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13)
00613 인어 여왕 =========================================================================
‘애기가 어디로 갔을까?’
어느 날 갑자기 피즈가 사라졌다. 나미는 처음에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곤 하는 걸 자주 했던 아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나미는 결국 걱정이 되어 찾아 나서기로 했다. 물론 몸소 나설 필요는 없었다.
“애기 찾아와. 알았지?”
그런 것쯤은 밑의 아이들에게 시키면 그만. 그녀는 이미 이 넓은 태평양을 지배하는 제왕이었으니까.
모비딕의 정기적인 순찰 여부와 상관없이 베링 해역이 안전해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베링 해역 근처에는 괴수들이 얼씬도 못하게 조치를 취했다. 나름대로 레지나를 비롯한 인간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지능 지수가 낮은 괴수들이 과연 제대로 명령을 수행할 수 있을지 말이다. 그래도 ‘피즈를 찾아오라’는 아주 간단한 명령이니, 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애기가 까짓 거 가면 어디 갔겠어? 기껏해야 마리아나 해구에서 숨바꼭질하고 있겠지, 했던 것이다.
‘인도양만 안 가면 되는데……. 설마 거기는 안 갔겠지.’
직접 찾아나서도 되긴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바다가 넓었다. 밑의 괴수들에게 시켜놓고 보고를 받는 게 훨씬 나았다.
인간 사회에서 그녀가 배운 것 중 가장 훌륭한 것을 꼽자면, 반복 훈련은 짐승도 학습을 시킨다는 것이다. 날 잡고 싸돌아다니면서 강력한 놈들을 제대로 두들겨 팼더니 아주 훌륭한 수족이 되었다. 몇 몇 놈들은 끝끝내 반항하며 도주하곤 했지만, 태평양에서 그녀의 눈을 피해 달아날 곳은 없었다.
인간들은 모르지만, 심해 깊은 곳에는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블랙 몹이 상당수 존재했다. 심해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가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그런 녀석들을 포함해서, 강력한 레드 몹 다수를 길들이고 나니 명실공히 나미는 태평양의 패왕이 되었다.
나미는 피즈가 길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신이 나서 까불까불 돌아다니다가 돌아오는 길을 잊어먹었겠지. 아니면 어디 사람 없는 무인도에서 태양빛을 즐기며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세월 가는 줄 모르는 걸 수도 있다.
그녀는 피즈가 인간 사회에 들어갔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끔 즐기는 유람선 밀항도, 엄마 없이는 무서워서 혼자 안 가는 아이니까.
그런데 이상한 소식이 족족 들려왔다.
‘싸움이 벌어져? 인간들과?’
피즈를 찾던 중 싸움이 벌어졌다는 보고에 나미는 어이를 상실했다. 아니, 애기 찾으러 보냈더니 왜 인간들과 싸워?
어쨌든 수습을 해야 했기에 나미는 보고를 받자마자 태평양에서 급히 출발했다. 아무리 태평양의 제왕이라 하나, 물속에서 이동을 하자니 속도에 제약이 좀 있었다. 그래서 근처까지 도착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끼아아아아아악!
참치대장의 비명이 들렸다.
* * *
“이게 진짜 무슨 일이니?”
―끼이잉…….
브라우니는 고개를 숙이고 나미의 눈치를 보았다. 팔짱을 낀 채, 수면을 밟고 서 그녀의 모습은 실로 우아했다. 잔잔한 파도, 딱 그녀를 나타내는 가장 훌륭한 말이 아닐까.
물론 맹금인 브라우니가 아리따운 인간 모습을 한 그녀의 미모에 새삼 숨이 막혀서 눈치를 보는 건 아니다. 주인을 대할 때와 흡사한,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이 느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포식 동물을 대면한 피식 동물의 서글픈 비애라고 해둘까.
