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03)
00603 군단의 참새 =========================================================================
하얀 전용기가 미끄러지듯이 착지했다. 완전히 정지한 항공기에 계단차가 다가와서 장착되었다. 문이 열리고, 아랍풍 터번을 두른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햇살이 눈부신 듯 슬쩍 얼굴을 가린 청년은 곧 계단 아래서 손을 흔드는 청년을 발견했다.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안슐!”
“마중 나와 줘서 고맙네.”
청년은 다름 아닌 젊어진 안슐이었다.
그는 유지웅의 제안대로 먼저 반응한 그린 결정체를 복용했다. 장년인 그는 니트로와는 달리 아직 블루 결정체를 복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삼십대 초중반으로 젊어져야 한다. 그린 결정체의 효능은 약 10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평균 수치였다. 결정체마다, 그리고 사람마다 조금씩 개별 차이가 존재했다. 안슐의 경우에는 놀랍게도 이십대 초중반까지 젊어질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젊어졌어.’
그보다 유지웅이 놀라워한 건, 청년 시절 모습을 되찾은 친구가 지나친 꽃미남이라는 사실이다. 본래 모습도 곱게 나이를 먹은 멋진 미중년 스타일이었지만, 리즈 시절 모습은 같은 남자로서 한숨이 나올 정도로 너무 잘생겼다. 역시 왕가의 핏줄은 핏줄인가 보다.
“질투 나요. 같이 다니니까 너무 비교돼.”
“왜 그러나? 자네도 멋있는 남자일세.”
“쳇. 빈말이잖아요?”
“그렇지 않아. 무엇보다 자네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가? 지구상에서 그 부분에서 자네를 이길 남자가 어디 있나?”
한때 안슐은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다. 갓 레드 몹 레이드를 시작했을 무렵, 언제쯤 안슐의 자산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그저 까마득하기만 했다.
지금은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개인 자산으로도, 가문 자산으로도 유지웅과 비교 선상에 놓일 수 있는 이가 없다. 안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슐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돈을 떠나 그 무언가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아득한 벽이었다.
“아무튼 자네 덕분에 다시 한 번 젊음을 만끽하고 있네. 정말 고마워.”
“친구니까 이 정도는 당연한 거죠. 안 그래요?”
“하하, 자네 입으로 그 말을 들으니 내 민망하구만.”
“이제 아셨어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민망했는지?”
“그랬나? 하지만 그런 민망함이라면 난 얼마든지 환영하네.”
“저도요. 마찬가지예요.”
전에는 아무래도 나이 차이가 삼촌뻘 이상 나다 보니 같이 다니면 조금 이질감이 들곤 했다. 정작 둘은 신경을 안 쓰지만, 주변에서 ‘뭐야?’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비슷한 또래로 보인다. 둘이서만 같이 놀러 다녀도 그런 시선을 살 일이 없어진 것이다.
유지웅은 생각했다. 서핑도 가야하고, 카지노도 가야하고, 등산도 가야하고, 스키도 타러 가야하고……. 어휴, 가야 할 데가 왜 이렇게 많지?
“요즘 조금 시끄럽더군.”
“어디가요?”
“이 나라 부호들 말일세.”
“아아, 그거요?”
공항 밖에는 유지웅이 타고 온 검은 리무진이 대기 중이었다. 비서가 문을 연 채로 대기 중이었다. 안슐이 먼저 오르고 다음으로 유지웅이 올랐다. 이윽고 경호 차량을 선두로 차가 출발했다.
“보니까 죄다 부정부패, 정경유착으로 한 재산 쌓은 사람들만 왔더라고요. 이 나라 부자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 밖에 없던데요? 웃기지 않아요?”
“그래서 기득권을 다 내려놓으라고 했나?”
“그런 사람들이 약 먹고 젊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약값 내놓은 거 이상으로 뜯어가려고 쥐어짜겠죠. 제 눈치 보면서, 슬슬 피하면서. 솔직히 외국 부자들이 자기 나라 뜯어먹는 건 별 상관없지만 여기는 제 나라잖아요. 전 그 꼴 못 봐요.”
“팔 생각이 없군.”
“그리고 선택의 문제죠. 젊어지고 싶으면 지난 세월을 송두리째 반성하면 되고, 그러기 싫다면 젊어지지 않으면 그만이죠. 강매는 안 해요.”
유지웅은 차내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 뜯었다. 안슐에게 건네고 자기 것도 다시 뜯었다. 둘은 가볍게 캔을 부딪쳤다.
