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597)
00597 왕관의 무게 =========================================================================
놀란 유지웅은 급히 인공호수로 달려갔다. 소녀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까르르 웃으며 헤엄을 치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유지웅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무슨 전설의 고향도 아니고! 다리가, 다리가 없어! 그리고 웬 꼬리가! 이거 장르가 키메라였나!
“애, 애야.”
“응. 아빠.”
“아빠라고 부르지 말고!”
“아버지?”
“그것도 말고!”
“그럼 아버님?”
“그건 괜찮을지도……가 아니라! 지금 빨리 나와 봐! 어서!”
아무리 사람 적은 지방 병원이라지만 이렇게 훤한 대낮인데 본 사람이 얼마나 될 지는 알 수 없다. 유지웅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급히 손을 내밀었다. 소녀가 그의 앞으로 헤엄쳐 왔다.
보니까 환자복 하의는 어디다 벗어 던졌는지, 상의만 입고 있는 차림새였다. 물에 젖어 착 달라붙은 차림새는, 한 열 살만 더 먹었으면 아찔했을 것이다. 지금은 볼 거 하나도 없다. 꼬리 빼고는.
유지웅은 급히 소녀를 안아 올렸다. 비싼 옷이 물에 흠뻑 젖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웃옷을 벗어 소녀의 다리, 아니 꼬리를 가리기 위해 감쌌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소녀의 꼬리에서 희미한 빛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꼬리가 점점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빛이 사그라지고 남은 것은 날렵하게 잘 빠진 두 다리였다.
유지웅은 망연자실했다.
“이, 이거 뭐야. 대체…….”
소녀는 지금 무슨 큰일이 벌어진 건지 전혀 모르는 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끌어안기만 했다. 이 녀석, 대체 왜 자신을 아빠로 여기는지 그는 도대체가 이해가 안 갔다.
그래도 하나만큼은 명확했다. 이 아이, 여기에 두면 안 될 것 같다. 다리가 물고기 꼬리로 변했다가 다시 다리로 변하는 꼴을 의료진이나 다른 직원, 환자들이 목격했다가는 무슨 소란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무슨 뭍으로 올라온 인어공주 이야기도 아니고.
“최 비서 어디 갔어요?”
“사모님 지시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됐고, 빨리 출발 준비해 줘요. 서울로 바로 가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V-23을 출발시켜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괴수 관리소로 내려올 때 한 기의 V-23을 둘이서 타고 왔는데, 그건 정효주가 타고 브라우니한테 가버렸다.
“알았어요. 빨리 서둘러요.”
“예.”
먼저 서울 간다고 알리려고 정효주한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신호음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이윽고 서울에서 출발한 V-23이 도착했다. 유지웅은 여전히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소녀를 안고 V-23에 올랐다. 귀찮게 달라붙는 게 이럴 때는 편하다. 서울까지는 금방이었다.
“한 부장.”
“예. 회장님.”
한원희 가정부장은 조금 긴장했다. 그녀는 평소 유지웅과 직접 말을 섞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가 사람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집안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자신을 불러서 지시를 내리는 것도 처음 이는 일이었다.
‘무슨 일이실까?’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데 뜻밖의 말이 나왔다.
“본채 내부, 그리고 본채 근처에 있는 직원들 전원 별채로 물리세요. 그리고 본채 쪽은 접근도 하지 못하게 하세요.”
“예?”
상상도 못한 지시라 한원희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져, 해서는 안 될 반문을 해버렸다. 그리고 아차 했다.
“아무도 본채 쪽은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시라고요. 지금 당장.”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실책을 깨달은 한원희는 허리를 급히 숙이고 물러났다. 잠시 후 본채를 청소 관리하던 인원들이 모조리 빠져나갔다. 본채 근처의 정원수를 다듬던 정원사도 마찬가지였다. 본채는 그렇게 텅 비었다.
“써, 무슨 일입니까?”
“그럴 일이 있어요. 쿤겐, 쌍둥이 좀 봐줄래요? 쌍둥이는 별채로 보내기는 좀 그래서.”
직원들을 못 믿는다기보다는, 쌍둥이 몸값이 워낙 천문학적인 액수라서 함부로 본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있었다. 테레사는 알겠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고마워요.”
테레사가 4층으로 올라갔다. 유지웅은 그제야 살금살금 이착륙장으로 가서, V-23에 숨겨둔 소녀를 데려왔다. 소녀는 그의 품에 안긴 채 신기한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빠. 저건 뭐야? 저기, 저거!”
“……저건 나무인데, 제발 아빠라고 부르지 말아줄래? 누가 니 아빠니, 응?”
평생 소모할 심력을 오늘 다 소진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거 쌍둥이도 크면 이렇게 아빠를 괴롭히려나?
“물을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여기 있어.”
“와아!”
유지웅은 1층에 있는 실내 수영장에 소녀를 풀어줬다. 원래는 이런 어린아이를 물가에 두는 건 위험해서 안 된다. 하지만 물고기 꼬리로 잘만 헤엄치던 아이인데 뭐가 문제랴 싶었다.
소녀는 옷을 벗어던지고 물에 뛰어들었다. 곧 희뿌연 빛이 일어나더니 매끈한 두 다리가 푸른 물고기 꼬리로 변했다. 첨벙, 첨벙 잘만 헤엄치고 다닌다. 거기에 잠수까지 한다.
‘자, 잠깐!’
