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1)
00051 시작은 창대하나… =========================================================================
일본은 최대 결정체 공급 국가였다. 계산이 빠른 나라답게 가장 빠르게 레이드 관련 제도가 정착되었고, 하루에도 수많은 옐로 몹들이 사냥당하고 있었다. 정밀부품 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이뤘던 일본은 결정체 산업으로 또다시 제2의 도약을 이뤄냈다.
일본은 결정체 관련 산업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활발하다. 장비 공정 설비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한국이 공정 설비를 단 1개만 갖고 있고, 나라가 독점 운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차이였다.
때문에 일본의 결정체 암시장은 국제 사회에서도 알아주는 대형 장터였다. 무수한 결정체가 일본에 모였다가 다시 세계로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세계에 풀린 S급 장비의 절반 이상이 일본에서 공정되었다는 설도 있었다.
나리타 국제공항에 내린 유지웅 커플은 도쿄로 이동했다.
“호텔부터 가자.”
둘은 도쿄 시내에 예약해둔 호텔로 향했다. 일본어를 할 줄 몰라서 상당히 애를 먹었다. 간단한 영어와 몸짓, 손짓을 통해서 겨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짐을 풀어놓고 할 게 없어서 침대에서 배를 맞추며 시간을 보내고 뒹굴었다. 그리고 온천 명지를 찾아 온천욕도 즐기고, 일본 구경도 했다. 그렇게 사흘쯤 시간을 보낸 뒤 한국 브로커가 주선한 현지 브로커가 나타났다.
“마츠오라고 불러 주십시오.”
아마도 가명일 것이다. 마츠오는 30대 초반의 다부진 체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능력자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레이드가 아닌 일에 종사하는 능력자 치고 뛰어난 사람은 없으리라.
“돈은 준비되셨습니까? 아시겠지만 이쪽 바닥은 전부 현금 거래만 선호합니다.”
유지웅은 끄덕이고는 들고 온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100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이 돈도 브로커를 통해 정부 몰래 송금한 거라 수수료가 꽤나 들었다.
외환법 위반이긴 한데 만약 들키더라도 문제는 없었다. 한국 정부도 능력자들이 암시장에서 돈을 쓰기 위해 외환법을 위반한 것은 묵인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가 보안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강화 보호막과 장비의 관련성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힐러는 장비가 필요 없기 때문에 블루 결정체 대금을 7000억에서 1000억으로 깎았는데, 그 사실이 알려지면 정부가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출발하죠.”
마츠오는 한국어를 참 잘했다. 재일교포일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순수 일본인이라고 했다.
“이쪽 일을 하려면 몇 개 국어는 필수입니다. 특히 영어, 중국어, 한국어가 강세죠. 세 나라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결정체 수요량이 높은 나라군요.”
“그렇습니다. 가장 큰 고객들이죠.”
일본의 암시장은 암시장이 아니라고 하던 말을 실감했다.
마츠오가 자기 차에 둘을 태워 이동했다. 둘은 편안하게 앉아 있었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차가 멈춘 곳은 도쿄 시외의 한 신축 빌딩이었다. 지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건물은 깨끗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갖고 있었다. 진입로에는 BAK Company라는 회사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BAK? 어디서 들어봤는데.”
“일본 최대 결정체 유통 기업이죠. 이곳에서 공정 작업을 할 겁니다.”
“일본 암시장이 대단하네요. 저런 대기업과도 줄이 닿아 있다니, 놀라워요.”
“이곳 관련 종사자들은 암시장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결정체 시장은 음지와 양지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시장일 뿐입니다.”
뭐가 다른 건가? 유지웅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마츠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 설명했다.
“암시장은 불법을 뜻하죠. 하지만 일본의 결정체 시장에서는 정당한 돈만 내면 무엇이든지 취급할 수 있습니다. 한때 일본의 시장도 음지와 양지로 구분된 적이 있으나, 이제는 그렇게 나누는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거대한 합법적인 결정체 국제유통 시장이 된 거죠.”
“그런가요? 몰랐어요.”
“일본 정치가들이 권력욕은 강해도 그런 것 하나는 제대로 일을 합니다. 덕분에 일본이 세계 결정체 최대 공급 국가로 부흥을 누릴 수 있는 거죠.”
“정치층을 좋아하시나 봐요.”
“말도 안 됩니다. 정치층을 좋아하는 그런 국민은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이미 예약이 잡혀 있었는지 유지웅은 안내를 받아서 회사 내부로 들어섰다. 일본의 저력이 느껴졌다. 다른 나라가 결정체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온갖 제재를 할 때, 일본은 과감하게 시장을 개방해 거대한 세계 영향력을 일궈낸 것이다.
돈만 내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에 대해서 나라가 안정을 보장한다. 비록 도덕성의 변질이 문제될 수 있을지언정, 그 이상으로 경제적 부흥을 가져올 원칙은 없으리라.
둘은 회사에서 깊숙한 곳에 위치한 별관에 안내되었다. 마츠오는 이곳 지하에 공정 설비가 있다고 했다. 비싼 설비이기 때문에 가장 중심에 위치해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별관에는 그들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있어 마치 인종 시장을 방불케 했다.