“기득권 다 내려놓으면 사회 착취할 힘도 없으니 젊어져도 상관없을 테고요. 저는 시간 많이 지났다고, 반성한다고 봐주는 그런 거 없거든요. 시간 지났다고 봐주고, 반성한다고 봐주고, 나이 먹었다고 봐주고 하면 꼴이 어떻게 되겠어요.”
“자네만의 기준이 생겼군. 축하하네.”
“축하까지 할 일이에요?”
“방향성이라는 것은 중요하다네. 특히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왕족의 품위를 수십 년 이상 유지해온 사람의 말은 사소한 한 마디부터 뭔가 다르긴 하다. 유지웅은 픽 웃으며 다시 한 번 잔을 부딪쳤다.
“그럼 이 나라는 이 좋은 행운을 맛볼 부자들이 없는 건가?”
“있어요. 한 명.”
“벌써? 그게 누군가?”
“이한일 회장이라는 분인데, 엄청 깨끗하게 살아온 기업가시더라고요. 회사도 부정부패 하나 없고, 세금도 잘 내고, 사회 자선사업도 수십 년 동안 꾸준히 하시고.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오늘내일 하시길래 블루 결정체 싸게 팔았어요. 얼마에 팔았는지 맞춰볼래요?”
유지웅은 장난을 치는 아이처럼 물었다. 안슐은 잠시 생각을 하고 난 뒤 대답했다.
“1억 원?”
“……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10억이요.”
“그래도 거저나 다름없군. 이형준 회장이 땅을 치겠어.”
“그 사람은 안 돼요. 일성그룹 보니까 착취가 심하고 너무 이기적이에요. 그런 재벌가 회장이 젊어지면 뻔하다니까요.”
비약 구매를 위해 내놓은 재산 이상을 환수하기 위해 그 이상으로 긁어모으려고 할 것이다. 아니면 긁어모을 힘 자체를 박탈당하면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모든 기득권을 내놓으라는 것은 그런 의미이기도 했다.
“이한일 회장 같은 분에게는 얼마든지 싸게 팔 수 있어요. 그런 분이 젊어지셔서 다시 왕성한 활동을 하시면 사회에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안슐은 픽 웃었다. 부정한 기업가가 젊어지면 부정이 연장된다. 깨끗한 기업가가 젊어지면 사회가 건강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그런 지침이 다른 부호들에게 커다란 경종을 울려줄 것이다. 늙어서 죽음을 앞둔 이에게 젊음이란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가지고 싶은 것이다.
헌데 큰 오점을 남기며 살아온 사람은 그 젊음을 얻지 못한다면 어찌 될까. 훗날을 대비하여 바짝 경각심이 들게 될 것이다. 모든 이를 변화시키진 못해도 분명 효과는 클 것이다.
“더 싸게 해주거나 거저로 줘도 상관없는데, 그건 좀 아닌 거 같아서요. 어차피 극소수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인데, 너무 싸다면 괜한 기대를 품을까 봐서요.”
블루 결정체 하나의 원가만 5,000억 원 이상이다. 공급의 구조상 극소수의 인물만 혜택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굳이 10억 원의 돈을 받은 것이다.
“돈을 너무 많이 받으면 또 기업 꾸려나가는데 지장이 있을 테고, 그건 제 의도에서 어긋나잖아요.”
“이해하네.”
부패가 심한 외국 부호는 판매하지 않고, 부패하지 않은 외국 부호는 매우 비싸게 받고, 부패가 심한 국내 부호는 몽땅 다 받고, 부패하지 않은 국내 부호는 싸게 받는 것. 이것이 유지웅이 생각한 수출 드라이브였다.
“아참, 우리 집에 가면 깜짝 놀랄 일이 있어요.”
“뭔가?”
“가 보시면 알아요.”
안슐은 한때 나미에게 연모의 감정을 가졌다. 하지만 서로 다른 운명에 헤어져야 했다. 무엇보다 나미가 그를 연모했는지도 당시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인간의 감정에 여러 모로 서투르고, 어린아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피즈는 나미와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모습을 얻었다. 아마 깜짝 놀라겠지?
흑석동 저택에 도착했을 때였다.
“들어오지 마! 내가 할 거야!”
“저, 아가씨. 하지만…….”
“내가 한다니까! 내가 할 거야!”
집안이 꽤나 소란스러웠다. 문을 활짝 열어놓은 조리실에서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가정부 직원들이 조리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쩔쩔매고 있다가 유지웅을 보고 급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무슨 일이에요?”
“아가씨께서 손수 요리를 하시겠다며 안에 들어가셨습니다.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막고 계세요.”
“피즈가 요리를?”
“네. 회장님께 직접 요리를 대접하고 싶으시다며…….”
