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30)
00630 승리를 위하여? =========================================================================
“연구소라 해서 꼭 돈을 쓰기만 하란 법은 없다. 벌 수 있으면 버는 거야.”
니트로가 항상 강조하곤 하던 말이었다. 가렌은 어린 시절, 그에게 배움을 받을 때부터 그 말을 가슴에 담고 살았다.
“멕아른을 봐라. 연구 성과도 내고, 그걸 이용해서 돈도 벌고. 꼭 한 마리 토끼만 쫓아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냐? 두 마리 토끼를 쫓을 능력이 되면 쫓는 거야. 능력이 안 되면 궁리라도 해보는 거고.”
지금의 가렌을 만든 것 중 가장 큰 것은, 니트로가 가르친 예산에 대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가렌은 지금, 오랜만에 은사의 열혈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 세계는 쓰레기 처리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하루에 쏟아지는 쓰레기 양은 엄청납니다. 그런데 노틸러스의 원소분리기능은 그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하, 하지만 열역학 법칙을 벗어난 이런 엄청난 성능을 심도 있게 연구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겨우 쓰레기 처리에 사용하는 건 너무 아깝습니다.”
“연구? 해야죠. 근데 쓰레기 처리하면서 연구하는 건 못합니까? 아니잖아요?”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중에는 다소 불만을 품은 이도 있었다. 그러나 선뜻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때였다. 최윤이 가볍게 박수를 짝짝 치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맞는 말씀입니다. 폐기물 처리를 하면서 노틸러스의 분리기능을 연구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죠. 환경도 정화하고, 돈도 벌고, 연구도 할 수 있고, 그야말로 일석삼조입니다.”
“하지만 최 박사, 우리 연구소 체면이…….”
“쓰레기 처리 연구소라고 불리는 것 때문에요? 그게 뭐 어떻습니까?”
가장 발언권이 큰 최윤이 지지하고 나서자 다들 불만이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사실 니트로의 발상을 지지하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가 컸다. 세계 최고의 결정체 연구소에서 기껏 한다는 게 쓰레기 처리라니, 명명 있는 과학자로서의 자존심이 선뜻 허락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가렌이 결정의 화살을 유지웅에게 돌렸다. 한 걸음 물러서서 과학자들의 논의를 구경하던 유지웅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과학자들은 생각에 빠진 그의 모습을 다소 긴장해서 주시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쓰레기나 폐기물 처리하는 건 깨끗한 환경을 위해서 아주 좋은 일이죠. 연구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돈도 벌잖아요? 저는 찬성입니다.”
“……알겠습니다.”
가장 큰 결정권자인 유지웅이 그렇게 말하고 난 이상 이견을 달아봐야 소용없었다.
가렌은 즉각 노틸러스를 전담할 연구팀을 편성했다. 쓰레기를 처리한다는 것 때문에 망설이긴 했으나, 그래도 많은 과학자들이 앞을 다투어 몰려들었다. 그들도 노틸러스가 품은 비밀을 해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단해요! 노틸러스는 사고 능력은 없지만 모든 조직이 살아 있는 생명체입니다. 이건 기계라고도 할 수 없어요.”
“어떤 원리로 혼합물을 분리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요.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소모하는 에너지가 거의 없어요. 이건 열역학 법칙을 철저히 위반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우리가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것뿐입니다.”
노틸러스는 살아 있는 생명 조직이었다. 그러나 사고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뇌에 해당하는 기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나디아가 떼어낸 손톱 같은 존재다. 손톱이 몸에서 떨어져 나와서도 계속 세포 활동을 하며 살아 있는 것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혼합물을 입자 단위로 분리하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밀한 작업을 요구한다. 그 과정을 간단하게 해내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더 대단한 것은 그 에너지를 어디서 충당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물질을 분리하는 능력, 그 과정에서 발생해야 할 열이나 소모되어야 할 에너지의 추적,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 두 가지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 머리를 싸고 매달렸다.
그리고 여기 두 사제지간은…….
“봐라. 이렇게 하니까 원소 단위가 아니라 분자 단위로도 분리가 가능한데?”
“어, 그렇군요?”
“출력 조절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소리군. 그럼 합금 같은 것도 굳이 원소 단위로 쪼갤 필요는 없단 소리인데?”
“합금류와 순금류를 동시에 투입하고 따로따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할까요?”
“해봐야지. 그런데 한꺼번에 투입한 것들을 어떻게 구분시키는지 그게 관건이다.”
“아무튼 역시 교수님은 대단해요.”
“에헴. 모두가 기초연구에만 매달릴 때, 한두 명쯤은 수익성 증대 쪽을 파고드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안 그러냐?”
“맞습니다.”
오랜만에 오붓한 사제간 토의에 바빴다.
* * *
“나디아는 어디 있죠?”
“예. 저쪽에 있습니다.”
유지웅은 사육소 직원의 안내를 받아 호숫가로 갔다. 모비딕 새끼들이 머무는 호수였다.
호숫가 낮은 모래사장에는 길이 5미터 가량의 자그마한 앵무조개 하나가 있었다. 물에 반쯤 몸을 담그고 햇볕을 쬐고 있는 모습이 참 한가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조개 크기가 조금 커진 것 같은데?
“노크하듯이 두드리시면 됩니다.”
