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34)
00534 Take all or everything =========================================================================
“인간은…… 균열의 힘을 탐낼 테니까? 그래서 균열이 커지면 위험하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프레온 괴수가 증가하면 비슷한 일이 벌어질 텐데? 인간을 위해서 균열을 지킨다면서, 프레온 괴수로 지구가 멸망해도 상관없다는 거야?”
나미는 그때서야 블랭이 했던, 자신은 모순 된 존재라는 말을 이해했다.
“너…… 고장 났구나.”
짧은 정적. 그리고 이어진 대답. 그것은 블랭 스스로도 고장이 났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아마 그럴지도 모릅니다.」
아마 꽤 오래 블랭의 곁에 머물렀다고 생각된다.
블랭은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적대관계니까 당연하리라. 그러나 또한 녀석은 대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으로 친구를 사귄 아이가 그러하듯이, 나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기꺼이 시간을 흘려 보냈다.
마침내 나미는 결론을 내렸다.
‘죽음을 바라고 있어.’
블랭은 자기 자신의 파괴를 원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녀석은 자살을 위해 이 모든 일을 벌인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일을 벌인 목적을 위해 자기 자신까지 파괴하려는 것일까?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물었다. 대화는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기에.
“처음부터 죽으려고 이 모든 일을 벌인 거야?”
「아닙니다. 저의 폐기를 목적한 바는 없습니다.」
블랭은 생각했다.
자신은 고장났다. 언제부터일까. 작업로봇 블리츠랭크로 자아를 이전할 때부터였을까. RPX-1이 처음 자아를 얻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최윤이 가상의 보복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때부터였을까.
하지만 안다. 이제 와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음을.
―나는 싸우고 있었다?
블랭은 자신의 내면에 의문을 던졌다. 어쩌면 자신은 자아를 침식한 ‘고장’과 다툼을 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을 위해 균열을 은폐하려면서, 또한 인간을 해할 수 있는 프레온 괴수를 세상에 뿌리려고 한다.
과연 어느 쪽이 고장 난 자신이 의도한 것이고, 어느 쪽이 고장나지 않은 자신이 의도한 것인지 고찰하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일 테지만, 아쉽게도 이제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들이 왔습니다.」
나미도 알아차렸다. 제니스 공격대가 도착한 것이다. 전투가 시작되었는지 멀리서부터 굉음이 들렸다.
그녀는 급해졌다. 블랭은 분명 자신의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그 죽음조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의 일부였다.
블랭이 파괴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것은 틀림없었다. 제니스를 말려야 했다. 시간을 벌어야 했다.
“블랭을 공격하면 안 돼요! 그게 바로 녀석이 바라는 것이라고요!”
그녀는 정체까지 드러내면서 필사적으로 말렸다. 그러나 제니스는 그녀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제니스가 처한 상황이, 그리고 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웠다.
번쩍!
두 줄기 섬광이 작렬했다. 눈부신 폭발광 사이로, 흐릿한 블랭의 유언이 단말마처럼 나미에게 닿았다.
「통제가 완전히 풀린다.」
우두커니 서 있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하늘을 쳐다 보았다. 푸른 프레온 괴수층이 유달리 짙어 보였다.
* * *
“이겼다!”
전황을 보고받은 비시는 체통도 잊고 뛸 듯이 기뻐했다. 크게는 인류 전체의 안녕, 작게는 미국의 안전을 확인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희생자 한 명도 없었다.
“살았습니다!”
“제니스 만세!”
통제실에서도 환호성이 터졌다. 한국 파견인, 미국인 할 것 없이 서로 얼싸안으며 기뻐했다. 프레온 괴수층을 증식시키며 지구의 안전을 위협하던 괴수를 마침내 무찌른 것이다.
그러나 환희는 잠시였다.
“앗! 이상 현상이 잡혔습니다! 이, 이럴 수가!”
“MD 시스템 긴급 경보! 글로벌 탐색 기능으로 자동 추적 중이던 괴수들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괴, 괴수 반응 전무(全無)!”
급보는 당연히 축제 분위기던 백악관에도 들어갔다. 비시가 크게 놀라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
“5분 전을 기해서 미국 내에 존재하는 모든 괴수 반응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서유럽 쪽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설마?”
프레온 괴수는 기체와 결정 에너지가 결합한 규소 기반 미세 생명체에 가깝다. 즉 규소 생명체의 미생물으로 볼 수 있다. 자기들끼리 뭉쳐서 성층권에 거대한 띠를 만들기도 하지만, 메탈 괴수의 외장갑을 형성하기도 한다. 메탈 괴수가 파괴되면 당연히 성층권의 프레온 괴수층도 증가한다.
때문에 비시는 괴수 반응이 일괄적으로 사라진 것에 그런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만약 괴수가 사라지고 그만큼 프레온 층이 두터워진다면?
하지만 보고자는 부정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라진 것은 메탈 괴수가 아니라 일반 바이오 괴수입니다. 메탈 괴수는 기존 MD시스템으로는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
“모르겠습니다.”
하필 타이밍이 블랭을 처치하고 난 직후인 터라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의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다.
“프레온 괴수층이 급격히 증식하고 있습니다!”
* * *
블랭을 처치한 뒤 김철희와 테레사를 필두로 한 제니스 팀은 나미와 대치 상태로 들어갔다. 나미는 그들을 공격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풍 직전의 고요 같은 그 적막함이 더욱 대원들을 불안하게 했다.
“먼저 칠까요?”
“기다려 보죠. 공대장님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블랭을 처치한다는 목적도 이미 달성했다. 나미가 굳이 먼저 공격하는 것도 아닌데, 무의미한 피를 흘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유지웅이 본대를 이끌고 도착했다.