문득 유지웅은 2분이 넘었는데도 소녀가 올라오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수면 아래에서 빠르게 쌩쌩 잘만 헤엄치고 있었다. 숨이 막혀서 고꾸라진 건 아니고 아직도 기운이 남아도는 것이다. 진짜 정체가 물고기인가?
‘대체 정체가 뭐지? 사람은 아닌 거 같고, 혹시 신종 괴수? 막 나미 같은 그런 거?’
왠지 이 가설이 가장 그럴듯하지 않는가?
‘맞아! 브라우니도 저게 사람인지 괴수인지 헷갈려서 그냥 괴수로 보고 잡아온 게 분명해! 꼬리 달린 걸 보고 누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겠어. 가만, 그럼 결정도 검사를 하면 되나?’
유지웅은 부리나케 올라가서 결정도 간이탐지장비를 가져와서 소녀를 향해 조준했다. 그리고 버튼을 눌러 작동시켰다.
삑삑.
「0.」
“뭐야, 이거?”
유지웅은 기가 막혔다. 결정도는 0을 나타내고 있었다. 뭐야, 그렇다면 괴수가 아니란 소리야? 저 모습 어디가?
‘설마 무슨 변이 능력을 가진 새로운 타입의 레이더?’
이 가설도 아주 억지는 아닌 것 같은데? 유지웅은 혼란스러웠다. 이 탐지장비는 효웅산업에서 새로이 만든 것으로서, 규소 기반 괴수라 해도 탐지를 피해갈 수 없는 종류였다. 즉 소녀는 규소기반 괴수도 아니라는 소리가 된다.
그럼 정말 인간? 막 신체 모습을 변이시키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비TDH 타입의 레이더?
“저기, 애야.”
슬쩍 불러봤는데 잠수 중이라 들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그런데 바로 알아들었는지 소녀는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헤엄쳐 와서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었다.
“아빠, 불렀어?”
이제는 지치지도 않는다. 왜 아빠냐고 뭐라 뭐라 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거 같다. 아니면 들은 체도 않고 그냥 마이 페이스로 무시하는 것이던가.
“너 이름이 뭐야?”
“이름? 내 이름?”
“그래. 네 이름.”
소녀는 잠시 갸우뚱거렸다. 손가락 하나를 뺨에 대고 곰곰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 깜찍하리만치 귀여웠다. 유지웅은 문득 어느 놈인지는 모르지만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런 아이가 딸이라면 참 키울 맛 날 것 같다. 아, 꼬리는 빼고.
“아빠, 내 이름도 몰라?”
“……내가 네 이름을 어찌 알까.”
“엄마는 아빠가 내 이름 안다구 했는데.”
“몰라. 모르니까 이름이나 말해 봐. 그래야 엄마를 찾든지 말든지를 할 거 아냐.”
“내 이름은 피즈야.”
“그래. 피즈…… 잠깐! 뭐라고?”
계속되는 아빠 아빠에 지쳐 있던 유지웅은 무심코 반응하다가 깜짝 놀랐다. 지금 이름이 뭐라고 했어?
소녀는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
“피즈. 그게 내 이름이야.”
* * *
드디어 비명소리가 멎었다. 사육소 관리인들은 무슨 복날 강아지 쥐어 패는 줄 알았다. 아니, 패는 소리는 안 나는데 강아지가 고통에 낑낑대는 소리만 났다. 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윽고 정효주가 후련한 얼굴로 돌아왔다. 먼지 하나 뒤집어쓰지 않은 걸 보면 직접 몸으로 팬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대체 브라우니의 저 고통스러운 비명은 뭐지?
‘역시 탱커.’
겉모습은 영락없이 여리여리하게 생긴 미소녀지만,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여자 아닌가. 김 비서는 과연 하며 속으로 가벼운 신음을 흘렸다.
“최 비서에게 맡긴 일은 어떻게 됐나요?”
“사흘 정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김 비서도 최 비서가 무슨 일을 맡고 서울로 떠났는지는 알지 못한다. 비서진은 각 개인의 판단 하에, 다른 동료와 공유해서 해결해야 하는지 혼자만 알아야 하는지를 판단한다.
이를테면 회장님 일가에 관한 중요하고 은밀한 업무일 경우, 가급적 자기 안에서 해결하는 게 원칙이다.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김 비서가 최 비서한테 전달받은 말은 사흘 정도 걸린다는 게 전부였다.
“더 빨리는 안 된다고 하던가요?”
“예. 그건 무리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죠. 그이는요?”
“그것이…… 서울로 급히 올라가셨습니다.”
“네? 서울로요?”
“예. 서울에서 수송기를 불러서 그걸 타고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본가에 도착하셔서 특이한 지시를 내리셨는데…….”
정효주는 안색이 살짝 굳어서 물었다.
“뭔가요?”
“본채에서 사람들을 모두 물리셨다고 합니다. 한 부장 말로는 뭔가 아랫사람들에게 보이면 안 되는 게 있는 거 같았다고 합니다.”
흑석동 팰러스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유지웅? 아니다. 바로 안주인인 정효주다. 어디나 권력의 속성은 같지 않은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모든 그림이 그려진 정효주는 그만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단단히 쥔 주먹이 바르르 경련을 했다.
‘유지웅. 너 설마, 진짜로 니 애야?’
지금 성까지 붙여서 이름 불렀다.
바짝 긴장해라.
============================ 작품 후기 ============================
효주가 성까지 붙여서 주인공 이름 부른 건 이게 처음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