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
00007 그래도 천민이다 =========================================================================
현철수가 외치자 딜러들이 일제히 딜을 시작했다. 총탄, 화염, 전기, 폭풍이 마구 쏟아지며 괴수를 공격했다. 정효주는 안전권으로 빠져서 기진맥진한 채 경계하고 있었다. 현철수에게 힐을 집중하던 유지웅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힐을 줄 순 없었다.
현철수는 과연 막공에서 이름을 날리는 공격대장다웠다. 괴수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끄떡없었다. 그는 어그로를 끄는 것은 약하지만 맷집 하나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정효주와는 어찌 보면 반대격이었다.
“클리어!”
마침내 괴수가 쓰러졌다. 다들 기진맥진해서 쓰러지며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성태 씨 정말 수고하셨어요. 딜 장난 아닌데요?”
“다 장비 덕이죠. 얼마 전에 적금 털어서 장비 새로 맞췄거든요.”
“어머, 정말요? 얼마짜리예요?”
“싼 거예요. 5억 들었어요.”
“그게 싸요? 5억이면 장난 아니네. 우와, 어쩐지 딜이 장난 아니시더라. 정규 공격대 생각하시나 봐요?”
“사대보험 생각하면 정규 공격대 들어가야죠. 노후도 생각을 해야 하고요. 60세 넘어서까지 레이드 뛸 순 없잖아요? 그러려면 미리부터 딜에 투자해야죠. 성희 씨, 딜에 투자하는 건 미래에 투자하는 겁니다. 전혀 아까워해서는 안 돼요.”
“정말 멋있어요.”
괴수의 사체는 내부의 희귀 물질 때문에 매우 돈이 된다. 그것을 가지고 과학자들은 이것저것 유용한 것들을 많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산업 기밀이라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일반에 알려진 것 중 대표적인 것은, 희귀 물질을 통해서 딜러의 능력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장비는 딜러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았다.
딜러들은 가난하다. 레이드를 자주 다니는 딜러들도 가난하다. 레이드를 고정적으로 다니면 딜러도 돈은 많이 벌지만, 그들은 고급 장비를 맞추는데 버는 돈을 다 쏟아 붓는다. 장비가 좋아야 딜이 좋고, 딜이 좋아야 공격대에서 자기 어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라곤이나 엔시디아에서 유명세를 날리는 초일류 딜러들은 장비값에만 수백억을 쏟아 부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괴수 사체가 비싼 만큼, 괴수 사체로 만든 장비도 오질나게 비싼 건 당연한 것이다.
물론 장비는 딜만 증폭시켜줄 뿐, 힐이나 탱킹 능력을 증폭시켜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힐러들은 장비에 관심이 없다. 탱커들은 어그로를 잘 먹기 위해서 장비를 사용한다. 결국 장비를 찾는 것은 딜러와 탱커뿐이다.
그렇다 보니 공격대장이 아닌 부탱커들은 딜러보다 더욱 가난했다. 정효주가 살림이 썩 피지 않는 게 그런 이유였다. 그래도 그녀는 20살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자기 집에 마이카, 그리고 노후 연금까지 붓고 있었다. 능력자들의 경제력을 비능력자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힐러님들 오늘 수고하셨어요.”
“뭘요. 해리 씨가 더 수고하셨죠.”
“그런데 힐러 5명 치고는 힐이 너무 힘든 것 같았어요. 다른 때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아, 그거요? 저기 저 분이 힐량이 보조 힐러 정도 수준이래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어머, 그래요? 하지만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시던데. 힐이 제때 발동하는 것 같았어요.”
“힐량만 차이 나지 힐 속도는 똑같대요. 그래서 레이드에 참가한 건가 봐요.”
“힐러로서요? 그럼 좀 불공평한 거 같은데…….”
“대신 딜러와 똑같이 받는다나 봐요. 오늘은 초행이라서 절반만 받기로 했고요.”
“와, 그럼 상관없죠. 생각이 정말 잘 잡힌 분이시네요. 힐러 중에도 무개념한 애들 정말 많은데.”
힐러가 적은 것은 힐러들에게도 문제가 된다. 특히 막공의 경우에는 더욱 두드러진다. 힐러 3명이서 레이드를 간다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힐러들이 힘들겠는가?
그래서 힐러들도 다른 힐러가 다소 실력이 떨어져도 자기 생존을 위해서 눈감아 주는 편이었다. 물론 뒤에서 무시를 하거나, 혹은 분배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유지웅이 딜러만큼 돈을 받는다면 그들이 문제를 제기할 건 없었다.
“27억입니다.”
회사에서 나온 인물들이 괴수 사체를 감정했다. 25인 몹치고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기에 공격대원들도 불만은 없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돈을 분배하고 현철수가 밝은 얼굴로 해산을 외쳤다. 딜러들은 딜러들끼리, 힐러들은 힐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웃으면서 헤어졌다.
