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18)
00718 황제의 마실 =========================================================================
“지금 아프리카는 총체적 난국입니다. 스팟 필드라는 보물이 오히려 그 지역을 더욱 큰 혼란으로 몰아넣을 겁니다.”
아프리카 스팟 필드 조성으로 한창 세상이 떠들썩할 때, 비밀리에 방한한 칠드그린은 유지웅과 저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넌지시 그 말을 꺼냈다.
“아프리카는 보물을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보물은 힘이 없는 자에게는 혼란만 줄 뿐이다. 아프리카는 정부가 통제력을 사실상 상실한 무정부지역이다. 수십 개가 넘는 혈맹, 군벌화 된 이들이 사익을 다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자문단의 보류 권고는 아마도 그런 점 때문일 겁니다.”
느긋하게 고기를 썰며 칠드그린은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회장님이 나서시면 혼란에 불을 붙일 뿐입니다.”
“제가 힘이 부족하다는 건가요?”
“넘치시죠. 그러나 개미집을 건드리는데 포크레인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마 개미집은 흔적조차 남지 않겠죠.”
“…….”
“아프리카 혈맹들이 낳은 병폐는 어제 오늘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이런 발언은 매우 위험하지만, 그들은 미개합니다. 혈맹을 구성하는 이들에 한정해서 비난하는 거니 부디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
“혈맹원들은 제니스가 대단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게 뭐 어떠냐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습니다. 자기들 땅에서는 자기들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지요. 거기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전사로서 죽는 것은 영광이라는 자부심으로 뭉친 이들이니까요.”
“마치…… 광신도 같네요.”
“유사합니다.”
칠드그린은 서늘한 눈빛으로 천천히 못을 박았다.
“그들 대부분을 제거하지 않고는 아프리카를 안전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제니스를 침략자라 여기고, 테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끝까지 항거할 겁니다. 민간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도 거리끼지 않겠죠.”
아이러니하게도 무력이 가장 잘 통하는 이는 말이 통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때문에 힘의 격차에 이내 순응한다.
힘으로 누르는 것은 가능하다. 유지웅은 충분히 그럴 힘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는 다르다. 그들에게 압도적인 힘은 대량 학살을 불러올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지웅이 가장 원치 않는 결과다.
“욕심에 눈이 먼 혈맹끼리 서로 물어뜯고 약화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이후에 입성하시면 됩니다.”
“그 동안에 민간인 희생이 있을 텐데요.”
“지금 입성하시면 더 큰 희생이 발생합니다.”
“…….”
“안타까우시겠지만 기다리는 것만이 가장 희생을 줄일 수 있고, 가장 제니스의 명예를 지키는 일입니다.”
칠드그린은 문득 이 젊은 ‘황제’가 자신의 권고를 들을지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자문하기 무섭게 가슴에서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닐 거라고.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부통령님. 저 때문에 괜히 먼 길 오신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천만에요.”
“내일 일정도 있으실 텐데 이만 대사관으로 가보시죠.”
“알겠습니다.”
칠드그린은 흑석동 저택을 나섰다. 의전 리무진에 몸을 싣고 조용히 시간을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렇게 막 열까지 세었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유지웅이었다. 그는 그럼 그렇지, 하며 조용히 씩 웃었다. 젊은 황제가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그는 내심 궁금증에 가슴이 뛰었다.
「부통령님. 부탁이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그게 뭐냐면…….」
* * *
카이할은 알제리 출신이다. 어린 시절 레이더로 각성한 그는 일찌감치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아버지가 조국보다는 미국에서 레이더로 사는 게 행복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군소 공격대원도 레이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반 주민들보다는 풍족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은 레이더인데 누구는 거대 혈맹에 들어서 호의호식하고, 누구는 여기저기 뜯어 먹히기 바쁜 처지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버지의 판단은 옳았다. 만약 조국에 있었다면, 혈맹에 들어가지 않는 한 안락한 삶을 누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카이할은 민간 공격대가 아닌, 미군 소속 공격대로 들어갔다. 그게 안정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특수 임무를 무사히 완수한 그는 각종 훈장까지 받으며, 이민 세대지만 어엿한 미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제군들은 오늘 매우 중대한 임무를 위해 여기 모였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카이할은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군 소속 레이더가 도합 사십여 명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모두가 흑인이라는 점이다.
‘잠깐?’
카이할은 하나 더 발견했다. 레이더들은 모두 자신처럼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자들이었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카이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이들을 불러 모은 데는 뭔가가 있었다.
‘설마?’
그제야 카이할은 최근 아프리카에 일어난 거대 혈맹전 사태를 떠올렸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이미 오래 전에 떠나온 땅이라고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했던 문제다.
그들을 소집한 장군이 말을 계속했다.
“눈치가 빠른 대원은 알아차렸겠지만 제군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게 바로 제군들을 모은 이유다. 그리고 이 임무는 특급 기밀이며, 원하지 않는 자는 거부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한 명도 거부하지 않을 거라 자신한다.”
뻣뻣한 긴장감이 흘렀다. 레이더들은 미동도 않은 채 장군의 입을 주시했다. 장군이 고개를 돌렸다.
“들어오십시오, 써.”
잠시 후 한 청년이 들어섰다. 레이더치고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얼굴에 카이할은 순간 다리가 풀릴 뻔했다.
