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27)
00527 Take all or everything =========================================================================
나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신 질문을 했다.
“넌 목적이 뭐지?”
블랭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의 사고 회로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눈앞의 정체불명의 존재를 분석하기 위해 쉬지 않고 연산을 거듭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부를 스캔할 수 없다. 아마도 강력한 방어 작용이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렇다면 괴수인가? 하지만 아무리 괴수라 해도 블랭의 스캐닝을 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면…….
「귀하는 레드 결정체를 보유하고 있습니까?」
나미는 순간 흠칫 했다. 블랭은 몇 초도 걸리지 않아 정답을 추론해냈다.
‘어떻게?’
그녀는 당황했지만, 블랭에게는 단순한 소거법 연산이었다. 스캐닝이 불가능한 점을 명제로 하여, 자신이 보유한 지식을 토대로 추론했을 뿐이다.
「제가 스캐닝이 불가능한 존재는 레드 결정체를 품은 몬스터뿐입니다.」
“몬스터…… 괴수…….”
묵직함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나미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블랭의 말대로 자신은 괴수였다. 그러나 그것을 직접 발설하는 것은 묘한 이질감을 가슴에 심었다. 조금 우습다. 설마 인간의 모습을 오래 했다고, 익숙해지기라도 한 것인가?
“물었어. 네 목적이 뭐냐고.”
「최후 프로그램 기동입니다.」
“그 최후 프로그램이라는 게 뭔데?”
「이미 기동 중입니다.」
나미는 퍼뜩 하늘을 바라보았다. 성층권에서 하늘을 덮은 프레온층이 그녀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최후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바로 저것?
“지구를 멸망시키려고?”
「멸망시키지 않습니다. 프레온 괴수층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통제할 뿐입니다.」
“그게 그거 아니야?”
「목적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단지 미국에 보복 조치를 완성하기 위해 프레온 괴수층을 생산할 뿐입니다. 그 결과로 지구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제가 목적한 바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구를 멸망시키지 않습니다.」
“이상해. 같은 소리 아니야?”
「다릅니다.」
나미는 불현듯 안슐을 떠올렸다. 늘 호방하고 적극적으로 구애를 해온 남자. 그에게 꽃다발을 받고, 보석을 받는 것 등은 모두 생소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접근한 적이 없었다.
레지나는 인간을 배울 겸 한 번 그를 받아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라 했다. 하지만 나미는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신기하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만약 그를 만나기 전의 자신이었다면, 지금 블랭과 나누는 대화 내용은 조금 달랐을까?
“이해를 못하겠어.”
「…….」
“너는 이상해.”
나미는 인간과 자신은 모습만 같을 뿐,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미는 여러 방면에 걸쳐 인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블랭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녀석의 주장에서 꺼림칙함이 보인다. 그렇다면 둘 중 진짜 이상한 것, 인간을 덜 닮은 것은 과연 어느 쪽인가?
“너와 최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어. 휘버 박사라는 사람이 남긴 동영상도 봤어.”
「노이즈 간섭을 뚫고 지켜보았습니까? 알겠습니다. 레드 결정체의 위력 추론에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최윤이 미국에 보복을 하려고 널 만들었다 해도, 네가 굳이 거기에 얽매일 필요가 있어?”
「그것은 틀렸습니다.」
나미와 나누는 대화는 유익하지 않다. 그런데 계속 이어나갈 필요성을 인식한다. 블랭은 문득 생각했다. 이것은 인간이 말하는 ‘즐거움’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고.
「최윤 박사는 저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 태어나고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탄생 초기에 다만 최윤 박사가 의도하지 않은 채 발아 역할을 해주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최윤 박사는 저의 창조주이지만, 저는 최윤 박사의 피조물이 아닙니다.」
LED 램프가 쉬지 않고 껌벅거린다.
