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10)
00610 군단의 참새 =========================================================================
“맹금 괴수들이 브라우니 통제를 따르는 것 같다고요?”
“네, 정황을 보면 그런 게 확실합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브라우니가 지른 포효가 무려 지구 반대편까지 도달했습니다. 이 포효로 맹금 괴수들을 불러 모은 겁니다.”
“아니, 대체 왜?”
“해양 괴수 군단에 대적하기 위해서겠지요. 숫자가 부족하다고 판단이 되자 즉시 부하들을 불러 모은 겁니다.”
“부하아?”
유지웅은 떨떠름했다. 아니, 정말 부하가 맞긴 해? 그리고 부하라면 대체 어느 세월에 저런 팀을 만들었어?
“진짜 이해할 수 없는 놈이네.”
그 말을 들었다면, ‘네게 돌려주고 싶은 말이다!’라고 발작을 할 사람들이 수백, 아니 수천은 넘지 않을까.
어쨌든 한국 정부는 수백 마리의 맹금 군단이 한국을 노리고 이동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이제는 강 건너, 아니 바다 건너 싸움 구경이다.
“승산은 어떨까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저도 몰랐는데.”
“괜찮습니다. 저희에게는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유지웅은 어이가 없었다. 이거 아무래도 정부에서는 자신이 브라우니한테 세력을 키우라고 모종의 지시를 내렸거나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완전히 헛다리짚고 있다.
“진짜 몰라요. 저도 이게 어찌 된 건지.”
“아, 그럼 그렇게 발표하겠습니다.”
“아니, 진짜 아니라고요. 브라우니, 이 녀석!”
이런 좋은 게 있으면 진작 주인에게 말을 했어야지, 왜 꼬박꼬박 보고를 안 해서 사람 놀라게 만들어?
유지웅은 즉시 지시를 내렸다.
“일본 가야겠어. 준비해줘요.”
* * *
―키에에엑!
―캬아아악! 캬아악!
땅에서는 한바탕 난전이 벌어졌다. 수면 아래에서 해안까지 접근한 해양 괴수들이 일제히 육지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먼 거리쯤은 아무 문제도 안 되는 듯이 녀석들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비행 괴수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착지했다.
비행 괴수들은 뒤늦게 습격을 깨닫고 반격에 나섰다. 해양 괴수들은 지느러미를 발처럼 이용해 땅을 딛고 서서,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대며 달려들었다.
선두에 선 상어 괴수가 입을 크게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에서 진한 광채가 터져 나왔다.
번쩍!
굵은 빛의 기둥이 쏟아졌다. 표적이 된 검은 날개 독수리 괴수가 날개를 펼쳐 온몸을 감쌌다. 검은 반점이 뚜렷한 날개가 방패처럼 감싸고, 빛의 기둥이 그 위를 강타했다.
빛이 사그라지며, 크게 벌린 부리가 포효를 토했다.
―캬아아악!
화가 단단히 난 검은 날개 독수리는 상어 괴수에게 득달처럼 달려들었다. 감히, 날개도 다리도 없는 녀석이! 물 밖에까지 나와서 공격해!
―캬아아악!
―케에에엑! 케엑!
온 사방이 난전이었다. 조류 괴수와 어류 괴수는 서로 엉킨 채로 백병전을 시작했다. 흙먼지가 온통 시야를 가리고, 굉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어, 어떡하지?”
웅크리고 방어진을 형성한 한미 연합 공격대는 이 상황에서 어찌해야 좋을지를 몰랐다. 저 멀리 바다에 있던 해양 괴수들이 언제 땅에 상륙했는지도 놀랍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물고기떼와 새떼가 서로 치고 박기 시작하며 시작된 떼쟁, 아니 난전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저기에 자칫 끼어들었다가는 뼛조각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이 많은 레드 몹들이 치고 박고 싸우는데 그 한복판에 있다니! 블랙 몹과 싸워도 이보다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 돼! 피해!”
어느 탱커가 부르짖듯이 외쳤다. 비명의 대상이 된 힐러는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흰반점독수리가 중심을 잃고 힐러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못해도 십여 명은 추락에 휩쓸릴 것으로 보였다.