정효주와 유지웅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딜러들은 딜러들끼리, 힐러들은 힐러들끼리 그룹을 형성했다. 그들은 어느 곳에도 끼지 못했다.
딜러들에게 유지웅은 전투에 참가만 해줘도 고마운 존재다. 힐러가 부족하면 아예 레이드를 못 가니 말이다. 하지만 딜러에게 힐러는 섣불리 친해지기 어려운 존재다. 잘못했다가는 힐러 후광을 노린다는 욕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힐러들에게 유지웅은 이복형제 같은 존재였다. 레이드에 겸사겸사 끼워주기는 했지만 자신들과 어울릴 만큼 유용한 존재는 아니었다. 배척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쉬울 게 없는 힐러들로서는 굳이 유지웅에게 접근할 이유가 없었다.
“하루만에 5천만 원을 벌었네.”
“히히, 난 일억이다?”
“와, 쩐다.”
정효주는 딜러와 동등한 몫을 받았다. 유지웅도 같은 몫을 받아야 하지만 오늘은 초행이라서 절반만 받은 것이다.
“어차피 세금 내고, 장비 사고 하다보면 많이 안 남아. 딜러와 부탱은 돈 모으기 힘들어. 힐러는 장비 필요 없으니까 고스란히 저축하면 그만이지.”
정효주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힐러는 좋겠다. 세금 안 내도 되니까.”
“힐러는 세금 안 내? 왜?”
“힐러를 많이 유입하려는 정책 때문이지. 능력자 중에서 힐러는 3%밖에 안 되니까. 지웅이 너, 딜러와 탱커가 세금 얼마나 많이 내는지 알면 놀랄 걸?”
“얼마나 내는데?”
“내가 오늘 번 1억에서 50%를 가져간다면 믿어지니?”
“날강도네, 완전히!”
“그래서 힐러를 해야 돼. 힐러가 최고야.”
정효주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유지웅은 다소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난 힐러지. 어쨌든 힐러는 힐러.”
“지웅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다른 힐러들하고 싸우기라도 했니?”
“그런 거 아니야. 그냥…… 효주 네가 지금까지 어떤 기분으로 레이드에 참가했는지 알 것 같아서 그래.”
부탱은 말 그대로 경험과 실력이 부족한 탱커가 하는 것이다. 경험과 실력이 쌓이면 메인 탱커로 발전한다. 그들은 당연히 순수한 탱커다.
하지만 정효주는 탱커와 딜러를 반반 섞은 타입이다. 억지로 장기를 살려 부탱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이른바 탱딜의 혼혈이라고 볼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탱커에도, 딜러에도 섞이지 못했다.
힐러도, 탱커에게도 자기들만의 유대가 있다. 정규 힐러에게 무시당하는 보조 힐러도 그들만의 사회가 존재한다. 천민으로 취급받는 딜러도 그들만의 조직체가 있다.
정효주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그리고 유지웅도 마찬가지.
그는 보조 힐러도, 일반 힐러도 아니었다. 보조 힐러를 하기에는 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아까웠고, 일반 힐러라고 하기에는 힐량이 낮았다. 그러니 힐러들도 무의식적으로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리라.
정효주처럼 그도 어느 쪽에도 낄 수 없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 말을 하자 정효주가 그의 이마에 작게 꿀밤을 먹였다.
“너 그런 소리 딜러가 들으면 화낼 거야. 어쨌든 너는 레이드 가고 싶을 때 갈 수는 있잖아? 일반 힐러보다는 적게 받아도 딜러만큼은 받잖아? 게다가 세금도 안 내잖아? 딜러가 보기에 넌 얼마나 축복 받은 존재인데.”
유지웅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정효주는 딜러를 해본 적이 없어서 딜러의 마음을 모른다. 유지웅은 레이드 한 번 못 가는 천민 딜러 시절을 겪어봐서 잘 안다. 딜러가 감히 화를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순수한 힐러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그는 여전히 천민이었다.
힐러 중에서는 최하위의 천민이었다.
「붉은 매를 잡는 레이드를 가려고 합니다. 우리 막공으로 말할 것 같으면……중략…… 그래서 귀하가 반드시 참여해주셨으면…… 중략…….」
「안녕하세요? 저는 2급 딜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근래 레이드를 거의 가지 못해……중략……그래서 저를 데려가주시면 제 몫의 절반은 귀하에게 드리겠습니다……중략…….」
「저 좀 데려가주세요! 엉엉! 제가 받을 돈 90% 드릴게요! 꼭 드릴게요! 데려만 가주세요! 제발! 엉엉!」
「취업률이 극심한 레이드 세계, 이대로도 좋은가?」
「과거 대기업의 산업 독점 이상으로 힐러들의 독점 체제가 문제시되고 있어…… 당국의 해결책은 미지수…….」
힐러로 각성한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유지웅은 정효주와 같이 꼬박꼬박 막공을 다녔다. 덕분에 유지웅은 10억이란 거금을 모았다. 은행에서는 이미 VVIP로 알아서 받들어 모시고 있었다.
