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80)
00580 왕의 귀환 =========================================================================
“95%나요? 너무 많지 않나요?”
너무 많지 않은가 싶어서 유지웅은 염려가 되었다. 아무리 안슐의 말이라지만, 이건 좀……. 아무리 절대적인 독과점이라 해도 어느 정도는 소비자를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전혀 많지 않네. 오히려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해도 그들은 기꺼이 할 걸세.”
“아무튼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건 좀…….”
“그건 아직 자네가 젊어서, 늙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부호들의 절박함을 모르기 때문일세.”
“알죠. 왜 몰라요.”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건 다르다네. 탱커의 신체 메커니즘 규명을 위한 연구에 그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하는지 알고 있나?”
유지웅은 할 말이 없어서 손가락으로 테이블만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그 점은 잘 몰랐다.
“사우디 국왕만 해도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관련 연구에 쏟아 붓고 있지. 이렇다 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인데도 말일세.”
“음…….”
“늙은 부호는 저열하고, 그리고 탐욕적으로 젊음을 갈구하네. 그 갈증은 자네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할 거야.”
안슐은 포도주를 내려놓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이었다. 친우가 저런 눈빛으로 바라볼 때면 유지웅은 숨도 쉬기 힘들 만큼 어려운 기분이 든다.
“알아두게. 젊음의 가치는 돈으로 비할 바가 아니네.”
가진 건 돈 밖에 없다. 없는 건 젊음 밖에 없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득히 짧은,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부호들은 얼마나 치열하게 젊음을 원할까. 갈망할까.
유지웅으로서는 막연했다. ‘엄청나게 바라지 않을까?’라고 생각만 할 뿐이지, 그 내면에 침전된 욕망의 크기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다.
“지금의 자네가 아니었으면, 아마 세계 전쟁이 일어나고도 남았을 걸세. 자네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말이지.”
“그 정도인가요.”
괴수 때문에 전쟁은 사라졌다. 그러나 전쟁만이 젊음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이라면, 아마 세계 부호들은 국가와 권력자와 국민을 뒤에서 부추겨서 전쟁을 일으켰으리라. 그 전쟁에 놀란 괴수들이 날뛰고, 무수한 피가 대지에 뿌려진다 한들 상관하지 않으리라. 욕망, 특히 가진 자의 비뚤어지고 저열한 욕망이 응집했을 때, 세상은 지옥이 된다.
비로소 유지웅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무서워서? 아니다. 젊음을 탐욕하는 그들의 갈증이 얼마나 지독한지 조금이나마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안슐의 눈이 가늘게 웃었다.
“너무 복잡하면 그냥 공개된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면 되네. 은닉 재산만 해도 그들은 충분히 평생을 호화롭게 보낼 수 있을 테니까.”
전 재산을 넘기는 쪽이 차라리 간단하고 금방 끝난다. 굳이 현금화를 해서 지불할 필요는 없다. 지분, 동산은 즉시 넘기면 그만이고 부동산의 경우는 소유권 명의를 넘기면 된다. 오히려 현금화를 해서 지불하는 게 번거롭고, 값도 떨어진다.
“사우디 국왕의 비자금만 해도 공개된 재산의 30% 이상은 될 걸세.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해도 군말 없이 내놓을 거야. 그리고 한 번 선례가 생기면 그 뒤는 쉽지.”
그것도 유지웅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유일무이한 젊음의 비약을 지녔고, 팔지 않아도 아쉬울 게 전혀 없는 입장인데다가, 힘으로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전쟁? 불가능하다. 막말로 브라우니 하나만 따져도 전략병기나 마찬가지다. 레드 몹도 아니고 길들인 블랙 몹을 무슨 재주로 막아낼 수 있을까. 미국 등 초강대국이 괜히 그에게 살랑거리는 게 아니다.
* * *
“사모님. 성공했습니다.”
“그래요?”