“저들은 누구죠?”
“공정 설비를 이용하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죠.”
“와, 아랍에서도 일본까지 오나요?”
“그렇습니다. 아랍에는 공정 설비가 거의 없거든요.”
돈도 많은 나라가 왜? 석유 시장이 붕괴했다지만 과거 석유 팔아 축적한 부가 굉장할 텐데?
“공정 설비는 가격도 비싸지만 제작 기술이 더 관건입니다. 어지간한 기술 선진국이 아니면 제작은 엄두도 못 내죠.”
유지웅은 흐응 하며 아랍 전통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흘끔거렸다. 결정체가 등장한 이후 석유 시장이 붕괴했다. 결정체 때문에 한순간 부를 잃은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아랍 지역도 마음이 쓰리겠다. 그치?”
“아닐 걸? 아랍지역이 단일 국가는 일본에 뒤쳐지지만 지역 전체를 합산하면 결정체 공급량이 장난 아니야. 몰랐어?”
“그래?”
“응. 아랍지역은 자국 에너지 시장에는 석유를 쓰고 레이드로 얻은 결정체는 전량 수출하고 있어. 그래서 중동에는 결정체 엔진 차량 같은 게 없대.”
결정체가 석유를 대신하지만 석유 수요량이 제로가 된 것은 아니다. 석유 화합물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석유 시장의 붕괴에 대응하기 위해 아랍은 단결해서 움직였다. 자국 내에서는 결정체를 연료로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아랍은 자국 에너지 소비는 석유로 해결하고 결정체는 전량 수출함으로써, 오히려 예전의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또 과거 석유로 벌어들인 많은 돈을 써서 해외 능력자들을 스카웃해 결정체 산업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아랍 사람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자다.
우연히 아랍 인물들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중 가장 신분이 높아 보이는 그는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었다. 유지웅도 얼떨결에 웃어 주었다.
잠시 후 그들 중 한 남자가 다가왔다. 유지웅은 괜히 찔끔했다. 아랍 고유의 터번이 주는 박력이 상당했다.
남자는 방긋 웃으며 뭐라뭐라 말을 했다. 일본어였다. 둘이 눈을 멀뚱멀뚱 뜨자 다시 중국어로 뭐라뭐라 말을 했다. 그래도 둘이 반응하지 않자 이번에는 반가운 언어가 튀어나왔다.
“한국인이십니까?”
“아, 네.”
유지웅은 중국계 미국인 신분으로 들어왔지만 그의 입국 신분은 마츠오도 알지 못한다. 브로커도 일단 일본에 입국한 뒤에는 한국인 행세를 해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가 프라임 공격대 대장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에 오신 것을 보니 장비 공정을 하시려나 보군요.”
“맞아요.”
숨길 것도 없는지라 선선히 끄덕였다. 어차피 일본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이 가짜다. 신분도, 얼굴도.
“저 분의 존함은 졔이크 안슐 빈 지예드 알 나얀입니다. 제가 모시고 있는 고귀한 분입니다. 저 분은 유능한 초능력자들을 아끼는 분이십니다.”
그러면서 남자는 명함을 내밀었다. 영어로 쓰여 있는 황금빛 명함이었다. 유지웅은 얼떨떨해서 받아들였다.
“왜 제게 이런 걸……?”
“부담은 갖지 마십시오. 안슐 님은 일반인이지만, 초능력자에게 대단히 관심이 많으십니다. 아랍에서 가장 큰 공격대의 소유주이기도 하시죠.”
“일반인? 그런 분이 왜 여기에 오셨죠?”
풍기는 기도도 예사롭지 않고, 보아하니 아랍의 거부인 모양인데, 그런 사람이 장비를 공정하러 일본까지 직접 오나? 그것도 초능력자도 아닌 일반인인데?
“아, 안슐 님은 장비를 공정하러 오신 게 아닙니다. 쇼핑을 위해서 오신 거죠.”
“쇼핑요?”
“이 회사를 살까 하셔서요.”
유지웅은 입을 떡 벌렸다. 터번이 주는 것 이상으로 아랍의 패기가 느껴졌다.
또 다른 사람이 장비를 공정하기 위해 들어왔고, 안슐은 그 사람도 호기심 있게 쳐다봤다. 유지웅에게 명함을 주었던 남자는 그에게도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었다. 아무래도 초능력자라면 일단 관심을 가지는 스타일인가 보다.
“깜짝 놀랐어. 내 신분이 드러난 줄 알았어.”
“왜 겁을 먹고 그래? 우리가 누군지 무슨 재주로 알아보겠어?”
둘은 완벽한 위조 신분으로 들어왔고, 얼굴도 바꿨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그들의 정체가 발각날 일이 없었다. 그래도 아랍인이 접근했을 때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떤 형태로 가공하실 건가요?”
“증폭형으로 하겠어요.”
“손해실 텐데…… 알겠습니다.”