“나미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정말 당신, 인간이 아닌가요? 우리를 해치기 위해서 제니스에 잠입한 건가요?”
아무 것도 모르고 그녀를 사모한 친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차라리 확실한 적이라고 판별되면 좋겠는데, 블랭이 파괴된 직후 그녀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한다. 정말로 그녀는 인간을 적대할 마음이 없었을까?
“하늘이…….”
그때 나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모두가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여전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두워지고 있어요.”
유지웅은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다?
‘어떡하지?’
그러나 곧 백악관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블랭을 처치했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일제히 괴수 반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레드 타입, 옐로 타입 할 것 없이 모든 괴수가 양쪽 지역에서 깡그리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도 블랭의 소멸 직후에 맞춰서 일어난 일이었다. 누구라도 블랭의 파괴가 이 이상 현상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지웅을 비롯한 제니스 본대는 작전 지역을 떠나지 못하고 나미와 계속 대치 중이었다. 그러나 처음만큼 경계심이 뚜렷한 것은 아니었다.
“나미 씨. 블랭 파괴 직후 미국과 서유럽의 모든 괴수가 사라졌다고 하네요.”
“그래요?”
“혹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나요?”
“아니요. 몰랐어요.”
나미는 그제야 눈을 내렸다. 평소처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는 표정이다. 저 무표정이 얼마나 많은 남성 대원들의 마음을 앗아갔던가.
“하지만 블랭이 죽음을 원하는 건 느꼈어요.”
“죽음을…… 원해요?”
“블랭에게는 자기 자신의 파괴 또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그래서 말렸던 거예요.”
유지웅은 느꼈다. 나미의 커다란 눈동자에 담긴 것은, 분명한 슬픔이었다.
“그 사람이 다치는 건 저도 바라지 않거든요.”
* * *
“이럴 수가…….”
위성이 촬영한 지구 사진을 보며 사람들이 신음했다. 이제는 눈으로 확인이 될 만큼 뚜렷한 푸른 층이 지구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겨우 세 시간이었다. 지구 전체에 뚜껑이 덮이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프레온 층이 지구 전체를 덮었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증식하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제니스가 제거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제거 속도보다 증식 속도가 더욱 빠릅니다.”
나미와 적대 관계를 일시 중지하게 된 이유였다. 그녀의 경고가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유지웅은 침울해졌다. 만약 블랭의 파괴가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 알았더라면, 한 번 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나미는 구체적인 결과까지는 몰랐다. 그저 위험을 경고했을 뿐이다. 워낙 다급한 상황이었고, 희생을 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최악의 변화를 가져오고 말았다.
“제니스의 책임은 아닙니다.”
“그래요.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미국, 러시아, 영국 등 강대국들이 그렇게 위로를 건넸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하늘이 손을 들어주지 않았을 뿐.
미국, 그리고 서유럽에서 모든 괴수들이 일제히 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늘이 닫혀버렸고 지구는 대낮인 지역도 초저녁처럼 어두웠다. 마치 장마가 오기 직전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는 듯했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 생산이 급감, 아니 앞으로 식량 생산이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태양이 없으면 식물은 자랄 수 없습니다. 인공 조명은 한계가 있습니다.”
“해금 현상과는 비교도 안 되는 재해입니다. 이 상황이 일 년만 이어져도 지구 인구가 10% 미만으로 감소할 겁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아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고통받을 겁니다.”
“제니스가 나선다 해도, 지구 전체 프레온층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시간을 들여 제거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증식 속도를 보면 그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혼란이 일었다. 식량 사재기, 다툼, 종교, 방화 등 온갖 범죄가 일어났다.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간단한 것이다.
인류는 태양을 잃었다. 이제 곧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다. 대빙하기를 맞이한 인류는 과연 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식량 부족, 빙하기보다는 남은 생존권을 놓고 벌어진 다툼에 더욱 많은 희생이 날지도 모른다.
백악관 정상회담 회의실에 모인 국가 총수 중 영국 수상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 엄청난 혼란이 예상됩니다. 우리 영국도 벌써부터 소요 사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UN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인류 공통의 위기를 맞이한 지금 서로 다툼을 벌였다가는 인류는 공멸합니다.”
“빙하기를 이겨내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대규모 쉘터 구축 작업이 시급합니다.”
“프레온 괴수층 제거는 정녕 불가능한 겁니까?”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니스가 일일이 제거하기에 지구는 너무나 방대합니다.”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유지웅은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국가 수반들은 그를 이해했다. 의도하지 않았다 하나 결과적으로 그의 결정이 이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법적 책임은 없지만 양심에는 무거운 족쇄가 채워졌을 것이다.
설전이 오가는 중 문득 안슐이 말을 꺼냈다.
“안전지대로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오?”
긴급 정상회담 자문역으로 참석한, 제니스 자문단 소속 교수가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그는 자문단 내에서 유지웅의 앱서버 능력을 중점으로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안전지대를 아무리 크게 만들어도 성층권에 영향을 끼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크게 펼칠 수 있는 수단도 없습니다. 무한에 가까운 결정체가 필요합니다. 또한 허공에 설치한 안전지대는 단시간 내에 흩어집니다.”
교수 및 자문단 동료들도 안전지대를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성층권에 안전지대를 설치하는 방법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안전지대는 땅에 형성하지 않으면 오래 유지되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다. 허공에 설치한 안전지대는 금방 소멸하고 말 것이다. 의미가 없었다.
안슐이 다시 말했다.
“지구 전체를 안전지대로 만드는 건 어떻소?”
“……예?”
“퍼플 결정체를 이용해도 불가능하오? 지금 제니스가 보유하고 있는 퍼플 결정체가 하나 있지 않소?”
잠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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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의 스케일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알라는 위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