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37)
00537 Take all or everything =========================================================================
“피즈야, 이제 그만 바다로 돌아가자.”
나미는 끼잉거리는 피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작별은 조촐하게 치러졌다. 유지웅 커플, 최윤 커플만이 참석했다. 안슐은 이미 작별을 했다며 나오지 않았다.
“자기야. 나미 씨, 어쩌면 혹시……?”
“괜찮아. 이미 의미 없는 일이야.”
피즈와 친한 것을 보고 어쩌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유지웅은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철벅거리는 바닷물을 밟으며 나미가 잠시 멈춰 섰다. 그녀는 상아색 재질로 만든 반바지와 티를 입고 있었다. 물에 젖지 않고 가벼우며, 무엇보다 내구도가 뛰어난 옷감이었다. 이제 바다로 돌아가면 더 이상 그녀에게 옷은 필요치 않을 테지만.
“그럼 안녕히.”
“잘 가요. 혹시라도 다시 생각이 바뀌시면…….”
정효주가 쿡 하고 옆구리를 찔렀다. 신랑은 여전히 나미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조사하고 싶은 모양이다. 저러는 거 보면 자본가 다 됐다.
‘……!’
저 멀리, 산중턱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먼 거리였지만 나미는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나미는 깜짝 놀라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내가 그런 게 궁금하다니, 하고 말이다.
호기심이 생긴다. 나미는 물끄러미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조용하지만 분명히, 빠르게 뛰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 두근거림의 정체는 대체 무얼까.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나미는 속으로 조용히, 그녀를 사랑한 왕자님에게 작별을 고했다.
물로 입수한 피즈가 신이 나서 어서 가자고 보채듯이 꼬리로 물위를 치고 있었다.
그녀는 수평선을 향해 조용히 걸어갔다.
* * *
유지웅은 세계를 구한 영웅이 되었다. 덕분에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유명세에 시달렸다. 이제는 길거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원래 유지웅은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 포탈 같은 곳에서 그를 검색해도 사진은 안 나온다. 개인비서실에서 그렇게 처리해왔기 때문이다.
사진 자체가 인터넷에 나돌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파파라치들이, 혹은 우연히 찍힌 사진이 인터넷 같은 곳에 돌기도 했다. 그래도 그전까지는 그런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어렵게 되었다. 지구를 구한 것 덕분에 그는 영웅이 되었다. 그전까지 크게 관심 없던 이들도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그의 사진을 찾아보는 중이다.
학교에 가면 더 가관이다. ‘지구 구원 경축’이라는 낯 뜨거운 플랜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유지웅이 재단 이사장이다 보니 더 그런 게 심했다.(얼마 전에 인수함)
“선배님, 축하드려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오빠! 진짜 멋있었어요!”
“형, 감동했어요! 진짜로요!”
겉으로는 웃지만 속에서는 부아가 난다. 아니, 그게 대체 어디가 멋있어?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결재 사인 촤라락 날리는 게 대체 어디가? 이건 한국인의 종족 특성인가?
“캬! 세계를 구한 것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일 끝내시고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태연히 결재를 하시다니! 진짜 제니스 클래스 대단해요!”
유지웅은 생각했다. 내 학교지만 이 학교 뭔가 이상해. 로망이 없어, 로망이!
“그러고 보니 형,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죠?”
“응, 그렇지.”
“대학원은 안 가세요?”
“내가 대학원 가서 뭐 하냐. 효주도 없는데.”
“하긴 그러네요.”
유지웅은 연주대를 인수한 뒤 등록금을 0원으로 책정했다. 원래 연주대는 국내 제일의 대학이었는데, 그 이후 더욱 주가가 높아졌다. 등록금뿐만 아니라 유명한 요리사를 대거 고용해서 최고의 재료를 이용해 제공한다. 교직원, 재학생은 학식을 포함해서 학교 내 모든 시설 이용이 무료다. 노후한 시설들도 보이는 족족 새 걸로 갈아치웠다.
덕분에 연주대는 현재 학생들 수준뿐만 아니라 시설, 복지, 인맥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우수한 유학생들이 꿈을 안고 찾아온다.
“그러고 보니 권재 너도 졸업학기 아니냐?”
“그죠. 저 형이랑 동기잖아요.”
“졸업하고 어디 갈 데 있어?”
“사실 오라는 데가 너무 많아서 탈이에요.”
장권재가 유지웅의 친한 대학 후배라는 것은 웬만한 정보력이 되는 기업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는 2학년 시절부터 기업 스카우터들의 잦은 접촉에 시달렸다.
“마음에 드는 데는 있고?”
“일단 현진그룹 생각하고 있어요.”
