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56)
00456 Unlimited Crystal Works =========================================================================
“……이상이 응집 이론의 핵심 원리이자 추구하는 목표라 할 수 있죠. 인류를 위한 위대한 유산이 될 뻔한 연구 업적이지만, 안타깝게도 휘버 박사가 생을 달리하는 바람에 현재는 반쯤 사장된 상태입니다. 유수의 석학들이 그 복원을 위해 매달리고 있지만 과연 언제쯤 실현될지는 아직 아무도…….”
유지웅은 반쯤 지루한 표정으로 강의를 듣고 있었다. 강의 내용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들으려니까 흥미가 안 당겼다.
젊은 교수는 강의가 지루해서 그러는 건가 해서 강의 내내 연신 유지웅의 눈치만 살폈다. 일개 학생이라 하기에는 이미 그의 사회적 지위는 너무나 높은 곳에 있다. 또 연주재단의 사실상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재단을 인수한 이유도 반쯤은 기가 막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생회에서 시위하는 게 시끄러워서 등록금 제로를 만들기 위해 그냥 재단을 인수해버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독일의 무료 대학 교육 제도에 비추어 재단 인수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학우들의 학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크게 베풀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그의 개인 비서진에서는 학비를 면제함으로써 진정한 교육의 권리를 누리게끔 하는 시발점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다. 비서진 입장에서는 도저히 ‘회장님이 등록금 인하 시위가 시끄러워서 등록금 없애려고 인수해버렸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 등록금을 받지 않는 것이 보편화된 독일의 선진 교육 제도라는 좋은 선례도 있고 해서, 아무튼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중이었다.
“맞아요! 그 부분은 오히려 유지웅 학생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요?”
“네?”
느닷없이 이름이 불린 유지웅은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학생의 본능이란 게 참 거짓말은 못한다. 수업 시간에 불리면 일단 깜짝 놀라고 본다.
“제니스 연구단지에서는 휘버 박사의 연구를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고, 또 유지웅 학생은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심층 분야까지 깊숙이 얽혀 있으니, 더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지 않나요? 학우들을 위해서 간략하게 진실을 설명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교수님, 지금 제정신이야?’
경악에 찌든 학생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 누구에게 뭘 시킨 건지 인지하고나 있는 걸까? 강의실에 앉아 있다고 다 똑같은 학생이 아니다. 저 사람은 학생의 탈을 쓴 이사장이다. 물론 재단 명의는 부친 앞으로 해놓았지만, 진짜 이사장은 그라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내, 내가 무슨 짓을!’
그제야 젊은 교수의 얼굴도 흙빛이 되었다. 사실 그는 시간 강사다. 열의가 지나쳐 종종 실수를 하곤 하는데, 하필이면 오늘이 딱 그 날이었다.
그는 강의 시간에 종종 학생들과 토의를 하거나, 본인의 생각을 말해보라는 식으로 수업을 자주 유도하는 편이었다. 유지웅에게 말을 시킨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문제는 그가 일반적인 학생이 아니라는 것. 학생의 능동적인 강의 참가 유도는 좋은데, 그걸 해야 할 대상이 따로 있다는 걸 잠시 망각하고 행동한 것이다. 그가 지루해하는 듯한 모습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큰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
교수는 사색이 되어 있고, 학생들은 흙빛이 되어 있는데, 오직유지웅만 혼자 골똘히 뭔가를 생각했다. 그 잠깐의 고요가 교수 및 학생들에게 얼마나 숨 막히는 압박으로 다가왔는지는 굳이 서술하지 않겠다.
“아, 죄송해요. 잠깐 정리 좀 하느라고요.”
“……?”
“제가 결정체 카르텔과 몇 번 부딪쳐 보면서 느낀 건데요, 정말 답이 없는 사람들이더라고요. 돈만 된다면 뭐든지 다해요. 사실 밤 바이러스도 원래는 저를 압박하는 카드로 쓰려고 만든 거거든요.”
“압박이요?”
숨이 멎을 뻔했던 조금의 긴장감은 어디 가고, 젊은 교수는 흥미로운 비사가 흘러나오자 귀를 기울였다. 학생들도 어느 술자리에서 음모론으로나 취급될 법한 이야기가 나오자 관심을 보였다. 당사자가 겪은 일이니 근거 없는 음모론이 아닌 진실이다.
