애들 밖에 없어?”
아이의 미래가 어찌 될지 눈앞이 캄캄하다. 저 앞에, 그저 어둠만이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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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현아. 네 친구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단다. 무한한 가능성을…”
(저중에 한 명은 근사한 미녀 탱커로 성장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