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86)
00686 흔들리는 대국? =========================================================================
“흑석동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자수해야 합니다.”
측근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권유했다. 재판이 진행 중이던 도중 브라우니가 월가 상공을 한 바퀴 크게 돌고 돌아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백하다. 이른바 포함 외교, 아니 포함 재판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유지웅의 냉혹함은 이미 월가에서 유명했다. 진실과는 많이 다르지만, 어쨌든 월가는 유지웅을 탐욕스러운 독재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로스차일드를 박살내고 천문학적인 전재산을 압류한 것을 보면 뻔하지 않은가.
충분히 자기 뜻을 관철할 힘도 있다. 국제적인 인망, 영향력도 갖고 있다. 그야말로 월가가 달아날 곳은 없었다.
모건은 신음했다.
“확실하다. 흑석동은 미국의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셈이야.”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워싱턴 정계에 대한 월가의 영향력은 아직도 엄청나다. 금융의 힘이 막대한 미국에서 그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의 힘은 무한에 가깝다.
유지웅은 일찍이 테러를 빌미로 SC컴퍼니를 강탈하고, 연방준비은행을 국유화하면서 30%의 지분을 가져갔다. 로스차일드를 쳐서 없애버렸다. 록펠러가 두려움에 떨며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월가의 힘을 약화시켰다.
그 의도는 더 볼 것도 없이 명확했다. 바로 월가를 완전히 수중에 넣어, 미국의 명줄을 확실하게 움켜쥐겠다는 것 아닌가. 그리 하여 미국 시민과 미합중국이 보유한 부를 합법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삼키겠다는 것이다.
“워싱턴은 매국노들만 모였나? 멍청하게 모든 것을 들어다 바칠 셈인가?”
모건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측근들은 자수를 권했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그것은 나를 잡아먹으라고 호랑이 입에 머리를 갖다 바치는 꼴이다. 탐욕스러운 흑석동의 처분에 모든 것을 맡긴다니, 그야말로 무기력하게 자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리를 준비하게.”
* * *
“지금이야말로 건강한 미국으로 바꿔놓을 때입니다.”
미국은 가장 선진 민주화를 자랑하는 국가지만 그 안에도 어둠은 존재한다. 자본의 힘이 그 어떤 정의나 힘보다 우위에 있다는 진실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가장 큰 권력은 돈이지 대통령이나 정치가가 아니었다. 대통령, 정치가 따위의 감투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월가가 미국의 힘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네, 부통령.”
“저는 월가를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부패한 천민자본가들을 이 기회를 빌어 몰아내자는 겁니다.”
“부통령은 모르겠지만…….”
비시는 말을 삼켰다. 월가는 자신에게 있어 순수한 남이 아니다.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동지였으며, 친우이기도 했다. 인척 중에도 월가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란 바로 그런 자리였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수백만 명의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들입니다. 각하께서 그 자들을 감싼다는 게 알려지면 치명적인 타격일 겁니다.”
“아니, 감싼다는 게 아니라…….”
“흑석동은 분명 기회가 무르익으면 그 사실을 터트릴 겁니다. 월가가 단순히 테러집단에 자금 후원을 한 게 아니라 그들을 이용해 유지웅 회장을 테러하려 했다고, 그 과정에서 LA시민이 입는 피해는 고려하지 않았다고 공표할 겁니다. 그리 되면 각하께는 치명적입니다.”
“그건 사실이 아니잖은가?”
칠드그린은 터져 나오려는 울화를 억눌렀다. 월가가 몰락함으로 인해 대통령이 ‘사소한 것’들을 잃을 우려에 몸을 사리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작은 것을 탐하다가 아주 큰 것을 잃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핵탄두 반입과 LA점거는 테러집단의 단독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월가가 그들과 연결된 것은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느냐입니다.”
“…….”
