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4)
00044 나는 대장이다 =========================================================================
‘힐러장?’
다소 떨떠름한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세부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다.
공격대는 공격대장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격대장은 회사로 치자면 이른바 ‘사주’로 볼 수 있다. CEO와는 약간 다르다. 물론 공격대 운영 총괄, 즉 CEO 역할을 공격대장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각 부서별로 장이 존재하듯이 공격대에도 크게 탱커장, 딜러장, 힐러장이 존재한다. 각 파트별로 맡은 대원들의 스케줄, 분배, 전술 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공격대장이 그런 것까지 일일이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클래스가 아닌 타 클래스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경영의 정석 아닌가?
“얼굴을 보니 아직 생각을 안 하신 것 같은데요. 맞나요?”
“아, 솔직히 공격대 짜는 것만 해도 바빠서 파트장 같은 것은 별로 생각을 안 해봤어요.”
“원래는 힐러가 공격대장이면 힐러장도 겸임하는 경우도 많긴 한데 유지웅 씨는 조금 특이하잖아요. 엄밀히 말해서 힐러는 아니니까요.”
아무래도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힐러들의 컨디션, 힐 특성 등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생겼는지 박현정의 목소리가 더욱 당당해졌다.
“제가 정공 힐러장을 정식으로 맡아본 적은 없지만 정공이나 다름없는 고정 막공을 운영하고 있죠. 막공 특성상 공격대장 혼자서 모든 걸 다 하는 건 아시죠? 그리고 팀이브에서 사실상 힐러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팀이브는 지금 힐러장이 공석이거든요. 여러 모로 제 경험은 충분해요. 힐러장 자리를 맡아도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을 거예요.”
듣고 보니 솔깃했다. 어차피 자신은 힐러가 아닌 이상 힐러장은 다른 사람을 시키는 게 효율적이었다. 그렇다면 신뢰할 수 있고 아는 사람 중에서 뽑는 게 낫지 않은가? 선택의 폭은 이 두 명으로 줄어드는데, 박현정이라면?
슬쩍 그녀를 바라보던 최가의도 입을 열었다.
“즐기는 공격대라고 아세요?”
“네? 그 즐기는 공격대요? 설마……?”
“제가 거기 힐러장이었어요.”
이번에는 박현정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즐기는 공격대는 지금은 해산한 공격대였다. 그러나 해산하기 전에는 엔시디아, 파라곤과 더불어 3대 주축을 이루고 있던 명문 공격대였다. 대원도 많았고 영향력도 막강했다. 어째서 그런 막강한 공격대가 해산했는지를 놓고 말도 많았다.
“경력으로 보면 저도 지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
말이 ‘지지 않는다.’라고 하지, 입 꼬리를 슬쩍 올리는 게 ‘내가 더 우월하지 않나요?’라는 게 뚜렷했다. 박현정이 분한 듯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경력에서 약간 밀리는 것을 내심 인정하는 것이다.
유지웅은 어떡해야 하나 갈등했다. 경력만으로 보면 최가의가 우월하다. 하지만 즐기는 공격대는 해산한 지 오래 됐다. 공백기가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박현정은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 않은가?
친분으로 따지면 박현정 쪽이 더 우세하다. 아무래도 같이 고정 막공을 다닌 정이 있으니까. 하지만 최가의는 그가 반쪽짜리 힐러일 때도 편을 들어서 정공 힐러들의 입을 닫게 해줬던 은혜가 있었다. 이쪽의 정도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를 힐러장으로?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정효주가 보지 못하게 그의 허벅지를 살짝 꼬집었다.
“그 문제는 지금 공대장이 따로 생각해둔 게 있어요. 이런 자리에서 결정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차분한 목소리였다. 유지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목소리가 이상해! 너무 차분하다고! 이건 꼭 체위를 바꾸고 싶지 않은데 멋대로 바꿨을 때 핀잔을 주었던 그 말투잖아! 뭘 잘못한 거지?
자신만만했던 두 여자의 표정에도 살짝 긴장감이 어렸다.
“이미 내정된 사람이 있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요. 아직 힐러진이 전부 구성되지 않았을 뿐이죠.”
“…….”
“힐러진이 다 구성되면 그 중에서 가장 적합한 사람을 힐러장으로 삼는 게 순리 아니겠어요? 지금부터 논의하는 것은 섣부른 감도 있고, 그럴 자리도 아니라고 봐요.”
세 여자 사이에서 기묘한 공기가 흘렀다. 여자들 나름대로의 밀고 당기기가 오가는 중이다. 그런 쪽으론 눈치가 없는 유지웅도 알 건 알았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었다. 뭔지는 몰라도 지금 정효주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주는 게 독수공방하지 않는 길이다.
