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53)
00453 Unlimited Crystal Works =========================================================================
세계의 바다는 베링 해협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몇 년 전, 대양에서 괴수들이 날뛰면서 안전 항로가 대폭 변경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제2차 해금 사태. 다행히 유지웅이 모비딕 가족을 통제해서 베링 해협을 뚫은 덕분에 세계의 바다는 다시 하나로 연결되었다.
베링 해협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 외의 대양은 사실상 막힌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다양한 수중 장비를 개발하여 안전한 항로를 탐사하고 있고, 또 일부 수확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민간 해운사들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해로 이용을 꺼렸다.
유라시아와 호주 대륙을 출발한 배가 미국을 가기 위해서는 베링 해협을 거친다. 캐나다 서부 연안을 따라 남하하여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 항에 정박한다. 미 동부를 향하는 배는 좀 더 남하해서 파나마 운하를 지나 서부 연안을 따라 북상한다.
그런 이유에서 샌프란시스코 항구는 미 서부 최대의 물류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미국을 반으로 뚝 잘랐을 때, 서쪽 지역에서 바다를 통해 수출입하는 모든 물류가 샌프란시스코 항을 거치기 때문이다.
한때 다양한 분야에서 1위를 날리고 있던 미국은 최근 여러 분야에 걸쳐 한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한국을 제외하면 경제 규모나 국력 등 여러 분야에서 아직도 한 수 먹어준다.
그리고 레이드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한국조차도 절대 따라잡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결정체 소비량이다.
“……전 세계 연간 소비량의 1/3이요?”
무시무시한 수치에 유지웅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아니, 얘들은 뭐 이렇게 결정체를 많이 쓰는 거야?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미국은 독보적인 결정체 생산량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결정체를 전량 자국 내에서 소비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외국에서 수입합니다. 샌프란시스코 결정체 저장고는 서부 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소비량의 1/3이라지만, 다 연료로 써서 없애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그 외는 산업소재, 의약품, 레이드 장비 등으로 가공해서 다시 해외로 내다판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장난 아니라고 한다. 서부 지역에는 결정체를 가공하는 기업 공장이 대거 몰려 있는데, 수출을 위한 가공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로 제조해 항구를 통해 내다 판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억 달러면 생각보다 적은 물량인데요?”
“그때 마침 출고 대기 중이던 물량이 그것뿐이어서 피해가 그 정도에 그친 거죠. 아무튼 지금 인근 공장이 결정체가 없어 비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체 소비량에 비하면 진짜 얼마 안 되는 물량인데.”
“자동차를 정지시키는 데는 조그만 쇳조각 하나면 충분하죠. 미국은 결정체 유동량이 생각보다 빡빡하게 돌아갑니다. 베링 샤크 레이드 이후로 특히 그 현상이 심화되었습니다.”
유지웅은 조금 뜨끔했다. 그때 최후의 수단으로 100조 원어치의 결정체를 바다에 쏟아 부어 만든 안전지대로 위기를 넘겼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 결정체가 다 어디서 났을까? 미쳤다고 자신이 부담하나? 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긁어모은 것들이다. 쉽게 말해 강제 징발한 것들이다.
“으음, 정리하자면 미국은 결정체 소비량이 제일 많은 나라고, 결정체 유동성도 빡빡하게 돌아간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200억 달러의 손해면 당장 서부 산업 지역이 멈춰 버릴 만큼 차질이 있을 정도고요?”
“예.”
“대단하네. 대체 어떤 간 큰 놈이 그런 짓을 했지?”
듣자하니 흔적도 없이 저장고를 싹 털어갔다고 한다. 이중삼중으로 삼엄하게 경비되는 첨단 경호망을 뚫고 털어갔다고 하니, 여간 대단한 놈들이 아니다.
말 그대로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었다. FBI는 지금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그나저나 그런 큰일을 과연 일개 소수 도둑들이 벌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근데 미국이 WCO에는 왜 연락을 했대요? 자기들이 관리 못해서 도둑맞은 걸 어쩌라고?”
설마 러시아를 의심하고 있나? 유지웅은 조금 기분이 나빠졌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남기철이 얼른 설명했다.