“피해! 피하라고!”
근처에 있던 탱커와 근접 딜러들이 서둘러 잡아끌었다. 운동 신경이 딸리는 원거리 딜러와 힐러는 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피할 수 있었다.
쿠웅!
흰반점독수리가 떨어지며 굉음이 터졌다. 땅이 뒤흔들리고,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희뿌연 시야 속에서, 머리를 숙이고 질려 있던 대원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다.
“세상에…….”
눈앞에는 거대한 흰반점독수리가 쓰러져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불안했다.
“주, 죽었나?”
“아닐 거야. 죽었으면 블루 결정체로 변했겠지.”
“그럼, 왜?”
그때였다. 꼼짝도 않고 있던 흰반점독수리가 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가까이 접근하려던 대원들은 기겁을 해서 물러났다. 경련을 마친 흰반점독수리는 벌떡 몸을 뒤집으며 똑바로 착지했다. 몇 몇 대원들은 그만 흰반점독수리의 살기 가득한 흉포한 눈을 마주하고 말았다.
“……으으.”
대원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그나마 선두에 선 탱커가 장비를 꽉 쥐며 전의를 다졌다.
흰반점독수리는 크르르, 하고 나지막한 소리를 흘리며 대원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살기 가득한 맹금의 눈동자가 훑고 지나갈 때마다 대원들은 오금이 저렸다. 독사 앞에 선 개구리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일까.
꿀꺽.
긴장으로 침이 꼴까닥 넘어갔다. 흰반점독수리의 시선이 어느 딜러의 얼굴에서 멈췄다. 오금이 저린 딜러는 눈을 회피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흰반점독수리가 어떻게 나올지 두려웠다. 아니, 그 전에 몸이 굳어서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헌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흰반점독수리가 그대로 몸을 슥 돌린 것이다. 커다란 꽁지깃이, 마치 칼을 들며 부들부들 떠는 소년병을 놔두고 돌아서는 적군 장수의 커다란 등처럼 보였다.
그 뒷모습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너희는 내 상대가 아니야. 이 자리는 우리가 싸울 장소가 아니야. 그러니 더 강해져서 돌아와라. 하고.
날개를 펄럭이며 힘차게 양력을 얻은 흰반점독수리는 다시금 흙먼지와 굉음이 가득한 난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캬아아악!
어류 괴수와 조류 괴수의 치열한 백병전은 좀처럼 끝이 날 기미가 없었다.
* * *
브라우니는 마음이 급했다.
조류 군단의 전력은 어류 군단과 비슷하다. 하지만 물속이 아닌 육지라는 이점이 있었다. 날개도, 다리도 없는 어류 군단이 지느러미를 이용해 땅에서 뛰어다니며 조류 군단을 상대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불리했다.
그러나 어류 군단은 쪽수가 더 많았다. 그 점 때문에 서로 밀고 밀리면서도 팽팽한 접전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대로는 쉽게 제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브라우니에게 안 좋은 점은, 백병전이 장기전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졸지에 난전의 중심에 갇혀버린 한미 연합 공격대가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저 녀석들을 불렀는데? 인간들이 한 명이라도 다치거나 죽으면 주인한테 엄청 혼나니까 그랬지. 그런데 저 상황에서 인간이 안 다치기를 기대하는 게 말이 돼? 부리로 스치기만 해도 죽어 자빠지는 인간들이 수두룩한데.
브라우니는 마음이 급했다. 일단 서둘러 이 못생긴 생선대가리부터 제압하고, 저 약한 쫄들을 정리해야 했다.
―캬아악!
힘차게 급강하한 브라우니는 발톱을 날카롭게 펴서 청새치 괴수의 머리에 박아 넣었다. 그대로 들어 올려서 땅에 내던질 참이었다. 이 못생긴 생선대가리가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강제로 물 밖으로 꺼내주는 수밖에!
영차영차! 파닥파닥! 영차영차! 파닥파닥!
브라우니의 얼굴이 빨개졌다. 빨개진 거 맞다. 단지 검은 깃털에 가려서 살갗이 안 보일 뿐이다.
아니, 이 녀석! 왜 이렇게 무거워! 꿈쩍도 안 해!
