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479)
00479 중년의 히어로? =========================================================================
캘리포니아 주지사, 딕 케일은 요즘 들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러시아 대사의 경고가 머릿속을 복잡하게 헝클어뜨리곤 했다.
러시아. 한때 최고의 호적수였으며, 지금도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 구도를 유지하는 라이벌 국가.
‘러시아는 미합중국이 두 개의 연방국으로 분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조금만 정치판에 몸을 담갔던 사람이라면, 바보가 아닌 이상 러시아의 그런 검은 의도를 모를 리가 없다. 러시아도 구태여 자신들의 그런 의도를 덮으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이 최고의 경제대국임을 부정하는 나라는 없다. 심지어 블루 결정체 및 안전지대 독점 공급으로 급부상한 한국도 그 점은 인정한다. 무릇 경제대국이라 함은 생산뿐만 아니라 소비의 규모도 같이 고려해서 분류해야 하는 법이다.
현재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흑자를 내고 있다. 어느 나라보다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다. 원화는 이미 아시아 지역에서 반쯤 기축화폐로 여겨지고 있는 추세다. 아시아권에서 원화는 달러보다 더 큰 신용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정통적으로 뛰어난 과학기술, 그리고 막강한 구매 능력을 가진 수많은 인구를 갖고 있다. 세계 1위의 결정체 소비국가. 이 타이틀은 심지어 한국조차 무시할 수 없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은 가장 큰 ‘고객’이자 ‘구매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미합중국이 두 개로 쪼개진다면…… 러시아가 단일국으로서는 가장 큰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이 러시아가 노리는 점이리라. 하나의 미합중국은 러시아가 넘볼 수 없는 지위지만 두 개로 쪼개진 미합중국은 그만큼 만만해지기 마련이다.
바보가 아니기에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바보가 아니기에 러시아의 의도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제니스가 아이오와 주 괴수 사태를 성공적으로 진압했다고 하더군요. 역시 제니스답습니다.”
러시아 외무 장관, 코조프스키는 아침부터 밝은 얼굴로 유쾌하게 새 소식을 건넸다. 미국 땅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주지사보다 더 빠르게 전달받을 수 있는지 쓴웃음이 나올 정도다.
“귀국의 제안은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거 또 하나의 좋은 소식이군요. 결론이 나셨습니까?”
“미국은 경제대국입니다. 외람된 말이지만, 지금의 경제 규모만 따져도 두 개로 쪼개진다 해서 러시아가 어느 하나라도 앞서지는 못합니다. 작년 GDP만 해도 미국이 러시아의 두 배가 넘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코조프스키는 조용한 미소를 띤 채 듣기만 했다.
“분명 우리 서부 지역은 최근 해금 현상 때문에 늘어난 급격한 경제적 부담으로 연방 유지에 어느 정도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미합중국으로 존재하는 강점을 스스로 포기할 정도인지를 자문하면, 저로서는 연방 탈퇴를 그리 호의적으로 보기는 어렵군요.”
“……그렇습니까.”
코조프스키는 동요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는 서부에서도 어느 지역보다 더 강렬하게 연방 정부 및 비시 정권을 비판하고 있는 곳이다. 국제 무역의 대부분이 쏠리는 지역이니만큼 어느 주보다 풍족해졌고, 그에 따라 연방 정부에서 지우는 부담도 커졌기 때문이다.
즉 딕 케일이야말로 어느 주지사보다 더 강하게 서부 연방 결성을 염원하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런 자가 쏟아내는, 연방 탈퇴 회의론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최윤은 제니스 공격대장이 제일 아끼고, 신임하는 부하 직원입니다. 그 인연은 제니스 공격대장이 레이드 초창기 시절이었던 프라임 공격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니스 공격대장은 최윤 박사를 여러 면에서 아끼지 않고 후원했으며, 입자가속장치의 건조를 위해 250개의 블루 결정체를 아낌없이 제공했죠.”
“미국이 최윤 박사를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일부러 살해하거나 죽도록 방치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이오와 주에 그런 괴수 사태가 벌어질 것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멩크 형무소 죄수 폭동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시는군요.”
“……?”
“죄수 폭동은 괴수 사태를 틈타 토미 에슨을 탈출시키려고 한 자들이 저지른 고의적 범죄입니다. 아마 로스차일드를 따랐던 대부호 가문 중 하나겠죠. 토미 에슨과 그들의 인연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딕 케일은 눈을 부릅떴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죄수 폭동이 우발적이 아니라, 외부에서 조장한 것이라니.
