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44)
00744 공허의 습격 =========================================================================
황량한 벌판에는 을씨년스러운 바람만 불고 있었다. 어디에도 생명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너진 폐허는 곧 요란한 굉음으로 뒤덮였다. 대형 헬기 편대가 차례차례 착지했다. 중장비를 실은 대형 트레일러 여러 대가 줄을 지어 폐허에 도착했다.
이윽고 헬기에서 세 인물이 내렸다. 최윤, 레지나, 니트로, 바로 세종시 연구단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
세 사람은 기술자들이 트레일러에 싣고 온 대형 장비를 설치하는 것을 감독했다. 거대한 안테나가 세워지고, 각종 센서를 부착한 송수신탑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레마시아 연구소가 정확히 어디쯤입니까, 니트로 교수님?”
“동쪽으로 약 5km 정도 더 들어간 지점입니다.”
“그렇군요.”
레마시아 연구소가 있던 지점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해서 일부러 수 킬로 떨어진 지점에 정밀 탐지 장비 및 지휘 센터를 구축한 것이다.
“ZMD망을 구축한 위성 일부도 여기 상공에 집결해야 할 듯합니다.”
“허가하겠습니다. 참, 검은 돌의 연구 성과는 어떻죠?”
“가렌 박사님이 세종시에서 연구를 이어서 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추가적인 사항은 특별히 밝혀내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니트로의 대답에 최윤은 잠시 망설였다. 가렌은 아직 균열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유지웅과 정효주를 제외하면, 현재 이곳에 있는 세 명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균열을 알지 못하니 가렌의 검은 돌 연구 과정은 진척이 더딜 수밖에 없다. 최윤은 마음을 굳혔다.
“검은 돌은 북극곰 결정체와 유사한 에너지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니트로는 왜 그 말을 하는지 몰라 의아했다. 그 점은 이미 가렌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곰 결정체는 균열과 공명, 혹은 동기화 성질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북극곰 괴수 레이드 때 이상한 전자기파가 검출된 점을 기억하실 겁니다.”
“가만, 그럼?”
니트로는 불현듯 북극곰 괴수를 떠올렸다. 당시 레이드 도중 전투 지역의 결정 에너지 농도가 10배 이상 증가한 점, 우주선을 닮은 전자기파가 감지된 점이 기억났다. 그 전투 기록은 현재도 극비 사항으로 연구 중이었다.
최윤이 말했다.
“당시 북극곰 괴수는 숙성된 레드 결정체의 힘을 이용해 균열과 순간적인 공명을 꾀한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그런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럼 그 우주선을 닮은 전자기파는 균열에서 흘러나온 것이군요.”
“네. 숙성된 레드 결정체는 균열로 향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가설이지만…… 전갈 괴수는 다른 괴수와 달리 균열에서 직접 출현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전갈 괴수는 실체가 없어 모든 공격을 무효화했다. 아무리 베고 찔러도 허공을 가르는 느낌만 났다. 그러나 전갈 괴수는 스스로 외부에 물리력을 행사했다. 외부의 물리력은 거부하고, 외부에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가능한, 힘의 벡터를 일방적으로 조절했다.
그래서 최윤은 가설을 세웠다. 전갈 괴수는 균열에서 직접 등장한 게 아닐까 하고.
니트로는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점을 가렌 박사님께도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검은 돌 연구에 도움이 될 겁니다.”
원래 최윤은 자신이 직접 검은 돌을 연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균열을 찾아내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서 가렌에게 연구를 위임한 것이다.
“최 박사님, 그 말씀은…….”
“가렌 박사님도 균열에 관해서 알고 계셔야 연구에도 진척이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원하지 않는 부담을 짊어지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니트로는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이것은 짐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한 명이라도 더 뛰어난 석학이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균열의 비밀을 영원히 함구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했다. 가렌 외에 더 이상의 적격자는 없었다.
“회장님은 근데 어디 계시죠?”
니트로의 물음에 최윤은 멈칫 했다. 레지나도 난처한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니트로는 뭔가 싶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물어봤을 뿐인데 왜 대답이 없어?
“그게, 교수님은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셔서 아직 모르시는 거 같은데요. 회장님 지금 신 헐리우드에 계세요.”
“신 헐리우드요?”
“네. 엄청 유명한 미드 있잖아요. 더 제니스라고.”
“아……. 알고 있습니다.”
더 제니스는 니트로도 알고 있었다. 제니스 공격대를 모티브로 해서 제작된 헐리우드 드라마다.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어 한 편 한 편이 블록버스터 영화급 퀄리티를 자랑하며, 덕분에 세계적인 인기를 쓸어 모으고 있는 중이다.
“근데 그거랑 회장님이 무슨 상관입니까?”
“이번에 까메오로 출연하신대요.”
“네?”
이 중요한 시기에?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 뻔했다. 최윤이 얼른 변명처럼 말했다.
“어차피 우리 일이 끝나기 전까지 회장님이나 공격대는 할 게 없습니다.”
“……뭐, 그렇긴 합니다만.”
이틀이 꼬박 걸려 탐지 설비를 모두 설치했다. 정체불명의 괴수가 습격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나미가 현장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미는 괴수지만 유지웅과는 계속 교류를 해왔다. 지금도 피즈와 함께 흑석동 저택에 살고 있다. 또한 여전히 레지나와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과학자의 본능이 발동하니?”
