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687)
00687 흔들리는 대국? =========================================================================
정혜주도 나름 ‘황실의 일원’이다. 예전에야 언니 눈치도 보이고 해서 스스로도 자제했지만, 대학 재단 재무 이사를 맡으면서는 개인 비서를 고용하는 등 구색을 갖춰나갔다. 당연히 그들을 통해서 듣는 이야기들이 많다.
브라우니가 뉴욕 상공을 들린 것은 상류층에서는 유명한 관심거리였다. 정혜주도 다른 사람들처럼 포함 재판을 위한 협박수단인 줄 알았다. 유지웅 본인은 정작 재판 청구 당사자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협박설은 그럴 듯한 지지를 얻었다.
헌데 정작 본인은 실물 배트카 제작에 필요한 배트 로고를 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월가 사람들은 물론이고 워싱턴이 진실을 안다면 뒷목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
“짜잔! 완성이다!”
유지웅은 심혈을 기울여 용접한 로고를 장착하고는 주먹을 불끈 쥐며 좋아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잠깐 졸던 정혜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형부가 아이처럼 방방 뛰며 좋아하고 있었다.
‘형부도 참.’
더러운 싸구려 작업복(안전을 위해 우주 소재로 만들어진, 웬만한 아파트 가격을 상회함)을 입고 용접질에 열중하는 모습을 봐라. 누가 저걸 보고 전 세상이 벌벌 떠는 남자라 생각할 수 있을까.
유지웅은 심혈을 기울인 완성작이 마음에 드는지 연신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마 오늘 국내 대형 프라모델 사이트는 한바탕 난리가 날 것 같다. 아니 잠깐, 저걸 프라모델이라고 불러도 될까?
유지웅이 조종석을 오픈하고 안에 타려고 하자 정혜주는 기겁을 했다. 형부는 한 번 기분에 취하면 끝까지 가는 남자다! 조종석에 탔다가는 그대로 도로로 나가서 한바탕 질주를 할 게 분명했다!
“혀, 형부! 잠깐만요!”
“난 하키복은 안 입어.”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아무튼 잠깐만요! 드릴 말씀이 있다구요!”
“뭔데?”
정혜주는 숨을 골랐다.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지금부터 자신이 하려는 말은 처제라는 지위를 이용한 청탁이다. 이런 짓을 해보는 게 처음이라 그래도 긴장됐다.
“북극곰 결정체 말인데요…….”
“그게 왜?”
“니트로 교수님과 가렌 교수님이 방사능 제거 장치를 만드는데 필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잘하면 미국을 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래? 그럼 갖다가 쓰라고 해. 최 소장님한테 말씀드리면 될 거야.”
“그래도 돼요?”
“결정체 연구보다는 미국 복구가 더 급하지. 나 뭐가 중요한지는 구별할 줄 안다고.”
“고마워요, 형부.”
“나 그럼 나가볼게.”
유지웅은 조종석에 오른 뒤 손을 흔들었다. 위이잉, 하며 상단 개폐형 문이 닫혔다. 차에 시동이 걸리며 불이 들어왔다.
정혜주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형부가 손재주가 제법 있는 것은 알고 있다. 황금 부가티 레고, UFO 코르키의 1인승 UFO 등 다양한 것들을 뚝딱뚝딱 참 잘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걱정이 된다. 과연 저 배트카가 제대로 달릴 수 있을까?
“효주한테 오늘 늦을지도 모른다고 전해 줘!”
“앗, 그거 타고 어디 가시게요?”
“오늘 코믹 월드 있거든!”
공장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배트카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요란한 굉음을 뿜어냈다.
부우우웅!
마침내 배트카가 쏜살처럼 튀어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순간적으로 일어난 바람이 정혜주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녀는 다소 멍한 눈으로 배트카가 남긴 궤적을 봤다.
“형부도 참…….”
남자가 저렇게 귀여우면 안 되는데. 정혜주는 불현듯 그렇게 생각하고 키득거렸다.
“그래도 니트로가 더 귀여워.”
* * *
코믹월드행사라는 아마추어 만화 종합 행사라는 게 있다. 만화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들이 직접 창작한 전시품이나 캐릭터로 분장하여 즐기는 대형 행사다. 알려지진 않았지만 유지웅도 이 행사의 광팬이었다. 서울과 부산에 열리는 매 행사를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해왔다.