“더군다나 제니스 공격대장도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쯤 미국이 자국 내 범죄 단체 하나 관리감독을 못했다며 단단히 이를 갈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라는 명목으로 지금까지 약소국에 가했던 일들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딕 케일의 표정이 불편해졌다. 미국이 강대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약소국들을 상대로 수많은 깽판을 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결코 입 밖으로 발설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제니스도 그처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확실한 명분까지 있죠. 무엇을 상상하든, 제니스는 그 이상의 징계를 가하려고 할 겁니다. 최윤의 죽음에 분개한 제니스 자문단에서도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연일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딕 케일의 표정에 띤 불편함이 더욱 짙어졌다.
제니스 자문단의 영향력은 그도 알고 있었다.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 및 교수로 이뤄진 유지웅 전속 자문 기관으로, 그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싱크 탱크다.
혹자는 제니스 자문단을 가리켜 한국의 ‘상원’, 혹은 ‘진짜 국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아냥거리는 쪽이든 경외하는 쪽이든 간에, 그 영향력만큼은 인정하겠다는 표현인 것이다.
“우리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제니스 자문단은 적어도 미합중국을 동서남북, 네 개의 연방으로 갈라놓아야 하지 않느냐는 방책을 논의 중이라 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남북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지켜내 온 하나의 통일된 연방입니다! 제니스의 힘은 인정하지만, 그런 폭정까지 감안할 만큼 비굴하진 않습니다! 그건 엄연한 내정 간섭입니다!”
딕 케일은 크게 화를 냈다. 정말로 화가 난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바로 분노 모션을 취해야 할 때다. 이것이 바로 외교라는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1위입니다! 어떤 폭력에도 우리는 절대 굴하지 않습니다! 제니스라 해도 군사적으로 우리 미국을 당해내지는 못합니다!”
코조프스키는 미소를 지었다. 기다렸던 반응이다.
“과연 그럴까요? 한국, 아니 제니스가 군사력만큼은 미국을 당해낼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러시아와 손을 잡는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의 함정, 미사일은 단 한 대도 미국 영역에 들어서지 못합니다.”
코조프스키는 왠지 뿌듯했다. 제니스의 힘을 인정한다는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정작 제니스의 진짜 힘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기껏해야 괴수나 잡고, 블루 결정체와 안전지대로 돈을 거둬들이는 집단으로 알고 있으리라. 정규 무력만큼은 미국을 넘어서지 못할 거라는 달콤한 환상에 젖어 있는 것이다. 그 환상을 깨부술 수 있다는 것이, 코조프스키는 즐거웠다.
“러시아는 미국을 직접 치지 않습니다. 만약 한미전쟁이 벌어진다면 한반도를 방어하는데 전력을 쏟을 겁니다.”
딕 케일은 이게 무슨 말인가 의아해졌다. 인간을 상대할 때, 제니스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무력은 바로 러시아가 아닌가? 로스차일드를 응징할 때도 러시아 군대가 손발이 되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말이다. 그런데 러시아가 미국을 치지 않는다니?
“전면전이 시작되면 먼저 미국 선박의 베링 해역 통과가 전면 금지될 겁니다. 해상 봉쇄를 당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제니스가 자랑하는, 세계 최초로 길들인 괴수인 브라우니가 미국에 존재하는 모든 괴수들을 자극해서 미쳐 날뛰게 만들 겁니다. 아이오와 주 사태가 미국 전체에 벌어지게 되는 거죠.”
딕 케일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분명 그런 가정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힘을 믿었다. 브라우니를 이용한 습격을 출혈 없이 막아낼 순 없을지라도, 미국의 힘을 총동원하면 결국에는 방어할 수 있을 거라고. 이미 미국은 몇 번이나 레드 몹을 막아낸 적이 있지 않은가.
“아마 미국의 힘을 전격적으로 동원하면 레드 몹 한 마리 막는 것은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악화된 국제 언론과 미국 시장 수출로 한국이 경제적 손실을 본 것을 이용해 협상을 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딕 케일은 불안해졌다. 무슨 말을 준비했기에, 이렇게 자신이 반박을 꺼내기도 전에 친절하게 격파하고 있는 것일까.
“브라우니는 레드 타입 괴수가 아닙니다.”
