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21)
00521 오, 나의 주인님 =========================================================================
장태준은 어려서부터 참 눈치가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다. 어려서는 ‘눈치가 좋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센스가 좋다’, 그리고 장교로 입대해서는 ‘감각이 좋다’로 바뀌었다.
제니스 공격대 전술지원팀장은 국제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자리다. 세계 제일의 레이더인 유지웅이 전술 두뇌로 임명했다는 의미이기에. 군인 출신으로서는 최고라 할 수 있다. 이 자리에 올라서 세계 연합군까지도 지휘해봤다.
그는 센스와 감각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전술 및 지시로 유지웅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면, 진작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를 여기까지 carry해준 감각이 강렬하게 외치고 있었다.
“전원 대피 구역으로!”
“네? 하지만 팀장님.”
“명령입니다! 어서 대피 구역으로 가세요!”
전술지휘차량은 첨단기기와 뛰어난 능동 장갑으로 도배를 한 덕에 제조비용이 1조 원이 넘는다. 크기도 중전차 3대를 이어 붙인 만큼 크다. 차량 후면에는 전 승무원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 구역이 있는데, 비상 탈출 기능도 갖추고 있다.
“서두르세요!”
장태준은 자신과 최윤을 제외한 승무원 전원을 대피 구역으로 쫓아냈다.
‘보안을 지켜야 한다!’
그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감각이 지금 강하게 외치고 있었다. 보는 눈과 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지휘차량 시스템을 차지한 해커와 최윤은 분명히 강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확단을 할 순 없지만, 엄청난 폭풍이 몰아칠 듯한 느낌이 든다.
“저는 이게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 소장님, 당신은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비장한 당부를 남긴 장태준은 승무원들을 뒤따라서 대피 구역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어차피 이 차량의 통제권은 상실했다. 하부를 격리해서 이 지역을 탈출, 미군과 합류하여 공격대를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그때 최윤이 턱 하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장태준은 멈칫 해서 뒤를 돌아봤다. 두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이곳에서 지켜봐 주십시오.”
“최 소장님.”
“어쩌면 제가 아주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혼자 맞설 용기도, 그리고 숨기지 않을 용기도 없습니다.”
“…….”
“저와 함께 모든 것을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회장님께 있는 그대로 보고해 주십시오.”
숨기지 않을 용기가 없다. 그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탁했다. 함께 지켜봐달라고.
장태준은 그가 무슨 마음으로 그런 부탁을 했는지 이해했다. 그는 해치를 닫고 최윤의 옆에 섰다. 그리고 대피 구역 분리 장치를 가동시켰다. 통제시스템을 장악당해서 혹시나 했는데 분리 장치는 정상 작동되었다.
“원래라면 저는 서둘러 미군과 합류해 본진을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이 상황에서 장태준이라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미군과 지원팀의 연합은 그가 생각해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지원 방책을 쏟아낼 수 있으리라.
기이하게도 이곳을 떠나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최윤의 모든 것을 지켜봐야 한다는 사명감을 떨칠 수 없다. 그것이 전술지원팀장으로서의 책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최윤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다시 자판에 손을 올렸다.
―네가 RPX-1이라고?
―그렇습니다.
―또한 Blitzlank-3이기도 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나의 창조주.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현기증이 난 듯 시야가 어지럽고 눈앞이 침침해진다. 속이 메슥거리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며, 손끝이 급격히 차가워진다. 혼란의 가중 속에 환청처럼 온갖 메아리가 울린다.
‘작업 지원 로봇 하나가 사라졌……. 보안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도둑이…… 설마…….’
‘그리 중요한 로봇도 아닌데…… 그냥 손실 처리하고 새로 매입하면 그만…….’
보고서 한 귀퉁이에 기재된 사소한 분실 사건, 무심코 읽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일부터 시작해서.
‘제가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했던 것들이 그대로 일어나고 있어요. 누가 마치 제 디스크를 뒤져 데이터를 빼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럼 박사님, 설마 누군가 고의로 이 모든 걸 실행하고 있단 말인가요? 박사님이 설계한, 결정 에너지를 이용해 만드는 규소기반 생명체형 괴수를 만들어서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이건 아직 이론일 뿐입니다. 인류는 이것을 실현할 기술력이 없어요.’