나미는 문득 땅을 보았다. 수많은 레이더들이 숨을 죽인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우월한 시력을 지닌 그녀에게 거리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
그녀는 불현듯 가장 시선을 잡아끄는 인물 둘을 발견했다. 바로 유지웅과 정효주였다.
―카앙, 카아앙…….
청새치 괴수가 재촉을 하듯 신음을 냈다. 브라우니는 흠칫 해서 날개를 펴고 으르렁거렸다.
너만 빽 있냐! 나도 빽 있다! 이게 어디서!
“진정해, 브라우니. 참치대장도 싸우려는 게 아니야.”
그러자 정말 그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브라우니는 적의를 누그러뜨리고 날개를 접었다. 해수면에 배를 깔고 유유히 떠있는 모습은 검은 독수리형 맹금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꼭 오리나 백조가 하는 것 마냥 둥둥 떠 있는 모습이 어딘지 웃겼다.
그녀는 철벅철벅, 물 위를 걸었다.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이 점점 가까워졌다. 해안가에 당도한 그녀는 가볍게 점프해서 절벽 위로 뛰어올랐다. 사뿐히 착지한 그녀는 경계심에 잔뜩 찬 시선들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누구야, 저 여자는?’
‘레이더인가? 하지만 왜 바다에서?’
‘뭐 하는 사람이지?’
나미의 정체를 모르는 미국 레이더들은 극도로 긴장한 채 어떻게 해야 하나 제니스의 눈치를 살폈다.
유지웅이 한 손을 가볍게 들고 말했다.
“모두 자리를 비켜주셨으면 좋겠네요.”
“네? 하지만…….”
“알겠습니다.”
어느 미국 대원의 반문을 일축한 최정원이 급히 뒷수습에 나섰다. 바닥에 흩어진 대량의 블루 결정체를 마저 수거한 뒤 몰이하듯이 미국 공격대를 데리고 그 자리를 떠났다.
마침내 이 자리에는 나미와 유지웅 커플, 이렇게 셋만이 남았다.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유지웅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나미 씨.”
“미안해요. 다시 바다에서 나올 생각은 없었는데…….”
“그런 말은 안 해도 돼요. 우리가 바다에서 나오지 말라고 한 적은 없잖아요?”
나미는 적이 아니다.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이미 확인했다. 그녀가 바다로 간 것은 그녀가 살아가야 하는 집이자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땅으로 올라온다고 굳이 비난하거나 막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그보다 나미 씨, 저 청새치 괴수를 알아요?”
“네. 우리 집 가디언이거든요.”
“가, 가디언?”
이 인어 아가씨가 왕년에 RPG 게임 좀 하셨나? 왠지 확 깨는 느낌에 유지웅은 얼떨떨했다.
“집 지키는 애들이요. 그런 걸 가디언이라고 하지 않아요?”
“…….”
가끔이지만 나미는 인간의 언어를 대체 무슨 교재로 배웠는지 조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마도 한두 가지 교재는 절대로 아닐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애기 찾으라고 보냈더니 엉뚱하게 일본에서 싸움이나 벌이고, 저도 황당하네요.”
“잠깐만요, 애기 찾으러 보내요?”
“네. 피즈가 사라졌거든요.”
그제야 유지웅은 뒤늦게 피즈가 생각났다. 나미와의 재회가 워낙 갑작스러워서 미처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서둘러 말했다.
“피즈 우리 집에 있어요!”
“……네?”
워낙 갑작스러운 말이라 나미는 언뜻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하니 되물었다. 유지웅이 재차 말했다.
“피즈 지금 우리 집에 있다고요. 흑석동 우리 집.”
“……저기, 잠깐만요. 피즈가요?”
“네.”
“아니, 우리 애기가 왜요?”
“그,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유지웅은 불현듯 생각이 미쳤다. 맞다! 그러고 보니 브라우니가 피즈를 먹이로 착각해서 물어오는 바람에 이 사태가 벌어진 것 아닌가?