“예. 보수는 말씀하신 대로 충분히 지급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흰 가운을 입고 앉아 책을 보던 정효주는 생긋 웃어주었다. 가운 아래 슬쩍 드러난 하얀 다리는 치명적일 정도로 매혹적이다. 비서실장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돌아섰다.
탁.
혼자가 된 정효주는 가벼운 한숨을 내뱉으며 책을 덮었다. 머리를 쓸어서 귀 뒤로 넘기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지웅이 알면, 화낼까? 안 낼까? 화낼까? 안 낼까? 화낼까요, 안 낼까요…….”
꽃병의 꽃을 한 줄기 뜯어낸 그녀는 꽃잎을 한 장씩 떼어내며 중얼거렸다. 한 장에 화낼까, 두 장에 안 낼까, 세 장에 화낼까, 네 장에 안 낼까…….
사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으나, 젊음의 비약에 관해서는 그녀가 더욱 마음이 급했다. 신랑 앞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척 연기를 했을 뿐이다.
‘같이 늙지 않으면 더 좋을 텐데.’
유지웅은 스물여섯치고 매우 젊다. 밖에 나가면 다들 이십대 초반으로 본다. 잘 먹고 관리를 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력과 정욕도 아직 왕성하다. 오히려 처음 연애하던 시절보다 더 밝히고, 힘도 좋아졌다.
그녀는 신랑이 자신처럼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있기를 원했다. 오히려 그보다 더욱 그가 늙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 그녀는 결심했다. 젊음의 비약을 인체에 사용하기로.
도의를 어긴 것은 아니다. 열 개의 그린 결정체는 철저하게 선별된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다. 그들은 늙고 병들어 죽을 날이 머지않은 노인들이었다. 단순히 늙고 체력이 떨어진 게 아니라,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병자들이었다. 그리고 매우 가난했다.
비서실장은 그녀의 지시대로 그들에게 딜을 제안했다. 약의 효능과 검증되지 않은 안전성을 밝히고, 복용을 제안했다.
그 대가로 평생 의료비 혜택, 주택, 10억의 사례금을 약속했다. 만약 약의 부작용으로 죽게 되면 피험자가 원하는 사람에게 그 혜택을 준다고 약속했다.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늙은 병자들이 그것을 거부할 리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적, 아니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들 전원이 모두 10년 가량 젊어진 것이다.
8, 90세 노인이 10년 정도 젊어진다고 해서 큰 반향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몸의 주름이 줄어들고 기력이 조금 좋아지는 정도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골골거리던 그들에게는 엄청난 기적이었다.
“블루 결정체는 어쩌지?”
블루 결정체를 같은 방법으로 효능을 입증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 파급력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아직 젊음의 비약은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공개할 의사가 없었다. 누구나 복용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자칫 대중의 박탈감, 반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노인도 스무 살의 청년기로 돌아간다? 그런 약의 존재가 공표되면 세상은 뒤집어진다. 물론 제니스가(家)는 충분히 그 혼란을 통제할 힘이 있지만, 번거로운 일을 사서 할 필요는 없다. 약의 존재를 알리게 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무엇보다 아깝다. 이 비싼 약을 아무한테나 함부로 실험을 하기에는.
“연구소로 갈 준비를 해줘요.”
정효주는 비서실에 지시를 내렸다. 유지웅과 정효주는 각각 개별 비서진을 갖고 있었다. 양측 비서진은 업무에 있어 서로 협조하기도 하지만 모든 정보를 공유하지는 않는다.
V-23을 타고 정효주는 제니스 연구소에 도착했다. 그녀는 여비서 한 명만 대동했을 뿐, 특별히 경호원을 거느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경호원이 필요 없는 존재다.
“사모님, 오셨습니까?”
연구 중인 최윤을 대신해 기획통제실장이 얼른 나와서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는 끄덕이고는 앞장을 섰다. 수행원들이 그 뒤를 줄줄이 따랐다.
“연구 상황은 어떤가요? 간략하게요.”
