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34)
00434 사냥은 끝났다. 그러나… =========================================================================
금 일만 톤이라는 말에 유지웅의 몸이 반사적으로 뒤돌아섰다. 그만큼 휴버튼이 내뱉은 말의 파급력은 컸다.
“금 일만 톤?”
이제야 이야기가 통했다고 생각했는지 휴버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소. 일만 톤의 금괴요.”
“남 국장님, 그 가치가 얼마나 되죠?”
일만 톤의 금괴라는 소리에 평범한 중산층인 남기철은 잠시 멍해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 와중에도 통역은 제대로 한 걸 보면 직업병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현재 금 시세가 그램당 5만 원이니, 일만 톤이면 500조 원입니다.”
“에게. 됐어요, 그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기에 꽤 되는 줄 알았더니, 겨우 500조 원? 유지웅은 다시 김이 팍 샜다. 현재 공개된 로스차일드 자산만 원화 가치로 3경 가까이 되는데, 겨우 은닉 재산 500조 원 밖에 안 꺼내들어?
그러나 휴버튼은 느긋했다. 오히려 남기철에게 충고를 하기까지 했다.
“말려야 하지 않소?”
남기철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유지웅을 붙잡을 뻔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아니다. 그건 휴버튼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것을 뜻한다. 조언을 해야겠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협상을 해야겠지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주체가 유지웅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기철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
‘역시 국제 금융 자본의 거목…….’
오랜 세월에 걸쳐 성립한 부자는 과연 다른 것일까. 허투루 볼 수 없다는 긴장감이 바짝 든다. 그 와중에도 한 수를 숨겨놨을 줄은 몰랐다.
* * *
“겨우 500조 원이잖아요? 물론 작은 돈이 아니긴 하지만, 그 정도야 저도 쉽게 구할 수 있는데요? 은닉 재산이 설마 500조 원 밖에 안 되겠어요?”
“회장님, 그렇지 않습니다. 부동산, 예금증서, 기업 지분, 그런 류의 은닉 재산이라면 500조가 아니라 5,000조라 해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금은 다릅니다.”
“금은 다르다니요?”
“금은 그 자체로 화폐가 될 수 있습니다. 금만이 가지는 특수한 성질이죠. 유사 이래 금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사랑받아온 귀금속입니다.”
남기철은 언뜻 보기에 이대로 휴버튼의 딜을 웃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금 일만 톤의 가치는 컸다. 하지만 자신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어렴풋하게 일의 중대함은 깨달아도 제대로 설득할 능력은 없었다.
그래서 남기철은 정부에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그 바람에 정부는 발칵 뒤집어졌다.
금 일만 톤이라니! 한국 정부의 금 보유고가 겨우 110톤 밖에 되지 않는데!
당연히 정부는 발등에 불 떨어진 강아지처럼 뻘뻘거리며 나섰다. 결과가 어찌 되든 간에 이런 중대한 일을 제대로 협상에 임해보지도 않고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정치란 원래 그렇다.
그래서 지금 정부에서 급히 파견한 재정경제부 차관이 땀을 뻘뻘 흘리며 유지웅을 설득하고 있는 중이다.
“금 일만 톤은 겨우 500조 원 어치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500조 원의 현금이나 혹은 주식, 부동산은 500조 원 어치의 금과 결코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금은 그 자체로 흔들리지 않는 안정자산입니다. 또한…….”
뭔가 설명을 잔뜩 하긴 하는데 이야기가 너무 어렵다. 경제 쪽은 공부를 거의 안 해서 그런가?
유지웅은 새삼 자문단이 그리웠다. 교수님들은 이해 및 판단이 쉽게 최대한 간결하게 풀어서 설명해주곤 했는데.
남기철을 돌아보자 그가 눈치를 채고는 대신 말했다.
“인류가 채굴한 금 총량은 현재 약 18만 톤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금괴 일만 톤이면 인류가 보유한 금 총량의 1/18에 달합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엄청 많네요.”
처음에는 겨우 500조 원 밖에 안 돼? 라고 생각했다. 근데 인류가 보유한 양의 1/18이라니까 체감이 다르다. 이거 뭔가 굉장해 보이는데?
“금은 화폐가치, 국가 신용도, 금융 경제 등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최재형 대통령은 현재 원화를 기축통화로 만들려는 정책을 추진 중입니다. 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 일이 더 쉬워집니다.”