정효주가 다시 옆구리를 꼬집었다. 힐러장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음 이야기를 하라는 뜻이다. 그는 가볍게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두 분이 제 공격대에 영입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미 제가 모집글에 올렸듯이 레드 몹만 잡을 공격대라서 레이드 횟수 자체는 많지 않아요. 아직 시작 단계이기도 하고요. 초기에는 몇 달에 한 번 레이드가 잡힐 거예요.”
“레이드가 익숙해지면 횟수가 늘어날 수도 있겠군요.”
“당연하죠.”
옐로 타입은 평균 감정가가 25억 정도이다. 그에 비해 레드 타입은 최소 감정가가 5000억이다. 무려 200배나 차이다. 힐러라 해도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액수였다.
만약 레드 몹 레이드가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면, 그 수익이 과연 얼마나 될까? 유능한 초능력자는 부자이기는 해도 ‘재벌급’은 아니었다. 그들의 사회적인 평가는 결국 고소득 연봉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유지웅 공격대가 활성화된다면 대원 한 명 한 명이 재벌급으로 부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박현정과 최가의도 은연중에 그런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건 이미 돈이 아니라 재력이다. 하나의 힘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수익 분배 말인데요. 이건 파급효과가 너무 커서 제가 모집글에 따로 명시를 하지 않았어요.”
“수익이 어떻게 되나요?”
일반적인 정공이라면 공격대장이 가장 많이 가진다. 그리고 힐러, 탱커, 딜러 순으로 분배받는다. 각 클래스의 장은 동일 클래스의 다른 대원보다는 조금 더 받는다. 즉 공격대장, 힐러장, 힐러, 탱커장, 탱커, 딜러장, 딜러 순서로 보면 된다.
“N분의 1로 분배하기로 했어요.”
“네?!”
두 여자는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유지웅이 말을 계속했다.
“공격대장, 힐러, 탱커가 더 많이 받는다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왜? 라고 생각해보니 모르겠더군요. 모두 똑같이 노력했는데 누구는 더 받고 누구는 덜 받고……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건…….”
“수요와 공급의 차이 때문이죠. 힐러가 귀하고 딜러가 흔하기 때문이에요.”
두 여자는 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기들 이익 문제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목숨을 걸고 똑같이 싸우는데 누군 더 받고 누군 덜 받고. 저는 제 공격대만큼은 그런 불공평함을 없애고 싶어요. 레이드에 참가한 대원이라면 똑같이 나눠 가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두 여자의 얼굴에 잠시 갈등이 일었다. 힐러가 딜러 몫의 최고 1.5배까지 받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 0.5배의 몫이 사라지게 된다. 말이 0.5배지 실제 돈으로 환산하면 적은 액수가 아니다.
하지만 이내 두 여자는 순순히 수긍했다. 힐러가 더 받는 건 일종의 시장 불균형을 통해 형성된 관행이지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었다. 원론적으로 본다면 똑같이 분배받는 게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공격대장의 말은 공격대 안에서는 곧 법이었다. 그게 싫으면 공격대를 떠나면 그만이다.
따지고 보면 공격대장이 가장 많이 받게 된 것도, 그런 우월적 권한을 남용했기 때문에 형성된 시장 관행이 아닌가? 유지웅은 자신의 그런 특별 이득도 포기한 것이다.
“꽤 자상하시네요. 그렇게 딜러들까지 생각하시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듣고 보니 딜러가 굳이 적게 받아야 할 이유가 없긴 해요. 다들 그래왔으니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물론 두 여자는 수긍한 것이지 공감한 것은 아니었다. 공격대장의 뜻이니 따르는 것뿐이다. 일단 말은 그리 하는 것이다.
유지웅도 착해서 정의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는 기여한 만큼 가져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포괄 면세 혜택이 적용되면, 예전처럼 면세 금액의 70%는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건 당연한 자기 몫이니까.
탱커도, 딜러도, 힐러도 똑같이 기여한다. 그렇다면 똑같이 가져가는 게 맞다. 사실 자신은 보호막 능력자이므로 특별 기여분을 책정해도 좋지만, 일개 대원도 아니고 공격대장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남들 보기 민망하기 때문이다. 힐러와 탱커 몫은 깎아놓고 자기 몫은 늘리면 아무래도 뒤에서 수군거리지 않을까?
“그럼 잘해 봐요.”
“잘 부탁드려요.”
셋은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람보르기니 안에서 정효주는 꽤나 새침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대체 뭘 잘못했을까? 유지웅은 괜히 가슴을 졸이며 운전하다가 핸들을 꺾었다. 귀가길에 있는 한강 강변으로 나간 것이다. 인적도 드물고 지나가는 차도 적어 차를 세우기에는 적당했다.
“저기, 효주야? 화났어?”
“응.”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내가 잘못했지.”
“……뭐가?”