저택 고용인들은 현재 피즈를 카네기 가문의 사람, 즉 테레사의 먼 친척으로 알고 있었다. 유지웅을 아빠라 부르는 건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잃어서 그렇다고 대강 둘러댔다. 고용인들은 ‘제니스와 카네기 가문이 결합하나?’하고, 유세현과 피즈를 놓고 온갖 망상을 하는 모양인데, 다행히 입들이 무거워 울타리 밖으로는 일체 새어나가는 말이 없다.
“그 아이가 요리를?”
유지웅은 떨떠름했다. 아니, 인간의 모습을 얻은 지 석 달 밖에 안 된 아이가 무슨 요리를 한다고? 무엇보다 키가 그리 작은데 어떻게 요리를 하겠다는 거지?
“어떡하지? 안슐 왔는데, 요리가 하나도 준비 안 됐잖아?”
정효주도 난감했다. 잠깐 시부모를 뵙고 오느라고 몰랐다가 이제야 안 것이다. 조리실을 피즈에게 점령당했다는 걸.
“무슨 일인가?”
“아, 피즈 녀석이 지가 요리하겠다고 조리실을 차지했나 봐요. 이거 큰일이네. 요리가 하나도 준비 안 되어있어요.”
“피즈?”
귀에 익은 이름에 안슐은 갸웃거렸다. 대강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린 소녀 같은데, 이름이 다소 희한했던 것이다.
“다 했어!”
피즈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유지웅을 발견한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금세 총총 달려와서 덥석 안겼다. 옷에 튀김 가루가 덕지덕지 묻어 있어 비싼 양복을 다 버렸다.
“아빠! 내가 요리했어! 먹어 줘! 먹어 줘!”
“아빠?”
안슐은 더욱 의아했다. 유지웅은 피즈를 떼어내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정효주가 한숨을 내쉬고는 설명했다.
“나미 씨 새끼 기억나세요?”
“아, 그럼?”
“네. 그 피즈예요.”
* * *
나미란 이름은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하지만 안슐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을 뿐.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짓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미소에, 정효주는 덩달아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랬군요. 저 아이가 바로 그…….”
“네.”
“나미 씨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모르겠어요. 저희도 찾아봐야 해요. 저 아이는 실수로 브라우니가 바다에서 물어온 거라.”
자초지종을 듣고 난 뒤에도 안슐은 별반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미련을 덜어낸 건지, 아니면 그만큼 감정을 다스리는데 능한 건지는 정효주도 헷갈렸다.
“일단 요리가 다 된 거 같기는 한데…….”
피즈가 차려놓은 요리 접시는 제법 훌륭했다. 냄새도 좋았고 요리 모양새도 잘 갖춰져 있었다. 이대로 식기를 테이블에 올려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문제는…….
“이, 이게 다 뭐야?”
정효주가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유지웅은 왜 그러나 싶어 손가락으로 요리 몇 조각을 집어서 먹었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맛 괜찮은데? 왜 그래?”
“아, 아니야…….”
“피즈 너, 대단하네.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응! 응! 엄마한테 배웠어!”
“나미 씨 조기 교육 대단하네.”
정효주는 굳어진 표정을 애써 관리했다. 유지웅의 다리를 붙잡고 엉겨있던 피즈가 슬쩍 돌아봤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그녀에게 혀를 낼름 내밀었다.
‘당근, 해삼, 말미잘, 복어, 아귀찜…….’
조리실에 피즈가 잔뜩 만들어놓은 요리들은, 하나같이 그녀가 싫어하는 것들뿐이었다. 이거 의도적인 거 아냐? 대체 어떻게 저걸 다 알아냈대?
============================ 작품 후기 ============================
주인공이 세운 국내 적용 판매 기준에 따르면, 수십 년 이상 부정과 부패, 불법으로 축재한 부자 가문은 가문 전체의 그 모든 기득권을 포기해야 젊음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인물은 적당한 가격에 젊음을 사면, 그 젊음으로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더한 부패를 할 테니까요.
선대의 잘못까지 후대가 책임질 이유는 없다, 개인의 귀책은 가문 전체의 연대책임이 아니다, 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격이 맞지 않는다면 그냥 젊음을 사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주인공은 젊음의 비약을 사라고 강매하지도 않고, 사지 않는다고 불이익을 주지도 않습니다.
전혀 너무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부패한 부자가 적당한 가격에 다시 한 번 젊어질 수 있게 해주자는 발상이야말로 정말로 너무한 겁니다.
더러운 방법으로 평생에 걸쳐 축재해도 쉽게 젊어질 수 있다면, 본보기는 안 되고 오히려 사회는 더 혼탁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