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90)
00590 왕관의 무게 =========================================================================
「내가 이런 업적을 냈는데, 공손하게 예산을 갖다 바쳐야지.」
과거 니트로 교수는 휘버의 그런 느긋한 태도를 볼 때마다 속으로 몹시 부러워했다. 그는 예산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예산이 자신에게 매달리게 만들었다. 그가 논문, 특허를 발표할 때마다 온갖 국가기관, 재단, 기금에서 예산을 갖다 바치지 못해서 안달이 나곤 했다. 제발 자기들 돈을 받아서 연구에 좀 써달라고 사방에서 줄을 섰었다.
핵물리학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니트로는 다시 태어날 때 결심했다. 더 이상 과거처럼 비굴하게 살지 않으리라! 이제부터는 예산이 날 쫓아다니고, 목을 매게 만들어주겠다! 나라고 휘버처럼 못 살 건 없다!
물론 그랬긴 하지만…….
“이야기는 들었어요. 대단한 업적을 일구셨더군요.
“아하하, 별 거 아닙니다. 회장님 은혜가 아니었으면 빛을 보지 못했을 연구입니다.”
“그나저나 상온 핵융합로가 이미 완성됐다면, 가렌 박사님이 하는 연구는 필요가 없어진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분야든 지속적인 개량, 연구가 필요합니다! 제가 고안한 이 장치는 대형 발전 설비에 어울리는 모델입니다! 소형화 모델을 고안하기 위해서라도 가렌 박사의 후원을 포기하셔서는 안 됩니다!”
“아, 그런가요?”
“물론이지요. 가렌 박사를 제가 오래 가르쳐봐서 아는데 정말 뛰어난 과학자입니다. 결코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하마터면 제자 녀석의 예산을 끊어버릴 뻔한 니트로 교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차분하게 눈앞의 청년을 뜯어보았다. 혹 그가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제니스 공격대장. 세계 최고의 부호이자, 패권을 쥔 개인.
이 사람의 한 마디에 세계 경제, 정세가 뒤죽박죽이 된다고 하니 가히 그 무게감이 실감나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하고 건실한 청년 같은데.
“한국 생활은 할 만하신가요? 어디 불편하신 건 없습니까?”
“신경 써 주신 덕분에 편안합니다. 몸도 마음도 모두 여유로우니 연구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니트로 교수는 자신에게 젊음을 준 이를 위해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제니스 연구단지의 저력은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대단했다.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 최고의 시설에서, 최고의 후원을 받으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한국 자체적인 인재 생산 토양은 빈약한 편이었다. 특히 대학의 석학 양성 과정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뒤떨어졌다.
본래 후진 양성에 더욱 힘을 썼던 니트로 교수는 그래서 연구소에 투신하는 대신 학계에 발을 담근 것이다. 10년, 20년 뒤를 내다보고 물밑 지원 작업을 자청한 것이다. 어차피 지금 제니스 연구단지는 충분히 잘 돌아가고 있으니.
“니트로 교수님 같은 분이 연구소에 안 들어오시고 제 모교로 가신다고 처음 들었을 땐 의아했습니다만, 지금은 그 마음이 이해가 가네요. 오히려 고마울 지경입니다.”
“아닙니다.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을 뿐입니다.”
“부디 제2의 조국이라 여겨주시고, 편안하게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
“영광입니다.”
사실 유지웅은 영 적응이 안 됐다. 겉보기에는 자신보다 어린 미소년이다. 하지만 그 속은 116년을 살아온 노교수의 영혼이 들어 있었다.
“저는 언제까지 비밀로 해야 합니까?”
“아, 교수님 젊어지신 거요?”
“예.”
“뭐, 굳이 엄격하게 지키셔야 할 기밀은 아닙니다. 젊음의 비약이 대중에 알려지면 아무래도 혼란스러워지잖아요? 교수님이 알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알려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시끄러워지지 않도록 주의만 해주시면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깍듯하고 서열 의식이 확실한 태도를 보니 불현듯 테레사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여러 모로 닮았네? 생김새는 다르지만 캐릭터가 비슷하다.
“그럼 이제 특허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니트로 교수는 바짝 긴장했다. 드디어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나왔다.
유지웅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협상을 직접 하는 것은 오랜만이라 조금 흥분이 되었다.
‘절대 놓쳐선 안 된다고?’
자문단에서는 심사숙고한 끝에 이 연구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보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유지웅도 자세한 설명과 이유를 듣고 매우 놀랐다.
세상에, 30짜리 그린 결정체 하나로 일 년 동안 대한민국 전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고도 남는다니. 무려 효율이 2,400배가 넘지 않은가?
물론 한계도 있다. 니트로 교수가 고안한 핵융합로는 대형 발전 설비다 보니, 차량, 선박, 항공기 등에는 장착이 불가능하다. 즉 전력공급용 발전소에만 쓸 수 있다.
그렇다 해도, 72,000의 결정도가 필요한 작업을 30짜리 결정체로 대체할 수 있으니, 무척이나 높은 효율이다.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에너지난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곧 돈이자 힘이 된다는 뜻이다.