유지웅은 헛기침을 하고 앵무조개 껍데기 표면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잠시 후 앵무조개가 반으로 쪼개지며, 일반 조개처럼 껍데기가 위로 살짝 열렸다. 그리고 나디아가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응. 잘 지냈어?”
“네. 예쁜 게 참 많아서 좋았어요.”
유지웅의 얼굴을 확인한 나디아는 반색을 하며 조개껍데기를 활짝 열었다. 덕분에 내부 풍경이 훤히 드러났다.
안은 침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킹사이즈의 으리으리하고 보드라운 침대, 거울이 놓인 화장대, 그리고 예쁜 옷들이 걸려 있는 옷걸이까지 있었다. 신기하게 들여다보던 유지웅은 한쪽에 놓인 것들을 발견하고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저건 뭐냐?”
“김장하고 있었어요. 재밌어 보여서요.”
그러고 보니 나디아는 양손에 고춧가루가 잔뜩 묻은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요즘 요리 익히는 게 낙이라고 하더니 한국 전통 음식까지 손을 뻗은 모양이다. 그런데 침실에서 김장을 하면 냄새가 다 밸 텐데…….
“침대 시트나 옷에 냄새 밸 텐데.”
“괜찮아요. 환기가 잘 되거든요.”
“……이거 왠지 탐나는데? 캠핑용으로 아주 그만일 것 같아.”
하나 더 만들어서 달라고 해볼까?
나디아는 기대에 찬 눈으로 유지웅을 봤다. 그는 올 때마다 몇 가지씩 선물을 들고 왔다. 그리고 선물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마음에 드는 것들이었다. 표정이 딱, 오늘은 뭘 가져오셨을까 꼬리를 치는 강아지였다.
유지웅이 손짓하자 비서가 얼른 다가와서 커다란 상자를 내밀었다. 나디아는 기대감에 차서 상자를 풀어 보았다.
“우와, 너무 예뻐요.”
“마음에 들어?”
“네! 정말 마음에 들어요!”
유지웅이 가져온 것은 커다란 수정 조각상이었다. 투명한 수정으로 만들어진, 유럽풍의 장식용 궁전이었다. 장인의 섬세한 손길이 녹아 있는 아름다운 모습에 나디아는 황홀한 듯 마냥 들여다보았다.
됐구나 싶은 유지웅은 그제야 흑심을 꺼냈다.
“있잖아, 너 노틸러스 껍데기 그거 또 만들 수 있다고 했지?”
“네에. 만들 수 있어요.”
“그럼 하나 더 만들어줄래?”
“…….”
“왜, 곤란해? 선물이 부족하면 더 예쁜 거 뭐든지 갖다 줄 테니까…….”
“오래 걸려요.”
“……그래?”
“네에. 그리고 여기서는 못 만들어요. 바다 깊은 곳으로 가야 해요.”
“땅에서는 왜?”
“재료가 부족해서요.”
유지웅은 살짝 실망했다. 하긴, 그렇게 큰 걸 다시 만들려면 재료비도 어마어마하게 들겠지.
“땅에서는 못 구해?”
“네에. 못 구해요.”
“만약 작정하고 다시 만들려면 시간은 얼마나 걸려?”
“일 년 좀 넘게 걸릴 거예요.”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유지웅은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몇 개 더 만들어서 톡톡히 재미 좀 보려고 했는데, 그냥 있는 거나 잘 사용해야겠다.
유지웅은 조개껍데기에 걸터앉았다. 고무장갑을 벗은 나디아가 옆에 앉았다.
그는 무심히, 날씬하고 잘 뻗은 다리를 흘끔 봤다. 파란 원피스가 참 잘 어울릴 것 같이 예쁜 다리였다.
“요즘 뭐하고 지내?”
“요리 공부하고 있어요.”
“요리는 공부해서, 뭐 하려고?”
“나중에 폐하께 수라상을 올리고 싶어서요.”
“폐하? 수라상?”
이게 뭔 말인가 싶어서 유지웅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나디아는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켰다. 그는 얼떨떨해서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나?”
“바깥세상의 왕이라고 하셨잖아요.”
“어, 아니. 그게…….”
그냥 처음에 별 생각 없이 대강 한 말이었는데, 생각 외로 강한 각인을 남긴 모양이다. 머쓱해하던 유지웅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사실 왕은 아냐. 우리나라는 왕 같은 거 없거든.”
“정말요? 하지만 다른 분들에게 폐하 이야기를 물었는데 부정하지 않으시던데요?”
“아니, 그거야…….”
나디아를 대하는 주요 측근 인사들은 유지웅이 나름 의도가 있어 그리 말한 줄 알고,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지 않나? 왕은 아니지만 왕보다 더 무서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이니.
“저, 폐하의 궁전이 보고 싶어요.”
“우리 집?”
“네! 임금님이 사는 궁전은 어떻게 생겼는지 실제로 한 번 꼭 보고 싶었어요!”
활주로도 없는 작은 집을? 유지웅은 거절할까 하다가 기대감에 차서 올려다보는 얼굴에 승낙하고 말았다.
“그래. 보여줄게.”
“와! 사진 잔뜩 찍어야지!”
“사진?”
“네! 저 사진기도 있어요! 이거 보세요!”
“아니, 누가 얘 스마트폰 사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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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는 유세현과 썸 안 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