“WCO에 긴급 구제 신청을 했습니다.”
“긴급 구제 신청?”
“당장 이틀 안에 손실 물량을 충당해서 공장을 돌려야 더 이상의 추가 손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많은 물량을 이틀 안에 끌어올 만한 데가 없답니다.”
200억 달러에 달하는 결정체를 이틀 안에 어디서 끌어오나? 다른 나라, 다른 지역도 다 자기들 자금 사정에 맞춰서 아슬아슬하게 공장을 돌리고 있는 처지인데.
“해줄까요?”
“당연히 해야 합니다. 이번 구제 금융, 아니 구제 지급으로 WCO의 위상을 높일 수 있습니다. WCO가 결정체 분야의 IMF라는 걸 세계에 인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근데 효주가 임신 중이라 저 결정체가 없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유지웅은 지금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결정체가 거의 없었다. 물론 250개에 달하는 블루 결정체가 폐쇄 모듈에 에너지원으로 탑재되어 있지만, 그것은 폐쇄 모듈을 폐기할 때까지는 빼낼 수 없으니, 사용할 수 없는 부동 자산이나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 3인 레이드 다니면서 많이 모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좀 모으긴 했는데 벌써 다 팔았죠. 그걸로 저금통에 현금 채워 넣었잖아요.”
한 50조 원어치쯤 모으긴 했는데 이미 다 팔아서 현금으로 바꾼 지 오래다. 물론 다 원화는 아니고 달러와 유로화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하지만 남기철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에 관해서는 이미 보충안이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 정부의 비상 비축량이 꽤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상관없을 듯한데요?”
“그런데 저의 단독 결정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조금 힘이 없어서…….”
“위임장이라도 써드릴까요?”
“아닙니다. 회장님이 제 결정에 동의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남기철은 바로 청와대를 찾아갔다. WCO 의장이 되고 처음으로 주도하게 된 업무다 보니 열정이 넘쳤다.(바이러스 피해자 보상은 그가 주도한 게 아니라 유지웅이 시킨 일이다.)
“알겠습니다. 기꺼이 지원해드리죠.”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참에 우리 정부도 매년 일정량의 결정체를 WCO에 비축하겠습니다. 예치금으로 생각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선례가 될 겁니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결정체가 제일 썩어나는 나라였다. 만약을 대비해 비상 비축해놓은 물량이 무려 300억 달러치에 달한다고 한다.
당연히 공짜로 주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WCO에 빌려주고, WCO가 다시 미국에 빌려주는 것이다. WCO는 일종의 IMF 같은 국제기금 역할‘도’ 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미국은 어쩌다가 그 꼴을 맞이했답니까?”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부분까지는 미국이 잘 밝히지 않아서요.”
“수치심 때문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들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WCO 같은 세계 기구의 의장이라면 국가 원수 급에 해당하는 예우를 받는다. 한때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까마득한 상관이랑, 지금은 대등한 신분으로서 얼굴을 맞대고 있다. 남기철은 격세지감을 느꼈다.
* * *
휘버 박사의 연구 파기.
블리츠랭크는 최초의 행동 목적을 그렇게 설정했다. 아무도 자신에게 로봇 대원칙 같은 것을 주입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정보를 분석하고 학습한 끝에 정한 최초의 목적이었다.
휘버 박사의 연구를 되살리려는 자는 많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를 해할 목적이 없다. 어디까지나 인류의 발전을 위한 긍정적인 목적으로 움직인다.
반면 토미 에슨은 다르다. 그는 휘버 박사의 연구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그것을 손에 쥐려고 한 유일한 인물. 따라서 그를 제거해야만 한다.
「토미 에슨, 제거 요망. 미합중국, 토미 에슨을 보호할 고도의 개연성 있음. 미합중국, 진실을 알면 토미 에슨과 손을 잡을 가능성 높음. 따라서 위험한 국가로 설정.」
푸른 LED 램프가 쉬지 않고 깜박거렸다.