레지나는 나미에게 장난처럼 물어보았다. 나미는 피식거리며 거대한 탐지 안테나를 올려다보았다.
“느낌이 좋지 않거든. 이번 일.”
“마찬가지야.”
레지나는 웃음기를 지우고 긴장한 얼굴로 끄덕였다. 균열의 위험성은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고 있다. 할아버지의 유지를 잇기 위해 오래 전부터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미 씨가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마음이 놓입니다.”
최윤이 다가와서 감사를 표했다. 나미는 웃음기 없이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인간만의 일이 아니니까요. 지구가 망가지면 저와 피즈도 살 곳을 잃게 돼요. 그건 막아야죠.”
인간과 괴수가 당면한 공통의 위기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최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피즈는 어디 갔어?”
“요 앞에서 잠시 놀고 온다고……. 애가 어디 갔지?”
나미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서둘러 처소로 돌아갔다. 간이 텐트 안에 있어야 할 피즈의 가방이 없었다. 대신 쪽지가 놓여 있었다.
「아빠한테 갈게. 여기는 재미없어.」
나미는 쪽지를 구겼다.
* * *
피즈는 가방을 메고 콧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었다. 대충 이 방향이 맞는 것 같다. 저 멀리서 아빠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는 걸 보니.
“풀도 없고 나무도 없고 새도 없고, 엄마는 이런 데서 뭐 하려고 날 끌고 왔대?”
피즈는 문득 엄마를 원망하며 투덜거렸다. 비행기 타고 올 때만 해도 신이 났다. TV로만 보던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아빠와 놀 것을 생각하니 설렜다.
근데 이게 웬걸, 엄마가 자기 손을 잡아끌고 이상한 허허벌판으로 데려왔다. 벌써 이틀이다. 눈치를 보아하니 여기서 꽤 오래 머물러야 할 것 같아서, 피즈는 얼른 도망 나온 것이다.
아빠한테 가야지!
피즈는 신이 나서 뛰었다. 주변의 풍경이 휙휙 하고 빠르게 뒤로 지나갔다.
작고 연약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피즈는 인간형으로 변신이 가능한 화이트 등급 괴수다. 제대로 뛰면 전차보다 빠르게 질주할 수 있다.
그때였다.
“어? 저게 뭐야?”
피즈는 그 자리에 멈췄다. 저 멀리서 이상한 안개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피즈는 얼른 다가갔다.
조그만 전갈이 꾸물거리며 기어가고 있었다. 온몸에서 묵빛 광택이 나는 게 엄청 신기하게 생겼다. 그리고 미약한 ‘힘’을 품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맛이 있을까?”
피즈는 입맛을 다시며 전갈을 집어 올렸다. 전갈은 도망을 치려는 듯이 버둥거렸다.
“맞다! 엄마가 날것 그대로 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어떡하지? 엄마한테 가져가서 요리해달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랬다가는 목덜미를 잡혀서 아빠한테 못 갈 텐데? 쪽지까지 남기고 나온 건데.
“배고파…….”
전갈 괴수를 물끄러미 보던 피즈는 문득 허기를 느꼈다. 대체 이놈의 뱃속은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그냥 눈 딱 감고 날것으로 먹을까?”
피즈는 눈을 질끈 감은 채 고민에 잠겼다. 그 바람에 전갈을 놓치고 말았다.
“어! 어디 가!”
피즈는 놀라서 전갈을 쫓아 달렸다. 간식거리가 감히 어딜!
그런데 전갈은 제법 날쌨다. 자기도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여러 개의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죽어라 지면을 달린다.
정신없이 쫓다 보니 어느 폐허에 도착했다. 전갈은 무너진 건물 사이로 쏙 들어가 버렸다. 간발의 차이로 놓친 피즈는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굴렀다. 그리고 팔을 걷어붙였다.
“내가 놓칠 줄 알고? 잡히기만 해봐. 넌 한입 감이야.”
피즈는 무너진 기둥을 들어 올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것쯤 하나도 안 무겁다.
그런데 일이 생겼다.
“아아악!”
갑자기 발밑이 허전한가 싶더니 아래로 추락했다. 피즈는 이리저리 구르며 어두컴컴한 지하로 떨어졌다.
정신을 차린 피즈는 아까 놓친 전갈이 쪼르르 달려가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싸! 하고 환호한 피즈는 재빨리 쫓았다.
그때였다. 피즈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에 끽 하고 제자리에 멈췄다.
눈앞에 거대한 뭔가가 서 있었다. 칠흑같은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고, 오른팔에는 보라색 광휘를 발하는 칼을 들고 있는 존재였다.
아니, 저것은 칼이 아니라 팔에 돋아난 손톱이었다. 그것이 마치 팔에 칼을 장착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전갈은 그 존재를 향해 쪼르르 달렸다. 그것은 피즈에게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허공에서 일렁이는 커다란 안개 같은 구멍만을 하염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피즈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이 보였다.
“저건 맛없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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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피 스카너를 쫓아 적 정글에 들어간 피즈는 15분 영겁의 지팡이+라바돈의 죽음 모자로 무장한 카사딘을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