드디어 유지웅의 차례가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직원이 그를 컨베이어 벨트 앞으로 안내했다. 브로커가 이곳에 결정체를 올려놓으라고 했다. 완전 자동화 시스템을 거쳐 장비로 공정되어 다시 원위치로 반환되는 원리라고 했다.
“일반형은 6시간 이상 걸리지만 증폭형은 공정이 비교적 간단해서 20분이면 충분합니다.”
유지웅은 끄덕이고는 작은 함을 꺼냈다. 장갑을 낀 손으로 그는 조심스럽게 결정체를 꺼냈다. 푸른빛으로 빛나는 구슬을 본 순간 직원의 눈동자에 경악이 어렸다. 브로커도 놀랐는지 안색이 확 변했다.
직원이 급히 뭐라 뭐라 물었다. 일본어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브로커가 통역해주었다.
“블루 결정체를 어디서 구했는지 묻는군요.”
“대금 지불은 확실하게 한다고 해주세요.”
“출처를 알려주면 대금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유지웅은 안색을 찌푸렸다. 그는 결정체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 내려놓았다. 직원은 숨이 넘어갈 듯이 창백했다. 아까운 것이다. 결정체를, 특히 블루 결정체를 자원으로 활용한다면 막대한 이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장비로 가공해버리면 그 창출 가치는 줄어들게 된다.
직원은 머뭇거리면서 차마 실행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유지웅이 눈살을 찌푸렸다. 브로커가 일본어로 빠르게 재촉했다. 강압에 못 이긴 직원은 결국 실행 버튼을 누르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브로커가 그의 팔을 잡았다. 정효주도 자연스럽게 출구를 막아섰다. 브로커가 으르렁거리듯 경고했다.
“공정이 끝날 때까지는 여기서 못 나갑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신이야말로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이 정도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다. 블루 결정체는 시중에 돌아다니지 않는다. 공정 과정에서 블루 결정체임을 알아보는 사람은 반드시 나올 것이다. 딱 20분만 직원을 이곳에 붙들어두면 된다. 공정 설비 자체는 완전 무인 자동화 시스템이니까.
직원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유지웅은 침이 마르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됐다!”
모든 공정이 끝나고 결정체가 다시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되돌아왔다. 결정체는 착용하기 편하게 팔찌 형태로 가공돼 있었다. 유지웅은 그것을 천으로 감싸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서둘러 벗어났다.
“설마 블루 결정체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일부러 마지막까지 말을 안 한 거예요. 좀 더 인사하고 싶지만 여기서 바로 헤어져야겠군요.”
“대금은 저에게 이미 맡기셨으니 제가 대납하겠습니다. 안전하게 돌아가시길 빕니다.”
마츠오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너무 큰 보물이라는 점을 넌지시 지적하는 것이다.
유지웅은 서둘러 별관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출구가 봉쇄돼 있었다. 출구는 완전 무장한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별관 안에 있던 다른 능력자들도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젠장! 정부가 안정을 보장한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어! 이게 무슨 짓이야!”
“아주 몰랐던 건 아니잖아? 계획한 대로 하면 돼. 그냥 뚫고 지나가면 되지.”
블루 결정체의 가치는 엄청나다. 만약 공정하려는 결정체가 블루 결정체임이 알려지면, 해당 회사에서 못된 짓을 할 수도 있으리라. 그 정도는 예상했다. 물론 이렇게 공정이 끝나자마자 막무가내로 나오는 것은 살짝 범위 밖이었지만,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정효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맞부딪쳤다. 그녀는 탱커고 그는 보호막 능력자다. 둘을 막으려면 기갑 부대쯤은 끌고 와야 할 것이다.
뚫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안슐이라고 했던 아랍 부호가 수행원들을 거느리고 나섰다. 그의 안색도 경직돼 있었다. 아까의 통역자가 말문을 꺼냈다.
“갑자기 왜 이런 겁니까? 무슨 일인지 혹시 아십니까?”
“안슐 씨라고 했죠? 이 회사, 사지 않는 게 좋아요.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이런 더러운 짓거리를 하는 회사니까요.”
“예?”
“돈만 내면 뭐든지 해준다고 해서 믿고 장비를 공정하러 왔더니 지금 저를 못 나가게 하려고 저러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뚫고 나갈 겁니다. 미리 알아두시라고요. 이런 비도덕적인 회사라는 것을요.”
무장 경호원들도 봉쇄를 하고 있을 뿐 세부 사항까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뚫고 나갈 준비를 갖춘 정효주가 앞장을 섰다. 경호원들이 뭐라고 말을 하면서 둘을 막아섰다.
정효주는 픽 웃고는 경호원을 옆으로 탁 쳤다. 가벼운 접촉이었는데 바위에 부딪친 것처럼 경호원이 나가떨어졌다. 정효주가 주먹을 앞으로 내지르자 강화 유리문이 와장창 깨져나갔다.
직원의 보고가 올라간 지 아직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바깥까지 완벽한 봉쇄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둘은 재빨리 BAK 컴퍼니를 벗어나 브로커가 미리 대기해준 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곳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