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06)
00606 군단의 참새 =========================================================================
헬기가 위험을 무릅쓰고 전송한 화면을 보는 일본 관료들의 안색은 흙빛이 되어 있었다.
“크라켄…….”
어느 누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전설에 나오는 크라켄이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오징어와 문어를 섞어 놓은 듯한 몸집은 회색으로 빛나는 피부에 감싸여 있었다. 여덟 개의 다리로 딛고 선 몸집은 웬만한 고층 아파트보다 높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땅이 쿵 쿵 파이고 있었다.
“결정도가 오만이 넘는다고?”
“예. 제니스에서 확인해준 것이니 틀림없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은 일만이 조금 웃돌 거라고 하지 않았나?”
“총리 각하, 미국은 구형 탐지장비를 사용합니다. 체내에 결정체가 분산돼 있으면 가장 큰 결정도만 탐지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ZMD망은 탐지 거리는 짧지만, 체내에 존재하는 결정도의 총량을 측정하기 때문에 정확합니다.”
오만이라니, 오만이라니. 그것도 무려 세 마리나.
총리는 이것이 꿈이길 빌었다. 하지만 화면 속의 생생한 모습은 그런 현실 도피를 비웃고 있었다. 어떻게든 국가와 시민을 지켜내야만 했다.
“유지웅 회장은 언제 온다고 하던가?”
일본으로서는 유지웅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래도 도와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지금 일본은 제니스의 경제 식민지나 마찬가지니까. 일본이 다치면 제니스도 일본에서 얻을 이익을 잃게 된다.
……그 이익이 유지웅에게 있어서는 있으나 마나 한 푼돈이지만, 일본 내각은 그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정신 건강에 안 좋은 건 잊어버리는 게 좋다.
“총리 각하! 한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유지웅 회장이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뭐야!”
“말도 안 돼! 오만이나 되는 해양 괴수 세 마리를 잡으려면 제니스 본대가 있어야 하지 않소!”
“일본은 한국의 대태평양 괴수방어 전진기지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버린단 말이오?”
내각 관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를 벅차고 일어났다. 유지웅이 오지 않는다면 일본 멸망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이번에는 진짜로 나라 자체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설마?’
총리의 얼굴에 언뜻 불길한 상상이 스쳤다. 혹시 그것이 유지웅이 바라는 점은 아닐까?
일본이라는 국가가 사라지는 것을 방관하고, 일본을 아예 흡수 합병을 하려는 것은 아닐까? 유지웅은 경제적 식민지라는 관계만으로는 만족을 못하는 것일까? 설마 아예 일본을 자기만의 땅으로 만들려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 있다!’
오싹해졌다. 지금까지 유지웅이 걸어온 행보를 보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겨우 한 명의 레이더를 탐내 중국을 산산조각 낸 것도 그렇고, 로스차일드 가문을 인정사정없이 망가뜨린 것도 그렇고, 그의 눈을 피해 해외로 달아난 한국 정치가들을 사정없이 파멸시킨 잔혹함 또한 그랬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백만 명의 목숨 따위는 언제든지 한쪽 눈을 감을 수 있는 냉혈한, 그것이 국제 고위 인사들이 보는 시선이 아닌가. 대중적으로는 선량하고 훌륭한 부자로 알려져 있어 차마 공론화를 못할 뿐, 웬만한 국가의 고위 공직자는 유지웅의 차가운 피를 두려워했다.
“대신 브라우니를 보냈다고 합니다!”
“다행이다! 역시 유 회장이 일본을 버릴 리가 없지! IACP 코리아 일본 지부가 벌어들이는 수익이 얼만데!”
“한시름 놓았습니다! 브라우니라면 13만 5,000의 블랙 몹이니, 결정도 오만의 레드 몹 세 마리쯤은 문제없이 섬멸할 수 있을 겁니다!”
“오히려 유지웅 회장이 직접 오는 것보다 브라우니가 오는 게 더 빨라요.”
언제 나라 멸망 걱정을 했느냐는 듯 분위기는 다시 기쁨으로 가라앉았다.
총리는 겨우 한숨 돌렸다. 다행히 자신의 상상은 그저 상상으로만 끝난 모양이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잠깐 스치고 지나간 상상이었지만, 총리는 그 상상이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을 수 없었다.
‘그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이거야말로 호랑이 굴에서 호랑이가 배가 고파지기를 기다리는 곤혹스러운 심정이 아니고 무어겠는가.
