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56)
00556 대격변? =========================================================================
“오호, 이런 게 다 있었네?”
부부동반 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유지웅은 침대에 엎어져서 패드 컴퓨터를 꺼냈다. 이세나가 말한 바이마르, 포드 바이패스를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정효주는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서 뒹굴거리는 신랑의 뒤로 다가가서 재킷을 잡아당겼다.
“자기야, 옷은 벗고 누워야지?”
“응.”
“다리 좀 들어 봐. 양말 좀 벗기게.”
“응.”
“벨트가 안 풀리잖아. 바지 벗기게 좀 들어 봐.”
“너 힘세잖아.”
“내가 확 벗기면 옷 찢어질 텐데? 자기 다칠 수도 있어.”
“응, 응.”
유지웅은 패드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옷을 벗기도록 도와주었다. 정효주는 양말과 바지, 재킷, 셔츠를 죄다 벗겨내서 가져갔다. 양말은 드럼세탁기에 넣고 정장은 1층에 있는 가정부에게 세탁을 시키고 돌아왔다.
“자기야, 이제 그만 씻어야지.”
“잠깐만. 이거 좀 마저 보구.”
“대체 그런 게 뭐가 재미있다고? 자기 원래 그런 거 크게 관심 없었잖아?”
블루 결정체 공정설비가 떠오르는 블루 오션 시장의 핵심 부품인 건 알겠는데, 유지웅에게는 사실 별 거 아니다. 그 블루 결정체 자체를 손에 쥐고 좌지우지하는데 무슨.
대체 뭐 때문에 저리 삼매경에 빠진 건지 뒤에서 슬쩍 본 정효주는 낮은 신음을 냈다.
“자기, 지금 위키에서 보고 있는 거야?”
“응.”
“…….”
“여기 첨 들어와보는데 자료와 링크가 무궁무진하네. 이거 봐라? 내 이야기도 있어. 제니스 이야기도 많이 있네.”
“……그거야 블루 결정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가 없는 단골 주제라서 그런 거고, 근데 왜 그런 데서…….”
일단 발을 들여놓았으니 링크가 소실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링크 서핑을 탈 것 같다. 정효주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욕실로 먼저 들어갔다.
샤워를 마친 정효주는 하얀 가운을 입고 젖은 머리를 털면서 나왔다. 유지웅은 아직도 씻을 생각도 없이 침대에서 링크의 파도에 빠져 있었다.
“이번 설에 내려갈 거야? 아니면?”
“엄마가 그냥 여기서 하재.”
“알았어. 그럼 준비하라고 할게.”
“뭐 번거롭게 호남까지 내려갈 필요 있나. 차도 꽉 막히고 도로에서 시간 다 버리는 거지.”
지방 갈 때마다 수직이착륙기 타고 다니는 주제에 도로에서 차 막힐 걱정을 하고 있다.
“내가 못 씻겨주니까 그거 다 보면 빨리 씻고 나와. 어른이 그게 뭐야.”
“나 이제 다 봤어! 씻겨 줘!”
“나 방금 씻고 나왔거든? 쌍둥이 수유하러 가야 돼.”
“쳇. 남편은 언제나 뒷전이지.”
유지웅은 궁시렁대면서 욕실로 들어갔다. 정효주는 맥 빠진 얼굴로 옷을 갈아입고 부부 침실을 나섰다. 진짜 아이 넷 키우는 기분이다.
흑석동 저택은 3층부터는 사적인 공간이다. 3층은 부부침실, 4층은 아이들 공간, 5층은 가족용 종합 문화 공간이다. 5층에는 서재, 놀이방, 홈 영화방 등이 갖춰져 있다.
4층으로 올라서다가 정효주는 바쁘게 내려오는 남녀 직원들과 마주쳤다.
“앗, 안녕하십니까!”
사모님을 알아본 직원들이 먼저 인사를 했다. 정효주도 ‘수고하시네요.’하고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와, 사모님 봐. 몸매 진짜 쩐다. 숨 막히는 줄 알았어.”
“쉿! 너 제정신이야? 그런 소리는 절대 하지도 마!”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스케줄 누가 담당했어? 사모님이랑 마주치면 어떡해?”
“그게 문제가 되나요?”
“4, 5층은 없는 듯이 청소 관리를 해야지! 육아팀 말고는 회장님, 사모님과 맞닥뜨리면 안 돼! 우렁각시처럼 조용히 청소하고 내려오고 해야 한다고! 그게 방침인 거 몰라?”
“하, 하지만 사모님은 아무 말씀 안 하셨잖아요?”
“하여튼 그게 방침이라니까! 사모님이 그런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신경을 쓰셔야겠어?”
탱커라는 건 참 이럴 때 안 좋다. 웬만하면 안 듣고 넘어가고 싶은데 다 들리고 만다.
4층에 올라선 정효주는 첫째 아이 방을 열어보았다. 방이 비어 있자 그녀는 갸웃거렸다. 마침 육아 전담 여직원 한 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세현이 어디 갔나요?”
“일층에 수영하러 가셨습니다.”