“으음…….”
“그리고 금은 귀금속이죠. 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회장님도 금으로 된 부가티 레고를 갖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그 반짝이는 황금색을 보면 감동이 들지 않습니까?”
인류가 보유한 금의 1/18.
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그러니까 결정체와 달리 그 양은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누구나 가치를 인정하는 귀금속이니, 많이 갖고 있으면 좋다는 이야기였다.
역시 남기철이다. 이름도 기억 못할 어디 재정부 차관의 설명과는 달리 귀에 쏙쏙 잘 들어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블루 결정체를 독점하고 있잖아요? 그것으로는 기축통화 안 되나요?”
“블루 결정체의 가치는 절대적입니다만, 결정체는 산업자원이지 귀금속은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고급 원유이지 보석은 될 수 없다는 거죠.”
“하긴, 그렇네요. 보석은 될 수 없으니…….”
“그리고 회장님, 이왕이면 블루 결정체도 독점하고 금도 많이 가지면 좋지 않습니까? 두 마리 토끼 중 굳이 한 마리를 버리고 한 마리만 쫓을 필요가 있나요?”
“어, 그러네요.”
귀가 얇은 유지웅은 남기철한테 설득 당해서 정부한테 알아서 해보라고 동의를 해주었다. 정부는 바로 휴버튼과 협상에 나섰다. 그러나 의외로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남기철이 난처해하며 다시 찾아왔다.
“반드시 회장님과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합니다.”
“저랑요?”
“네. 우리 정부의 약속은 믿을 수 없다고…….”
하기야 휴버튼을 잡아들인 것도, 로스차일드 재산을 압류한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유지웅과 러시아 지분이지, 한국 정부는 중간에 한 게 없었다. 기껏해야 유지웅의 대리자로서 외교 협상을 담당한 정도가 전부다.
그래서 유지웅은 구치소로 휴버튼을 찾아갔다.
“금 일만 톤이 대단하긴 한가 보오. 귀하 같은 인물이 생각을 바꿀 정도니.”
“인류 총 보유량의 1/18이라니 탐이 나긴 하네요. 처음에는 500조 원이라고 해서 작게 생각했는데 말이죠.”
유지웅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인정했다. 휴버튼은 눈을 가늘게 떴다.
보통 비즈니스 관계에서라면 저런 시원스러운 수긍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속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야말로 거래 협상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전혀 부담 없이 솔직하게 진심을 말한다. 그것이 오히려 무서운 점이다.
내키는 대로, 진솔하게 행동해도 아무런 거리낌도 없으며 손해 볼 것도 없기 때문이다. 휴버튼의 지식으로, 저런 처신이 가능한 것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절대적인 힘을 가진 군주. 혹은 독재자.
권력의 향방을 걱정할 필요도, 자리를 빼앗길 염려를 할 필요도 없는 패왕.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갈아엎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폭군. 그런 사람만이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길은 하나뿐인가.’
휴버튼은 오랜만에 바짝 긴장했다. 저런 사람은 아쉬울 것도, 약점도 없다. 늘 대했던 정치인들, 유럽의 군주들, 국가 원수들 대하듯이 했다가는 얻을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말 그대로 언제든 판을 엎어도 아쉬울 게 없는 인물이니.
“금 일만 톤은 우리 가문이 비밀리에 숨겨둔 총량이오. 그 전부를 귀하에게 드리겠소. 또한 은닉 재산도 전부 귀하가 원하는 국가나 개인, 단체에 드리겠소. 그 대신.”
“그 대신?”
“우리 일족을 석방시켜주시오. 그리고 1억 달러만 남겨 주시오.”
“…….”
“지금 당장 석방시켜달라는 게 아니오. 어느 정도 형을 살아야 한다는 건 각오하고 있소. 또한 개인당 1억 달러가 아니라, 가문 전체에 1억 달러를 남겨달라는 거요.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할 자금은 있어야 하지 않겠소?”
이 정도면 로스차일드로서는 모든 것을 다 내놓은 셈이다. 1억 달러. 엄청난 큰돈이지만, 로스차일드가 가진 공개 재산, 은닉 재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모든 재산을 다 내놓을 테니 용서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남기철은 마른침을 삼켰다. ‘정치가’라면 이런 요청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
혹자는 이건 정의가 아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행위, 특히 국제적인 영역에는 합법보다는 불법이 국익 달성에 도움을 준다. 비정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은닉 재산 전부를 내놓진 않겠지. 하지만 성의를 보이려면 절반 이상은 내놓아야 한다.’
