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43)
00743 공허의 습격 =========================================================================
우당탕!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TV를 보던 스티븐 게이볼그 감독은 그만 놀라서 넘어지고 말았다. 커피가 쏟아지며 옷이 더러워졌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는 두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TV를 보았다.
“까메오라니!”
아니, 총감독인 자신도 모르는 까메오 출연이 있을 수 있나?
물론 유지웅이 까메오 출연을 해준다면 감지덕지다. 하지만 감히 자신의 이름으로는 부탁할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감독님!”
때마침 조감독이 헐레벌떡 들어섰다. 그도 TV를 보고 온 모양이었다.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정말로 유지웅 회장이 까메오 출연을 수락했나요? 왜 여태 아무 말씀도 없으셨죠?”
“나도 지금 막 TV 보고 알았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조감독은 황당했다. 총감독이 왜 그걸 몰라?
그때 스티븐 감독의 전화가 진동했다. 발신자를 보고 그는 바짝 긴장했다. JS스튜디오 사장이었다.
“스티븐입니다.”
「스티븐 감독, 혹시 방금 유지웅 회장님의 기자 회견 봤습니까?」
“네, 봤습니다.”
「흑석동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는데 제니스 공격대를 까메오로 출연시켜 달라고 합니다. 가능하겠지요?」
“물론입니다!”
아무렴, 시나리오를 고쳐서라도 집어넣어야지! 제니스 대원 한 명 몸값이 출연진 전원의 몸값보다 더 비싼데, 이런 까메오를 미쳤다고 거절해?
* * *
“까메오요?”
제니스 대원들은 전원 미국에 집결했다. 그들도 유지웅의 기자 회견을 봤다. 처음 그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에 놀러온 게 아닌데, 드라마 까메오 출연이라니.
“어쩔 수 없었어요. 제니스가 전원 미국에 들어왔다는 게 알려지면 시민들이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어요.”
“적절한 핑계였다고는 생각되지만……. 우리는 연기 같은 거 잘 못하는데요.”
“괜찮아요. 까메오일 뿐입니다. 이것도 다 좋은 추억 아니겠어요?”
까메오는 유지웅이 즉흥적으로 떠올린 핑계였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이상으로 좋았다. 미국 시민들은 제니스가 비밀리에, 그것도 일제히 방문한 것을 놓고 더는 불안에 떨지 않았다.
그보다는 더 제니스 시즌 4 제작 방향성을 놓고 전미의 관심이 쏠렸다. 시즌3까지 방영된 더 제니스는 미국 최고 인기를 누린 블록버스터 드라마다. 모두가 기다린 시즌4 제작이 결정된 데다가 진짜 제니스 공격대가 까메오로 출연한다는 것 때문에 기대감이 엄청났다.
“어차피 과학자팀이 이상 징후의 근본 원인을 찾아낼 때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대기하는 동안 오락거리를 즐긴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유지웅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대원들도 더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오히려 대원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드라마 출연에 설레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연기 학원 좀 더 다닐 걸 그랬다. 괜히 때려쳤네.”
“어, 너 연기 학원도 다녔어?”
“응. 나 원래 취미가 연극이잖아.”
“가만, 그럼 브라우니도 출연하는 건가?”
“에이, 설마…….”
대원들은 설마 브라우니까지 출연하랴 싶었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브라우니, 가자.”
―키에엑?
“너도 출연할 거야.”
밤을 세워 1화 시나리오를 뜯어고친 스티븐 게이볼그 감독은 240여 명의 제니스 대원 및 브라우니까지 출연하겠다는 통보에 기겁을 했다. 이럼 기껏 뜯어고친 시나리오를 휴지통에 버리고 다시 써야 하잖아.
“브라우니도요? 하지만 브라우니가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을지……. 무슨 역할을 줘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스티븐 감독의 하소연에 유지웅은 간결하게 대답했다.
“시즌4 첫 등장 괴수로 하면 되죠.”
“……아!”
그 한 마디에 스티븐 감독은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간단한 수가 있었어!
“당장 시나리오를 고치겠습니다!”
떠오른다, 떠올라. 영감이 마구마구 떠오르고 있다. 스티븐 감독은 순식간에 1, 2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대본 작가진이 초고를 보고 한 마디 했다.
“이럼 마치 제니스가 주인공인 것 같잖아요. 기존 배우진은 어떡하고요?”
“알아서 잘해 봐. 기존 배우진의 주인공성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까메오 출연진의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식으로.”
“말이 쉽지, 이런 시나리오로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아무튼 1, 2화는 이런 시나리오로 밀고 나갈 거야.”
까메오 출연 때문에 몇 번이나 수정된 시나리오에 대본 작가진은 한숨만 쉬었다. 감독이 욕심이 많은 것은 이해하겠는데, 이건 너무 아니지 않은가.
“꾸역꾸역 다 우겨넣는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어쨌든 써보자. 으휴…….”
어떻게 해서 1, 2화 대본이 나왔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제니스 공격대도 신 헐리우드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당연하지만 브라우니도 함께였다.
“이게 대본이에요?”
“네, 그렇습니다.”
유지웅은 스티븐 감독이 직접 가져온 대본을 받아들고 흥미롭게 살폈다. 대본은 제니스를 위해서 한국어와 영어로 병기되어 있었다.
“오, 첫 장면부터 브라우니가 습격하는 거군요. 역시 화끈해요.”
“괴수물이니 당연히 첫 장면부터 괴수가 나와야지요.”
“제니스 공격대는……. 어, 브라우니를 막는 과정에서 장렬히 전멸하는 건가요?”
