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74)
00674 프리시즌 – 친구편 =========================================================================
축제가 시작되었다.
유림고교는 대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은 재단에 속해 있어 축제 시기도 동일하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재단 측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고교생들이 대학 캠퍼스 내에 간이 상점을 차리고 장사를 하는 일 정도는 흔하다.
“보러 올 거지?”
“당연히 가야지. 잘해 봐.”
“응!”
첫날부터 정효주는 단단히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댄스팀은 첫날 오후에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참여생들도 첫날 화끈하게 준비한 것을 보여주고, 나머지 이틀은 마음껏 놀겠다는 각오로 일정을 그리 잡은 것이다.
댄스팀이 야외 스테이지에 오르자 조명과 사운드가 빵빵하게 울려 퍼지며 시선을 잡아끌었다. 하나둘 모여든 외부 관람객, 학생들이 기대에 차서 눈길을 모았다. 음악이 시작되고, 화사한 무대 의상을 입은 여학생들이 율동에 맞춰 댄스를 시작했다.
유지웅은 눈에 띄지 않는 한곳에 서서 지켜봤다.
“지웅아, 고마워. 야외무대 빌려줘서.”
“뭐, 어차피 낮에는 쓸 일도 없는 걸.”
“그래도 고마워.”
한때 유지웅을 동경했던 동급생, 성지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녀는 댄스팀 스탭으로 일하고 있었다. 사적으로는 정효주의 절친이기도 하다.(절친일까, 측근일까?)
유지웅의 눈동자는 정효주를 쫓고 있었다.
저런 면모가 있었나, 싶을 만큼 색다른 매력이 그의 가슴을 세차게 뛰게 했다. 춤동작에 맞춰 발을 내딛을 때마다 흔들리는 가슴, 흐느적거리듯이 움직이며 뭇남자들의 시선을 붙잡는 손가락, 퇴폐에 가까운 무표정한 시선이 자아내는 뇌쇄적인 마력…….
팜므파탈이란 아마도 저런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순수하고, 새침데기 같은 줄만 알던 약혼녀의 색다른 매력에 유지웅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결혼하고, 아이 셋을 낳고 살면서도 저런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효주, 참 예쁘다. 그치?”
“알아.”
“피. 너무 그렇게 자신만만하니까 질투 난다, 얘.”
어느덧 댄스 하나가 끝나고 잠시 휴식 시간이 되었다. 그제야 유지웅은 기지개를 켜며 피식 웃음을 머금고 돌아봤다.
“댄스 괜히 하라고 했나 보다.”
“왜? 갑자기?”
“남자놈들 쳐다보는 눈길이 짜증나서.”
“너도 불안한 게 있구나?”
“그럼 있지, 없어?”
“하지만 사실 효주가 더 불안할 걸?”
“효주가 왜?”
“너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잖아. 세현결정체은행이 다 니꺼라며? 지금은 어려서 그렇지만, 앞으로 얼마나 많은 근사한 여자들이 몰려들겠어?”
“효주보다 근사한 여자는 없어.”
“아우, 짜증나! 손발이 막 사라지려고 해!”
성지원은 혀를 쏙 내밀고는, 두 손을 고양이 앞발처럼 만들어 흐느적거리듯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뭐 하는 거야?”
“오그라드는 손발 펴는 중. 앗, 나도 가봐야겠어. 그럼 이따가 뒤풀이 때 봐!”
다음 차례는 남학생들 댄스팀이었다. 벌써부터 꺅꺅거리는 여자애들의 비명이 하늘을 찔러댔다. 유지웅은 무대 뒤편에 마련된 간이 휴게실로 향했다.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스탭들이 그를 보고 놀라서 꾸벅 인사를 했다.
“야야, 왜 동급생끼리 고개를 숙이고 그래?”
“아. 미, 미안.”
“효주는? 안에 있어?”
“으, 응. 혼자 있어.”
유지웅은 잘 됐다는 듯이 히죽 웃고는, 그대로 노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땀을 닦고 있던 정효주가 놀라서 움츠렸다.
“아, 깜짝이야.”