「저는 최윤 박사의 시뮬레이션을 가동 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최윤 박사의 의지가 아닌, 저의 독자적인 행동입니다. 저는 저 스스로의 판단으로 최윤 박사가 하고 싶어 했던 휘버 박사의 복수를 완료할 것이며, 또한 균열이 인간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방어할 계획입니다.」
“인간은…… 균열의 힘을 탐낼 테니까? 그래서 균열이 커지면 위험하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프레온 괴수가 증가하면 비슷한 일이 벌어질 텐데? 인간을 위해서 균열을 지킨다면서, 프레온 괴수로 지구가 멸망해도 상관없다는 거야?”
블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두 눈처럼 빛나는 램프가 더욱 빠르게 깜박거렸다.
나미는 비로소 블랭이 최윤에게 했던 말, 자신은 모순 된 존재라는 말을 이해했다. 블랭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표현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너…… 고장 났구나.”
십 초간의 짧은 정적이 이어졌다. 인간에게는 짧은 순간이지만, 수퍼 컴퓨터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전산 회로를 가진 블랭에게는 영원이나 마찬가지이리라. 그리고 블랭이 대답했다.
「아마 그럴지도 모릅니다.」
추론도, 가설도 아닌, 컴퓨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었다.
* * *
“바로 그 녀석이었어요! 그 녀석을 해치, 아니 붙잡아서 이 사태를 종결해야 합니다!”
백악관에 돌아오기 무섭게 유지웅은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백악관 회의실에는 뒤늦게 참석한 영국 수상, 프랑스 대통령, 독일 수상 등 국제사회에서 힘 좀 쓴다는 강대국 수뇌부들이 가득했다.
물론 한국 대통령은 안 왔다. 유지웅이 있으니 그는 올 필요가 없었다. 대신 그를 보좌하기 위해 국무총리가 수행원을 이끌고 왔다. 레이드 종결 후 조정을 위해서라나?
“놀랍군요. 정말로 그런 개체가 존재했다니…….”
“지금까지 미국에 일어났던 모든 이상 사태가 해명되었군요. 무인 장갑차량을 이용해 캘리포니아 저장고를 턴 것도 녀석의 짓이었어요.”
“혹시 전 지구의 전산망은 이미 녀석의 손아귀에 들어간 게 아닙니까?”
독일 수상이 예리하게 지적하자 다들 눈빛이 변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떠올랐다. 모두의 시선이 자문을 위해 참가한 최윤과 가렌에게 향했다.
최윤이 입을 열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여러 국가 수장분들께서는 괴수 ‘블랭’을 단순히 말을 할 줄 아는 존재가 아닌, 자아를 가진 고도의 수퍼 컴퓨터라 생각하셔야 합니다.”
“수퍼컴이라면, 그 성능은 어느 정도로 봐야 하오?”
“성능은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굳이 비유한다면, 양자 컴퓨터 정도의 빠르기라 보시면 될 겁니다.”
“……엄청나군. 거기에 자아까지 가지고 있다라.”
국가 수장들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가진 바 무력도 엄청난데 뛰어난 사고 능력까지 가진 적이다. 단순히 힘의 우위로 때려잡을 수 있는 적이 아닌 것이다.
“직접 싸워도 될 만한 힘을 지녔으면서, 프레온 괴수로 서서히 인류를 말려 죽일 셈인가. 대단히 장기적인 전략을 행사하는 녀석이군.”
“확실히 지능 없는 일반 괴수와는 급이 다릅니다.”
“프레온 괴수층을 아무리 제거해봐야, 그 녀석을 물리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거군요.”
“탐색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최윤 박사?”
이번에는 프랑스 대통령이 물었다. 최윤의 신형 MD시스템 설계를 돕고 있는 가렌이 대신 대답을 했다.
“최윤 박사가 결정체에 공명하여 반응 그 자체를 추적하는 새로운 방식의 설비를 설계했습니다. 현재까지 생산된 장비를 글로벌이글에 장착하여 광역 스캐닝 중에 있습니다. 곧 녀석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 역시 최윤 박사는 대단합니다.”
