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3)
00043 나는 대장이다 =========================================================================
자고 일어나니 쪽지함이 터져 있었다. 산더미 같은 쪽지가 쇄도해 있었다. 어디서부터 검토해야 할지 엄두도 안 나는 방대한 양에 유지웅은 질려 버렸다.
쪽지의 대부분은 딜러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경력, 장비 상태, 경험 등을 어필하며 레드 몹 전용 공격대에 가입하기를 원했다. 울릉도에서 최소한의 희생으로 레드 몹을 처치한 유지웅의 보호막 능력 때문이었다.
―기회는 아무 때나 찾아오지 않아! 지금이 아니면 레드 몹 잡는 레이드는 할 수도 없어!
―나중 가면 자리도 없을 거야!
열광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우려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레드 몹이잖아? 한 번 울릉도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그게 다는 아닌데? 위험하다고. 죽을 수도 있어. 옐로 타입이랑은 경우가 달라.
―안정적으로 레드 몹을 잡을 수 있다고 누가 보증하지? 보호막 능력이 강한 건 알겠지만…….
한국 레이트 포털은 때 아닌 레드 몹 레이드 위험성 논란이 일었다. 미래 가능성을 점치며 열광하는 사람도 있었고, 레드 몹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기에 능력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그 논란에 가세했다.
―정말 안전하긴 한 건가요? 저는 레이드 같은 건 몰라서…….
―민간에 피해는 없는 거겠죠?
일반인들이 레이드에 관심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레이드는 일반인들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당장 거리에 굴러다니는 자동차는 결정체로 만든 차세대 연료 시스템으로 구동된다. 결정체가 발전 시설을 장악한 지도 오래라, 전기세는 결정체의 공급량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레드몹이 안정적으로 잡히면 더 좋은 결정체가 보급되니 일반인들의 생활도 더욱 윤택해진다. 그러나 레이드가 실패해서 레드몹이 거주구역으로 침범하면 엄청난 피해가 야기된다. 당연히 관심이 없을 수가 없다.
심지어 그런 관심에 호응하기 위해 레드 몹 레이드에 관한 시사 프로그램까지 제작돼서 방영되었다.
「많은 국가들이 레드 타입을 잡지 않는 이유는 옐로 타입에 비해 지나치게 강력하기 때문이죠. 개체수가 한정돼 있는 것도 아니니, 인간 구역을 침범하는 개체를 격퇴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 겁니다. 그것만 해도 적지 않은 희생이 납니다.」
「교수님, 강력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면을 말합니까?」
「레드 타입은 선공 습성을 갖고 있지만 인간이 아닌 것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인 기계 장치를 통해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죠. 또한 세계사를 통틀어 서른 번의 레드 타입 레이드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나치게 강력한 공격력을 갖고 있어 탱커가 버틸 수 없는 타입, 높은 에너지 방어막을 갖고 있어 딜러가 버틸 수 없는 타입이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죠. 후자는 4년 전 미국 LA를 침범한 개체이고, 전자는 울릉도를 습격한 개체로 볼 수 있죠.」
「그렇다면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요?」
「그걸 따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지 않고는 잡을 수 없다는 건 동일하니까요. 다만 보호막 능력자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어떻게 말입니까?」
「탱커의 방어 능력을 올려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개체를 상대로 버틸 수 있게 해줍니다. 또한 높은 방어력을 가진 개체도 마찬가지입니다. 탱커의 방어 능력이 증가되기 때문에 딜러진을 늘릴 수 있습니다.」
「탱커의 방어 능력과 딜러의 수가 관계가 있나요?」
「있습니다. 탱킹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탱커도 아군 딜러의 딜에 노출됩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딜러진이 많으면 탱커가 버티지를 못합니다. 그 적정 수는 약 25~27명 정도입니다. 그래서 공격대 구성원의 상한선이 40명이 된 거죠.」
초능력자 및 괴수를 연구하는 유명 교수를 불러놓고 가진 시사 토론은 생각보다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그만큼 대중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레드 타입은 위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 그 위험성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바로 보호막의 존재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도전해야 합니다. 성공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유일무이하게 블루 결정체를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공급처가 됩니다. 세계 1위의 결정체 공급 국가이자 경제대국인 일본을 추월할 수 있게 됩니다.」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 공격대 자원이 가장 풍부한 국가이자 세계 제일의 결정체 공급국인 일본을 말이다. 이게 또 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레드 몹을 잡는 건 인간이 공격당했을 때뿐이다. 그래서 블루 결정체가 시중에 풀려 있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물량은 해당 국가가 수출 금지 품목으로 정하고 국가 독점적으로 관리를 하는 편이다. 아주 희소량만 장비로 만들어졌고, 경의의 의미를 담아 S급으로 분류한 것이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저명한 교수가 레드몹 레이드를 지지한 것은 큰 효과가 있었다. 국민들은 유일한 블루 결정체 공급 국가가 되는 건가 하는 꿈에 부풀었다. 능력자들은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자신도 함께 하기를 원했다.
