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34)
00634 회장님은 태업 중 =========================================================================
사레가 들릴 뻔했다. 기침을 겨우 무마한 유지웅은 황당한 눈으로 나디아를 돌아봤다. 그녀는 간절한 청을 하듯이 두 손을 꼭 모으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영락없이 하룻밤 성은 입기를 바라는 궁녀 포즈…… 아니, 잠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고, 공주님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웬 성은?”
“성은을 입으면 공주님이 생기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그 성은을 왜 나한테 바라는 건데?”
“폐하가 왕이시니까요.”
“너, 너! 성은이 뭔지 알고나 있어?”
“그럼요.”
나디아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성은을 입으면 아이가 생기잖아요.”
“……그리고 또?”
“또 뭐가 있나요?”
모른다! 전혀 몰라! 그게 뭔지 전혀 모르고 있어!
유지웅은 황당함을 겨우 눌렀다. 한 가지 더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아니, 한 가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어디서 들었는데? 누가 그런 거 말해주디?”
“왕과 소녀에서 봤어요.”
유지웅은 뒤로 넘어갈 뻔했다. 왕과 소녀는 요즘 시청률 1위를 찍고 있는 퓨전 사극이었다. 지금 그러니까 신성한 출생 과정을 15세 연령가 퓨전 사극에서 주워들은 걸로만 이해했다는 이야기 아니야?
“성은을 내린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아?”
“몰라요. 그냥 성은을 내리면 아이가 생긴다고만 알아요. 저, 그 정도 상황 파악은 되거든요.”
“……퍽이나 자랑스럽겠다.”
아닌 게 아니라, 나디아는 자신이 듣고 이해한 바가 자랑스러운지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한데, 난 성은 못 줘.”
“소녀가 부족해서 그러시는 건가요? 저, 훌륭한 어머니가 될 자신이 있어요.”
유지웅은 뿜을 뻔했다. 내가 보기엔 절대로 못 될 거 같은데? 어떻게 어머니가 되는지조차 모르는데, 무슨 재주로?
“아무튼 안 돼!”
“폐하. 부디 소녀를 어여삐 여기시어…….”
“그만! 거기까지! 오늘부터 드라마는 금지야! 아니, TV 시청은 무조건 금지!”
“소녀가 뭘 잘못했나요, 폐하?”
“일단 레지나 박사를 찾아가! 가서 성인 여자가 알아야 할 일반 상식을 가르쳐 달라고 해! 그 뒤에나 사극이든 시트콤이든 스릴러든 보라고. 알았어?”
나디아는 의문을 지우지 못하면서도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그의 뜻을 따랐다.
“알겠어요. 폐하의 뜻대로 따를게요.”
도망치듯이 유지웅은 침실로 돌아왔다. 정효주가 빤히 쳐다보는데 괜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무슨 일 있니?”
“으, 응? 왜?”
“아니, 얼굴이 이상해서. 나디아가 뭐 당황스럽게 하기라도 했니?”
“아니야. 그런 거 없어.”
“수상해.”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눈을 흘기자 유지웅은 괜히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자기는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나거든.”
“나? 아닌데? 포커페이스 하면 바로 나 유지웅이잖아?”
“포커페이스? 자기가?”
기도 안 찬다는 듯이 정효주는 쿡 웃었다.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에 유지웅은 괜히 심술이 났다. 성큼성큼 다가가서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꺄 하고 비명을 작게 질렀다.
“하늘같은 서방님을 그리 놀리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해?”
“잘못했어. 살려 줘.”
“용서가 안 돼. 오늘 너 죽일 거야. 아주 그냥 죽일 거야.”
유지웅은 안아 올린 그녀를 침대 위에 내던졌다. 그녀는 과장되게 떨면서 애처롭게 쳐다봤다. 장난인 걸 아는데도, 물에 흠뻑 젖은 참새가 덜덜 떠는 듯한 자태에 그는 더욱 흥분했다.