장권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현진그룹은 국내2위의 대기업이다. 일성은 독보적인 1위였지만, 태안사건 등 유지웅 눈 밖에 벗어났다는 평가 때문에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참고로 그 ‘알 만한 사람들’ 숫자는 국내 인구의 0.001%에도 못 미친다. 즉 대중의 눈에는 여전히 일성그룹이 독보적인 대기업이다.
“비서는 해볼 생각 없어?”
“비서요?”
“나 개인비서 수 좀 모자란데, 해볼 마음 없어?”
장권재는 속으로 야호를 외쳤다. 진짜 저 성은을 받기 위해 4년 동안 붙어 다니며 친분을 쌓지 않았던가.
“형! 고마워요!”
“공적인 자리에서는 형이라 부르면 안 된다.”
“당연히 알죠! 고마워요, 형!”
유지웅은 약 열 명의 비서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의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는 개인비서들이다. 근데 말이 개인비서지 처리하는 일의 규모를 보면 거의 국가 정책급 이상이다.
특히 박우진 비서실장은 개인 비서실장임에도 불구하고 국제 사회에서 그 예우가 상당했다. 미국이나 영국, 독일 등에서도 박우진 실장을 거의 국빈급으로 예우한다.
“근데 누나는 어디 갔어요?”
“세종시에 정기검사하러 갔어.”
“아, 그거요? 형은 안 받아요? 원래 같이 받으셨잖아요?”
“그랬는데 별로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 뭐 세종시 갔다 오는 거야 10분도 안 걸리는데.”
“아, 맞다.”
세종시는 서울과 자기부상철도로 연결되어 있어 편도로 20분이 채 안 걸린다. 자기부상철도는 제니스 연구단지 소유로 되어 있어 연구소 직원과 그 가족들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유지웅 가족은 국내에서 이동할 때에는 V-23편을 이용해서 다닌다.
원래 세종시 연구단지를 차린 이유가 결정체를 연구해서 둘의 몸속에 녹아 있는 퍼플 결정체를 연구하기 위함이었다. 큰 소득은 없었지만 둘의 몸을 연구한 데이터로 연구소는 많은 학술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유지웅과 정효주도 꾸준히 검사를 받고 있었다.
그때 정효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야! 지금 빨리 세종시로 와봐!」
“뭐? 무슨 일인데?”
「그건 내가 설명 못하겠고. 잠깐만, 박사님 바꿔줄게.」
한바탕 소란이 있은 후 책임자인 박세준 박사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결정체 생체 분야의 권위자로서 유지웅과 정효주의 신체 연구를 담당하는 책임자였다. 본래는 괴수 연구를 전문으로 하던 학자였다.
「회장님, 박세준입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효주 몸에 뭔가 문제가 생겼나요?”
「그게…… 문제인지 아닌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해로운 현상은 아닌 거 같은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뭔데요?”
「결정도가 감지가 안 됩니다.」
유지웅은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뭐라고요?”
* * *
“……아마 퍼플 결정체로 안전지대를 펼친 것이 두 분의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뭐라고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유지웅은 급히 세종시로 내려와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정효주와 동일했다. 그도 결정도가 감지되지 않았다. 모든 장비를 동원해서 측정을 해보아도 마찬가지. 심지어 규소 기반 괴수마저 추적했던, 최윤이 새로이 개발한 공명 반응식 탐지 장비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본래 유지웅은 결정도가 7만, 정효주는 6만 5천의 결정도를 보이곤 했다. 그런데 반응도로만 보면 두 사람의 몸에서 결정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셈이다.
설마 체내에 있던 퍼플 결정체가 완전히 소실한 것인 줄 알고 여러 가지 시험을 해보았다. 그러나 2차 궁극기는 정상적으로 잘 동작했다. 그렇다면 퍼플 결정체가 사라지거나 한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연구진은 난리가 났다. 핵심 인력들이 이 일에 달라붙어서 토의를 시작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회장님 부부 몸에 일어난 일이라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했다. 이 연구소가 설립된 목적 자체가 바로 그거였으니.
“최 소장님은요? 그 분은 왜 안 보이죠?”
최윤은 결정체 물리학에 있어서는 최고의 과학자다. 생체 응용 분야는 그의 전공이 아니지만, 그래도 그라면 이 이상 현상에 뭔가 날카로운 눈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데이트 하러 갔습니다.”
“네? 뭐라고요?”
“레지나 박사와 데이트하러 갔습니다.”
“하여간 커플들이란! 다 찢어놔야 해!”
일은 안 하고 데이트나 하러 가다니! 그것도 이 중요한 순간에! 유지웅은 분해서 주먹을 꽉 쥐었다. 절대로 지구를 구한 뒤 전 세계 앞에서 키스하는 멋진 역할을 그 두 눈꼴신 커플에게 빼앗겨서 한을 품은 게 아니다. 정말이다.
“당장 호출하세요!”
“자기야, 굳이 그럴 필요는…….”