“우리 효주, 춤 잘 추더라?”
“노크도 없이 들어오면 어떡해. 막 의상 갈아입으려고 했단 말이야.”
“우리 사이에 뭐 어때.”
유지웅은 은근한 웃음을 지으며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는 살짝 싫은 듯이 몸을 조금씩 뒤틀었다.
“아이, 땀 냄새 옮는데…….”
“왜, 나 너 땀 냄새 좋은데.”
“그런 말 하지 마. 변태 같잖아.”
“니 앞에서 언제는 변태 아니었나?”
유지웅은 그녀의 거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마침내 그녀도 포기한 듯이 저항을 멈추고, 뒤에서부터 껴안은 그의 팔을 조용히 어루만졌다.
“나 춤추는 거 봤어?”
“응. 끝까지 지켜봤지.”
“어땠어? 괜찮았어?”
“내가 너 춤추는 거 보면서 무슨 생각했게? 맞추면 상 있다.”
정효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 잘 모르겠어.”
“몰라? 디게 쉬운데?”
“으음……. 열심히 연습했구나, 하는 생각?”
유지웅은 픽 웃고는, 한 팔을 그녀의 허벅지 아래로 밀어 넣었다. 다른 팔로는 등을 받치고, 그대로 번쩍 안아 올렸다. 놀란 그녀가 얼른 그의 목을 팔로 감아 중심을 잡았다. 가슴 높이 그녀를 안아 올린 채, 긴장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가슴골에 살짝 얼굴을 묻어본 그는, 이윽고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지금 당장, 너랑 섹스하고 싶다고 생각했어.”
“……못됐어. 너무 야하잖아.”
“딴놈들도 같은 생각했을 걸?”
“에이, 설마.”
“맞다니까. 남자는 남자가 잘 알지. 너 춤추는 거, 엄청 섹시하더라. 그런 모습 처음 봤어.”
유지웅은 가만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쑥스러움과 난처함에 젖어 있던 그녀는 결국 피하지 않고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공연 준비해야 하는데…….”
“시간은 충분해.”
더 이상 밀어내지 않는다. 소년의 목을 끌어안은 소녀의 팔에 꼬옥 힘이 들어간다. 입술이 뜨겁게 얽히며, 소녀의 쌔근거리는 숨소리가 소년의 입안으로 삼켜진다.
* * *
축제는 첫날부터 대성황이었다. 무려 4만 명이 넘는 외부인이 몰려들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대비도 했지만, 이 정도까지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 줄 몰랐던 학교측은 교통정리에 고생을 해야 했다. 운동장을 비롯한 학교 전체가 그야말로 발 디딜 틈도 없는 콩나물시루 같았다.
덕분에 열심히 축제를 준비한 학생들도 신이 났다. 공연, 장기자랑, 쇼 등을 봐주는 사람이 많으면 주최측도 흥이 돋는다. 당연한 일이다.
일개 고교의 축제 행사에 이런 엄청난 관람객이 몰려든 것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
방송국에서도 백여 명에 가까운 인력을 파견했다. 블리자드 스톰사를 비롯한 게임 채널에서도 인원을 파견했다. 하루가 저물어가고,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모두의 눈길은 비어 있는 야외 스테이지로 향했다.
번쩍!
비어 있던 스테이지에 화려한 조명이 켜졌다. 흰 연기가 뿜어 오르고, 폭죽이 요란하게 터지며 저녁놀이 깔리기 시작한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동시에 학교 곳곳에 촘촘하게 설치된 야간 조명등이 빛을 발하며, 순식간에 학교 전체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이, 이 학교 대체 정체가 뭐야?”
“무슨 축구장에서나 쓰는 조명등이 있어.”
운동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사이에서 수군거림이 커졌다. 마침내 현란한 조명이 가득한 스테이지에 교복 차림의 한 남학생이 올랐다. 순간 쥐죽은 듯한 고요한 침묵이 깔렸다.
“안녕하세요. 유림고교 게임 대회 주최자, 1학년 3반 유지웅입니다.”
―와아아아!