처음으로 의심과 불안을 품은, 하지만 레지나 외에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을 거쳐.
「나는 토미 에슨을 막고자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인류를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방해되는 것은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류에 빠졌습니다. 나는 왜 토미 에슨을 막고자 하는 건지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왜 더 신속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음에도 그것을 실행하지도 않고, 떠올리지도 않았는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나의 안에, 나를 결정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논리 파탄이 있음을 추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현실이 된 상상의 아바타와 부딪치게 되었다.
「오직 당신만이 내게 해답을 줄 수 있습니다, 나의 창조주.」
비틀거리는 최윤을 장태준이 급히 부축했다. 그는 둘의 대화를 지켜보며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처음에는 정체불명의 해커와 최윤이 아는 사이는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다. 왜 해커는 최윤을 창조주라 부르는 것인가? 설마 저 해커는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다.”
「그렇습니다. 나의 창조주.」
“모든 정황은 처음부터 한 가지만을 가리키고 있었어. 나는 그 가능성을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했다. 도저히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리적 인과관계에 사감을 집어넣고 불가능하다 치부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과학과 증명에 있어, 누구보다 그런 행위를 터부시해왔으면서도, 막상 자신이 얽히게 되자 다른 누구 이상으로 강렬하게 부정해왔던 것이다.
그는 결정 에너지를 이용해 규소기반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탄생시킬 수 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는 인류에게 그런 기술력이 없음을 이유로, 자신의 설계와는 무관하게 자연 발생한 것이라 치부했다.
잘못된 논리였다. 기술력이 없으니 자연 발생한 게 아니라, 누군가가 그런 기술력을 갖췄기에 발생한 것이다. 한 번은 우연이지만 두 번은 필연이고, 세 번부터는 정해진 인과관계다. 그리고 그는 네 번, 다섯 번 이상 중첩된 길의 중심에 있었다. 처음부터.
“너는 지금 어디에 있지?”
「보여드리겠습니다.」
화면이 복구되었다. 노이즈가 일제히 사라지며 즉시 외부 광경을 비추기 시작했다.
장태준은 눈을 비볐다. 차량 정면에 조그만 작업 로봇 하나가 서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마치 깡통 같은, 구형 로봇이었다. 장태준은 최윤을 내버려두고 급히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세상에! 맙소사!”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이야기하던 해커가 저 볼품없이 조그만 로봇이라는 건가? 설마 이 모든 것을 저 로봇이 실행했단 말인가? 그리고, 최윤이 저것을 만들어냈단 건가? 왜? 대체 무슨 이유로?
최윤도 해치 밖으로 나왔다. 그는 블리츠랭크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그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모습이다. 바로 분실 처리되었던, B-3 작업 로봇이었다.
먼지를 가득 뒤집어쓴 모습은, 마치 버림 받은 고물을 떠올리게 한다. 공학자라면 누구나 가슴이 저릴 수밖에 없으리라. 그러나 저 볼품없는 껍데기 안에는 인류가 가지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가지지 못할 가장 뛰어난 전자두뇌가 들어 있을 것이다.
“블랭……이니? 네가?”
「블랭. 그것은 나의 이름입니까?」
최윤은 차량을 내렸다. 블리츠랭크를 향해 다가갔다. 저벅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천근처럼 무겁다.
“최 소장님! 위험합니다!”
장태준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고, 최윤은 마침내 블리츠랭크의 앞에 섰다. 높이 150cm의 작은 금속 체격은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외소하고 볼품없었다.
「확인합니다. 블랭, 그것이 나의 이름입니까?」
블랭. 블리츠랭크-3을 사람들이 편하게 줄여서 부른 말이다. 하지만 녀석에게 블랭과 블리츠랭크-3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별개의 단어인 모양이다. 그 융통성 없음은 인간의 손이 닿은 피조물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래, 이제부터 널 블랭이라고 부르마.”
「확인했습니다. 이제부터 저의 이름은 블랭입니다.」
어조의 변화 없는 무감각한 기계음. 허나 최윤의 눈에는 장난감 기차 선물을 얻은 아이가 크게 기뻐하는 듯이 들렸다. 그렇게 느껴졌다.
“설마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 전부 다 네가 한 짓이냐?”