“다이아는 챌린저가 부르면 뛰어와야지!”
아무튼 그렇게 최윤과 레지나는 제니스 시티 한적한 호숫가에서 데이트를 즐기다가 호출을 받았다.
“최 소장님. 입에 뭐 묻었어요. 그거 립스틱 아니에요?”
“네? 아, 아닙니다!”
최윤은 급히 입술을 닦았다. 유지웅이 말했다.
“거짓말이었어요.”
“…….”
아무튼 자초지종을 듣고 난 뒤 최윤과 레지나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유지웅은 직감했다. 뭔가 알고 있구나.
레지나가 대신해서 말했다.
“어쩌면 숙성 중인지도 몰라요.”
“숙성이요?”
“퍼플 결정체의 이론상 한계는 135,000이에요. 더 이상 결정도가 증가할 순 없죠. 하지만 결정 에너지의 결합 및 응집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면 결정체의 성질이 달라질 수 있어요. 레드 결정체로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레드 결정체요?”
처음 듣는 이야기다. ‘퍼플 결정체의 상위 결정체’라 하지 않고 레드 결정체라 못을 박은 것은, 그 색이 붉다는 것을 안다는 뜻 아닌가?
“나미가 바로 레드 결정체를 가진 괴수였어요. 색을 확인하진 않았지만요.”
“……아.”
유지웅은 놀라운 탄성을 터트리다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그런데 레지나 박사님이 어떻게 그런 걸 그렇게 자세히 알고 계시죠?”
레지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제 할아버지가 휘버 박사님이셨어요.”
“아! 그랬군요!”
세상에, 레지나가 휘버의 손녀였다니!
유지웅은 물론이고 가렌을 비롯한 과학자들도 놀라서 저마다 웅성거렸다. 가족이 없다고 알려진 휘버에게 손녀가 있었다?
“그럼 위험한 건가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 퍼플 결정체를 흡수해서 안전지대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끼친 걸 거예요.”
“우리, 이렇게 점점 인간에서 멀어지는 건가…….”
“그렇지 않아요. 그저 결정 에너지를 보유하셨을 뿐이죠. 아마 예전보다 더욱 강해지실 거라 생각해요.”
자조하는 듯한 어조였지만 실은 유지웅도 반은 농담처럼 한 말이었다.
유지웅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십 명의 우수한 연구원들의 조용히 침묵한 채 그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들에게도 이 일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마 학계가 진동할 것이다.
“이 일은 제가 허용할 때까지는 기간 무제한 비밀입니다. 여러분은 비밀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레드 결정체 연구 팀을 신설하겠습니다. 레지나 박사님이 주도적으로 팀을 이끌어 주세요. 연구에 관한 지원은 아끼지 않고 무제한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최 소장님, 한창 좋으신 건 알겠는데 레지나 박사님 연구하는 시간은 보장해주세요. 아셨죠?”
“아, 알겠습니다…….”
“뭔가 불만족스러우신 거 같은데…….”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유지웅은 문득 정효주와 눈이 마주쳤다. 체내에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그녀는 예전처럼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아마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나 보다.
‘더 좋아지는 거겠지?’
확단할 순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든다. 결정체에 불어온 변화,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에게는 이로운 일이 될 것이라고. 체내에 보유한 결정체가 더욱 강해지면 더 좋은 일이 아닌가?
‘역시 좋은 일을 하니까 보답받는구나.’
사람은 한 만큼 보답 받는 건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 퍼플 결정체를 내놓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근데 쫌 불안하긴 한데.”
“왜?”
“원래 헐리우드 법칙이 그렇잖아. 강해진다는 건 더 강한 적이 나타날 수도 있다 뭐 그런 징크스.”
“에이, 빈말로라도 그런 말하지 마. 말이 씨 돼.”
근심을 내려놓은 두 커플은 웃고 떠들며 연구소를 나섰다. V-23의 묵빛 자태가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폐허.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는 황폐한 죽음의 땅으로 들어서는 남자가 있었다. 옷은 찢어졌고 온몸이 자잘한 상처투성이였다. 비쩍 말라서 볼품없지만 눈빛만큼은 살아 있는, 60대 백인 남성이었다.
“망할 자식들!”
남자는 토미 에슨, 블랭에게 감금당했던 전 CIA 국장이었다. 가까스로 탈출을 한 그는 뉴스를 보고 망연자실했다.
「세계의 영웅, 제니스.」
어느 매체를 봐도 그 이야기뿐이었다. 감금되어 있는 동안 세상은 자신이 상상도 못할 변화를 겪고, 이겨냈던 것이다.
그는 직감했다. 이제 자신은 갈 곳이 없었다. 이미 전 세계에 수배령이 내렸을 것이고, 후원자들은 더 이상 자신을 아는 체 하지 않을 것이다.
‘두고 보자.’