그게 더 무섭다고! 차라리 그냥 잘못했다고 말해 줘!
가벼운 한숨이 흘렀다. 정효주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를 바라보는 표정에 미안함이 흘렀다. 아니, 왜 미안해하지? 신종 압박 수단인가?
“모르는 거야?”
“뭐가?”
그는 어리둥절했다. 정효주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가만히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만졌다.
“너 아까 얕보였다고.”
“얕보여?”
그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최가의와 박현정은 이야기하는 내내 정중했다.
“내가 표현이 좀 직설적이긴 한데, 하여튼 그랬어. 그렇지 않고서야 영입 자리에서 힐러장을 달라는 말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겠니?”
“……아.”
그제야 유지웅은 조금 깨달은 얼굴이 되었다.
“너 여자, 우습게보지 마. 은근한 척, 안 그런 척, 조신한 척 하면서 남자 적당히 이용하는 거, 예쁜 여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해낸다고. 사실 그 여자들 딱히 너 얕봤다는 자각도 없었을 걸? 그냥 찔러보면 되겠구나 싶으니까 은근히 건드려본 거야.”
“내가 잘못한 거야?”
“아니. 남자들 대부분이 다 그러니까 네가 특별한 건 아냐.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줘도 남자가 주는 거랑 예쁜 여자가 주는 거랑 반응이 다르지? 너도 아까 그랬던 거고.”
할 말이 없었던 유지웅은 괜히 그녀의 허벅지만 만지작거렸다. 복잡한 여자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사실 살을 맞대고 사는 정효주의 마음도 도통 모를 때가 많은데.
“그럼 어떡해? 힐러장이 실력도 중요하지만 신뢰도 중요하잖아? 내가 잘 아는 힐러가 그 둘 뿐인데…….”
“둘 중에 한 명 시켜.”
“어? 그럼 왜 아까는 말린 거야?”
“둘 중에 한명을 시키더라도, 그 자리에서 결정하면 안 돼. 그 둘한테 밀리는 구도가 되잖아. 그럼 나중에도 계속 알게 모르게 휘둘려. 어디까지나 네가 진지하게 생각해서 자연스럽게 내린 결정이라는 걸 인식시켜야 해. 힐러진이 구성되고, 전부 알아봤지만 당신만 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나가야 네가 주도권을 쥘 수 있어.”
주도권? 어차피 공격대장이니 모든 걸 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웬 주도권?
그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자 정효주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래서 남자는 안 돼……. 그저 여자한테 헬렐레 해서는…….”
“뭐야? 무슨 말이야? 내가 언제 그랬어?”
“됐어. 카섹스 안 해줄 거야.”
“야! 그런 게 어딨어!”
“일 처리 잘 못했으니까 됐어. 내가 안 왔으면 꼼짝없이 둘 중 하나 힐러 시켰겠네.”
그 둘 외에 힐러장을 할 만한 인물은 없다. 하지만 면담 자리에서 두 여자의 제안으로 둘 중 한 명을 힐러장을 시킨다면, 둘에게 끌려가는 구도가 된다. 그리고 선택되지 못한 다른 한 명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빚 의식을 가지게 된다.
문제는 두 여자가 거기까지 철저하게 생각하고 계산해서 행동한 게 아니란 점이다. 말 그대로 ‘될 것 같으니까’ 한 번 찔러본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다. 그가 어느 쪽을 힐러장으로 택하든 자기들에게 유리한 전개가 되는 것이다.
그게 옛 어른들이 여자를, 특히 미인을 요물이라고 불렀던 이유이기도 하다. 미인들은 그런 미묘한 판단을 본능적으로 자연스럽게 해낸다. 절대 알고 하는 게 아니다. 그냥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했는데 일이 그렇게 풀리는 것이다.
역사에 나오는 경국지색 미인들이 사실 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작정하고 왕을 홀린 건 아니었을 것이다. 하다 보니 ‘어? 나라가 망했어요?’라는 상황이 된 것뿐이다.
사실 남자들이 그런 여자의 무기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시피 하다. 그게 가능했다면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 그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는 말 자체가 없었으리라.
‘……진짜 눈을 못 떼겠다니까. 바보.’
안 해주면 공격대 창설이고 뭐고 없다는 듯이 나올 기세라 정효주는 결국 졌다. 아니, 져주었다고 해야 옳으리라. 그래도 대낮부터 한강 고수부지에서 하는 건 좀 아니라, 어린애처럼 보채는 그를 달래고 얼래서 집으로 돌아왔다. 차고에 주차된 차 안에서 갖는 관계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 작품 후기 ============================
근데 효주도 예쁜 여자라는 게 반전.
사실 레이드 및 결정체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초능력자들이 아니라 결정체를 가공, 유통하는 거대 유통기업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