지원자만 해도 무려 2만여 명. 유지웅은 이제 꼼짝없이 그 많은 숫자를 면접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들 모두가 A급 장비를 가지고 있는 최고의 인적 자원들이었다.
“예비 탱커는 두 명 정도로 하자.”
“왜? 너 혼자서도 충분할 텐데?”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그리고 사실 나는 방어 능력은 떨어지니까, 보호막으로도 탱킹이 안 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고.”
“설마.”
보통 보호막을 사용하면 그녀는 일반 탱커급 이상의 방어 능력을 낸다. 강화 보호막을 사용하면 당연히 비교가 되지 않는 월등한 방어 능력을 보인다. 다른 탱커의 두 배 이상의 방어 능력을 보이는데, 설마 그것으로도 모자랄까?
“그렇게 하자, 그럼. 그래도 메인 탱커는 너야.”
하지만 예비 탱커가 있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에 유지웅은 탱커 편성을 수정했다.
“힐러는 어때? 마음에 드는 사람, 있어?”
“으……. 내가 막공만 다녔더니 힐러는 잘 모르겠어. 거의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야.”
다른 것도 아니고 레드 몹 전문 공격대다. 자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지원하지 않는다. 다들 이 바닥에서 최상위급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만 지원했다. 그 숫자만 무려 2만 명이다. 막공만 다닌 유지웅과는 노는 물이 달랐던 자들이다. 당연히 그가 알 리가 없었다.
“딜러진은 천천히 편성하면 되니까, 일단 탱커진과 힐러진부터 짜보자.”
“응.”
일단 딜러 응모 쪽지는 나중에 읽어보기로 했다. 그들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탱커와 힐러 편성이 우선이었다.
“그래도 꽤 많이 지원했네. 위험한 일이라 난 힐러들은 꽤 빠질 줄 알았는데.”
“울릉도에서 비교적 쉽게 잡았잖아? 제대로 준비한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봤을 거야. 힐러들이 그런 계산은 얼마나 철저한 사람들인데.”
“응? 최가의?”
“아는 사람?”
“기억 안 나? 나 예전에 반쪽 힐러였을 때, 막공에서 힐량 갖고 정공 힐러들이 뭐라 그랬잖아? 그때 나 변호해준 사람.”
“……아.”
그제야 기억났는지 정효주가 가볍게 탄성했다. 이윽고 그녀가 그를 흘겨보았다.
“예쁘던데? 혹시 딴 맘 있는 건 아니지?”
“효주 네가 더 예뻐! 네가 더 어리고! 나 연상은 별로야!”
“흥.”
그래도 정효주의 얼굴이 제법 부드러워졌다. 정공 힐러들의 횡포에 맞서서 유지웅을 변호해줬던 일이 그녀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꽤 실력 있는 힐러던데, 그럼 다른 힐러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조언도 들을 수 있을 거고.”
“박현정 씨도 있잖니?”
“……그 사람은 좀 부담스러운데.”
너무 매력적인 여자다. 팜므파탈이라고 할까. 청초한 현모양처감인 정효주와는 다른, 남자로 하여금 일탈을 꿈꾸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여자다. 그래서 부담스러웠다.
“걱정하지 마. 내가 너 잘 감시해줄 테니까, 안심하고 섭외해도 돼. 레이드 성공하려면 실력 있는 힐러는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지.”
“그래도…… 돼?”
“응. 흔들려도 돼. 내가 꽉 붙들고 있을 테니까.”
조금쯤은 무서움을 느껴도 좋을 대사인데 그저 귀엽다. 조그만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 그는 충동을 참지 못하고 덥석 그녀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녀가 어머 하고 작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유지웅은 지원자 중에서 울릉도 동원 소집 때 동원된 500명으로 인재풀을 한정했다. 힐러는 일단 최가의와 박현정, 이 두 명을 잠정 결정했다. 그리고 그 둘과 약속을 잡았다. 정효주도 함께 나가기로 했다.
“아직 멀었어?”
“기다려 봐. 여자는 외출도 레이드라니까.”
“외출이 무슨 전쟁이야?”
“전쟁은 아니지만, 전투지.”
한참 후 정효주는 준비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다. 지루하게 TV를 돌리던 유지웅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
“어때?”
그녀가 수줍게 물었다. 그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뻐. 아주 예뻐.”