쿠웅, 하고 가슴에 돌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창백해진 딕 케일은 저도 모르게 급히 반문하고 말았다.
“그 말은, 설마……?”
“블랙 타입 괴수입니다.”
* * *
“어떤가? 찾았나?”
「모든 구역을 뒤졌습니다만 최윤 박사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불에 휩쓸려 완전 연소한 모양입니다. 눌어붙은 시신 전부를 유전자 검사라도 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아이오와 주 한가운데 있는 멩크 형무소를 수색하러 나간 팀이 올린 보고였다. 칠드그린은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생각했다.
시신이 없다. 가능성은 두 개다. 식별이 불가능한, 완전히 타버린 시신들 중에 섞여 있거나 혹은 죄수 폭동을 벗어나 무사히 탈출했을 것이다.
정황을 보면 전자가 월등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칠드그린은 최윤에게 붙여준 자신의 부하를 믿었다.
‘그레이브스는 분명히 무사히 최윤을 피신시켰을 것이다.’
루딘 국장, 그리고 백악관은 최윤의 방미를 외국 극빈의 조용한 방문 정도로 여기고 크게 심각하게 여기진 않았다. 그래서 통상적인 경호 인력을 붙였다.
하지만 칠드그린은 달랐다. 만약 미국 땅에서 최윤이 해를 입는다면, 유지웅의 분노는 고스란히 미국을 덮치게 된다. 그래서 EIS에서 제일 생존력이 뛰어난 그레이브스를 따로 전담 경호로 붙인 것이다.
경호팀 말로는, 멩크 형무소에서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괴수 사태가 일어났다고 한다. 급히 최윤을 찾으러 안으로 진입했으나, 때마침 죄수 폭동이 일어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분명히 살아 있다. 그레이브스 요원이 그리 허술하게 당할 리가 없다.’
부하에 대한 칠드그린의 신임은 두터웠다. 그는 만약 자신이 그레이브스라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을 해봤다.
“멩크 형무소에서 가장 가까운 안전지대가 어디지?”
“파울러 시티입니다.”
“파울러 시티와 현재 연락이 가능한가?”
“불가능합니다. 위성은 먹통이고 기반시설 파괴로 유무선 통신 중개소도 전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주요 도로도 파괴되거나, 사람들이 버려두고 간 차로 가득해서 도로를 이용한 도시 진입은 불가능합니다.”
“어쨌거나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군.”
“그렇습니다.”
“좋아, 수색팀을 전원 파울러 시티로 돌리게. 파울러 시티뿐만 아니라 인접한 다른 안전지대에도 수색팀을 투입해서 최윤 박사를 찾아보게.”
“부국장님은 설마 최윤 박사가 살아있다고 보십니까?”
“난 그레이브스 요원을 믿는다. 분명히 그라면 안전하게 피신시켰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부하의 표정이 일순 창백해졌다. 지금 파울러 시티는 그야말로 지옥 중의 지옥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물자와 식량, 물, 의약품이 부족한 아비규환이었다. 아마 엄청난 고생이 예상된다.
그러나 부하는 곧 마음을 가다듬었다. 칠드그린의 말대로다.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놓지 않고 단단히 붙들어야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법.
“미국이 두 개로 분열되도록 놔둘 수는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최윤 박사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그렇게 격려를 받은 부하가 일어서려는 순간, 벌컥 문이 열리고 다른 부하가 서둘러 뛰어 들어왔다. 동시에 칠드그린의 표정도 차갑게 굳었다. 노크도 없이 집무실 문을 열고 뛰어 들어올 정도면, 그 사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닐 것이다.
“무슨 일이지?”
“부국장님. 큰일입니다. 제니스 자문단에서 최윤 박사의 죽음에 대한 보복 수위를 정하고 청와대 및 국회와 진지한 협의에 들어갔다 합니다. 오늘 안으로 제니스 회장에게 자문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러시아의 뜻대로 돼가는 건가.”
러시아가 자문단을 뒤에서 부추긴 건 이미 알고 있다. 칠드그린은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문단이 밀어붙이면 두 개의 미국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만큼은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하지만 부하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 제재 수위가 두 개의 연방으로 분리하는 게 아니라…… 연방 해체입니다.”
“뭐라고!”
두 개가 아니라 오십 개로 쪼개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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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 네 개? 우리 통은 그렇게 작지 않습니다.”
불곰이 반성합니다.
양키가 경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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