“반갑습니다. 제니스 공격대장 유지웅입니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유지웅은 천천히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대원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길게 말 않겠습니다. 현재 아프리카는 거대 혈맹들의 싸움에 수많은 군소 공격대와 죄 없는 민간인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을 돕고 싶지만, 제니스의 이름으로 나섰다가는 자칫 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카이할은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레이드계의 지배자이자 살아 있는 전설이 눈앞에 있었다. 레이더라면 모두가 동경해마지않는 최강의 남자가 바로 이 자리에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저는 거대 혈맹들의 싸움에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의 자유와 해방을 돕고 싶습니다. 저와 함께 해주실 분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척. 척. 척.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 빠짐없이 씩씩하게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대원들을 소집한 장군은 흡족한 웃음을 띠었다.
유지웅은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는 진심을 다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 * *
「아프리카의 해방과 자유」
유지웅이 내건 기치는 대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대원들은 왜 유지웅이 대놓고 나설 수 없는지, 이렇게 은밀히 나설 수밖에 없는지 사정을 이해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아프리카 혈맹들의 성질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혈맹들은 자신들의 이익 말곤 관심이 없다. 그 누구라도 이익을 침범하려는 이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제니스는 그들을 제압하고도 남을 힘이 있지만, 문제는 그들이 반항하는 과정에서 흘려야 할 피가 엄청나다는 점이다. 혈맹원들의 피만 흘리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최후에는 민간인들을 방패로 삼아서까지 저항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는 거대 혈맹을 제압하는 게 아니라 민간인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군소 공격대를 지원하고 결집을 유도해야 합니다.”
“써, 그러나 군소 공격대가 그리 쉽게 뭉치진 않을 겁니다.”
군소 공격대가 얼마나 무력한지 알고 있는 카이할은 그렇게 우려를 나타냈다.
“EIS가 공작에 들어갔습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EIS의 부국장 그레이브스는 저항 조직을 이끌 좋은 인물 후보를 몇 명 선정해 보여주었다. 유지웅은 그에게 관련 작전 일체를 부탁했다. 이에 그레이브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유지웅은 마흔 명의 아프리카 출신 레이더들과 함께 비밀리에 수송기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에 상륙했다. 수송기가 착륙하기 전 통제 장교가 모든 대원들에게 방어장비를 나눠주었다.
장비는 노란빛을 띤 짙은 회색으로 도색이 되어 있었다. 신원이나 소속을 식별할 수 있는 어떤 표식도 없었다. 그저 샛노란 잿빛으로 온통 짙게 도색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사막이 많은 점을 고려하여 색을 이리 도색했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닌, 거대 혈맹에 저항하는 군소 공격대입니다.”
“…….”
대원들의 눈빛이 뜨겁게 빛났다. 카이할은 주먹을 꾹 쥐었다.
알제리, 그가 태어난 조국. 이미 오래 전에 잊었다 생각했지만 조국을 위해 돌아왔다 생각하니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이미 여러 번 설명했듯이 우리는 거대 혈맹들의 전쟁에 고통 받는 민간인들을 구하면서 동시에 군소 공격대를 규합하여 아프리카를 해방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아프리카가 스스로 변화하도록 해야 합니다. 아프리카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혁명을 이뤄낸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카이할은 이해했다. 스스로 피를 흘려 얻은 자유는 고귀한 법이다. 유지웅은 아프리카가 직접 일어설 수 있도록 그늘에 숨어서 도우려 하는 것이다.
‘근데 이거 꼭 내복 입은 것처럼 보이네.’
카이할은 착용한 방어장비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프리카에는 내복이 없지만 한국에는 내복이 있다. 레이더치고 한 번쯤 한국을 방문해본 적이 없는 이는 아마 없으리라. 카이할도 틈나는 대로 한국을 방문해 선진 레이드 문화를 경험하고 돌아오곤 했다.
그리고 도착 첫날부터 일이 터졌다.
“저들을 구해주세요!”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혈맹간의 전투에 휘말린 민간인들을 발견한, 코드명 ‘엠페러 공격대’는 즉각 진압에 나섰다. 온통 잿빛으로 도색한 방어장비를 입고, 유지웅의 보호막을 두른 채 마구잡이로 날뛰는 40인의 공격대는 혈맹원들에게 실로 공포였다.
* * *
“내복단?”
“응. 내복이랑 비슷한 색 옷을 입고 혈맹에 저항하는 공격대가 있대. 요즘 나름 유명하잖아.”
“근데 내복이 뭐야?”
“내복도 몰라? 아시아, 특히 한국에서 추울 땐 내복을 옷 안에 입는대.”
“아하. 난 한국 아직 한 번도 안 가봤어.”
“근데 이상한 건 내복단 수가 장난 아니래. 아마 규모가 꽤 상당한가 봐.”
거대 혈맹에 저항하는 정체불명의 군소 공격대, 내복단의 활약이 점차적으로 알려졌다. 이에 군소 공격대들도 하나둘씩 용기를 내어 저항을 시작했다. 내복단의 소식을 접한 군소 공격대들은 자신들도 유사한 색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내복단을 따른다는 것도 있지만, 내복단의 활약에 거대 혈맹이 긴장하기 시작하는 점을 노려 그들을 기만하기 위한 이유가 가장 컸다.
‘내복단을 만나면, 일단 물러서라.’
내복단에게 호되게 당한 거대 혈맹들은 소속 혈맹원들에게 그런 지침을 내렸다. 이에 더욱 용기를 얻은 군소 공격대들은 온통 샛노란 잿빛으로 물들인 옷을 입고, 거대 혈맹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며 간헐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아직 미약하지만,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조금씩 불꽃을 키워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후기를 장난스럽게 쓰는 것과 작중 상황의 심각함은 전혀 별개라고 생각함미다.
몰입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너무 과한 몰입은 저도 부담스럽슴미다.
후기는 후기일뿐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