“아아, 세금.”
정효주는 매번 그렇게 부러워했다. 탱딜은 세금을 떼가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나라. 사냥하는데 해준 게 뭐 있다고.”
레이드가 끝나면 딜러들은 그렇게 투덜거렸다.
탱딜은 세금을 최하 10%에서 최고 50%까지 낸다. 복잡한 세금 계산법이 있지만, 간략히 설명하자면 4개월 동안 3억 이상의 소득자는 50%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 정도면 거의 착취 수준이지만, 사실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딜러는 거의 없다.
25인 레이드에서 딜러는 평균 1억이 좀 못 되는 돈을 받는다. 4개월에 3억 이상의 소득을 올리려면 한 달에 레이드를 1회를 가야 한다.
“나는 스펨 메일 때문에 죽겠어.”
“하도 여기저기서 오라고 하니까?”
“응.”
유지웅은 내심 뿌듯했다. 찬밥 신세였던 딜러 시절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완전히 파라다이스. 메일함은 매일 같이 막공에 참가해달라는 공격대장들의 요청서와 자기 좀 레이드에 데려가 달라는 딜러들로 넘쳐났다.
‘이 맛에 힐러를 하는구나!’
만약 딜러가 3%고 힐러가 94%였으면 그 반대였겠지?
물론 모든 게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유지웅은 힐러로서 막공장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었지만, 같은 공격대 내부의 힐러들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힐량도 절반 밖에 안 되는 게 무슨 힐러야?”
“그냥 저 힐러 빼버리고 다른 힐러 받는 게 낫지 않아?”
“힐러 수가 너무 적으니까 할 수 없는 거지 뭐.”
“아유! 내가 힐러지만 짜증난다! 힐러가 왜 이렇게 적냐고!”
그들은 대놓고 찾아와서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성인이 애들처럼 시시비비를 벌이는 것은 무협 영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 현대 사회 사람들은 귀찮은 것을 꺼려한다.
그리고 유지웅은 딜러와 똑같이 받아갔다. 만약 힐러와 동등한 몫을 받았다면 힐러들은 진작 따지고 나섰을 것이다.
유지웅은 다른 힐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들이 자기들 사회에 끼워주지를 않았다. 그냥 신기하게 생각하며 무관심으로 대응하는 것은 차라리 신사였다. 대다수 힐러들은 힐량이 절반 밖에 안 되는 유지웅을 자기들 따까리쯤으로 여겼다.
물론 대놓고 뭘 시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가는 유지웅도 당연히 참지 않는다. 단지 전투 역할에 있어 따까리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힐이 약간 부족하게 들어갔을 때 채워주는 그런 존재?
“그래도 역시 힐러랑 같이 다니니까 벌이가 좋다. 저번에 김혁수 대장 막공 다녔을 때보다 훨씬 나은데?”
막공대장이라 해서 항상 막공을 꾸리는 것은 아니었다. 힐러가 확보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막공은 왔던 힐러가 오기도 하지만 절반 이상은 힐러들도 계속 교체 된다.
잘 나가는 막공이 레이드를 많이 가야 한 달에 두 번이다. 그러니 딜러들은 얼마나 피눈물이 날까.
한 달 동안 유지웅과 정효주는 레이드를 10회나 갔다. 사흘에 한 번씩 레이드에 참가한 것이다. 그래도 자리는 넘쳐 났다. 비록 힐량이 낮지만, 막공에서는 유지웅을 환영했다.
정효주가 함께 세트로 끼어 와도 환영했다. 정효주 같은 부탱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불편할 건 없다. 하지만 힐러와 같이 세트로 묶여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날도 레이드가 수월하게 끝이 났다. 딜러들은 딜러들끼리 서로 수고했다며 덕담을 했다. 힐러들은 힐러들끼리 서로 수고했다며 덕담을 했다. 정효주와 유지웅은 그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서로 수고했다며 덕담을 했다.
“두 분 오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메인 탱커인 막공장이 그것을 보고 슬쩍 다가와서 감사하다며 인사했다. 보통 공격대장은 초능력자 중에서 비교적 정치적인 수완이 좋은 편이다. 사람을 끌어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22억입니다.”
“에게? 그거 밖에 안 됩니까?”
“25인 몹인데요?”
“결정도가 낮아서요.”
회사에서는 그렇게 감정했다. 불만이 없진 않지만 회사의 감정은 절대적이다. 감정평가를 가지고 속이면 나라에서 강력한 제재가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