‘우리 집 강아지가 댁의 아이를 개뼈다귀로 오해해서 물어왔어요.’라고 말을 해봐라. 어느 어미가 좋아할까? 아무리 나미가 온순하다지만, 자칫 말 한 번의 실수로 제1차 괴수인간대전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의 평화가 그야말로 지금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달려 있었다.
말문이 막힌 유지웅을 대신해 정효주가 재치 있게 나섰다.
“피즈가 지웅이를 자기 아빠로 오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 집에 있는 거예요.”
정효주는 영리하게도 ‘어떻게 피즈가 오게 되었는지’는 쏙 빼놓고, ‘왜 피즈가 머무르고 있는지’에 강조 포인트를 두어 설명했다. 이른바 큰 것으로 다른 것을 흐리는 논법이다.
과연 나미에게도 통했는지, 그녀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며 반문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피즈가 공대장님을 아빠로 오해하다니요? 그럴 리가 없는데…… 아, 혹시?”
“뭔가 짚이는 게 있으세요?”
“두 분 몸속에 있는 숙성 결정체 때문에 그런 건지도 몰라요. 저와 피즈는 숙성 결정체를 느낄 수 있거든요.”
“숙성 결정체?”
이건 또 무슨 소리? 유지웅과 정효주는 놀라서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퍼플 결정체가 숙성되면 그건 곧 레드 결정체가 되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미 레드 결정체로 바뀌었다는 뜻인가?
“공대장님이 남자고, 또 우리와 똑같은 숙성 결정체를 갖고 있으니까 피즈가 그걸 느끼고 아빠로 오해한 것 같네요.”
“아…… 그런 건가요?”
“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나미는 꾸벅, 하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탐스러운 붉은 머리카락이 쏟아지듯이 흘러내렸다. 그러고 보니 나미는 해녀를 연상케 하는, 타이트한 검은 잠수복을 입고 있었다. 근사한 몸매의 굴곡이 훤히 드러난다.
유지웅은 어찌해야 좋을지 망설였다. 이거 아무래도 사소한 오해가 쌓이고, 쌓이고, 중첩된 나머지 일이 이렇게 커진 것 같은데? 이쪽이야 기반시설 좀 망가진 거 말고 인명 피해는 없으니 다행이지만, 나미는 수백 마리가 넘는 옐로 몹과 레드 몹을 한꺼번에 잃었다.
괴수에게 동정심 따위를 가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미에게는 귀중한 부하일 텐데. 남의 집 양떼를 본의 아니게 잡아다 족친 꼴이 된 셈이라 유지웅은 어찌해야 하나 머리가 아팠다.
‘결정체 다 돌려줘야 하나?’
사실 그게 가장 큰 이유였다. 아깝지 않은가! 이거 다 돈으로 하면 얼만데! 지금 전 세계가 결정체 부족으로 얼마나 큰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데!
“저, 어쩌죠? 육지 방어 한답시고 괴수들을 다 때려잡아 버렸는데…….”
“괜찮아요. 먼저 쳐들어간 건 녀석들인 걸요.”
그게 뭐 대수냐는 말이었다. 오히려 나미가 미안해했다.
“아이들이 지능이 떨어져서 뭐 하나 시키면 제대로 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애기 찾으러 보냈는데 설마 육지까지 쳐들어갈 줄은 몰랐어요.”
“저, 그럼 결정체는 어떻게……?”
정효주가 은근히 끼어들며 조심스레 물었다. 과연 살림 의식이 투철한 프로 주부답다.
나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알아서 처리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저야 뭐, 이것저것 시키려고 데리고 있던 녀석들이라 죽어도 별 상관없어요.”
“아하하, 그래도 이거 죄송해서……. 소중한 부하들인데…….”
“아닌데요? 식량인데요?”
“네? 식량이요?”
“가끔 일도 시키지만요.”
화사한 미녀가 활짝 웃으며 그리 말하니, 가벼운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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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