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82)
00682 흔들리는 대국? =========================================================================
폐쇄 모듈로 치료를 받은 말기 암 환자가 거뜬히 완치되자 의학계는 이에 주목했다. 학계는 완치된 환자의 병마 진행 단계에도 놀랐지만, 폐쇄 모듈의 치료 원리를 듣고 경악했다.
“세포 단위로 정밀 조사가 가능하다고?”
“말도 안 돼. 거짓말이겠지.”
암 세포의 세포 개수를 정확히 헤아릴 순 없지만 적어도 억 단위는 넘어갈 것이다. 편의상 1억이라 가정한다 해도, 그 1억 개의 미세한 세포를 정확히 인식하고 조준해서 파괴한다는 개념은 현대 의학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방사선 치료 과정에 참관한 의료진을 통해 자세한 치료 진행 과정이 학계에 보고되었다.
“치료 과정이 겨우 10분?”
“그 10분 안에 수억 개가 넘는 세포를 정확히 특정하고, 모두 파괴했다고?”
겨우 10분이다. 10분 안에 몇 억 개의 세포를 헤아리고, 정확한 좌표를 파악하며, 조준하고, 에너지파를 발사해서 모두 파괴했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10분 안에 1억 개를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획기적인 치료기의 등장에 암 환자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었으나, 곧 크게 실망했다.
“치료기가 15조 원짜리래. 양성자 치료기보다 150배나 비싸.”
“치료 효과가 확실하긴 한데, 차라리 8억짜리 항암제 치료를 받는 게 낫겠다.”
BP-1의 효능도 기적이라 칭송받을 만큼 획기적이다. 지나치게 기력이 쇠진한 환자에게는 소용이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정도까지 악화된 환자는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다. 그런 환자마저 완치시킨 ‘폐쇄 모듈 치료기’, 줄여서 ‘모듈 치료기’가 대단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거는 치료기가 아니라니까요.”
기적의 치료기를 개발했다는 이유로 최윤은 여러 의학 학술 단체 앞을 다투어 초청을 받았다. 치료 원리에 관한 강연을 부탁받기도 했고, 향후 치료기 가격이 얼마만큼 다운될 수 있는지도 질문을 받았다.
“애초에 치료 목적으로 개발한 설비가 아니라 기초 입자에너지학 연구를 위해 만든 설비입니다.”
“하지만 그 설비가 결국 최고의 치료기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최 박사님! 모듈 치료기의 정확한 스펙을 알고 싶습니다!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사람 셋이 모이면 멀쩡한 고양이도 호랑이도 둔갑시킨다는데, 의학계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모아 치료기라고 하니, 어느새 일반 국민들이 폐쇄 모듈을 만능 치료기로 인식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별 세포 인식과 정밀 파괴가 가능하다면, 세균도 파괴할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약으로 죽이는 게 아니라 물리 에너지로 파괴하는 것이니 내성균이 생길 이유도 없을 겁니다.”
“항생제가 통하지 않는 변종 세균성 질환에도 매우 좋겠어요. 단 치료비용이 너무 비싸니 심각한 질환에만 사용을 해야겠지요.”
죽을 사람을 살려냈다는 것 때문인지, 국내외 여론은 모듈 치료기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암 뿐만 아니라 세균성 질병에도 응용이 가능하다는 것에 각종 제약 회사들은 처음에는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그들은 모듈 치료기의 가격을 듣고는 안심했다.
“최소 15조 원?”
“블루 결정체를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설비라서 더 이상의 가격 다운은 불가능하다더군.”
“항생제 시장이 멸절될 일은 없겠어.”
획기적인 치료기의 등장에 모두가 환호를 보낸 것은 아니다. 계약 취소 직전에 놓인, 양성자 치료기 제조사로 유명한 독일의 IBB회사는 긴급 대책 회의에 들어갔다.
“계약 취소 위약금을 고려하면 우리 회사가 금전적으로 손해를 볼 일은 없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계약 완료에 비하면 이미 우리는 충분히 손해를 봤습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이왕 비싼 치료라면 차라리 확실하게 치료가 가능한 모듈 치료를 받는 게 낫다는 여론이 급속도로 생기고 있습니다.”
양성자 치료기는 꿈의 치료기로 불렸지만, 약점은 있었다. 치료 효능을 보기 힘든 암 종류도 있고 비용도 비쌌다. 반면 모듈 치료기는 치료 원리상 어떤 암도 상관없이 치료한다. 비용은 양성자 치료기보다 더 비쌀 것으로 생각되지만, 확실하게 완치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두드러지는 단점도 아니다.
「15조 원짜리 모듈 치료기, 과연 치료비용은 얼마?」
「1,000억 원짜리 양성자 치료기의 1회 치료비용은 약 100만 원이다. 1주기의 모든 치료 과정을 마치려면 환자는 약 2,000에서 3,000만 원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모듈 치료기는 단 1회만으로도 완치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기기 가격 차이만 무려 150배다. 단순 수치상으로는 1억 5,000만 원의 부담이 예상된다. 일반 서민층 환자는 엄두도 내지 못할 액수다.」
「확실한 완치, 확실하게 비싼 가격.」
기적의 치료기가 등장했지만, 그 가격이 얼마나 될지를 놓고 많은 이들이 희망과 불안이 교차했다. 특히 암 환자들은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다.