「핵사일로 통제 가능, 미합중국 전 지역 초토화 가능.」
방안을 떠올린 블리츠랭크는 즉각 타당성을 검토했다.
「검토 중……. 허용할 수 없음. 이유 하나. 토미 에슨과 무관한 다수의 시민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음. 이유 둘. 미합중국 시민 외의 사람도 상당수 거주 중. 이유 셋. 미 정부의 위험성을 다른 시민들에까지 확대 적용할 수 없음. 이유 넷…….」
눈동자 속 LED 램프가 잠시 꺼졌다가 다시 깜박거렸다.
「닥터 휘버 암살에 관련된 자들 상당수가 미 행정부에 연관되어 있음. 결정체 카르텔 존속 중. 미합중국이 위험한 이유. 암살 관련자와 결정체 카르텔이 미합중국의 공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임.」
블리츠랭크는 연산을 거듭했다. 행동 목적의 타당성, 효율성을 최대한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그리고 결론을 얻었다.
「토미 에슨을 제거. 미합중국 행정부 해체. 결정체 카르텔 제거. 무관한 일반 시민의 피해는 최대한 배제. 목적 설정 완료. 행동 개시.」
* * *
“이걸 믿으란 말인가?”
비시가 버럭 화를 냈다. 각 부서장들은 차마 그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보고서라고 가져온 것이 알 수 없음이란 문구로 도배가 되어 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그 많은 물량이 싹 털리느냔 말이야!”
한두 푼도 아니고 200억 달러치가 털렸다. 그것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인근지역 CCTV는 죄다 먹통이 되어 있었고 아무런 경보음도 울리지 않았다. 장갑차 바퀴가 다수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정규군 규모의 병력이 습격을 한 것 같은데, 관할 미군 기지는 그런 낌새조차 알지 못했다고 한다. 국토 방공망도 마찬가지.
“각하. 일단 WCO에서 긴급 구제 명목으로 지급한 물량이 들어왔으니 한시름 놓았습니다. 추가 손해는 없을 듯하니 진정하시고 대책을 논의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후, 그나마 다행이군.”
비시는 머리끝까지 뻗어 오른 화를 가라앉혔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현장 사진을 보면 다수의 장갑차까지 동원한 간 큰 녀석들이다.
그런데 이게 말도 안 된다. 미군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지켜보는 미국 땅에서, 장갑차 3대를 동원해서 결정체 저장고를 습격했다고? 그 동안에 관할 기지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고?
그 장갑차들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이며, 지금은 또 어디로 사라졌는가? 왜 미군은 자기 앞마당에서 장갑차들이 버젓이 강도짓을 하는데 눈뜬장님처럼 아무 것도 몰랐나?
생각할수록 말이 안 되는 일들뿐이다.
“바퀴 자국 조사는 아직도 멀었나? 어느 나라 차량인지 알아내는 건 일도 아니라면서?”
“저, 지금 조사 중입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마이첼 대장은 변명을 하다 말고 급히 진동을 느꼈다. 그는 얼른 전화를 받고 조용히 통화를 했다. 긴급 보고인 것 같아서 비시도 뭐라 하지 않고 놔두었다. 그의 표정이 점점 기이하게 변해가는 게 영 불안하긴 했지만…….
이윽고 그가 전화를 끄고 비시를 응시했다. 그의 표정은 귀신이라도 홀린 듯이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각하. 범행에 사용된 차량을 찾았습니다.”
“그래, 어느 나라 소속인가? 지금은 어디에 있고?”
“그게……. 제56육군기지 보유 모델이라고 합니다. 현재 차량 격납고에 있으며 결정체 저장고 지역의 흙이 바퀴에 묻어 있는 것도 확인했다고 합니다.”
뭔가 설명이 이상하다? 비시는 언뜻 잘 이해가 안 갔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었다.
“제56육군기지? 거기는 설마……?”
“피해 저장고가 있던 지역 관할 미군 기지입니다.”
“……자네, 설마 지금 우리 미군이 우리 미국의 결정체 저장고를 털었다고 말하고 있는 건가?”
“……저, 정황이 그렇습니다.”
============================ 작품 후기 ============================
제거하라, 제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