“그게…… 아무래도 까메오 숫자가 너무 많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멋있고 장렬한 최후를 그려낼 겁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고 항거하는 영웅들이죠. 그리고 다 죽는 것은 아닙니다.”
“하긴, 한 번 나오고 말 건데 멋있게 전멸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저도 죽나요?”
“아닙니다. 회장님은 신분을 감춘 강력한 용병 레이더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게 됩니다.”
“멋있네요. 어, 근데 제가 딜러네요? 게다가 근딜?”
근딜은 특히 천민 중의 천민이다. 같은 딜러라 해도 원거리 딜러를 선호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데 근딜로 출연해?
스티븐 감독이 재빨리 설명했다.
“아무래도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근딜이 좋을 것 같아서 그리 설정했습니다.”
“하지만 천민 중의 천민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돋보일 수 있죠. 천민 중의 천민이지만 매우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 레드 타입 괴수를 단독으로 사냥할 수 있다는 설정입니다. 그야말로 일인 공격대죠.”
“와, 그거 멋있네요.”
현실에서도 레드 몹쯤은 운동거리도 안 되지만, 드라마에서는 다르다. 아직 드라마에서는 혼자서 레드 몹을 잡을 수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았다. 드라마 주인공도 10인 공격대는 구성해야 레드 몹을 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헌데 단독으로 레드 몹을 잡을 수 있는 근딜이라고? 유지웅은 가슴이 뛰었다. 이거 너무 멋지잖아.
“그런데 무슨 능력이기에 그게 가능한 거죠?”
스티븐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1화 마지막에 나옵니다.”
* * *
「캡틴 제니스! 아직도 멀었습니까!」
「거의 다 왔습니다! 기다려요!」
「수많은 레이더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더는 버티지 못합니다! 으아아악!」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동양인 청년은 초조하게 장비를 만지작거렸다. 근사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인의 분위기를 풍기는 소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염려하지 말아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금은 하나만 생각해요. 어떻게 괴수를 물리칠 건지 그거 하나만요.」
청년, 제니스 공격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키에에엑!
전투 현장은 처참했다. 이백여 명의 레이더들이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손발을 맞춘 공격대도 아니었다. 그저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뛰어나온 이들이었다.
하나둘 전우들이 죽어간다. 피를 흘리고 사지가 찢어지면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들이 이렇게 끈질기게 버티는 것은 도시 주민들이 어떻게든 피난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었다. 캡틴 제니스는 그것을 보고 감격했다.
“우리가 왔습니다! 이제 물러서세요!”
화려한 전투장비를 갖춰 입은 50여 명의 더 제니스 대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때까지 힘들게 막고 있던 이름 모를 수많은 레이더들은 지친 듯이 물러났다.
캡틴 제니스는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친 맹금 괴수를 노려보았다. 두렵고 떨리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수많은 동료들을 위해서, 그는 언제나 당당해야만 했다.
「스페셜 멀티플 실드 액티브!」
캡틴 제니스가 호기롭게 외쳤다. 순식간에 대원들의 온몸이 빛으로 휘감겼다. 그리고 사투가 시작되었다.
「캡틴! 너무 강력해요!」
「어그로가 잡히지 않아요!」
괴수는 너무 강력했고, 심지어 어그로도 잡히지 않았다. 제니스 공격대에 흥미를 잃은 괴수는 그대로 높이 날아올라 도시로 향했다. 캡틴 제니스의 얼굴에 절망이 어렸다.
「안 돼!」
괴수는 빠르게 날아 도시 한복판에 착지했다. 제니스는 급히 괴수를 추격해 도시 중심부로 뛰어갔다.
「이, 이럴 수가!」
처참한 학살을 각오하고 추격해왔는데 정작 그들을 반긴 것은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괴수가 17등분되어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괴수 앞에는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절반을 가린 청년이 서 있었다. 그는 피가 뚝뚝 흐르는 조그만 단검을 쥐고 있었다.
청년과 캡틴 제니스의 눈이 마주쳤다. 캡틴 제니스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설마, 당신 혼자서 이 괴수를 죽였습니까?」
청년은 말없이 가볍게 끄덕이기만 했다. 캡틴 제니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어떻게 혼자서 레드 타입을 죽일 수 있었죠? 당신 클래스가 뭡니까?」
청년은 대답 대신 손에 쥔 단검을 들어 보였다. 자신은 근딜이라고 행동으로 대답한 것이다.
그래서 더 믿을 수가 없었다. 근딜 혼자서 레드 타입을 죽이는 게 가능키나 한단 말인가?
「나는…… 보입니다.」
「보이다니, 뭐가 보인단 겁니까?」
「괴수의 죽음이 보여요. 그 선에 칼을 갖다 댔을 뿐입니다.」
가볍게 긋는 것만으로 괴수를 죽음에 몰아넣는 선, 그 죽음의 직선이 보이는 근딜 청년. 어쩌면 영원한 라이벌이 될지도 모를 경쟁자를, 캡틴 제니스는 드디어 만났다.
* * *
“감독님, 진짜 이대로 가시게요?”
“왜? 아주 그림 좋게 잘 나왔잖아? 브라우니도 얼마나 박진감 넘쳤어?”
“그, 그렇긴 한데 이래서는 까메오가 아니라 그냥 신 캐릭터 등장이잖아요?”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하면 돼. 아무튼 이대로 방영하자고.”
화면에서는 괴수 역할의 브라우니가 포효하고 있었다. CG인듯 CG아닌 CG같은 리얼함에 스티븐 감독은 마냥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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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한 번 저 드라마 내용을 프리시즌으로 써보고 싶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