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28)
00428 진격의 불곰 =========================================================================
“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
청와대 기자회견실에는 내외신 기자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차 있었다. 단상에 선 대통령은 다양한 국적의 외신 기자들을 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기자회견실이 좁아터질 정도로 몰려든 외신 기자들의 수는 그간 달라진 한국의 영향력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달라졌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한국이 어떤 성명을 발표하느냐에 따라 CERC와 로스차일드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입니다. CERC를 놓고 유럽과 러시아 간의 긴장 관계에 관해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겠습니다.”
기자회견실은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마치 판사의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살벌한 긴장감만이 맴돌았다.
“우리 정부는 밤 바이러스가 CERC에서 백신 판매를 위해 개발한 괴수라는 증거를 확보했습니다. 전 세계 시민을 상대로 목숨 장사를 하려고 한 파렴치한 과학자들의 행위에 차마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이 CERC의 단독 행위가 아닌, 일부 탐욕스러운 국제 자본가들의 적극적인 지원 및 지휘 아래 벌어진 일이라는 증거도 확보했습니다.”
“그 자본가가 로스차일드 가문입니까?”
어느 기자가 소리 높여 질문했다. 대통령은 잠시 그의 눈을 바라보았을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들에게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CERC를 악의 축으로 규정, CERC를 점거한 러시아의 행위를 지지합니다. 러시아의 침공은 타국에 대한 불법행위이나, 전 세계 시민의 목숨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으로, 그 위법성이 충분히 조각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의 손이 빨라졌다. 그 동안 아무 관련 없는 듯이 모른 체를 일관해왔던 한국이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이는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이뤄지는 긴장관계의 밸런스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시초가 될 것이다.
“또한 제니스 연구단지에서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백신을 개발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 기자의 손이 멎었다.
이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백신은 CERC가 개발한 것이 유일했다. 헌데 한국은 지금 그 짧은 시간 안에 백신을 개발했다고 한다.
“CERC가 초기부터 음모론의 공격을 받았던 것은 지나치게 짧은 백신 개발 기간 때문이라는 걸 아십니까?”
누군가가 그렇게 질문했다. 한국 또한 CERC와 비슷한 음모론에 휘말릴 수 있다는 걸 돌려 말한 것이다.
다른 기자들의 표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설마 CERC라는 범죄자 위에 한국이라는 죽음의 상인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기에는 충분한 정황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표정은 자신만만했다.
“제니스 연구단지에서 개발한 백신은 CERC에서 개발한 것과 같은 화학의약품이 아닙니다. 개발 연구진은 안전지대가 없는 제3세계 국가에서 의외로 바이러스 폭발이 거의 없었던 것을 이상하게 여겨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기자들은 초조한 표정으로 숨을 죽인 채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호남산 곡물을 꾸준히 섭취한 사람들은 바이러스 폭발을 일으키지 않은 것을 알아냈습니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조금 전의 고요함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엄청난 웅성거림이 번졌다. 기자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 놀라운 말이, 정말로 사실인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세계의 헤게모니는 또 한 번 뒤틀어지게 된다.
한국은 블루 결정체, 안전지대로 땅은 좁지만 어느 강대국보다 단단한 국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식량이라는 무기까지 더해진다면? 그리고 그 식량을 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소비해야 한다면?
‘에너지와 방위력에 이어, 식량까지 독점하게 된다!’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단순한 식량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호남산 곡물에 대한 수요가 급증할 것이다.
기자들은 직감적으로, CERC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봉쇄되었음을 깨달았다. CERC가 정말 밤 바이러스 제조에 책임이 있는지 여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CERC가 치졸한 범죄자가 되고, 그들이 개발한 백신이 사장되어야만 한국의 이익이 극대화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한국 정부는 물불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제니스 연구단지에서는 호남산 곡물에 바이러스 억제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으며, 해당 성분을 고농도로 압축하여 단기간에 효능을 볼 수 있는 대용 백신의 시험 개발에 성공, 현재 양산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기자들은 정신이 없었다. 앞으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은 또 어떻게 변할까?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자신 있게 CERC와 그를 후원하는 자들에게 선언합니다.”
뚝.
약속이라도 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일제히 멈췄다. 대통령의 어조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힘이 느껴졌다. 가장 중요한 말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파렴치한 CERC와 그를 후원한 탐욕스러운 국제 자본가들은 감히 세계 시민의 목숨을 손에 틀어쥐려 했으며, 우리 대한민국 또한 그 피해국입니다. 이에 저는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수호하는 대통령으로서 선언합니다.”
대통령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차가운 분노를 머금고 있었다.
“우리 정부는 국제 범죄자들과 양립불가함을 선언하며, 상한 없는 무제한 책임을 묻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대통령의 성명 발표가 끝났다. 하지만 기자들의 침묵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이상하게 기자회견실이 추웠던 것이다. 난방이 잘 되고 있는데도. 왜 이럴까?
잠시 후 어느 기자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책임에 상한이 없다면, 생명에도 해당 됩니까?”
“그렇습니다. 무제한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 * *
한국의 성명 발표로 세상은 난리가 났다. CERC를 국제적인 범죄 집단으로 몰아가는 사람, 한국에 또 다른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 폭락하는 유럽 관련주를 우려하는 사람 등 저마다 다양한 사람들로 시끄러워졌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유럽은 선택을 해야 한다.」
러시아 뒤에서 침묵하던 한국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제니스가 한국의 입을 빌려 유럽에 최후통첩을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CERC를 껴안고 같이 죽을 것인가? 아니면 CERC를 버리고 살아남을 것인가?」
국제 음모론의 그늘에 항상 숨어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에 사람들은 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전쟁 결과 조작으로 떼돈을 번 졸부 가문의 몰락, 드디어 현실이 되나?」
어느 언론에서는 노골적으로 공격적인 언사를 사용해가며 로스차일드 가문의 몰락을 언급했다.