마침내 흑석동에서 발표가 나왔다. 유지웅의 회사 후배가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사에서 취재를 했다.
“제니스 종합병원의 다른 고정자산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식으로 운영할 겁니다.”
“병원 고정자산 이용에 관해서 잘 모르는 대다수 국민들을 위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모듈 치료기는 돈 안 받는다고요.”
“예? 그게 정말입니까?”
“애초에 제니스 병원이 돈 벌려고 세운 영리병원도 아니에요. 설립 목적 자체가 직원과 세종시민 복지를 위해서인데, 그거 돈 받아서 뭐 해요. 앞으로도 제니스 병원은 절대 이 운영방침을 바꾸지 않을 겁니다. 아예 유언장에 적어둘게요.”
자세한 취재 내용이 정리돼서 기사로 발표되자 국내 여론은 다시 한 번 난리가 났다.
「모듈 치료기, 돈 안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제니스 종합병원처럼 독특한 목적으로 설립된 병원은 없을 것이다. 제니스 그룹은 모든 직원 및 그 직계가족에게 100% 의료비 지원을 시행하고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하지만 산하 직원이 늘어남에 따라 절차가 번거로워지자 유지웅 회장은 통 크게 직원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종합병원을 설립했다. 어느 기업가도 이만큼 직원들을 배려해주진 않을 것이다.」
「제니스에서는 말단 묘목 관리사라 해도 제니스 종합병원에서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다. 어떤 병도 상관없다. 심지어 1회 투여에 8억 가량 하는, 차세대 항암제 BP-1도 환자 부담금이 일절 없다. 각종 입원비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제니스 병원에서는 세종시 주민들에 한해 남는 병실과 의료 인력을 제공하고 있다. 즉 1급 대상자인 제니스 직원을 수용하고 남는 병실은 세종시 주민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술이나 치료비용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경우 의료진, 병실 등 고정 자산을 제외한 약값 등은 환자의 부담이지만, 이 정도 혜택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세종시 주민은 병원 여력이 되는 한에서 이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중병을 앓는 환자들은 난리가 났다. 제니스 병원 데스크는 빈 병실이 몇 개인지 쇄도하는 문의에 몸살을 앓았다.
“이참에 세종시로 이사갈까?”
“그냥 이사 가자. 거기 오래 거주할수록 순번도 빨리 돌아온다고 하더라. 나중에 큰 병 앓을지 누가 알아?”
세종시는 갑작스러운 인구 유입으로 잠시 휘청거렸다. 문제는 부동산 매물이 없다는 점. 이사 오려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부동산 매물이 전혀 없었다. 이에 지방 정부에서는 신 거주구역을 확보하기 위한 도시 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제니스 병원은 국내 최대 규모와 최고의 의료진, 최고의 설비를 자랑하는 초대형 병원이었다. 비어 있는 병실도 많다는 게 알려지자, 일성종합병원 등 다른 대형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던 환자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세종시로 주민등록을 옮겼다. 실질적인 거주 생활이 인정되어야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이사를 하는 환자들도 늘어났다.
일성그룹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대로는 그룹 매출이 급감합니다. 고객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그룹 명예회장인 이형준의 손자이자 전략기획부 상무인 이재형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악연은 시간이 흘러도 악연이라더니, 제니스가 딱 그 꼴 아닌가.
물론 블루 결정체 독점 공급 국가라는 점에 기대어 그룹이 반사 이익을 보았지만(그 규모는 애써 외면), 과거 태안 공장 폭발 사고로 일성결정체가 결정체 정제 산업에 진출이 금지당한 것은 뼈가 아팠다.
“김 실장.”
“예, 상무님.”
“힘들겠지만 박 실장님과 자리를 한 번 마련해주세요.”
박 실장은 유지웅 개인 비서실장을 말하는 것이다. 김 실장은 조금 난감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
일성그룹 상무라는 명함으로는 박우진 실장과 자리를 마련하기 어렵다. 그만큼 격차가 엄청났으니. 다행히 일이 잘 풀려 김 실장은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흑석동으로 오라고요? 정말입니까?”
“예. 유지웅 회장님이 직접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차라리 잘 됐다. 이재형은 바로 준비를 마치고 흑석동으로 향했다.
이재형은 흑석동 저택 방문이 처음이었다. 유지웅이 평범한 보호막 능력자이던 시절, 한성산업을 놓고 불쾌한 접촉이 한 차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내 최고의 호화 저택이라더니, 과연 대학 부지에 세운 대저택답게 화려하고 놀라웠다. 멋지고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과 시원하게 뻗은 내부 도로, 가지런하게 줄을 짓고 있는 V-23의 커다란 검은색 동체, 우뚝 서 있는 제니스 박물관 건물까지. 어느 대부호도 자기 집을 이렇게 꾸며놓지는 못하리라.