“저거 봐. 와, 쩐다.”
“역시 서양 캐릭터 코스프레는 백인이 갑이라니까.”
“그냥 뭐 걸치기만 해도 화보집이네. 과연 우월한 혈통답다.”
유명 SF 영화의 히로인을 코스프레한 백인 여성의 우월한 자태에 카메라가 한꺼번에 쏠렸다. 백인 여성과 동료들은 만족감을 느끼며 한껏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를 들고 참석한 평범한 관람객들은 잘 나온 사진을 보며 만족함을 표시했다.
“역시 덕중덕은 양덕이라.”
“양키의 클래스는 죽어도 못 따라가지.”
“야! 저거 뭐야?”
“미친! 건담이잖아!”
유명한 로봇을 사람 크기로 정교하게 만들어놓은 프라모델이 차에 실린 채 들어서자 관람객들은 뒤집어졌다. 정신없이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와, 저 도색한 거 봐! 개쩜!”
“역시 양키 클래스!”
“대단, 대단!”
서울이 세계의 수도라는 말을 들으면서 선진국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다국적 기업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서울에 자사, 혹은 본사를 세웠기 때문이다. 세종시로 빠져나간 도시 인구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외국인이 몰려드는 바람에 서울 인구는 오히려 전보다 늘었다.
우수한 인재들이 회사를 따라 서울에 들어왔다? 이건 달리 말하면 우수한 ‘매니아’들이 대거 몰려왔다는 말도 일맥상통했다. 남들은 상상도 못할 클래스의 만화 혹은 영화 창작품을 만들어내는 외국인들, 그들을 이제 서울 코믹 행사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우우웅!
그때였다. 우렁찬 엔진음이 울리며 날렵하게 빠진 검은색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처음에 관람객들은 웬 차가 여기까지 들어왔나 당황했다. 그러나 차의 모습을 보고 뿜고 말았다.
“저건 뭐야!”
“배트카잖아!”
“미친! 크, 클래스 보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장 한가운데에 날렵하게 빠진 배트카가 보란 듯이 멈춰 섰다. 우월한 캐릭터 코스프레도, 인간 사이즈 로봇 모형도, 이제는 모두의 관심 밖이었다. 날렵한 곡선을 자랑하는 동체에 흠뻑 반한 사람들이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일부 골수 매니아들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전율했다.
“나는 오늘 진정한 덕질의 끝을 보고 말았다…….”
“와, 시발. 저런 거 만들려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과연 덕의 길은 끝이 없구나.”
코믹 행사의 이목은 순식간에 배트카로 쏠렸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몰려들어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아우성을 쳤다. 혼란이 가중되자 행사장 요원들이 나서서 안전 통제에 힘썼다.
배트카는 완벽했다. 마치 영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한 생생함, 정교한 자태를 자랑했다. 단순히 차량을 개조해서 외형만 바꾼 수준이 아니었다. 기본 동체 설계부터 장인이 한 땀 한 땀 심혈을 기울여 용접질을 한 흔적이 가득했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와, 시발. 저거 만들려면 못 해도 몇 천은 들겠다. 부품값만 해도 그 정돈 하겠네.”
“몇 천 가지고 되겠어? 저런 건 부품 발주하려고 해도 개별 주문이라서 귀찮다고 회사들이 잘 들어주지도 않는다고. 자기가 직접 공장까지 가서 가져와야 할 걸? 그 수고랑 운송비 생각하면 어휴…….”
“이제 백형들이 서울 코믹까지 점거하는구나.”
“백형이 아닐 수도 있지. 근데 왜 안 나와? 모습 한 번 보일 때도 됐는데.”
* * *
유지웅은 뿌듯했다. 모니터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역작, 배트카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배트카를 만들기 위해 고생한 지난날을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다.
아무렴,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며칠 전에는 로고 하나 사려고 뉴욕까지 손수 다녀왔다고!
‘백형들에게 덕중지왕 자리를 내어줄 순 없지.’
흐뭇했다. 이제 매니아 세계는 한국이라는 이름을 강하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남들이 놀라고 감탄하는 정교한 창작물은 더 이상 양키, 아니 백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출발탄이 바로 이 배트카가 될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필생의 역작!