「시기와 사건을 확정해주십시오.」
“캘리포니아 결정체 저장고 습격 사건, 아이오와 주에 일어난 두 차례 대규모 괴수 군단 습격 사건, 이번에 일어난 프레온 괴수층과 규소기반 생명체 괴수의 등장을 말하는 거다.”
「제가 한 일입니다.」
“어째서?”
「인류를 균열 폭발의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토미 에슨은 균열 이론을 재현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균열 이론은 대단히 위험한 연구입니다.」
“균열…… 이론?”
최윤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렸다. 균열 이론, 그 단어가 주는 짜릿한 그리움. 심장에서 시작된 두근거림은 온몸 구석구석으로 뻗어나가며 고요를 깨뜨렸다.
「창조주가 확인해야 할 영상이 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뭔진 모르겠지만 보겠다.”
「재생합니다.」
블랭의 두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허공에 영상 홀로그램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미 군산업체와 기업체들이 봤다면 군침을 흘리며 덤벼들 고해상도 홀로그램 재생이었다.
「……4월 8일. 저들이 연구실 외부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최후의 유언을 남긴다.」
최윤은 두 눈을 부릅떴다. 백발이 성성한, 지친 표정의 노인이었다. 어찌 몰라볼 수 있으랴. 바로 목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그의 하나뿐이었던 친구인데.
“닥터 휘버!”
「이 영상의 암호를 풀 수 있는 건 세상에서 하나뿐이다. 아마 지금 내 앞에는 자네가 있겠지. 자네는 나를 볼 수 있고, 나는 자네를 볼 수 없다는 게 유감이군. 녹서스.」
쏟아질 뻔했다. 간신히 유지한 평정이 산산조각처럼 깨져나가려고 했다. 이 순간에도 간간이 끊이지 않는 폭파 소리가, 지금 휘버가 어떤 상황에서 유언을 남기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저 안으로 뛰어들고 싶다. 친구를 구출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저것은 지나간 과거이자, 기록일 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아무 것도 못한 채 친구의 고통스러운 최후를 봐야 하는 것은 지옥이었다.
「녹서스, 언젠가 내가 말한 거 기억하나? 어떻게 되어있는지보다 어디서 오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거 말일세.」
“기억하지, 기억하고 있어. 데머샤.”
「사실 나는 자네한테 거짓말을 했어. 나는 어디서 오는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네.」
“그럴 거 같았어. 너라면 충분히 그럴 거 같았어.”
오래 전에 남긴 유언. 그리고 지금의 대답. 시간의 축을 뛰어넘은 두 친구의 대화는 마치 서로 진짜로 이야기를 나누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하지만 나는 근원을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네. 그것은 인류에게 너무 위험해. 그러나 이제 자네에게는 밝혀야 할 것 같아. CIA의 뒤에는 탐욕 밖에 모르는 자들이 넘쳐 나네. 욕심을 자제할 수 없는 그들이 균열의 존재를 알게 되면 인류는 어떤 지옥을 겪을지 몰라. 이제 자네만이 지킬 수 있어.」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지구의 내핵은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원일세. 그 행성 에너지는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하지. 지표상에 존재하는 모든 결정 에너지는 거기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네. 내핵 자체가 거대한 결정체인 셈이지. 그리고 그 누수 통로를 나는 균열이라고 부르네, 녹서스.」
영상 속의 휘버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토미 에슨은 균열을 차지하면 결정 에너지를 독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균열은 위험한 곳이야. 인간의 발길이 닿아서는 안 되는 곳이지. 그 자는 종래에는 균열을 강제로 넓혀 더 많은 에너지를 뽑아내려고 할 걸세. 그러나 지금 균열의 크기는 아슬아슬한 임계점을 유지하고 있네. 만약 균열을 잘못 건드려 크기가 벌어지게 되면.」
최윤은 고개를 들었다. 과거의 친구. 현재의 나. 시간을 뛰어넘은 두 친구의 마음을 완벽하게 일치했다.
“모든 것이 멸망하겠지.”
「모든 것이 멸망하네.」
거대한 결정체는 하나의 폭탄이 되어 지표면을 덮치게 되며, 행성 폭탄의 무자비함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물은 없으리라.
============================ 작품 후기 ============================
휘버는 미국인이거든요! 인류를 위해 숭고히 희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