“이 날씨에 무슨 수영이죠?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지배인님이 함께 가셨으니 문제없을 겁니다.”
정효주는 잠시 침묵했다. 누굴 닮았는지, 테레사가 예쁜 건 알아서 매일 졸졸 따라다닌다. 장래가 어떻게 될지 조금 염려가 되기도 한다.
“하연이, 하원이는요?”
“자고 있습니다.”
“그럼 잠깐 얼굴만 보고 나올게요.”
정효주는 아기 방에 들어섰다. 마침 안에 있던 육아 직원 셋이 일어나서 얼른 인사를 했다.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요람에서 아이 둘이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어느덧 7개월에 접어들면서 쌍둥이 딸들은 제법 낯가림을 할 줄 알게 되었다. 엄마가 모습을 안 보이면 자주 울고 보채고 그런다.
다행히 테레사, 그리고 보모장과 많이 친해져서 이제는 엄마가 안 보여도 잘 울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인 건 알아보는지 보이기만 하면 젖을 달라고 보챈다.
“이런, 사모님 오신 걸 눈치 챘나 봐요.”
쌍둥이가 눈을 뜨더니 으앙 하며 울기 시작했다. 짧고 통통한 팔을 휘젓듯이 내밀며 안아달라고 보챈다. 정효주는 얼른 둘째를 품에 안아 올렸다. 그러자 셋째가 자기도 안아달라는 듯이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보모장이 얼른 셋째를 안았다.
“이유식 좀 있나요?”
“얼른 만들어서 가져오겠습니다.”
“네, 수고해주세요.”
정효주는 현재 쌍둥이 둘을 이유식과 모유를 병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헌데 아이들이 모유를 더 좋아해서 큰일이다. 아직도 모유팩을 떼어놓고 지낼 수가 없다. 하루 이상씩 멀리 나갈라 치면 이동식 냉동고와 수송기편을 준비해야 한다.
“까앙…….”
“하연아. 맛있니? 맛있어? 많이 먹어.”
“까아앙…….”
아이를 만져주는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화목한 모녀지간의 저녁이었다.
* * *
흰 가운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다급히 복도를 뛰고 있었다. 숨이 턱에 차서 얼굴이 온통 빨갛다. 복도 끝에 다다른 남자들은 노크 대신 과격하게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소장님! 소장님! 큰일났습니다!”
안에서 뭔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우당탕 하는가 싶더니 최윤이 머리를 내밀었다. 머리카락이 다소 헝클어져 있지만 그냥 넘어가자.
“무슨 일입니까?”
“전화를 안 받으셔서 달려왔습니다! 스페셜 원이 떴습니다!”
“이 시간에요?”
스페셜 원은 유지웅을 말한다. 시계를 보니 저녁 9시다. 워낙 갑작스러운 사람이다 보니 새삼스럽진 않은데, 시간이 너무 늦은 점이 걸린다. 위치가 위치다 보니 웬만한 일로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알았어요. 준비할게요.”
“예!”
두 연구원이 서둘러 돌아가고, 최윤은 문을 닫았다. 다급히 옷을 추스르고 있던 금발의 여인, 레지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래요?”
“회장님이 오셨나 봐요.”
“이 시간에요?”
“나가봐야겠어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니에요. 저도 같이 나가요.”
둘은 몸가짐을 정돈하고 소장실을 나섰다. 유지웅은 VIP 전용 접객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 손재진 교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자문위원과 함께였다.
자문위원도 늦은 저녁에 급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세종시로 온 것이다. 아무래 V-23편을 상시 이용할 수 있다지만 급박한 일정임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이런 걸 가지고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세계의 대통령이나 다름없는 인물의 정책자문 자리를 맡고 있으면서 그런 마음을 가지는 건 사치다. 수십억이 넘는 연봉에 무제한 연구자금 지원 혜택, 그리고 제니스 자문단이라는 명예는 학자라면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것이었다.
“아, 오셨네요.”
“네. 안녕하셨습니까, 회장님?”
“안녕하세요?”
“가렌 박사님은 어디 계시죠?”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현재 사람들을 내보내서 급히 찾고 있는 중입니다.”
“뭐, 자리에 없으신 분을 굳이 찾을 필요는 없을 거 같네요. 나중에 따로 말을 전해드리면 되니까요.”
“그러겠습니다.”
최윤 등 다섯 명의 과학자는 회의용 테이블 앞에 앉았다. 상석에 앉은 유지웅은 잠시 생각을 다듬는 눈치였다. 최윤은 슬쩍 자문위원의 눈치를 살폈다.
‘갑자기 나왔나?’
보아하니 자문위원들도 왜 유지웅이 호출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다.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모두가 적당히 긴장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바이마르와 포드 바이패스가 국제 표준 문제 때문에 다투고 있다고 들었어요.”
“아! 그거 말씀이시군요!”
자문위원의 얼굴이 일제히 환해졌다. 자기들이 잘 알고 있는 영역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반면…….
“바이마르? 포드 바이패스? 그게 뭐죠?”
“어디서 들어본 거 같긴 한데…….”