청새치 괴수가 머리를 크게 흔들며 입을 벌렸다. 그 반동에 브라우니는 발톱으로 움켜잡고 있던 것을 놓치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겨우 중심을 잡고, 수면 위를 아슬아슬하게 활강하는데 크게 벌려진 청새치 괴수의 입이 보였다.
번쩍!
회심의 힘을 담은 일격이었다. 브라우니는 기겁을 해서 급히 옆으로 피했다. 힘을 모아 방어막을 강화할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굵은 광선은 외딴 바위섬 하나를 정통으로 관통했다. 바위섬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브라우니는 그 광경을 보고 꽁지깃을 바르르 떨었다.
두려워서? 아니다. 화가 나고, 분노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이이!!
힘껏 홰를 치려는 순간 또 한 차례 빛이 번쩍였다. 브라우니는 고도를 재빨리 높여 피했다. 청새치 괴수는 그 동글동글한 커다란 눈깔로 쳐다보고 있었다.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고소해하고 있을 것이다. 단순한 생선대가리의 생각이야 원래 뻔한 게 아니겠어?
브라우니는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저 녀석을 늘씬하게 쥐어 패고 싶었다.
침착하자. 생각하자. 난 저런 단순한 생선대가리와는 달라. 이 뛰어난 지능으로 침착하게 방법을 생각하자.
그 생선대가리가 제안한 장수 대결에 파닥파닥 낚여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건 잊고 있지만, 아무튼 넘어가자.
―캬아아아.
브라우니는 부리를 벌리고 신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수면 위 전투가 선공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이점은 이지만, 그게 치명적인 우위는 보장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자신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지금도 육지에서는 조류 군단과 어류 군단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저 팽팽한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 중심에 갇힌 인간들에게도 피해가 가고, 그럼 주인에게 혼난다.
모든 힘을 동원해서, 단숨에 녀석을 박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택해야 한다.
녀석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던가, 아니면 물속으로 들어가던가.
전자는 무거워서 불가능하고, 후자는 패배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불가능하다. 언뜻 보면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하지만, 아니다. 방법이 있다! 단 하나의 방법이!
브라우니의 눈동자가 붉은 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스산한 검은 오라가 흘렀다. 칙칙하고 어두운 광채가 무겁게 깔리며 검은 깃털을 감싸기 시작했다.
승리만을 생각해야 한다.
오로지, 이기는 것만을 갈구해야 한다.
지닌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오로지 승리만을 탐욕해야 한다.
설령 그게, 지금의 멋진 모습을 버리고, 흉측한 옛 모습을 끄집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검은 빛이 강해졌다. 마치 거대한 블랙홀이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그 압도적인 힘의 기운에 놀란 괴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움직임을 멈췄다. 전투 굉음이 멎은 가운데, 천여 개가 넘는 눈동자가 브라우니를 감싼 검은 빛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팽창한 검은 빛이 마침내 최후의 명멸을 터트리고 사라졌다. 더 이상 날렵하고 검은 맹금의 모습을 가진 브라우니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거대하기 그지없는 어떤 생명체였다.
어느 대원이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대원은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며, 멸치?”
청새치 못지않게 무식하게 커다란 멸치, 날개 잃은 멸치 한 마리가 그대로 풍덩 하고 떨어졌다. 무려 백여 미터가 넘는 물분수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아마 바닷속은 엉망이 되었으리라.
오랜만에 옛날 모습을 되찾은(좀 커지긴 했다) 브라우니는 유유히 유영하며 자신의 몸집을 뽐냈다. 청새치의 눈이 아까보다 더욱 커졌다. 날개도, 다리도, 부리도 없는, 말 그대로 거대하기 그지없는 멸치 그 자체가 아닌가.
브라우니는 퇴화한 어깨를 으쓱했다.
다시 이 꼴사나운 모습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의 흑역사를 봉인에서 풀게 한 죄, 죽음으로 갚아라!
청새치가 반박했다.
너, 원래 멸치 새끼였냐?
============================ 작품 후기 ============================
짠! 제가 회심차게 준비한 반전입니다.
브라우니는 멸치라구요, 멸치! 놀랍죠?
…어, 다들 어디 가세요? 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