“밤 바이러스를 개발한 목적 중 하나가 저를 결정체 카르텔에 끌어들이는 것도 있었대요. 우리 힘 이 정도나 되니까 서로 싸우면 손해다, 그러니 같이 손잡고 잘 먹고 잘 살자, 뭐 그런 걸 어필할 의도가 있었대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교수와 학생들의 얼굴이 점점 흥미진진하게 변했다. 이거 진짜 어디 가서 들을 수 없는, 숨겨진 세계사의 뒷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로스차일드를 해체해버린 거고요. 공개 재산, 은닉 재산 가리지 않고 다 압류한데다가 가문 인원들 블랙리스트로 올려서 이제 주류 세상으로는 못 나올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하나가 국가 특급 기밀로 분류될 법한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정부가 알았다면 기겁을 했겠지만 애초에 기밀로 지정한 적도 없으니 뭐라고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유지웅에게는 얼마 전에 겪은 일상 경험에 지나지 않으나, 보통 사람에게는 ‘이거 들었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거 아니야?’라는 불안감이 들게 마련이다. 벌써 몇 명의 학생들은 계속 듣고 있어도 되는지 슬슬 불안함이 얼굴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슬픈 동물이라고 했던가. 보통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 패권자의 입으로 직접 듣는 숨겨진 국제 비사는 도저히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거죠.”
교수와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아직 초봄인데도 이상하게 식은땀이 났다. 다들 지나치게 긴장이 고조된 탓이다.
젊은 교수는 흥미로운 국제 비사에 지적 욕구를 충족시킨 한편, 자신의 결례를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유지웅의 태도가 그저 고마웠다. 대부분 학생들마저 ‘저 교수가 무슨 짓을?’이라는 눈으로 쳐다봤는데, 그는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시간 강사 자리 짤릴 것을 염려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어, 잠시만요? 급한 전화라서.”
번호를 확인한 유지웅은 의아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게다가 아주 중요하고 다급한 일이 벌어졌을 때만 사용하는 번호다.
본래는 강의실을 벗어나서 전화를 받는 게 매너다. 하지만 국가비상사태일지도 모르는 일인지라 그는 전화를 받으며 강의실 입구 쪽으로 향했다.
“네. 유지웅입니…… 네? 뭐라고요? 그게 정말이에요?”
나가려다 말고 유지웅은 멈칫했다. 그리고 후다닥 뒤로 돌아와서 책을 빠르게 쓸어 넣고, 가방을 메고는 뛰쳐나갔다. 나가기 전 교수에게 짤막한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지금 미국에 야단이 나서. 아참, 미국 증시 대폭락할 거 같으니까 혹시 거기 돈 넣어둔 거 있는 사람 다 빼세요. 얼핏 들었는데 답이 없어 보여요.”
그리고 그는 강의실 문을 닫고 사라졌다.
“…….”
강의실에는 싸늘한 고요만이 남았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하나둘씩 깨어나듯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야?”
“엄청 큰일 생긴 거 아니야? 원래 저 선배님, 수업 시간에 대놓고 전화 받고 그러신 적은 없잖아?”
“미국 증시 대폭락할 거 같다고 했어! 미국에 큰일 생긴 거 아니야?”
“근데 우리가 뭐 투자할 돈이 어딨어?”
“아, 엄마한테 빨리 말해야겠다! 우리 엄마 미국 파생 상품에 쌈짓돈 투자한 거 좀 있는데.”
웅성거림이 어느 정도 잦아들기를 기다려 교수가 손뼉을 가볍게 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자자, 유지웅 학생은 큰일이 있어 나간 것 같으니 부디 일이 잘 풀어주기를 기도해주고, 우리는 수업을 마저 합시다. 그럼 다음 페이지를…….”
“실례합니다.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십여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들어섰다. 사복을 입고 있어 언뜻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인상을 가진 이들이었다.
대표자로 보이는 인물이 신분증을 제시하며 협조를 구했다. 시간 강사는 간이 콩알만 해져서 다시 안색이 파리해졌다. 그가 평생 가도록 언제 국정원 인물과 얽힐 일이 있겠는가.