하얀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여자치고 미인 아닌 자는 없다는 말이 있다. 정효주는 하얀 원피스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유달리 흰 피부는 티 하나 없이 맑고 깨끗했고, 시원하게 쭉 뻗은 다리는 얇으면서도 탄력이 있었다. 가냘프고 슬림한 몸매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가슴과, 크고 맑은 눈망울이 가지런히 정돈된 긴 속눈썹 아래에서 수줍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는 정효주가 이렇게 정성을 들여 치장한 것을 처음 봤다. 물론 그녀가 남자 같은 차림을 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활동하기 편한 핫팬츠나 박스티를 즐겨 입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미소녀에서 여신으로 진화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늦었어. 어서 가자.”
“어, 응.”
왜 여자친구한테 떨리지?
둘은 지하 차고로 내려갔다. 람보르기니의 시동을 켜고 각자 좌석에 탔다. 낮은 좌석 때문에 원피스 치맛단이 말려 올라가 하얀 허벅지가 고스란히 보였다.
그가 출발할 생각은 않고 뚫어져라 다리만 쳐다보자 그녀는 쿡쿡 웃었다.
“왜 그러니?”
“우리 차에서는 한 번도 안 해본 거 같은데.”
“미쳤어. 안 돼.”
앙탈을 부리듯 그녀는 주먹으로 앙증맞게 그의 어깨를 쳤다. 그리고 수줍게 고개를 돌리고 덧붙였다.
“이따가 다녀와서.”
이런 상황에서 흥분하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리.
유지웅은 참지 못하고 그녀를 와락 껴안으며 키스했다. 정신없이 허벅지를 더듬고 주물렀다. 그녀는 조금 빼는가 하더니 이내 열정적으로 키스에 응했다. 혀를 얽으며 정신없이 애정을 나누기를 몇 분, 이윽고 그녀가 얼굴을 뗐다.
“립글로스 다시 발라야 하잖아.”
“빨리 일 끝내고 와야겠다.”
“아이, 짐승.”
그녀가 어깨를 가볍게 때렸다. 그는 리모컨으로 차고 문을 열고 발차했다.
차는 별로 막히지 않았다. 둘은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약속 장소는 번화가에 위치한 레스토랑이었다. 어느 힐러가 경영하는 곳이라 능력자들이 비교적 많이 찾는 장소였다.
“유지웅이란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는데요.”
“이쪽으로 오십시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둘은 창가의 조용한 테이블로 안내되었다. 최가의와 박현정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둘은 유지웅 커플을 보고 반갑게 일어서다가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반가워요. 그런데 이 분은……?”
“아, 효주예요. 제 여자친구. 두 분도 보셨을 텐데?”
“아, 이 분이 그 분이에요?”
“이야, 굉장히 예쁘세요. 순간 못 알아봤네요.”
정효주는 살짝 새침한 표정으로 가볍게 인사했다. 최가의가 알아서 박현정 옆으로 이동했고, 유지웅 커플은 나란히 앉았다.
두 여자도 상당히 꾸밈에 신경을 썼다. 최가의는 여비서 같은 느낌의 갈색 정장을 차려 입었다. 짧은 치마 아래로 단정하게 뻗은 다리가 매력적이었다. 박현정은 뇌쇄적인 느낌의 보라색 원피스를 입었는데, 그래서인지 가게 안의 남자들이 힐끔거리는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정효주에게도 그 시선이 몰리고 있었다.
“식사부터 할까요?”
웨이터를 불러 각자 주문을 마쳤다. 세 여자는 웬일인지 말이 없이 조용했다. 공기 흐름이 기묘했다. 유지웅은 정효주를 힐끔 살폈다. 그녀는 새침한 표정으로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고 있었고, 박현정은 묘한 눈빛으로 시선을 부딪치고 있었다.
“제가 두 분을 보자고 한 이유는…… 두 분을 제 공격대 힐러진으로 받아들이고 싶어서예요.”
“감사합니다.”
두 여자는 예의바르게 웃으며 인사했다. 최가의가 가벼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동원 소집 때 유지웅 씨가 보호막 능력자인 거 알게 됐어요. 먼발치에서 봤는데, 모르시더라고요.”
“아, 그랬나요?”
“사람 일이란 게 참 새옹지마죠? 힐러들에게 구박 받으시던 때가 엊그제 같던데, 이제 그 귀족 힐러들도 벌벌 떠는 왕족이 되셨으니.”
“왕족이라뇨. 말도 안 돼요.”
“그럼 본인만 귀족? 그래서 ID 그렇게 지으신 거예요?”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박현정이 자기 차례라는 듯이 팔꿈치를 테이블에 괴고는 몸을 비스듬하게 앞으로 내밀었다. 그 바람에 깊게 파인 가슴골이 살짝 보였다.
“혹시 저희가 첫 영입인가요?”
“네. 그래요.”
“이거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네요. 그럼 한 가지 여쭤 봐도 될까요?”
“뭔데요?”
“혹시 힐러장, 우리 둘 중에 한 명이 맡게 되는 건가요?”
나란히 앉은 두 여자의 눈빛이 부딪쳤다. 은근한 경쟁심을 담은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