남기철도 1억 달러만 먹고 저들이 나가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명분이다. 설마 은닉 재산 전부를 저들이 순순히 내놓을까?
그래도 이쪽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면 은닉 재산 중 절반 이상은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되어도 일 처리는 한결 쉬워진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석방을 시켜주고, 1억 달러만 남겨주면 모든 것을 다 내놓겠다고요?”
“그렇소.”
“그 대가로 저한테는 금 일만 톤을, 그리고 은닉 재산은 제가 원하는 곳에 지급하겠다고요?”
“그렇소. 귀하가 가지길 원한다면 그리 해도 되오.”
“석방 대상에는 귀하도 포함되겠지요?”
“……그렇소.”
유지웅은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휴버튼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눈썹에 빳빳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의 일생일대를 건 가장 큰 도박이자, 큰 딜이었다. 자신의 목숨과 일족의 명맥을 건 최후의 비즈니스. 지금 이 시기만 지나가면 수천 년 박해를 딛고 일어섰듯이,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라.
오히려 이 중에서 남기철이 제일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물밑에서 오가는 숨은 거래다. 조금은 부도덕할지 모르나,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너무 크다.
설령 국민들은 이 거래를 알아도 그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했다고 지지할 것이다. 일만 톤의 금이라니. 그것이 비록 개인 소유라 해도 이 나라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이 나라와 국민 전체에 이득이 될 테니.
“Never. 못합니다.”
“……!”
“……!”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 생각한 휴버튼은 눈을 부릅떴고, 숨도 못 쉬며 지켜보던 남기철은 그제야 참았던 호흡을 터트렸다.
미미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휴버튼이 더듬거렸다.
“어, 어째서……? 금 일만 톤이면 세계 화폐를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이거늘…….”
“금 일만 톤이 단순한 500조 원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요. 인류 보유량의 1/18? 뭐, 대단한 양이죠.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요.”
“…….”
“당신은 바이러스 괴수를 제조해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어요. 거기에는 나,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이웃들, 우리 학교 학우들과 교수님, 그 가족들, 그리고 우리나라 동포도 포함이 돼요. 죄를 돈을 받고 감해줄 순 없어요.”
유지웅은 차갑게 휴버튼을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런 부끄러운 짓은 할 수 없어요. 그건 정의롭지 못해요.”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유지웅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설마 이렇게 쉽게 거부당할 줄 몰랐던 휴버튼은 제법 충격을 받은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남기철도 놀람이 가시지 않은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부끄러운 짓, 정의롭지 못한 짓, 유지웅이 내뱉은 말이 자신의 가슴을 매정하게 파고들었다.
‘나는…… 정치적인 것만 생각했다.’
정치인이라면 그런 거래는 받아들여야 한다. 사익을 위한 거래도 아니고, 이 나라 전체에 득이 되는 거래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한편으로는 이 나라의 정의를 해하는 짓이라는 걸 몰랐다. 그게 부끄러웠다.
‘남 군은 훌륭한 법관이 될 수 있을 걸세.’
귀농한 옛 은사의 칭찬이, 오늘처럼 부끄럽게 되새김질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 작품 후기 ============================
“합의금이 너무 적잖아!”
ps : 설마 연참은 없을 거라 생각한 분들의 다리를 뙇 하고 걸긔!
ps : 현금, 혹은 주식 같은 걸로 500조 원을 제시했다면 코웃음을 칠 제안입니다. 그러나 금 일만 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인류가 총 보유한 양의 1/18의 금은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이 있죠. 또 금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귀금속입니다. 금본위제가 폐지되긴 했지만 그래도 최후의 순간 화폐가치를 보증할 유일한 물건이기도 하고요. 다만 너무 이야기가 자세해지면 불필요한 군살이 될 것 같아 과감히 생략했습니다.(제가 세부적으로는 잘 모르는 것도 있고요)
작중 결정체의 가치도 절대적이긴 합니다. 다만 결정체는 귀금속은 아닙니다. 김태희랑 사귀고 있다고 한효주의 대시를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다 뭐 그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