* * *
“시간만 끌어! 물리면 안 돼!”
“다행히 녀석들은 속도가 느리다! 충분히 도주할 수 있다! 겁먹지 말고 시간만 끌어!”
“낙오자가 없도록 해!”
한미 연합 공격대는 크라켄 괴수들을 유인하는 작전을 펼쳤다. 본래 진격로에는 결정체 정제소가 있기 때문이었다. 최정원은 제니스의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탱커 전원이 동원된 작전이었다. 각 탱커는 한 명의 딜러를 데리고 다니면서, 세 방향에서 크라켄 괴수를 향해 딜을 퍼부었다. 크라켄 괴수가 화가 나서 쫓아오면 다시 딜러를 업고 거리를 벌린 다음 재차 딜을 했다.
다행히 커다란 몸집에 어울리게 녀석들은 이동 속도가 매우 느린 편이었다. 기껏해야 시속 50km 정도? 물론 일반인 입장에서는 빠르게 보이겠으나 탱커에게는 거북이 속도일 뿐이다.
역시 물에서 살던 놈들이라 뭍으로 나오니 어느 정도 거동에 제한이 있었다. 한미 연합 공격대는 그 점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크라켄 괴수들이 민가와 결정체 정제소 쪽으로 가지 못하게 방향을 틀었다.
―쿠오오오!
선두에 선 크라켄이 울부짖으며 두 개의 다리를 크게 휘둘렀다. 커다란 빨판이 붙은 다리가 채찍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야트막한 언덕이 잘려나가며 순식간에 평지가 만들어졌다. 다리 한 번 휘둘러 언덕의 흙과 바위를 말 그대로 날려 버린 것이다.
콰르르릉!
엄청난 양의 흙과 바위가 쏟아졌다. 천둥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크라켄이 일으킨 산사태에 한미 연합 공격대 대원들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저 괴물!”
“저 다리에 맞으면 흔적도 안 남겠다.”
모두가 생각했다. 탱커라 해도 과연 저 공격을 맞고 버틸 수 있을까? 방어장비만으로는 즉사를 겨우 면할 수준 같은데?
「다들 바짝 집중하세요! 계속 유인합니다!」
그때 최정원의 일침이 전파를 타고 울렸다. 무시무시한 공격력에 얼어 있던 연합 공격대원들은 정신을 차렸다.
「기동력은 우리가 월등히 좋습니다! 침착하기만 하면 피해 없이 유인할 수 있어요! 우리는 시간만 벌면 됩니다!」
최정원의 지휘 아래 연합 공격대는 침착하게 세 마리의 크라켄 괴수들을 유인했다.
“서둘러! 딜 해!”
“23번 팀, 바로 이동해요! 너무 가까워요!”
“13번 팀 딜러, 리타이어 했어요! 교대 인력은?”
“좌후방에 대기 딜러 있어요! 그쪽으로 이동하세요!”
“좋았어! 가자!”
유인 작전은 순조로웠다. 연합 공격대는 세 크라켄 괴수들을 민가와 공업지에서 멀리 떼어놓는데 성공했다. 크라켄 괴수들의 다리 힘은 무시무시했지만, 탱커와 기동력에서 차이가 너무 났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녀석들이지만, 의외로 별 거 아니라고 다들 안심하고 있었다. 그 짧은 방심이 화를 불렀다.
―쿠아아아아아앙!
멀리서 딜러가 날린 공격이 크라켄 괴수의 눈을 직격했다. 어쩔 수 없었다. 거리를 두고 날리는 공격이라 제대로 조준을 하기 어려웠다.
“딜러 공격이 괴수 눈에 맞았습니다! 더욱 날뛸지 모르니 충분히 안전거리를 확보하시고…….”
최정원은 말을 잇다 말고 혀가 굳고 말았다. 눈을 직격당한 크라켄 괴수의 온몸이 붉게 변색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해 보였다. 차가운 소름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번쩍!
크라켄의 온몸에서 피부가 갈라지고 있었다. 그 틈을 뚫고 휘황찬란한 흰 빛이 뿜어져 나왔다. 최정원은 질겁해서 외쳤다.
“엎드려! 다들 엎드려요!”
마치 레이저를 난사하듯이 수백 개가 넘는 빛줄기가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대원들은 납작 엎드려 빛의 공격을 피했다. 빛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모든 것이 불타고, 녹아내리고, 터져나가고 있었다.