“신성한 교육의 장을 침범할 의도는 절대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들께서 중요한 국가 기밀에 접하게 되었으므로 안보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강의 중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국가 기밀?”
학생들은 다시 웅성거렸다. 몇 몇 아이들은 그 의미를 깨달았는지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바로 유지웅이 그냥 별 생각 없이 해준 자기 경험담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에게는 별 거 아닌 ‘일상’이지만 남들, 특히 자신들 같은 평범한 개인에게는 ‘접해선 안 될 특급 기밀’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에서,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기밀을 접하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고의로 그리 된 것이 아니므로 국가는 그로 인한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절대로 누설하지 않겠다는 보안 서약은 해주셔야 합니다. 이 시간 이후, 배포, 기록은 물론이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것도 절대 안 됩니다. 머릿속에서 결코 꺼내서는 안 되는 점을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설명을 마친 국정원 보안책임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살벌해 보이는 보안서약서를 보여주었다. 다른 직원들이 보안서약서를 전부 나눠주며 서약을 받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엿 됐다는 표정을 한 채 엉거주춤 보안서약서에 서명을 했다. 이거 정말 불이익이 없는 건지 불안했다.
* * *
“하, 이건 답이 없는데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유지웅은 학교까지 긴급 파견한 대통령 헬기를 타고 청와대로 향했다. 장태준은 그보다 이미 먼저 도착해 있었다. 제니스 레이드 전술 부문 총책임자라, 청와대 비서실에서 그에게도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대략적인 현장 상황을 전해들은 유지웅은 마지막으로 영상을 보며 그렇게 내뱉었다. 대통령 이하 참모진의 표정도 심각하게 변했다.
“레이드 전술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비서실장이 이번에는 장태준에게 물었다. 사실 그는 살짝 얼어 있었다. 왜 자신이 청와대까지 끌려와서 대통령 앞에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자신은 그저 평범한 레이드 전술 교관일 뿐인데.
“미국 공격대의 힘만으로 막는 것은 어렵, 아니 불가능합니다. 미국은 선택을 해야 할 겁니다.”
“선택이요?”
“광범위한 자국 영토의 초토화를 각오하고 핵을 사용하던가, 아니면 멸망하던가 골라야만 합니다. 물론 미국의 힘만으로 상대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니스 파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CIA 등 미국이 큰 잘못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사과는 물론이고 막대한 배상을 한 터라 지금 한미 관계는 다시 회복 중에 있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소비 시장이다. 결정체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서 그렇다.
근래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내는 무역 흑자의 규모는 엄청난 수준이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야 한다. 그래야 자국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한국이 얼마만큼 출혈을 각오해야 하느냐다. 감당할 수 없는 출혈이라면 아깝지만 미국 시장 자체를 포기하는 게 낫다.
“비록 큰 잘못을 하긴 했지만, 모든 책임을 지고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 중인 우호국의 위기를 모른 체 할 순 없지요. 제니스 공격대를 파견하겠습니다.”
유지웅이 시원스럽게 말을 했다. 대통령의 얼굴색이 기이하게 변했다.
이렇게 쉽게 OK를 할 인간이 아닌데? 혹시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건 아닌가?
“정말입니까?”
정부 입장에서야 별다른 피해가 없다면 제니스가 물 건너가서 제압해줬으면 했다. 그게 이익이 되니까. 그런데 저렇게 시원스럽게 나오니 더 불안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 제니스로서도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할 만큼 위험한 레이드가 될 것 같아요. 그만한 대가를 약속해줘야 해요.”
그럼 그렇지. 대통령은 오히려 안심이 돼서 물었다.
“원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전리품으로 얻는 결정체 소유권 귀속 문제야 논의할 것도 없고요. 추가로 괌을 받았으면 하네요.”
“……괌이요?”
“뭐 섬 전부를 다 줄 필요는 없고요, 그냥 일부만 줘도 괜찮다고 해주세요. 시민들 눈치가 보이면 매각 형식으로 치러도 되고요. 아무튼 괌이면 돼요.”
대통령은 직감했다. 이 인간, 오래 전부터 괌을 탐내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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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해상 별장 하나가 슬슬 필요했는데 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