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47)
00647 우린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
참혹한 광경에 일부 보좌관은 그만 견디지 못하고 눈을 돌리고 말았다. 그러나 비시는 끝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이마 가득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공격대의 울부짖음을 외면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북극곰 괴수는 특별한 면모를 보이진 않았다. 눈에 띄는 광역 공격도, 화려한 빔 공격도 없었다. 결정도도 6천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격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불과 몇 분도 걸리지 않아 40인으로 구성된 한 개 공격대가 전멸했다. 탱커가 고작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하나였다. 탱커의 부상이 치료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힐러들이 이를 악물고, 울음을 삼키며 힐을 퍼부어도 조금도 부상이 호전되지 않았다.
160여 명의 공격대 중 불과 스무 명 남짓만이 간신히 살아남아 도주했다. 나머지는 사망. 즉 궤멸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보다시피 힐이 전혀 통하지 않아 탱커가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그게 전멸 주원인입니다.”
A급 방어장비가 있다 해도 탱커가 없으면 딜러와 힐러는 맛좋은 사냥감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기동력이 느린 힐러와 원거리 딜러는 도주도 못하고 지옥이었을 것이다. 기동력이 빠른 근접 딜러들 중 일부만이 겨우 살아서 도망쳤다.
“왜 힐이 안 통하는 건가?”
비시는 그 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국무위원들도 저마다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명쾌한 해답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위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마 저 괴수 특유의 어떤 방해 능력 때문이 아닐까요? 이를테면 일정한 범위 내에서 레이더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든가 하는 것 말입니다.”
“헌데 탱커와 딜러들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않았나?”
“…….”
“힐러는 오히려 가장 멀리 있었을 텐데?”
방해능력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가까운 놈도 아니고 멀리 있는 놈에게 먼저 작용한다? 자연적으로 말도 안 되고 불필요한 공격능력이다.
누군가가 침묵을 깨뜨렸다.
“하여튼 저 괴수에게 힐을 방해하는 어떤 힘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 원인을 밝혀내기 전에는 공격대를 투입해서는 안 됩니다. 무의미한 희생만을 치를 뿐입니다.”
“그렇다고 저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나? 알래스카에는…….”
비시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이 자리에 있는 국무위원들 중에는 모르는 이가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 해서 연방정부의 치부가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힐이 통하지 않는다면 힐 없이 괴수를 잡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니스를?”
“지원 요청을 해야 합니다.”
비시도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얼핏 보기에도 미국의 힘으로 잡을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다. 힐을 쓸 수 없는데 무슨 재주로 레이드를 하란 말인가.
“문제는 녀석이 단순한 레드 몹인지, 아니면 다른 블랙 몹처럼 내부 결정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있는 개체인지를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레드는 아니겠지.”
힐을 막는 괴수는 처음 들어봤다. 비시는 물론이고 안보 회의에 참석한 위원들은 분명히 레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소 블랙 이상이다.
‘화이트는 아니겠지.’
이미 노틸러스라는 화이트 괴수가 한 번 등장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화이트 괴수가 등장하는 불운은 없어야 한다. 위원들은 한 마음으로 그렇게 기도했다.
“한국, 아니 흑석동에 연락을 넣게.”
“예, 각하.”
일단 제니스의 힘을 빌려서 퇴치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시는 또 무엇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나 하고 골치가 아팠다. 유지웅은 더 이상 가질 게 없는 몸이다 보니 뭐 하나 부탁하려고 하면 머리가 다 빠개진다.
그때였다.
“각하! 큰일입니다! 알래스카에서 탈출한 레이더들이!”
허겁지겁 들어온 비서가 새하얗게 질린 채 전화를 내밀었다. 비시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 현장에서 직접 대통령과 전화를 요구했다고? 대체 얼마나 심각한 일이기에?
「각하, 여기는 캘리포니아의 메이츠 병원입니다. 알래스카에서 탈출한 레이더들이 긴급히 입원한 병원입니다. 전원 입원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탈출한 레이더들은 부상 같은 것은 입지 않았다. 그러니 별 문제가 없어야 정상이다. 헌데 갑자기 입원을 해? 그것도 전원이?
「현재 원인 불명의 증세로 레이더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영상을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비서들이 재빠르게 현장과 신호를 연결했다. 막 일어서려던 국무 위원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비시는 창백한 얼굴로 치지직거리는 스크린을 응시했다. 이윽고 병원 현장과 통신이 연결되었다.
응급실에는 새빨간 뭔가가 누워 있었다. 처음에 저게 뭔가 했던 비시는 곧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입에서 구역질이 나오려고 했다.
레이더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피부가 녹고 있었다. 시뻘건 속살 위로 노란 진물이 질질 흘러내리고 있었다. 의사들이 동분서주하며 거즈로 피부를 감싸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보다시피 레이더들이 온몸의 피부가 녹아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구토, 고열, 수포, 궤양 등의 증세가 무차별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힐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그 점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의사들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힘을 동원해서 그들을 살려주게. 부탁하네.”
「노력해보겠습니다.」
이유 없이 피부가 녹고, 진물이 나며, 수포와 궤양 등이 무차별적으로 나타난다. 더군다나 힐도 통하지 않는다. 혈액 검사, 조직 검사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니 의료진은 미칠 지경이었다.
“대체 이거 왜 이래?”
“괴수가 무슨 바이러스라도 퍼트린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거 같고.”
“결정 에너지로 생체 리듬을 망가뜨린 건 아닐까?”
“어떤 식으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정황이 그렇게 보이니까 하는 소리지! 그거 말곤 뭐가 있어!”
