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18)
00518 오, 나의 주인님 =========================================================================
괴수는 단순하다. 비교적 다양한 공격 패턴을 구사하는 개체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전술 개념이 없다. 자신을 가장 화나게 하는 상대를 공격할 뿐이다. 그래서 탱커가 다른 공격대원을 위해 괴수의 공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칠드그린과 최윤의 말대로, 만약 지적 능력이 뛰어난 개체가 적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쓰러지지 않는 탱커를 붙잡고 있으니, 탱커를 버티게 해주는 힐러를 먼저 처치해버리면 그만이다. 아니면 딜러를 먼저 죽여도 된다.
“회장님을 뵙기 전 이미 장태준 전술지원팀장에게는 말을 했습니다. 아마 대책을 준비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는 위험이 있다는 거네요.”
“어디까지나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런 말씀을 드리기 망설였습니다.”
“아니에요. 잘 말해주셨어요. 부국장님 말씀은 분명히 있음직한 이야기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일단 피하고 볼 문제였다. 하지만 아버지라 그런지 묘한 책임감이 생긴다.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닌, 인류 전체의 문제였다. 훗날 아이들에게 차갑게 식은 지구를 물려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직접 확인해보면 되겠죠.”
* * *
최윤과 칠드그린, 두 남자는 호텔을 나섰다. 하늘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결전의 날이 밝는다.
“토미 에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FBI와 NSA가 온힘을 다해 추적 중입니다만, 아직 행방이 묘연합니다.”
칠드그린은 ‘곧 잡을 수 있다.’는 식의 입에 발린 소리는 생략하고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그 자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직한 물음에 최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캘리포니아 저장고 습격 사건부터 시작해서, 이 모든 일의 배후에 토미 에슨이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이미 검토했다. ‘지적 능력을 가진 괴수’ 대신에 ‘인간’을 끼워 넣어도, 사건의 동기성은 완벽하게 충족된다.
그러나.
“그 자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프레온 괴수, 메탈 괴수 같은 것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휘버 박사의 유산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휘버 박사의 마지막에 직접 손을 쓴 사람이 바로 그 자니까요.”
“아니오,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왜냐면.”
최윤은 잠시 옛 친구를 떠올렸다. 나이도, 성별도, 이름도, 아무 것도 모른 채 온라인으로 토론을 즐겼던 유일한 친구.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리움으로 변해 가슴에 남은 지기.
“휘버 박사가 그런 걸 만들었을 리 없으니까요.”
“…….”
“프레온 괴수, 메탈 괴수는 저열한 복수심이 만들어낸 괴물일 뿐입니다. 인류를 위해 일했던 휘버 박사가 그 비슷한 것이라도 꿈꿨을 리가 없어요. 전 그렇게 믿습니다.”
칠드그린은 어렴풋한 위화감을 느꼈다.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최윤의 지금 말은 마치 자조하는 듯했다. 어떻게 보면 한탄처럼도 들렸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미안합니다. 확인해줄 수 없군요.”
“…….”
“저 또한 확인해야 합니다.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아니면?”
최윤은 말을 아꼈다. 대기하고 있던 차량 문을 비서가 와서 열어주었다. 최윤은 뒷좌석에 오르며, 희미한 미소로 칠드그린을 응시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문이 닫히고, 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미 정부가 제공한 검은색 마이바흐다. 앞좌석과 뒷좌석이 완전히 격리되고 방음 처리가 되어 있어 보안을 요구하는 VIP의 이용에 알맞다.
“말씀하셨나요?”
옆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레지나가 문득 물었다. 최윤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 못했습니다.”
최윤은 프레온 괴수의 구조를 규명하며 제니스와 한국, 그리고 미국의 두터운 신뢰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공상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은 끝끝내 발설하지 않았다. 그것을 아는 건 레지나뿐이었다.
“내일 레이드에 옵저버로 참가할 생각입니다.”
“위험해요. 그러지 마세요.”
“확인해야만 합니다. 단순한 우연인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지. 이대로는 견딜 수 없습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거예요. 최 소장님도 그러셨잖아요. 이론일 뿐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현 기술로 불가능하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확인해야 합니다.”