맞는 말이다. 흑석동이 발표하는 대로 세상은 믿고, 분노할 것이다.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그들이 사익을 위해 테러집단과 손을 잡고 자금을 지원했으며, 그 자금으로 반입한 핵탄두에 북극곰 괴수가 달려들어 LA참사가 일어났으니. 그 책임은 결코 피해갈 수 없다.
“이제 그들을 잘라내고, 대수술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미국 역사상 이런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들 겁니다.”
“…….”
“대통령님, 지금이 바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비시는 묵묵히 칠드그린을 봤다. 오랫동안 정보기관의 실무장으로 일한 인물이다. 그만큼 애국심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정치적인 유착관계와 거리가 멀다. 월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자신과는 분명히 다르다.
‘부통령의 말은 옳다.’
비시는 여러 모로 말이 많지만, 그래도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최고 수장까지 오른 인물이다. 미국이 처한 상황, 미국이 선택해야 할 길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월가의 탐욕이 미국에 끼친 악영향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화당의 친기업 정책 수용 범위라 해도, 가난한 시민들이 고통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도를 넘어섰다.
“부통령의 말이 옳다는 건 인정하네. 하지만 나는 미합중국 대통령으로서 매우 우려되는 점이 한 가지 있네.”
“큰 살점을 내어주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시지 않습니까? 흑석동은 월가와는 다릅니다. 무차별적인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걸 어찌 믿나?”
“대평원을 기부한 것을 보고도 믿지 못하십니까?”
비시는 선뜻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다.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대농장을 유지웅은 선뜻 기부해줬다. 우방국인 미국의 안녕을 위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미국 내 유지웅의 지지도는 끝없이 올라갔다.
그것만 보면 유지웅이 월가를 손보고자 하는 것에 다른 의도가 없다고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것’을 내어주고 ‘큰 것’을 취하고자 하는 계략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대통령이라는 자리였다.
“제가 설득할 수 있습니다.”
“부통령.”
“믿어주십시오, 대통령님.”
칠드그린은 차분히 부탁했다. 비시는 말없이 그의 눈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조금도 알 수 없다. 다만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아주 선명한 눈동자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유지웅은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 현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보에서 출혈을 흘릴지언정 그의 소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한 국가로서 지닌 최소한의 자존심이자, 존재 의의였다.
“나는 흑석동의 힘을 인정하고, 깊은 친교를 다지고 싶네. 하지만 미합중국이 흑석동의 소유물이 되는 건 원하지 않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네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겠나? 미국의 미래를 걸어도 되겠는가?”
“믿어주십시오.”
“……계획을 말해주게.”
* * *
“이모!”
다다다다, 하고 유세현이 달려왔다. 덥석 뛰어들자 정혜주는 웃는 얼굴로 아이를 안아들었다. 품에 안은 채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언니를 돌아봤다.
“언니, 형부는?”
“집에 없는데? 공작실에 갔어.”
“공작실? 거긴 왜?”
“응. 요즘 뭐 만드는 거 있나 봐.”
그리고 정효주는 다 안다는 듯이 눈웃음을 쳤다.
“뭐 부탁할 거 있구나? 혹시……?”
“아, 아니거든!”
“얘는. 난 암말도 안 했거든?”
“하여튼 알았어! 세현아, 미안. 이모가 다음에 놀아줄게.”
“이모, 벌써 가?”
“응. 미안.”
“빨리 와! 니 차례라구!”
서운해 하는 조카를 달래는데 날카로운 소녀의 고음이 울렸다. 돌아보니 아슬아슬한 젠가를 앞에 두고 피즈가 발을 동동 구르며 재촉하고 있었다. 기특한 녀석, 피즈와 젠가를 하다 말고 이모가 왔다고 쪼르르 달려나온 모양이다.
“이겼다! 이겼어! 우헤헤헤! 내가 이겼어!”
피즈는 와르르 무너진 젠가 더미를 보며 기뻐서 만세를 불렀다. 유세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이마를 댔고, 피즈는 손가락에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힘을 장전했다.