토미 에슨은 이를 갈며 폐허를 바라보았다. 목울대가 올라가며 마른침이 넘어갔다. 문득 발에 딱딱한 것이 밟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나무로 만들어진, 먼지에 빛이 바랜 부서진 표지판이 있었다.
「레마시아 연구소」
오래 전 미국 결정체 과학의 가장 영광된 곳이었으나 지금은 죽음의 땅으로 잊혀진 곳. 토미 에슨의 압박을 받은 휘버는 모든 연구 자료를 말살하기 위해서 자폭을 택했고, 한동안 이 지역은 결정체 에너지 과잉으로 생명체가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의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토미 에슨은 안다. 몇 년 전에 결정체 에너지 과잉 현상이 해소되어 사람이 들어가도 죽지 않을 만큼 환경이 변화했다는 것을. 다만 여전히 미 정부에서는 이곳을 탐색하기를 꺼리고 있었다.
‘휘버의 균열 연구 자료는 분명히 이곳 어딘가에 있다.’
토미 에슨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휘버가 자폭을 택할 이유가 있을까? 아마 뭔가 커다란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자폭을 결행했으리라.
위험했지만 그는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국제 수배자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도박에 거는 게 훨씬 나았다.
그는 폐허로 들어갔다. 약감 따끔한 느낌이 났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 가져온 측정기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죽거나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환경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는 무너진 폐허를 탐색했다. 깊게 파인 크레이터로 걸어 들어갔다. 곳곳에는 부서진 벽이 널려 있었다. 기자재 같은 것은 거의 형상을 잃고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보이는 대로 샅샅이 뒤졌다. 땀을 흘리며 수색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어느 무너진 벽을 들어 올리던 때였다.
“으악!”
몸이 아래로 푹 꺼지고 말았다. 그는 정신없이 이리저리 부딪치며 아래로 추락했다. 다행히 수직으로 떨어진 게 아니라 미끄러지듯이 벽에 부딪치며 떨어진 거라 큰 부상은 면했다.
“으윽…….”
뼈가 부러진 것 같진 않았다. 토미 에슨은 캄캄한 지하에서 눈살을 찌푸리며 허리춤을 더듬었다. 손전등을 꺼내어 불을 켰을 때였다.
“헉!”
그는 기겁을 하며 놀랐다.
눈앞에는 지름이 15미터는 될 듯한, 거대한 검은 빛의 웜홀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생생한 모습에 토미 에슨은 온몸이 경직되고 말았다.
말이 나오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다.
한참의 경직 끝에 토미 에슨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꽉 다문 입술 사이에서 참지 못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크크, 크크크, 크크크, 크하하하! 크하하하! 휘버! 역시 당신은 멋지군! 균열이, 균열이 바로 레마시아 연구소 지하에 있었을 줄이야!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완전히 속았어!”
기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마구 날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균열이야말로 결정 에너지의 근원이다. 제니스가 아무리 난리를 쳐봐야 균열을 쥔 자신을 어떡하진 못하리라.
토미 에슨은 지난 오랜 수모가 한꺼번에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앞으로의 화려한 나날, 모든 나라가 고개를 숙이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후원자들? 흥! 그까짓 녀석들! 이제부터는 누가 후원자이고 누가 머리를 숙여야하는지 확실하게 깨우쳐 주겠다! 망할 녀석들!
그때였다.
―끄르르르, 끄으르르르, 끄르으으르으르……
기괴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토미 에슨은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마치 공허의 괴물이 내는 듯한 신음소리에 몸 전체의 털이 빳빳하게 솟아났다.
‘대, 대체 이게 무슨 소리…….’
그 순간 토미 에슨은 보았다. 저 멀리, 어둠 너머에 있는 거대한 두 개의 눈동자를. 그 아래 푸른 빛으로 빛나는 손톱이 천천히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싹둑!
뭔가 부드러운 살점이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토미 에슨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걸 느꼈다. 땅이 자신의 눈앞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머리가 반 바퀴 회전하는 순간 보았다. 목을 잃은 자신의 몸이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머리가 잘려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거대한 푸른 손톱이었다.
이상했다. 분명히 저 멀리 있었는데, 어느 틈에?
‘어떻게 뒤에서 갑자기…….’
토미 에슨의 생각은 거기서 끊어졌다. 괴물이 흘리는 고통스러운 신음만이, 그의 마지막을 장송하듯이 조용히 울렸다.
―끄으으르르르르…….
============================ 작품 후기 ============================
시즌2 파트가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제는 시즌3, 주인공의 대학 졸업 이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다음 괴수를 막간 맛보기처럼 살짝 보여드렸습니다만, 아직 무르익지 않아서 한동안은 재등장할 일이 없을 겁니다. 당분간은 저도 분위기 전환 겸 일상 파트 위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시즌3도 즐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