최정원은 엎드린 자세로 고개를 들어 살폈다. 온몸이 붉은 색으로 변한 녀석이 피부에서 광선을 쏟아내고 있었다.
‘역시 광역기가 있는 놈들이었어.’
그럼 왜 진작 광역기를 사용하지 않은 것일까? 이쪽을 우습게 봐서?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쿠오오오!
다른 두 마리가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달려 나왔다. 붉게 변한 녀석이 쏟아내는 광선에 피아를 가리지 않고 마구 타격하고 있었지만, 그런 것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젠장!’
큰일이었다. 지금 잘못 움직였다가는 사정없이 휘몰아치는 빛의 공격에 휩쓸릴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있다가는 다른 두 마리한테 잡히고 만다. 보호막 없이는 휘두르는 다리 한 방에 몇 명씩 즉사하고 말 것이다.
그때였다.
―캬아아아아악!
날카로운 포효가 울렸다. 쿵쿵거리며 달려들던 두 마리 크라켄이 움찔했다. 최정원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상공에서 빠른 빛줄기 하나가 땅으로 내리꽂히고 있었다.
콰아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빛줄기는 사방에 빛을 난사하는 붉은 크라켄을 그대로 덮쳤다.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무시무시한 굉음이 울리고, 땅이 격렬하게 진동했다.
붉은 크라켄은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연기로 변해서 사라졌다. 즉사한 것이다. 그제야 최정원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뭔지 알아보고 부르짖었다.
“브라우니다!”
제니스 예비대는 반가웠고, 미국 공격대는 전율했으며, 화면으로 지켜보던 일본 정부는 경악했다.
세상에, 아무리 블랙 몹이라지만 오만이 넘는 괴수를 저리 간단하게 한 방에 죽여 버리다니. 이거 파워 인플레이션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캬아아아악!
브라우니는 몸을 일으켰다. 붉게 빛나는 깃털이 그렇게 소름끼쳐 보일 수가 없었다. 두 마리 크라켄은 주춤거리다가 양쪽에서 동시에 브라우니를 덮쳤다.
그러나 레드 타입 해양 괴수가 뭍에서, 그것도 블랙 등급인 브라우니를 상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브라우니는 왼쪽에서 달려드는 크라켄 괴수를 엄청난 속도로 꿰뚫었다.
두 번째 크라켄도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즉사하고 말았다. 연기로 변한 크라켄은 푸르게 빛나는 블루 결정체만 땅에 남겼다.
마지막으로 남은 크라켄이 주춤거렸다. 브라우니는 맛좋은 먹이를 감상하듯 침을 흘리며 여유 있게 녀석을 노려보았다.
세 마리나 되는데, 그래도 한 마리는 챙겨도 되지 않나? 주인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텐데?
그때였다. 마지막 남은 크라켄이 입을 크게 벌렸다. 날카롭게 돋아난 빽빽한 이빨 사이로 기괴한 포효가 터져 나왔다.
―끼엑! 끼에엑! 끄르르르륵! 끄르륵!
사방을 진동시키는 포효에 대원들은 귀를 막았다. 브라우니는 시끄럽다는 듯이 날개를 펄럭이고는, 마지막 남은 녀석에게 달려들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브라우니가 멈칫했다. 그리고 등을 돌려 수평선 쪽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브라우니가 왜 저러죠?”
“그, 글쎄요.”
대원들도 의아해서 웅성거리고 있을 때였다. 미국 공격대측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저쪽 바다에 엄청난 괴수 반응이 나타났어요!”
“또야? 이번엔 얼만데요?”
이미 한 번 미제에 실망한 최정원은 다소 짜증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미국 대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1, 13만이 넘는데요…….”
“뭐라고요?”
미국 장비는 괴수 체내에서 ‘가장 큰 결정체’ 하나만을 탐지한다. 그런 장비로 13만이 잡혔다는 것은 딱 하나를 의미한다.
“세상에…….”
시력이 월등히 뛰어난 탱커들은 볼 수 있었다. 먼 바다에서 푸른 물결을 옆으로 헤치며 솟아오른 거대한 머리를. 뾰족한 주둥이를 가진 유선형의 물고기 괴수는, 크라켄 세 마리를 합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캬아아아아!
이에 질세라 브라우니의 온몸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후후후. 정찰병 조무라기들 따위를 이기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블랙의 이름이 울겠구나.”
바다의 블랙 몹! 하늘의 블랙 몹! 두 숙적이 벌이는 대결!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일본의 운명은?
(나미의 클라쓰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