“저는 교수님의 연구를 사고 싶습니다.”
“특허를 매각하기를 바라십니까?”
“글쎄요.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네요. 저는 독점 라이선스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는 회장님이라면 매각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이신가요?”
“회장님은 제게 가장 큰 것을 주셨죠. 저 역시 남자입니다. 저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말에 유지웅은 살짝 생각에 잠겼다. 특허를 매각할 수 있다. 그건 젊음을 베풀어준 은혜도 있지만, 정당한 대가를 치러 주리란 믿음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지웅 역시 후려쳐서 매입할 마음은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행위다. 오히려 프리미엄까지 생각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역시 특허 매입은 곤란하겠네요. 그냥 독점 라이선스로 가죠.”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그게 아니라요. 너무 대단한 기술인데, 그것을 사들이면 괜히 구설수에 오르지 않을까 해서요. 매입하나 독점 라이선스나 비슷비슷한데 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뜻이 그러시다면야 알겠습니다.”
“일단 여기에 사인해주세요.”
“계약서가 벌써 나왔나요? 아직 특허 통과도 안 됐을 텐데…….”
“아, 그거 말고 다른 거예요.”
니트로 교수는 계약서를 살폈다. 특허 관련이 아니라 교수직 관련 계약서였다. 제일 상단에 선명하게 박힌 ‘전임교수 종신고용보장계약서’라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건 뭡니까?”
“교수님 같은 인재는 이런 예우가 당연하죠. 서명만 하시면 됩니다.”
“이렇게까지…….”
니트로는 조금 감격했다. 어떻게나 예산을 줄이지 못해, 대학에서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던 MIT 시절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는 가볍게 계약서를 훑어보고는 서명을 위해 펜을 쥐었다. 그러다가 멈칫했다.
“아, 그러고 보니 말인데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그, 재단 재무이사님 말인데요. 저번에 연구 지원 예산 문제로 저를 한 번 찾아오셨는데…….”
“아, 혜주가요?”
유지웅이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르자 니트로는 더욱 긴장을 했다. 정말이었어! 역시 처제였던 거야!
“그러고 보니 혜주가 니트로 교수님께 결례를 하지는 않았나 조금 염려 되네요. 겉보기에는 어린 청소년이셔서.”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결례를 하지 않았나 몹시 걱정이 됐습니다. 정 이사님이 제 이야기는 따로 하시지 않던가요?”
“그런 거 없던데요?”
뭐하는 사람이냐, 뭐 연구하던 사람이냐, 몸은 건강하냐,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느냐, 뭐 그런 이상한 걸 물어보기는 했지만 유지웅은 적당히 넘어갔다.
니트로 교수는 마음을 놓았다. 처제란 무기를 내세워서 예산 갖고 장난치는 게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도 그렇게 치사하게 나오지는 않은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서명을 막 하려는 순간 노크 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이사장실 문이 열리고, 정혜주가 들어섰다. 니트로 교수는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처럼 흠칫해서, 서명을 하려는 자세 그대로 굳었다.
“형부, 저 왔어요.”
“왔어?”
“니트로 교수님도 여기 계셨네요? 안녕하셨어요.”
“아, 안녕하셨습니까…….”
“어머, 표정이 너무 안 좋으시다. 무슨 귀신이라도 보신 듯한 얼굴이세요.”
“그, 그런가요? 점심을 잘못 먹어서…….”
“저런, 조심하셔야죠. 이제 교수님 몸은 교수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연주대 결정체학과 학생들 모두의 것인데요.”
예쁘게 생긋 웃는 모습이 이렇게 살 떨리게 살벌할 수도 있다는 걸, 니트로 교수는 처음 알았다.
“아, 그러고 보니 두 분이 꽤 친하겠네요. 혜주 너, 수업도 교수님 거 듣고 있지?”
“그럼요. 전필이 세 개나 되는 걸요. 그리고 대학원 과정도 준비하고 있고요.”
“대학원 가게?”
“네, 가야죠. 신결정체물리학이 앞으로 차세대 기초과학 분야를 주름잡는다는데, 박사는 못해도 석사는 따야죠.”
“흠, 혜주 넌 과학자 스타일은 아니라고 언니가 걱정 많이 하던데.”
“에이, 그래도 재단 운영하려면 기본적으로 알 건 알아야 하잖아요? 안 그래요, 형부?”
형부라는 부분에서 이상하게 강조가 들어갔다. 니트로 교수는 흘끔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에 찔끔했다. 정혜주는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교수님, 서명요.”
“예? 아, 예.”
니트로 교수는 정신없이 서명을 마쳤다. 정혜주가 고용계약서 한 부를 받아들고는 일어섰다.
아니, 왜 저 여자가 저걸? 설마 종신고용 이야기를 뒤에서 꺼낸 것도 저 여자가? 유지웅 회장이 준비한 게 아니라?
“그럼 앞으로 자알 부탁드려요. 종신교수님.”
……괜히 종신교수 한다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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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세 작품을 연달아 정주행했더니 바로 글에서 티가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