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64)
00564 나는 핵물리학자다 =========================================================================
100여 명의 핵물리학 제자들은 처음 이 분야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꿈이 있었다. 그러나 차가운 사회와 부딪치면서 그들은 하나둘씩 꿈을 잃어갔다. 미국이 기초과학에 제일 많이 신경 쓰는 국가이기는 하나, 핵물리학은 결정체 등장 이후로 관 뚜껑에 들어가 못질까지 마친 학문이었다.
가렌이 아니었으면 제자들은 지금껏 제대로 된 밥벌이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렌의 도움은 먹고 살게는 해주었지만 연구에 대한 그들의 갈망은 채워주지 못했다.
핵물리학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공정설비 개량 설계라든가, 기타 잡다한 부속설비 발전 연구나 하고 있으니, 날이 갈수록 전공에 대한 갈증은 짙어져만 갔다.
하다못해 비슷한 분야의 기초과학 연구라도 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나았으리라. 그러나 타분야 기초과학은 이미 내로라하는 동기들이 수두룩하게 넘쳐났다. 가렌이 괜히 공학 설계 분야로 그들을 보낸 게 아니었다.
「한국에 가면 그래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제니스 연구단지. 모든 과학자들의 꿈이자 최종 목적지인 그곳. 거기에서는 뭔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환상을 품고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기회가 없었다. 그들은 영원한 그들의 센터백, 아니 교수를 믿고 기다렸다.
‘자리를 잡으면 너희들을 데리러 오마.’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결정체 공정에 관한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부서를 새로이 신설하신다고 한다.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요?”
“그래. 모든 것.”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니어서 살짝 아쉬웠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이 작은 연구 기업에서 특허나 내놓고 로열티나 받아먹으면서 사는 것보다는 좀 더 낫지 않은가?
“그곳에서 기회를 잡는 것은 너희들의 역량이다. 나도 힘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마.”
“알겠습니다, 교수님!”
그렇게 공학 분야 설계연구직에 종사하고 있던 100명의 핵물리학자들은 꿈을 안고 아메리카를 건넜다. 세종시에서 세계 시장을 목표로 결정체 공정 연구를 하다 보면, 언젠가 유지웅이 크게 알아줄 것이다. 노력하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 믿으며,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한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한국 땅을 밟은 첫날, 그들은 자신들이 품은 꿈보다 수천 배는 무거운 미션을 부여받았다.
“결정체를 이용한 상온 핵융합로를 만들어주세요.”
“……예?”
“기한은 얼마나 걸리나요? 예상 소요 예산은요?”
첫날부터 ‘상온 핵융합로’를 만들라는 무시무시한 미션을 부여받은 100명의 젊은 핵물리학자들은 눈만 끔뻑거렸다.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상온 핵융합로에 관한 연구’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상온 핵융합로를 만들 것’이라니. 아니, 실패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당연히 만들 것으로 여기고 있는 건가, 지금?
가장 어린 핵물리학자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상온 핵융합은 아직 기초적인 이론 가설 단계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핵물리학이 천대받은 탓에 그 분야 연구는 전혀 진척된 게 없습니다. 당장 상온 핵융합로를 만들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맞습니다. 먼저 시간을 들여 고온 핵융합 반응부터 차근차근 연구를 진행해야 합니다. 아직은…….”
유지웅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가렌이 질겁하고 나섰다. 그는 어느새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흠.”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십시오! 이 녀석들, 한 번도 기초 연구 예산을 받아본 적도 없고 그걸로 갈려본 적도 없는 가여운 놈들입니다! 경험이 없어서 그런 거니 부디 용서를…….”
“됐구요. 얼마면 돼요?”
“시간과 예산은 반비례 관계이므로, 예산을 많이 주시면 많이 주실수록 시간을 더욱 절약할 수…….”
유지웅이 손을 내밀자 박우진 비서실장이 얼른 가죽 케이스 가방에서 수표책과 펜을 꺼내 공손히 내밀었다. 그는 숫자를 쓰고 휘리릭 사인을 마친 뒤 가렌에게 내밀었다.
「10,000,000,000,000 금십조원」
숫자를 확인한 가렌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유지웅은 수표책과 펜을 비서실장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1차 연구자금입니다. 부족하면 나중에 더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유지웅이 떠날 때까지 가렌의 숙인 허리는 펴질 줄을 몰랐다. 100명의 제자들도 엉겁결에 그의 눈치를 보며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유지웅이 완전히 나갔을 무렵.
“이것들아! 이게 무슨 망신이냐! 내가 너희들을 그렇게 가르쳤더냐!”
“교, 교수님! 진정하세요!”
“이 답답한 것들! 아무리 경험이 없어도 그렇지, 그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에이, 못난 것들! 기념파티고 뭐고 없다! 당장 오늘밤부터 연구 시작이다! 짐 풀자마자 다들 연구실로 모여라!”
가렌은 버럭버럭 화를 내고는 나가버렸다. 100명의 핵물리학자들은 그가 왜 저리 화를 내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야속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제니스 연구단지 선임인 어느 결정체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후원자가 그렇게 물어볼 때, 정 대답하기 애매하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면 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당장은 안 된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어요.”
“하, 하지만! 언제 성공할지도 모르는데요?”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해볼 일이죠. 후원자가 알았다고 하고 아예 프로젝트를 철회해버리면 어떡하시려고요?”