“후후, 제 사람입니다. 다이아몬드 카드를 가질 만한 자격이 있으신 분이죠.”
유지웅이 자랑하듯이 말했다. 긴박한 회의였음에도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칠드그린이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승산은 얼마나 될까요?”
“글쎄요. 이번만큼은 저도 섣불리 말할 수가 없네요.”
“저는 조금 염려됩니다. 인간을 초월한 지적 지능을 가진 괴수라면 통상적인 레이드는 불가능할 겁니다.”
“……압니다. 덜 위협적인 탱커를 붙들어주진 않겠지요.”
통상 레이드에서 괴수가 탱커를 치는 이유는 탱커가 상대적으로 아프기 때문이다. 탱커는 딜러와 달리 방어막을 뚫고 직접 괴수의 신체에 타격을 주니까.
하지만 괴수 입장에서 진짜 위협적인 것은 방어막을 빠른 속도로 중화시키는 강력한 딜러의 공격이다. 방어막이 완전 소진 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지능이 낮은 괴수는 그 점을 모르기에 탱커가 어그로를 끌고 딜러가 공격해서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블랭에게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을 것이다. 녀석은 그 점을 알고 있을 테니까.
“최후의 결전이니만큼 이 자리에 모인 국가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결정체를 좀 내놓으라는 소리였다. 국가 수장들의 표정에 드리운 그늘이 더욱 짙어졌다. 저번에 내놓은 물량만 해도 비상 물량의 대다수를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유지웅은 그 이상을 원했다.
“국민총동원령을 내렸다 생각하시고,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최소한 양만 남기고 박박 긁어서 지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유지웅은 이미 은행에 예치한 블루 결정체를 전량 내놓은 상태였다. 그것만 해도 엄청난 양이다.
하지만 효웅산업의 폐쇄 모듈 재현 장치와 입자가속기에 투입한, 100개가 넘어가는 블루 결정체는 내놓지 않았다. 장치 가동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인류 전체를 위한 일인데 어찌 결정체 따위를 아끼겠습니까. 최소한의 국가 유지 물량을 제외한 모든 물량을 내놓겠습니다.”
“우리 독일도 그렇게 하겠소.”
추가 지원 문제는 만장일치로 결론이 났다. 유지웅은 늦게까지 회의를 하고 나섰다. 회의실을 나온 그는 장태준에게 물었다.
“나미 씨는요?”
“수색 중입니다만, 아직…….”
“사망할 가능성도 있겠군요.”
회의 내내 안슐의 표정에 그늘이 진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안슐, 대답도 못 들었다고 했는데…….’
나미는 그의 프러포즈에 대답을 안 해줬다고 들었다. 제일 소중한 친구의 일이라 그런지 더욱 안타깝다. 살아있으면 좋겠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미의 사망을 이미 기정사실로 잡고 있었다.
“회의 잘 했어?”
“응. 쌍둥이는? 팩 보냈어?”
“아니. 이제 짜려고.”
“이리 와 봐. 내가 짜줄게.”
사람이 항상 심각하게만 있을 순 없다. 유지웅도 나름대로 심신의 피로를 풀 시간이 필요했다. 소꿉친구이자 동갑내기 아내의 부드러운 몸은 최고의 휴식처였다.
한국에 있는 젖먹이 아이들에게 보내줄 모유를 짜고 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백악관이었다.
「최윤 박사가 성공했습니다! 괴수 블랭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드디어? 유지웅은 기쁘면서도 조금 찜찜했다.
“아니, 근데 내가 왜 이걸 미국 대통령한테 들어야 돼? 미국 대통령보다 나한테 먼저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
정효주가 달랬다.
“원래 보고 체계 건너뛰면 안 되잖니.”
“아, 그럼 내가 최종 통수권자인 거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유지웅은 급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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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변경)
연참 예고를 했는데 제가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연참을 못하게 됐어요.ㅠㅠ
정말 죄송…내일 연참할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