최윤을 포함한 과학자들은 생소한 용어에 갸웃거렸다. 이들은 뛰어난 기초 과학자들이지 공학자가 아니다. 그중에는 최윤처럼 공학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인물도 있지만, 결정체 공정산업 같은 ‘단순 제조업’은 잘 모르는 게 정상이다. 핵물리학자가 저배기량 오토바이 엔진 1위와 2위 모델명까지 꿰뚫고 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손재진이 얼른 설명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결정체 산업공정은 크게 분해, 희석, 조합, 가공의 단계를 거칩니다. 헌데 블루 결정체는 그린 결정체보다 높은 고강도 구조를 갖고 있어 기존 공정 설비로는 분해 과정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바이마르와 포드 바이패스인데, 이 중 바이마르는 6각형 다공장치의 순환 구조를 통해 빠르게 완전 분해 과정을 거치는 설비입니다.”
“아, 기억났어요. 러시아가 만든 그 설비를 말하는 거죠?”
“예. 반면 포드 바이패스는 중앙의 코어와 네 방향으로 연결된 바이패스를 통해 밀도 차이에 따른 확산 반응으로 블루 결정체를 분해합니다. 분해 속도는 느리지만 대단히 안정적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포드 사가 만들었습니다.”
자기들 전공은 아니지만 세계 제일의 석학들이다 보니 간단한 설명만으로 척 하고 알아들었다.
“원래 IACP가 포드 바이패스 설비를 사용해왔는데 얼마 전에 러시아제 바이마르를 추가 도입한 것으로 압니다. 그 때문에 국제 표준을 놓고 미국과 러시아 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의아해서 물었다.
“그런 중요한 일에 자문단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겁니까?”
“제니스 공격대의 확장 근본 전략안을 세우느라고 요즘 여력이 없었습니다. 부분적인 공정설비의 표준안이야 뭐, 당장은 그 분야에 축적된 기술력도 없고, 어차피 블루 결정체 자체를 제니스에서 사실상 통제하고 있는데…….”
손재진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니까 애들끼리 코 묻은 돈 가지고 다투는데까지 나서기에는 여력이 없었다, 뭐 그런 소리다. 여기서 그 애들이라는 게 미국과 러시아라는 점을 주목하자.
“들으셨죠?”
마침내 유지웅이 입을 열었다.
“현재 미국이나 러시아나 똑같은 저의 친구들입니다. 헌데 친구들이 별 거 아닌 표준안 문제를 가지고 다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군요. 그래서 제가 중재를 하기로 했습니다.”
“……?”
“제니스 연구단지라면 빠른 시일 안에 새로운 표준 규격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양자의 장점만을 취하고 단점은 버린, 뭐 그런 모델 못 만듭니까?”
최윤 등 과학자들은 떨떠름했다. 아니, 못할 것은 없지만 기초과학 연구소에서 무슨 그런 것까지 만들어야 하나 싶은 것이다. 이건 핵물리학자한테 오토바이 엔진을 가져온 셈이다. 비유가 살짝 이상해도 대강 이해하고 넘어가자.
“만들 수야 있을 겁니다만,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지금 산적해 있는 연구 프로젝트도 상당수라, 아무래도 따로 연구 인력을 낼 여유가 없습니다.”
“안 되는 건가요? 추가로 지원할 자금도 따로 빼놨는데.”
“분명 매출 규모는 방대하겠지만 기술 수준 자체를 보면 저희가 염려할 만한 영역은 아니고…….”
우당탕!
그때였다. 요란한 소리가 들리면서 문이 벌컥 열렸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가렌 박사가 먼지로 더럽혀진 가운을 입은 채 숨을 몰아쉬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놀라서 쳐다봤다.
“가렌 박사님? 어디 있다가 오신 건가요?”
“예산을, 예산을 더 올려주신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미국에 데리고 있던 제자들 중에 그 분야로 진출한 인재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시면 제자들을 데려와서 전담 연구팀을 만들겠습니다!”
“오, 좋네요. 하는 김에 공정설비 연구를 총망라하는 팀으로 편성하는 건 어떨까요? 가만히 보니까 우리나라 공정설비는 죄다 미국제, 러시아제, 독일제뿐이더라구요. 전 그게 싫던데.”
“맡겨 주십시오!”
“그럼 이 문제는 가렌 박사님이 맡아주시는 것으로 알고 가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유지웅은 쿨하게 돌아섰다. 그가 떠나고 난 뒤 가렌은 멱살을 잡을 듯이 과학자들에게 눈을 부라렸다.
“이 사람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배가 불렀다고 예산을 준다는데 빼고 있습니까!”
“……가렌 박사님. 설마 숨어서 다 듣고 있었나요?”
그 말에 흠칫한 가렌은 얼른 돌아섰다. 그러면서 작게 투덜거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여튼 요즘 젊은 과학자들이란. 예산 소중한 걸 몰라요.”
============================ 작품 후기 ============================
“선택지는 두 개다. 부족한 예산에 허덕이며 갈리느냐 풍부한 예산에 허덕이며 갈리느냐다. 넌 뭘 선택할래?”
“안 갈리는 건요?”
“그럼 문과를 갔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