천진하고 평화로운 아이들 모습을 뒤로 한 채, 정혜주는 유지웅이 있다는 공작실로 향했다.
“형부는 참, 이번엔 또 뭘 만드시려고…….”
유지웅은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이것저것 직접 만들어보는 취미가 있다. 아직도 1대1 사이즈의 부가티 황금 레고는 정혜주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재산과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유지웅의 취미는 더욱 정교하고 복잡하게 변해갔다.
작년에는 결국 취미 생활을 위해 저택 밖에 따로 공작실을 만들기까지 했다. 문제는…….
“회장님은 안에 계신가요?”
“예. 지금 3번 구역에 계십니다.”
정혜주는 입구에 들어서기 전 잠시 공작실을 바라봤다. 높이 20미터, 100만 평방미터의 대형 빌딩이다. 자그마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울산 자동차 공장의 1/5에 달하는 면적이다. 이런 공장을 ‘개인 공작실’로 쓰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긴 컨베이어 벨트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거대한 로봇 팔이 쉴 새 없이 부품을 조립한다. 완전 자동화 로봇이 부품을 실어 나르고, 청소용 로봇들이 바닥에 떨어진 먼지와 파편을 주워 삼키고 있었다.
마치 SF에서나 볼 법한, 먼 미래의 풍경을 고스란히 가져온 듯한 느낌이다. 정혜주는 더듬더듬 길을 찾아 마침내 유지웅을 발견할 수 있었다. 회색 작업복을 입은 그는 얼굴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묵빛 강철 간판의 용접에 한창이었다.
“형부!”
“어? 혜주 왔어?”
그제야 알아차린 유지웅은 잠시 용접을 멈췄다. 보호대를 벗은 그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그러는 형부는 지금 또 뭘 만드시는 중이에요?”
“맞춰볼래?”
“이것만 보고 제가 어떻게 알…… 앗!”
그제야 정혜주는 발견했다. 한쪽 구석에 제법 완성된 모델이 당당하게 놓여 있었다. 유지웅은 놀라워하는 그녀의 모습이 즐거운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보호 장갑을 낀 손에 쥐고 있는 커다란 묵빛 강판이 반질반질한 반사광을 냈다.
정혜주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유지웅이 근래 만들고 있다는 프라모델이 그만큼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형부, 이건 설마……?”
“그래. 배트카야.”
배트맨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 명품, 배트카! 거의 완성된 그 날렵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정혜주는 경악하고 말았다.
“이거 정말 형부가 만든 거예요?”
“응. 엄청 고생했어.”
“부, 부품은 다 어떻게…….”
“엔진은 록히드마틴에 주문했고, 제어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바퀴는 보잉사에 주문했지. 그리고 또…….”
형부가 손재주가 제법 좋은 건 일찍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무슨 자동차 공장급 개인 공작실을 갖춘 건 좀 과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프라모델 제작용으로 쓸 거면서.
그랬는데 눈앞에 배트카를 보고 정혜주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무리 주요 부품을 주문 발주했다고 하나, 아무리 전자동 로봇팔과 컴퓨터 시스템의 도움을 받았다 하나, 아무리 돈으로 떡칠을 했다고 하나, 혼자서 저런 걸 뚝딱 만들어내는 그 매니아 정신에는 질리고 말았다.
“이거 설마 달릴 수도 있나요?”
“자폭 기능도 있고, 배트포드로 분리 변신도 가능해.”
“맙소사.”
“진작 완성하는 건데, 하필 배트맨 문장을 깜박 잊는 바람에 이틀 전에 뉴욕까지 급히 다녀왔잖아.”
“뉴욕이요?”
“응. 프라모델 동호회 멤버 중에 히어로 문장은 엄청 멋있게 뽑아내는 양덕 한 명이 거기 살거든. 시간이 없어서 브라우니 타고 갔다 왔어.”
“……맙소사.”
============================ 작품 후기 ============================
덕중지덕은 유덕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