최윤은 알고 싶었다. 왜 자신이 상상했던, 그리고 RPX-1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세 가지 보복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왜 자신이 구상한 프레온 괴수가 현실에 나타났는지.
“소장님은 규소기반 생명체를 구상하신 적은 없으시잖아요. 그냥 단순히 우연의 일치예요. 결정 에너지가 일반 기체와 결합하면 얼마든지 프레온 괴수 같은 존재가 나타날 수 있어요.”
말리고 있지만, 실은 레지나도 알고 있다. 세 번의 일치는 우연성이 희박하게 결여된다는 것을. 그것은 차라리 필연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을.
“괜찮을 겁니다. 직접 전투에 참가하는 것도 아니고, 장태준 팀장의 전용 지휘차량에 동승하는 거니까요.”
“그래도요.”
“괜찮습니다. 걱정해 주신 건 고맙군요.”
레지나는 설득을 거듭했으나 그의 뜻을 꺾지 못했다.
어느덧 차량은 미 항공연구소에 멈춰 섰다. 내일 전투를 위해 최윤은 마지막까지 글로벌이글에 장착한 CESP 장비를 점검할 예정이었다.
최윤을 내려놓고, 차량은 다시 방향을 돌렸다. 레지나는 뒷좌석 유리로, 작아지는 최윤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주시했다. 짙은 고뇌가 가득하던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전화기를 꺼내 누군가에게 통화를 했다.
“나야.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뭔데?」
“내일 레이드에서 최윤 박사를 보호해 줘.”
수화기 너머로 나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이윽고 그녀가 차분하게 반문했다.
「내 힘은 여전히 불안정해. 자칫하다가는 내 정체를 들킬 가능성이 있어.」
“그래도 부탁할게. 최윤 박사의 연구는 너를 위해서도 꼭 필요해. 그 사람이 죽으면 약속을 지키는 것도 늦어져.”
나미는 한참을 생각하는지 다시 말이 없었다. 레지나는 더 이상 재촉하지 않고 끈질기게 기다렸다.
「알았어. 노력해볼게.」
그녀의 얼굴이 환해졌다.
* * *
높은 바위 언덕에 선 테레사는 팔짱을 끼고 지그시 지평선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앞에는 커다란 바위 계곡, 그리고 모래만이 가득한 황폐한 대지가 펼쳐져 있었다.
편안한 전투를 위해 특수 소재로 만든 단색 전투복이 몸에 착 달라붙어, 가녀리면서도 관능적인 몸매를 드러낸다. 어깨에 닿을 듯 말 듯한 짧은 은발과 하얀 피부는 소녀의 청아함을 뽐낸다.
이제 열일곱. 한창 싱그러울 나이의 소녀는, 언제까지나 지금의 미모를 유지할 것이다. 그것이 탱커의 축복이며, 모든 남자들이 탱커 아내를 꿈꾸는 이유다.
그녀는 공격대 내에서 인기가 많다. 하지만 남자 대원들은 섣불리 그녀에게 접근을 하지 못한다. 그녀가 스스로 남자라 주장하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바라보는 것조차 죄송스러울 만큼 높은 절벽에 핀 꽃이었다.
테레사는 짊어지고 온 방어장비를 천천히 착용하기 시작했다. 뭇남자들이 군침을 흘리며 훔쳐보는 근사한 몸매는 아쉽게도 단단한 금속 장갑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투구까지 착용한 그녀는 다시 지평선 쪽을 응시했다.
“정찰하는 거예요?”
어느새 왔는지, 정효주가 옆에 와서 섰다. 테레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예, 잠시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느낌이 좋지 않네요. 불길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탱커의 시력은 범인을 아득히 초월한다. 망원경을 쓰지 않아도 멀리 있는 물체 식별이 가능하다.
“이상하게 이 지역이 특히 더 어둡습니다. 그리고 바람도 차갑습니다.”
“오늘 쿤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요.”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메인 탱커, 그리고 공대장 와이프라는 이미지가 강렬해서 잘 두드러지지 않는 사실이 있는데, 정효주는 ‘완편 제니스’ 공격대의 탱커장이기도 하다. 탱커장은 탱커들의 역할 확인, 현장 전술 지휘 및 조절 등을 담당하는 막중한 자리다.