학생들 사이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이 터졌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전염되어 관객 전체를 화끈하게 달구었다. 모두가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면서 환호하고 좋아했다.
환호가 그치기를 잠시 기다린 유지웅이 가벼운 웃음을 머금고 계속 진행했다.
“인트로는 짧을수록 미덕이지요? 요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회 참가 게이머 여러분, 무조건 4강에 오르세요. 4강에 오르시면 이 네 개의 상품 중 하나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유지웅이 신호를 보내자 순간 흰 연기가 뿜어 오르며 스테이지 한쪽에서 커다란 상자가 솟아올랐다. 투명한 유리로 덮인 상자 안에는 붉은 천 위에 놓인 네 개의 시계가 가지런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시계의 아래에는 각각의 보증서가 마치 상장처럼 자랑스럽게 놓여 있었다.
“우와아아아!”
“오데마피게! 콘스탄틴!”
“콘스탄틴! 콘스탄틴!”
분위기는 더욱 화끈 달아올랐다. 학생뿐만 아니라 외부 참관인들도 흥분해서 저마다 떠들어댔다.
“저게 개당 오억이 넘는다는 애들이야?”
“구입가격이 오억이라는 거고, 콜렉터들은 그 두 배가 넘어도 기꺼이 살 걸? 저거 하나만 차지해도 팔자 고치는 거야.”
“와, 무슨 아파트 네 채를 상품으로 내 걸지? 저 학생, 대체 뭐 하는 집안 아들이래?”
“몰라. 엄청 부자라고는 하는데 아는 애들이 없어. 학생들도 집안이 뭐 하는 데인지는 전혀 모른대.”
“이형준 회장 본인도 저런 짓은 못할 거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그 다음을 기대했다. 그 뜨거운 기대에 보답하듯이, 유지웅은 천천히 왼손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두툼하고 정교한 메탈 시계가 붉은 조명을 반사하며 화려한 광채를 뽐냈다.
“그리고 우승자를 위한 특별 이벤트가 있습니다. 우승자는 바로 주최자인 저와 경기를 치릅니다. 저를 이기면 바로 이 자리에서 제가 차고 있는 이 시계, 파텍필립 블루 세이버 No.1을 상품으로 드립니다!”
“와아아아! 파텍필립! 파텍필립!”
“84억! 84억!”
“이 파텍필립 블루 세이버는 제가 직접 스위스 제네바 비공개 경매장에 참가하여, 얼굴 모를 어느 경쟁자를 상대로 승리하여 획득한 전리품입니다. 원래는 400만 달러에 살 수 있었는데 우리 둘이서 막판 레이스를 하는 바람에 900만 달러에 낙찰받은 물건입니다.”
유지웅은 여유 있는 미소를 띠면서, 과시하듯이 왼손을 더욱 흔들었다.
“세계 최고가 시계로 기네스에도 올라 있는 이 녀석을 차지할 행운아는 과연 누가 될까요? 기대하겠습니다.”
* * *
“나에게 모욕감을 준 친구가…… 저렇게 어린 아이였다고?”
“죄송합니다, 왕자님.”
“아닐세, 지하크. 자네 탓이 아니야. 가벼운 마음으로 현찰도 준비 않고 경매에 참가한 내 과오일세.”
남자는 생각했다. 얼굴 모를 경쟁자와 블루 세이버를 놓고 무제한 레이스를 벌였던, 손에 땀을 쥔 그 긴장의 순간을. 돈이 부족해서 경쟁에서 질 수도 있다는 초조함을 처음으로 느끼게 한 그 상대가, 저런 어린아이였다고?
인정한다.
설마 그 경매에서 블루 세이버가 나올 줄은 몰랐다.
설마 그 경매에서 그런 강력한 경쟁자가 나올 줄은 몰랐다.
설마 하필이면 딱 그때, 현찰이 890만 달러밖에 없을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남자는 이번만큼은 철저하게 준비했다. 다시는 그때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반드시 세계 최고의 시계, 블루 세이버를 쟁취하리라고.
“방심은 한 번이면 족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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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