“최윤 박사가 결정체 숙성 현상과 접촉 결정체 반응 패턴을 연구 중이고, 가렌 박사는 핵물리학과 결정체학의 통합 이론을 연구 중입니다. 레지나 박사는 숙성 현상에 관해서 두 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오래 걸리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몇 년 안에 마무리할 수 있는 연구가 아니니까요.”
“접촉 결정체 안전성 검토만 따진다면 얼마나 걸릴까요?”
“이론적 입증 자체야 얼마 안 걸릴 것으로 보지만, 역시나 임상 실험의 문제가 걸립니다.”
이론적으로 문제가 없다 해도 신약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다양하고 많은 임상실험이 필요하다. 그것만큼은 법을 바꾸거나 어기지 않는 한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번이면 될 텐데.’
그녀는 생각했다. 인체 대상 임상 실험은 그린 결정체로 이미 성공을 거뒀다. 남은 것은 블루 결정체다. 여러 번 할 것 없이 한 번만 성공하면 된다. 어차피 정식 승인을 얻어 시판을 할 것도 아니다.
비약의 구매자가 될 수 있는 부호들, 그들만 안전하다고 납득시킬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신랑은 약을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살림하는 입장에서 그녀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아이도 셋이나 되는데 이왕이면 많이 물려주면 얼마나 좋아?
복도를 걷는데 문득 저기서 한 명의 노인이 허겁지겁 뛰어오는 게 보였다. 노인이라지만 아직 60대로, 창창한 가렌 박사였다. 정효주를 알아본 가렌은 얼른 멈췄다.
“아니, 사모님. 오셨습니까?”
“네. 조금 전에요. 박사님은 어디를 그렇게 급히 뛰어가세요?”
“미국에 갈 일이 있어서요. 지금 공항으로 가려던 참입니다.”
“공항이요?”
그러고 보니 세종시에는 공항이 없다. 연구소 직원들이 공항을 이용하려면 서울을 경유해서 인천공항을 가야 한다. 청주 공항도 있긴 한데 인천공항을 가는 게 더 낫다. 서울까지 전용 자기부상열차 철로가 뚫려 있기 때문이다.
‘전용 공항이나 하나 지을까?’
직원들을 위해서 공항이나 하나 지을까 생각이 들었다. 적자가 나겠지만 언제는 이 연구소도 적자가 아니었던가.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부터 공항을 짓는 게 나을 거 같기도 했다.
“그러시네요. 그런데 미국에는 무슨 일이세요?”
“아, 은사님이 계신데 연구 관련해서 그분께 알려드릴 소식이 있어서요.”
“전화로 하시면 되지 않나요?”
“그 분이 귀가 안 좋으셔서 바로 옆에서 크게 외치지 않으면 잘 못 듣습니다. 또 직접 보여드릴 것도 있고 해서요.”
“귀가 안 좋으세요?”
“예. 올해 116세가 되시다 보니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젊은 시절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셔서 특히 더…….”
“잠깐만요, 그 분이 은사라고요?”
“예. 니트로 교수님이라고,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신 분이시죠. MIT 출신 최고의 핵물리학자이십니다.”
가렌이 최고의 핵물리학자라는 건 정효주도 들었다. 그녀는 신랑이 하는 일이라면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다. 오히려 신랑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편이다.
가렌의 은사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하기야, 나이를 고려하면 오래 전에 은퇴했을 테니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MIT 최고의 핵물리학자’라는 가렌의 자부심이 그녀에게 딱 꽂혔다.
“116세시라고요?”
“예. 안 그래도 걱정입니다. 120세 시대라고는 하는데 워낙에 젊은 시절 건강관리를 잘 못하셔서…… 요새는 눈도 잘 안 보이시는 거 같더라고요.”
“건강도 안 좋으시고요?”
“그래서 자주 뵈려고 노력 중이죠.”
정효주는 조용히 웃음을 띠었다.
“가렌 박사님. 혹시 저도 동행할 수 있나요?”
“예?”
“니트로 교수님이라는 그 분, 저도 한 번 뵙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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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줄 수 있는 게 이 예산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