“본진을 지켜주세요. 특히 힐러진을 눈여겨 봐주세요.”
“알겠습니다. 방패가 되면 되는군요. 아주 쉬운 일입니다.”
단단함으로 치자면 세계에서 으뜸이다. 테레사는 자신감이 흘러 넘쳤다.
한편 대기 중인 딜러들도 고글에 비친 작전 지역 영상을 확인하며 저마다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기 봐. 적외선 촬영 모드로 본 건데, 이상하게 저 지역이 특히 기온이 낮아. 진짜 뭔가 있는 거 아닐까?”
“설마 지금 이 순간에도 프레온 괴수가 만들어져서 하늘로 올라가는 중은 아닐까?”
“에이, 설마.”
“모르는 거야. 프레온 괴수는 가까이가 아니면 보이지도 않고,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잖아.”
“어그로 개념이 없는 괴수일 수도 있다는데, 정말 괜찮을지 모르겠어.”
“아직 저기에 괴수가 있는지 아니면 그냥 부화소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르잖아. 이제부터 확인을 해야 하고.”
장태준은 유지웅의 지시에 따라 미지의 적이 인간과 비슷한 사고 능력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다고 사전에 통보했다. 그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위험한 레이드가 될 수도 있다는 설명도 함께. 대원들도 단번에 이해했다. 생각을 할 줄 아는 괴수라면 탱커를 치지 않고 힐러나 딜러를 먼저 칠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한 명도 레이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죽을 때까지 펑펑 쓰고도 남을 돈을 벌었지만, 세계 최강의 공격대원이라는 명예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힘든 블랙 몹도 여러 번 잡았다고!”
그들은 블랙 몹을 사냥한 경험, 전원이 S급 방어장비로 무장한 점, 그리고 유지웅의 앱서버 능력을 믿었다. 사소한 불안함 때문에 이 중요한 레이드를 포기할 순 없었다. 제니스는 어느 때보다 사기가 드높았다.
「무인 정찰기를 먼저 투입합니다.」
공격대 진영을 갖춘 뒤 장태준은 소형 무인 정찰기를 먼저 투입했다. 정찰기는 차가운 바위 계곡 사이를 빠르게 날아 들어갔다.
최윤도 전술 지휘 차량에서 장태준 이하 지원팀과 함께 정찰기에서 보내온 영상을 확인했다.
“저게 뭐죠?”
문득 화면에 뭔가 잡혔다. 파랗게 빛나는 거대한 보석이었다. 높이만 무려 3미터는 될 듯이 보였다.
절대 자연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장태준은 직접 정찰기를 조종해 더욱 가깝게 접근시켰다. 정찰기가 바로 앞까지 날아다니고 있음에도, 파란 보석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정찰기는 탐색 지역을 무사히 정찰하고 귀환했다.
“일단 특별한 위험은 없는 것 같습니다. 유독가스, 방사능 반응 따위도 없습니다. 공격대를 투입해 봅시다.”
판단을 마친 장태준은 지시를 내렸다.
「작전 지역으로 전진합니다.」
선발대를 필두로 한 공격대는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목표 지역은 직경 4km에 달하는 꽤 넓은 구간이었다. 대부분이 바위 계곡으로 이뤄져 있어 지상에서는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전체 지역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상공 촬영 데이터가 필요했다.
「여기는 후발대. 목표 지역에 완전 진입 성공…… 치이익! 치이이익!」
“무, 무슨 일입니까?”
“팀장님! 모든 링크가 끊겼습니다! 공격대 반응 소실! 목표 지역에 강력한 자기장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으아악! 저걸 보십시오!”
외마디 비명에 놀란 장태준은 즉각 상공 촬영 장면을 확인하고는 입이 벌어질 듯이 놀랐다. 시리도록 푸르게 빛나는, 수없이 많은 방전 불꽃이 둥근 돔처럼 황폐한 대지를 완전히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가시광선마저 완벽히 차단해 외부에서는 내부를 관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설마 저게 통신이 끊어진 이유인가?
“젠장!”
장태준은 자신의 판단 미스를 크게 후회하며, 기기를 세게 쾅 내리쳤다.
“지원 요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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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기를 곱게 돌려보낸 건 트랩 카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