유지웅은 이쯤에서 내리려고 했다. 이 놀라운 배트카가 백인이 아닌 한국인, 그것도 서울 시민의 손에서 창조되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차!’
그는 당황했다. 그제야 너무 신나서 작업복 그대로 배트카에 탄 것을 깨달았다. 이런 망할! 오늘 이 날, 이 순간을 위해서 멋진 배트맨 복장까지 만들어뒀는데!
‘어디, 어디 있지?’
혹시나 싶어서 조종석 내부를 뒤져봤다. 하늘이 도우셨을까. 그는 배트맨 헬멧과 망토를 발견했다.
“다, 다른 것들은?”
하늘은 그를 버렸다. 헬멧과 망토를 제외한 다른 복장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제야 어제, 헬멧과 망토를 입고 오늘 코믹월드에서 차에서 내리며 보일 포즈를 연습하다가 조종석에 던져 버린 것이 기억났다. 다른 상하의와 신발은 공작실 보관소에 고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으아아악!’
어떻게, 어떻게 준비한 행사인데! 이렇게 멍청하고 어이없는 실수로 망쳐버릴 수 있을까!
“배트맨! 배트맨!”
사람들의 환호가 커졌다. 하지만 이 꼬라지를 하고는 죽어도 나갈 수 없지 않은가?
할 수 없다. 유지웅은 마음을 굳혔다. 이 더러운 작업복(다시 말하지만 우주 소재라서 웬만한 아파트 매매가를 넘어간다)에 헬멧과 망토만 입고 나갔다가는 웬 망신이냐. 차라리 신비주의로 남는 게 나으리라.
‘차 돌리자.’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유지웅은 차를 돌리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화면이 왜 이래!”
모니터 화면이 전부 맛이 갔다. 화면이 온통 푸른색 바탕에 알 수 없는 영어 경고문으로 가득했다. 블루 스크린의 악몽이 재현되고 만 것이다.
“하필이면 이럴 때!”
유지웅은 기기화면을 치며 분노를 터트렸다. 사람들은 어서 모습을 보여 달라며 환호하고 있었다. 군중의 환호성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여기서 차가 고장 났다는 이유로, 이 꼴로 나갔다가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흑역사 생성이다.
“……어쩔 수 없어. 비상 탈출 포트를 만들어놓은 게 다행이었어.”
그는 굳게 결심을 하고, 붉은 버튼을 눌렀다.
* * *
푸슉!
갑자기 배트카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차량 외장갑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놀라서 물러났다. 차량 외장갑이 빠르게 분리되는가 싶더니, 하얀 연막이 순식간에 배트카를 감싸며 모습을 완전히 감췄다. 그리고!
부아아아앙!
앞뒤로 두 개의 커다란 바퀴가 달린 검은 오토바이, 날렵한 배트포드가 순식간에 연막을 뚫고 빠져나왔다. 배트포드는 그대로 지금까지 달려왔던 방향을 되짚으며 순식간에 사람들의 모습에서 사라졌다. 배트포드에 납작 엎드린 누군가의 뒤에서 멋진 배트맨 망토가 펄럭였다.
“우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사람들은 열광했다. 설마 했지만 배트카가 배트포드로 분리변신까지 가능할 줄이야! 날렵한 배트포드에 타고, 망토를 흩날리며 사라지는 배트맨 코스프레라니!
누군가가 눈물을 흘리며 감탄했다.
“다크 나이트는 언제나 고독한 법이지.”
아무튼 그 영상은 곧바로 유튜브에 올라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다. 일주 매니아들 간에는 망토 아래 슬쩍 드러난 듯 만 듯한 배트맨의 복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다행히 크게 퍼지지 않고 묻혔다고 한다.
―배트맨은 누구?
매니아들 간에는 배트맨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놓고 온갖 갑론을박이 오갔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제니스 공격대장이 지목되었다. 배트맨이 버리고 간 배트카를 회수해간 직원들이 제니스 소속이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석동은 끈질긴 질문에도 입을 굳게 다문 채 어떤 입장 표명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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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크린도 쓰기에 따라서는 좋은 연출 장치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