한국의 성명 발표로 바빠진 것은 유럽만이 아니다. 이 사건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는 미국도 야단이 났다.
EIS 본부는 한국의 성명 해석에 모든 분석관이 달려들었다. 저마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유지웅이 새로운 식량 메이저가 되려고 한다는 둥, 그래서라도 CERC의 백신은 반드시 사장시킬 거라는 둥 여러 해석이 줄을 이었다.
“이건 경고입니다.”
독특한 의견에 EIS 국장 루딘은 흥미를 나타냈다. 발언자는 빌지워터 요원이었다.
“경고?”
“네, 그렇습니다.”
“자세히 말해 보게.”
이 젊은 요원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루딘은 흥미로웠다. ‘경고’라는 단어에 이상하게 끌린 것도 있었다.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동조심이 들었던 것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유지웅 회장을 적대하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경시하는 자들은 아직도 많이 존재합니다. 바로 제니스의 등장으로 수많은 이권을 상실한 국제 자본가들입니다.”
“계속해 보게.”
“지난 번 CIA는 효웅산업을 테러한 죄로 해체되고 책임자는 엄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SC컴퍼니의 메데세르프 회장 역시 중형을 선고받고 한국 교도소에서 복역 중입니다. 그렇게 표면적으로는 봉합되었습니다만, 유지웅 회장 입장에서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 테러를 지시한 로버트 국장은 실행자에 불과하고 메데세르프 회장 역시 일종의 바지 사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EIS 내부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진짜 책임자, 아니 책임자들은 모든 꼬리를 잘라낸 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버젓이 살아가고 있었다.
“결정체 카르텔은 CIA와 메데세르프 회장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기들은 화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지웅 회장이 자기들 존재를 모를 거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CIA가 아닌 CERC를 이용해서 또 비슷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결정체 카르텔. 바로 소수의 정보전문가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취급되는 단어다. 쉽게 말해 SC컴퍼니 같은, 결정체 관련 산업에 적을 두고 세상을 움직이는 자본의 연합을 말한다.
당연히 그 정확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정한 규모 이상의 자본이 결정체 산업에 발을 두고, 서로 서로가 사업, 혹은 인맥으로 얽히면서 형성된, 보이지 않는 연합을 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실체가 없다 해서 그 힘을 휘두르려는 세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빌더버그 클럽과 그에 소속된 로스차일드 등 수많은 거부들이 있었다.
“유지웅 회장은 로스차일드를 본보기로 삼아 세상에 경고를 하려는 겁니다. 자기를 건드리면 그 끝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죠.”
다른 분석관이 동조하고 나섰다.
“실제로 CERC를 후원했던 유럽과 미국의 거부들이 서둘러 발을 빼고 있습니다. 그들도 CERC가 침몰하는 배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겁니다.”
“우리 미국에도 CERC와 얽힌 기업이나 거부가 꽤 있습니다. 그게 유지웅 회장 눈에 자칫 우리 미국의 행위로 비치면 기껏 회복세에 들어선 관계에 다시 금이 갈 겁니다.”
루딘은 납득했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이 초기 러시아를 내세웠다가 이제야 전면에 나선 일련의 행동이 설명이 된다.
“그렇다면 호남 곡물이 바이러스 괴수 억제제로 작용한다는 것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보나?”
“그것은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신이 지나치게 제니스를 편애하는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신이 편애하는 남자. EIS에서 장난스럽게 유지웅을 칭하는 별명이기도 했다. 얼마나 많은 행운이 중첩되어야지 그런 인생을 살아볼 수 있을까?
루딘은 가끔 미치도록 유지웅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하나 더. 그가 한국이 아닌 미국에 태어났다면 팍스 아메리카는 영원한 현실이 되었을 텐데.
“적어도 로스차일드의 몰락은 결정된 거로군.”
“항상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의미도 되니, 결정체 카르텔은 이제 숨을 죽여 지내야 할 겁니다.”
분석은 끝났다.
EIS는 ‘유지웅이 결정체 자본가들을 쥐어 잡으려고 벼르고 있다가 이번 CERC 사건이 터지자마자 재빨리 응징에 나섰다.’로 사태를 정리했다.
진실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결론이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발을 내딛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진실을 알면, 루딘은 과연 지금처럼 마음 편하게 보고서를 준비할 수 있을까?
대통령에게 올릴 보고서 작성을 마쳤을 때였다.
“국장님. 러시아가 성명 발표를 했습니다. 한국의 성명 발표에 대한 지지 성명입니다.”
“그래? 러시아가?”
시간을 보니 한국이 성명을 발표하고 7시간이 지난 뒤였다.
“특별할 건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과격한 발언이 섞여 있습니다.”
“어떤 건가?”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조금 과격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각 국가에 범죄자의 재산을 일단 양도하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사실상 협박입니다.”
============================ 작품 후기 ============================
-자, 강제집행 들어갑니다~
“야, 아직 선고도 안 했어.”
“저기, 아직 기소도 안 했거든?”
-일단 집행부터 할께여. 재판은 나중에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