핵물리학자들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게 그렇게 되나?
기존 연구원들은 대체로 공감하는 눈치였다.
“가렌 박사님 말씀이 맞죠. 돈 준다는데 일단 받고 볼 일이죠.”
“일 없이 노는 것보다 일로 갈리는 게 낫지요. 돈 많이 받고 갈리면 더 좋구요.”
“아무래도 한 번도 갈려본 적이 없으셔서 다들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셨던 것 같습니다.”
“이해합니다. 핵물리학이 아무래도 좀…….”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말에 핵물리학자들은 표정이 벌게졌다. 그들 말도 맞고, 가렌 말도 맞았다. 어디 이런 일감을 따본 적이 있어야지. 경험이 없으니 어리버리하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할 말 못 할 말 구분도 못한 것이다.
“교수님이 실망하신 게 이해가 간다…….”
“우리, 이러지 말자. 이러려고 이 먼 한국까지 온 거 아니잖아.”
“그래! 다들 어서 짐 풀고 연구실로 가자!”
* * *
박 실장은 귀가를 위해 V-23으로 안내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회장님. 한전 지분을 인수하는 것보다 아예 전력 사업을 시작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민간 전력 공급 업체가 안 되잖아요. 전력을 한전에 파는 식으로만 가능해서요.”
“법을 바꾸는 것쯤은 회장님께 매우 쉽습니다.”
“알죠. 근데 안 하려고요.”
비서실장은 조금 이해가 안 갔다. 유지웅에게는 손바닥 뒤집듯이 쉬운 일이다. 충분히 국내 전력 산업을 독점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그런 건 그냥 공공산업으로 남겨두는 게 두고두고 좋댔어요. 어차피 해먹을 데는 많은데, 본거지를 탕진할 필요는 없죠.”
“예?”
“한전 통해서 해외에 전기 내다 팔까 해요. 외국 상대로 충분히 떼돈 벌 수 있는데 내 욕심 조금 챙기자고, 지금도 충분히 잘 굴러가는 공사를 뭐 하러 민영화해요. 아, 물론 한전이 첨병 노릇은 해줘야 하지만. 이게 바로 수출 드라이브라는 거예요.”
박 실장은 잠시 갸우뚱했다. 그게 보통 그런 의미로 쓰이는 단어였던가 싶은 것이다.
“하지만 단시간 안에 가능할까요? 제가 과학 쪽은 잘 모르지만, 결정체를 이용한 상온 핵융합로 개발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돈 주면서 닦달하다 보면 언젠가는 해내겠죠. 원래 대가리는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해요. 앗, 효주가 이런 말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
박 실장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하지만 아무리 젊다 해도 눈앞의 고용주는 유일무이한 세계 최고의 권력자다. 결코 실례를 저질러선 안 된다.
아무튼 박 실장은 유지웅이 무엇을 계획하는지 알 것 같았다. 국내보다는 해외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지분을 사라고 한 것은 아마도 해외 시장 개척의 첨병이 될 한전의 지분 시세 차익을 노린…….
“아무 것도 안 한 놈들이 숟가락 올리는 꼴은 못 봐요. 시세 차익으로 투자 수익 내는 놈들, 절대 안 나오게 할 거예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냥 단순히 가만히 있다가 돈방석에 앉는 놈들이 나오는 게 싫었던 것일까.
“그나저나 회장님, 가렌 박사님에 관해서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요?”
“가렌 박사님 정도면 플래티넘 카드 정도는 발급해줘도 되지 않겠습니까?”
유지웅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요.”
“앗,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아니, 그게 아니에요. 사실 다이아 카드를 받으셔도 충분하신 분이죠.”
실언할 줄 알고 황송해하던 비서실장은 ‘그럼?’ 하는 눈으로 얼굴을 들었다.
“하지만 그 분에게 다이아 카드는 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안 드리는 거예요.”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독이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 박 실장은 이해가 안 갔다. 남기철도 갖고 있고, 장태준도 갖고 있는 다이아몬드 카드가 정작 가렌에게는 독이라니? 저 두 사람은 잘만 쓰고 있지 않은가?(칠드그린이 갖고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제가 딱 보면 알아요. 저 분, 원하는 예산이 딱 확보되면 느긋하게 일할 사람이에요.”
“예?”
“10억 달러를 원하면 8억 달러까지만, 100억 달러가 필요하면 8, 90억 달러까지만 주고 나머지는 살살 챙겨줘야 해요. 안 그러고 바로 120% 이렇게 챙겨주면 여유 있으니 뭐 어때 하면서 탱자탱자 연구할 스타일이에요.”
“설마요. 그렇게 예산에 목매는 분이신데…….”
“다른 사람은 모르죠. 하지만 전 보면 안다고요. 한 번 내기 해볼래요?”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회장님과 그런 걸로 내기를 하겠습니까.”
어느덧 V-23에 도착했다. 유지웅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10조 원도 너무 많이 준 건 아닌가 모르겠네. 좀 더 쪼개서 줘야했는데.”
때로는 예산을 한꺼번에 많이 퍼줘서는 안 될 사람도 존재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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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렌은 생각합니다.
“내가 원했던 예산은 5조원이었는데 5조원이 더 남아버렸어. 어쩌지…?”
그리고 가렌은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