두 팔을 붙잡아 거칠고 누르고, 바르르 떨리는 여체 위로 체중을 실었다. 찢어발기듯 밀어젖힌 란제리 아래로 투명한 살결이 드러났다. 강하게 끌어안고, 단단하게 일어선 불기둥을 찔러 넣자 그녀가 윽 하고 가벼운 신음을 토했다.
“오늘 그냥 아주 죽을 줄 알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날씬한 두 다리를 뻗어 그의 허리를 감싸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명이 은은하게 바뀌고, 하나로 뭉그러진 남녀의 그림자가 세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은 깊어갔다.
* * *
나디아는 한동안 조용했다. 더 이상 성은을 입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아직 구경하고 싶은 게 많다고 아는데, 데려가 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하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 할 게 뭐가 그리 많은지, 그녀는 매우 바빴다. 레지나를 만나러 갈 때를 빼고는, 조개에서 도통 나오질 않았다.
아무튼 성은 타령을 안 하니 일단 한시름 놓았다.
한편 유지웅은 조금 궁금하긴 했다. 전기도 조명도 없는데, 조개를 닫으면 컴컴하지 않나? 아니면 괴수라서 빛 같은 게 없어도 물체를 보는데 지장이 없나?
“직접 들어와 보실래요?”
지나가다가 궁금해서 물어보자 나디아는 배시시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유지웅은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옆에서 정효주가 얼른 제지했다.
“안 돼.”
“……피.”
정효주는 눈을 흘겼고, 나디아는 눈에 띄게 아쉬워했다. 그리고 둔한 남자는 그런 가벼운 기 싸움을 모르고 지나갔다.
“레지나 박사는 꾸준히 만나고 있지?”
“예. 소녀에게 참 큰 힘이 되어주세요. 같은 여자라서 그런가 봐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하늘거리는 천생 여자다. 누가 그녀를 화이트 몬스터라고 믿을 수 있을까. 직접 눈앞에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데.
나미는 행동거지나 사고방식에서 인간 외적인 냄새가 아직 남아 있는 편이다. 그러나 나디아는 그런 게 없다. 엄한 집에서 감금되듯이 자라 세상 물정 모르는 고운 아가씨라는 느낌이 있을 뿐이다.
“오늘 연구소 가셔요?”
“응.”
“잘 됐네요. 소녀와 함께 가요, 폐하.”
“그럴까?”
“예. 타세요.”
유지웅은 아무 생각 없이 조개에 오르려고 했다. 조개에 타서 브라우니편을 이용해 같이 가면 더 빠를 테니까. 그러나 정효주가 그의 팔을 얼른 잡아 당겼다.
“안 돼.”
“……치.”
“……?”
누가 이 상황, 설명해줄 사람?
* * *
“나디아는 사물의 본질 구조를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을 갖고 있어요. 핵융합로를 이용해 결정체 핵융합 폭탄을 만든 것도 바로 그 능력 덕분이죠.”
하얀 가운을 입은 레지나는 등 뒤에 프로젝터 영상을 띄워놓고, 레이저 포인트를 이용해 차분하게 설명을 진행했다.
“마치 어린 아기가 말을 배우는 것과 같아요. 아이는 문법 이론 같은 것은 전혀 모르지만, 실제로 주변의 대화를 들으면서 저절로 말을 깨우치게 되죠. 나디아도 그와 비슷해요.”
“그래서 왜 그게 가능한지는 설명을 못하는 거군요.”
“맞아요. 말을 터득한 아이도 틀린 문법을 물으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잖아요? 그런 거예요.”
레지나는 제니스 연구단지에서 나디아의 능력을 연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것저것 할 게 많은 나디아는 연구 협조에 소극적이었지만, 레지나는 그녀가 호기심을 가질 만한 것들을 알려주면서 살살 꼬셔서 연구했다. 예를 들면 패션 잡지라던가, 맛좋은 음식을 만드는 법이라던가, 예쁜 보석이라던가 하는 것들이었다.
연구소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진 것은 나디아가 만든 결정체 핵폭탄이었다. 결정체를 이용한 핵융합은 니트로 덕분에 이론 모델이 완성돼 있었지만, 정작 인간도 아닌 괴수가 먼저 실용화에 성공을 한 셈이다.