의식이 없는 이들은 차라리 행복한 편이었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레이더들의 모습에 의사들은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 병원에 불려온 힐러들도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내 힐을 시전했지만, 힐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괴수와 싸운 거야?’
아무리 보안을 지킨다 해도 새어 나갈 것은 새어나가기 마련이다. 의료진은 무슨 괴수와 싸웠기에 이런 처참한 모습으로 실려 왔는지 불안했다. 진료에만 집중해야 하는 걸 알지만, 만약 그런 괴수가 습격해온다면 어찌 될지 두려웠다.
“저기, 잠깐만…….”
“왜? 뭐 이상한 거라도 있나?”
“이거, 이거 말이야. 방사선 피폭 증세 아니야?”
“……!”
어느 의사가 혹시나 하고 던진 말에 응급실은 놀라울 만큼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상시 대기 중이던 파견 요원이 급히 무전기로 상부에 요청했다.
“방사능 측정기를 가져다주십시오! 방사선 피폭이 의심된다고 합니다!”
「뭐? 방사선 피폭? 알았네.」
요원들은 방사능 측정기를 가지고 입원한 레이더 전원의 신체를 조사했다. 그들의 몸에서는 엄청난 방사선 반응이 나왔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게 신기할 만큼.
* * *
“방사선 피폭이라고?”
“네. 각하. 그래서 힐이 통하지 않은 겁니다.”
힐은 세포의 재생 활동을 극단적으로 촉진시켜 부상을 치유하는 원리를 갖고 있다. 부러진 뼈를 올바르게 맞춰 재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끊어진 내장이 서로 제자리를 찾아 붙게 하는 경이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 사라진 신체 부위까지 재생하지는 못하지만 죽지만 않으면 살려낼 수 있다.
“하지만 방사선 피폭은 다릅니다. 세포 DNA 그 자체가 망가져서 힐을 퍼부어도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세포가 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힐을 받으면 세포는 그 힘을 소화해서 재생을 한다. 그러나 방사선에 피폭된 세포는 그 힘을 받아들일 소화 능력 자체가 망가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힐이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고 흩어지는 것이다. 이빨이 없어 씹을 수도 없고, 식도가 다쳐 삼킬 수도 없는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병원을 방문한 비시는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레이더를 보고 아무 말도 못했다. 직접 눈으로 보니 더욱 처참했다. 저것은 사람이 아니라 정육점에 걸린 고깃덩어리처럼 보였다.
“유지웅 회장이 도착했습니다.”
“여기로?”
“예, 직접 레이더들을 보겠다 합니다.”
“이런 고마울 데가.”
구체적인 대가를 논의하기도 전에 유지웅은 A3를 타고 단숨에 미국으로 날아왔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비시는 그 점이 고마웠다. 물론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야겠지만,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을 테지만, 지금은 어쨌든.
병원을 비울 수 없는 대통령을 대신해 칠드그린이 부통령이 유지웅을 맞이하러 나왔다. 상황을 고려해서 의전 행사 같은 것은 생략하고 몇 명의 수행원과 경호원만 동행했다.
유지웅은 굳은 얼굴로 칠드그린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어떻게 된 거죠, 도대체?”
“방사선을 뿜어내는 괴수입니다. 탈출에 성공한 레이더 전원이 고농도의 방사선에 피폭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괴수가 지나온 지역에서도 엄청난 감마선이 확인되었습니다.”
“하, 방사능 괴수라니. 이 무슨…….”
유지웅은 응급실에 들어섰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기자들은 얼씬도 하지 못했다. 비시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대강 악수를 나누고 유지웅은 신음도 제대로 못하는, 고깃덩어리나 다름없는 환자들을 둘러보았다. 각 환자들마다 3명의 힐러가 붙어서 끊임없이 힐을 붓고 있었다.
“정말 힐이 효과가 없나요?”
“그렇습니다.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어요.”
효과가 없지만 기적을 바라는 마음에서 24시간 힐러들을 교대 투입하며 끊임없이 힐을 붓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도 차도가 보이지 않아 모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괴수는요?”
“현재 알래스카에서 종적을 감췄습니다.”
당장 후속 습격이 없다는 점은 안심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낙관할 일은 아니었다. 무차별로 뿌려대는 방사선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비시는 속수무책이었다.
‘제니스라 해도 뾰족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보호막이 과연 방사선까지 막아줄까? 실험을 해보지 않았으나 전문가들은 어렵다고 견해를 내놓았다. 방사선은 아마 보호막을 투과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무엇보다 알래스카에는…….’
비시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 다른 곳도 아니고 알래스카를 습격하다니. 그것도 방사선을 뿜어내는 괴수가? 그는 부디 지독한 우연이기를 바랐다.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그때였다. 유지웅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50cm 가량의 비비 인형이 문득 말했다. 비시도 처음에는 인형처럼 생긴 로봇인 줄 알았다. 경황이 없다가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미스터 제니스, 이건?”
그가 새로 얻은 장난감 로봇? 아무리 제니스 공대장이라고 하지만, 이런 장소에 장난감을 가져와? 비시는 순간 울컥했다. 언제부터 미국이 이런 모욕에도 아무 말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나.
“아, 잠시만요. 해결 방법이 있다고?”
“예.”
“말해 봐. 그게 뭔데?”
“힐을 강화하면 됩니다. 강화된 힐은 손상된 DNA까지 수복해서 세포가 정상적으로 재생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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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치유 ㄴㄴ 상급 치유가 대세임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