“유지웅입니다.”
유지웅은 별다른 거부감 없는 듯한 태도로 이재형을 맞이했다. 예전의 일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면 기억할 만한 가치도 없어서 이미 까먹었거나.
“자리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재형입니다. 일성그룹 기획전략부 상무를 맡고 있습니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딸을 품에 안고 있는 유지웅은 무척 너그러워 보였다. 가끔 딸이 짧고 통통한 팔을 내밀어 얼굴을 만지면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이재형은 내심 말이 통할 듯한 예감을 받았다.
“제니스 병원 일로 할 말씀이 있다고 하셨죠?”
“예.”
이재형은 마른침을 삼키고, 본론을 꺼냈다.
“세종시 주민에 제공하는 제니스 병원의 혜택을 축소했으면 합니다.”
“왜죠?”
“고객들이 전부 세종시로 몰려가고 있어 여러 대형 병원들의 운영이 어려워질 조짐이 보입니다. 공생을 위해 회장님의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안 돼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거절에 이재형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이 자리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 유지웅이 의료사업 지분을 요구한다면 그에 응할 생각까지 있었다.
“오해하시는 거 같은데, 제가 돈 벌려고 제니스 병원 세운 거 아니에요. 혹시 병원 치료비를 안 받는 거, 출혈 경쟁이나 치킨 레이스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럼 아닙니까? 이재형은 그 말이 터져 나오려는 걸 참았다.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유지웅이 제니스 병원을 무상에 가깝게 운영하는 건 방대한 의료 시장을 접수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대기업이 상품의 가격을 극도로 낮추는 것은 흔히 있는 일 아닌가.
유지웅은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이윤 추구도 좋지만 사람 생명 가지고 장사하는 건 정도껏 하셔야죠. 그 정도 기업 윤리는 기업가 아닌 저도 알겠네요.”
“회장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상무님은 욕심이 지나치세요.”
“……회장님.”
이재형은 속으로 이를 바드득 갈았다. 뭐가 잘못되었다고, 저리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이런 모욕을 받아야 하는지 불쾌했다. 유지웅의 국제적인 위상은 인정하지만, 황태자로 태어난 그는 첫 만남부터 잘못 꿰인 탓에 자존심을 굽히기 어려웠다. 어찌 보면 그의 불운이었다.
“직원과 가정이 건강해야 회사도 건강해지고, 사회도 건강해지고, 나라도 건강해지죠. 아주 간단한 건데 모르세요? 마침 잘 오셨네요. 안 그래도 양성자 치료기가 필요 없어져서 구매 취소할까 했는데, 일성병원에서 대신 사가세요.”
분노를 머금고 있던 이재형은 뜻밖의 말에 기겁을 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억밖에 안 하는데 한 대 더 사서 무상으로 운영도 해보고 그래 봐요. 그럼 그룹 이미지 좋아질 거예요.”
“지나친 참견이십니다.”
“그럼 저한테 따지고 든 대가라고 해두죠. 아까 뭐라셨죠? 제가 말이 지나치다고 하셨던가?”
갑자기 목소리가 서늘해졌다. 이재형은 퍼뜩 정신이 들어서 그의 눈을 바라봤다. 눈동자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옛날 정제 공장 폭파로 오만 명이 죽었을 때, 그래도 많은 보상금 내놓으시고 하셔서 많이 달라진 줄 알았는데, 제 착각이었네요. 아니면 상무님만 그런 건가요?”
오싹 소름이 돋았다. 비로소 이재형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미국 대통령도 설설 긴다는 인물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황태자의 오만, 과거의 불쾌한 기억이 눈과 마음을 흐려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이재형은 서둘러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까 말을 함부로 한 점은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유지웅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양성자 치료기 그거 얼마 안 하더라고요. IBB사한테 좀 미안했는데 잘 됐네요.”
그렇게 이재형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천억짜리 혹만 하나 더 붙이고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하원이를 품에 안은 정효주가 내려왔다.
“갔니?”
“응. 근데 일성그룹 참 답 없다.”
“왜?”
“후계자라는 사람이 너무 욕심만 많고 생각이 없어. 나한테도 그러더라. 말이 지나친 거 아니냐고. 저래서 어떻게 저 커다란 그룹을 이끌어나갈지 의문이야.”
“……정말로 그런 말을 했어?”
“응. 그래서 확 쏘아붙일까 하다가 그냥 양성자 치료기 떠넘기는 걸로 용서해줬어. 나도 참 많이 착해졌네. 옛날 같았음 개트롤짓 했을 텐데. 앗, 우리 하연이 잠들었네. 가서 눕혀주고 와야겠다.”
유지웅은 품에 안은 쌍둥이 딸이 쌔근쌔근 자고 있자 얼른 일어났다. 덕분에 그는 차가워진 정효주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브론즈(유씨)의 트롤짓 = 천억짜리 반품 물품 떠넘기기
챌린저(정씨)의 트롤짓 = ?
?에 들어갈 것을 맞춰보세요.
PS : 격일연재를 하니까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부담도 덜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