하지만 나디아는 어떤 원리로 그런 것이 가능한지는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마치 숨을 쉬듯이, 새가 날갯짓을 하듯이 자연스럽게 해냈다. 레지나는 그게 다 핵융합로 설비를 보고 직관적으로 습득한 것이라 했다.
“그럼 또 그런 걸 만들 수 있어?”
유지웅은 조금 걱정이 돼서 물었다. 나디아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전에 드린 집이 있어야 만들 수 있어요.”
“그래? 왜?”
“지금 있는 집은 너무 작아서 할 수 있는 게 몇 개 없거든요. 힘도 별로 없고요.”
나디아에게 있어 조개는 단순히 생활 터전이 아니라, 힘을 발휘하는 매개체였다. 그녀는 본신으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거의 없었다. 힘의 발현 도구인 조개를 만들고, 조개를 통해서 갖가지 능력을 발휘하는 타입이었다.
즉 비유하자면 공학자이자 기술자다. 다양한 힘을 발휘 가능한 도구는 만들 수 있지만, 그 도구가 할 수 있는 것을 직접 해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녀는 도구(조개)를 만든 뒤 도구를 통해 힘을 발휘한다.
“나디아가 만든 조개는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어요. 원심분리 기능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죠. 문제는 나디아나 나미 같은 괴수가 아니면 조개와 감응이 불가능하다는 건데…….”
“둘 다 24시간 조개 컨트롤을 부탁할 입장이 아니죠.”
나미에게 귀찮은 걸 강요할 순 없다. 나디아도 마찬가지. 시키면 억지로 하겠지만, 기껏 우호 관계를 쌓아가는 지금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득이 없다.
“감응 주파수를 알아내면 어느 정도 복잡한 통제가 가능할지도 몰라요.”
“아쉽다. 노틸러스도 나미처럼 생각할 수 있으면 참 좋은데.”
“사고 기관 자체가 없어요. 그랬다가는 나미의 분신이게요? 그냥 사람의 손톱 같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나디아를 두고 잠시 연구소를 나왔는데 WCO에서 남기철이 직접 그를 찾아왔다.
“회장님. 오셨으면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엄청 찾았습니다.”
“뭐 하실 말씀 있으시면 비서실에 연락하시지 그랬어요. 의장이나 되시는 분이 이렇게 직접 돌아다니실 것까지야.”
“아닙니다. 제가 어찌 회장님을 오라가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이러시면 안 되죠. 차기 대선 출마를 하셔야 할 분인데.”
남기철은 식은땀을 흘렸다. 유지웅이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수행 비서들이 옆에서 다 듣고 있는데 대놓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 민망하다. 아니나 다를까, 비서들 눈빛이 번쩍이는 게 훤히 보인다.
남기철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칠드그린 부통령이 방문했습니다. 자국 산업폐기물을 노틸러스를 이용해 처리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미국 부통령이 한국인인 유지웅 소유의 쓰레기 처리소를 이용하려고 방한했다. 보통은 한국 정부에 먼저 언질을 넣고 절차를 진행하는 게 정상이다. 지금처럼 전혀 상관없는, WCO 의장을 찾아와서 먼저 의논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 점을 문제 삼지 않았다. 유지웅 본인은 물론이고 남기철 역시 마찬가지다.
“산업폐기물이요? 쓰레기가 아니라?”
“예. 일단 환경오염이 심한 유독 산업폐기물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그럼 일반쓰레기는요? 일반쓰레기는 뭐 환경오염 안 시키나?”
“그렇긴 하지만 톤당 백만 원에 그 많은 일반 쓰레기를 처리하는 건 운송 문제도 있고 비용 문제도 있고 해서 일단은 산업폐기물부터…….”
“할인해준다고 하세요.”
“예?”
“대량구매하면 대량할인해주는 거야 기본이죠.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는지 한 번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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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구매와 개별구매가 같을 수가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