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77)
00777 %3C프리시즌 딜러편%3E 내가 천민? =========================================================================
정충현 부장은 김기영 팀이 외근에서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만나봤나? 어때?”
“그동안 회사에서 이끌어주시고 보듬어주신 것,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여기 사직서입니다.”
김기영이 두 손으로 공손히 사직서를 내밀자 정충현 부장은 입만 벌린 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이게 뭔가? 자네, 제정신이야?”
“갑작스럽게 좋은 자리가 들어와서요. 그래서 옮기기로 했습니다.”
“아니, 좋은 자리라니……그 무슨…….”
그는 기가 막혔다. 일성보다 더 좋은 자리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어?
일류대를 나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최고의 직장이 바로 일성그룹 아닌가. 또한 그룹 재정기획본부야말로 그룹의 실세 중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을 제 발로 나가겠다니, 미친 게 아닐까?
“저희도 여기 사직서입니다.”
“죄송합니다. 사직서입니다.”
눈치만 보고 있던 두 팀원도 잽싸게 사직서를 내밀었다. 정충현 부장은 더 이상 놀랄 기운도 없었다. 지금 이것들이 세트로 미친 거야, 뭐야?
“이봐! 자네들 대체 왜 이래? 직장에 무슨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야지, 갑자기 사직서 내고 이러는 게 어딨어?”
굴지의 그룹, 일성에서 일하겠다는 인재들은 넘쳐 난다. 줄을 세우면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닿을 것이다. 직원 세 명이 아무리 유능하다 해봐야 회사 입장에서는 눈 하나 꿈쩍 않는다.
그러나 정충현 부장 입장에서는 다르다. 밑의 부하 직원들이 한꺼번에 사직서를 제출한다는 것은 부하 관리 능력이 그만큼 허술하다는 반증이다. 당연히 인사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가 힘들다.
“좋은 자리가 생겨서요. 죄송합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셋은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정충현 부장은 한숨과 함께 물러났다.
“알겠어. 대신 자네들 인수인계는 확실하게 해.”
“죄송합니다. 저는 오늘 이후로는 출근할 수가 없습니다. 새 직장에서 바로 당장 업무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봐, 김 팀장! 그건 예의가 아니지! 그만둘 땐 그만 두더라도 뒤처리는 깔끔하게 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정충현 부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인수인계도 하지 않고 나 몰라라 떠나겠다니? 평소 김기영의 성실함과 인간됨을 알기에 새 직장 업무가 얼마나 급한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 기업을 이런 식으로 그만 두면 결국에는 본인에게 그 해가 돌아가게 된다. 어느 회사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일성의 영향력을 벗어나지는 못할 테니까.
“죄송합니다. 대신에 퇴직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미지급된 이번 달 월급도 받지 않겠습니다. 인수인계를 못하는 점에 대한 사과 표시입니다.”
“……그 정도로 급한가?”
정충현은 조금 누그러졌다. 퇴직금은 물론이고 월급까지 안 받겠다고? 김기영의 연봉을 생각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그 큰돈을 포기하겠다니, 그 정도로 새 직장이 급하단 말인가?
상대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인수인계를 가지고 더 몰아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정충현은 한 번 더 물러서기로 했다.
“……알겠어. 그렇게까지 절실하다면 하는 수 없지. 인사팀에는 내가 잘 일러두겠네.”
“감사합니다.”
“얼마나 좋은 직장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일성을 박차고 떠날 정도면 상당히 괜찮은 곳인가 보군. 어딜 가든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만 하게. 그럼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을 거야.”
“예. 부장님도 건강하십시오.”
김기영은 한 번 더 꾸벅 인사하고 떠나갔다. 다른 두 팀원도 퇴직금과 월급까지 포기한 채 그날부로 그만두었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동료 부하들이 불만이 많았으나, 퇴직금과 월급을 포기할 정도로 다급했다는 말에는 다들 수긍했다.
그렇게 떠나간 이들은 다음 날…….
“아니, 자네들이 여긴 웬일인가?”
“귀사에서 제안한 사업 계획서에 관해서 심도 깊은 대화가 필요할 것 같아 찾아왔습니다.”
……바이어가 되어 다시 나타났다.
* * *
“가치 일성결정체에 블루 결정체 정제를 맡기겠습니다. 정제비용은 합리적인 선에서 지급할 것입니다. 물론 어음이 아닌 현찰 지급을 원칙으로 합니다. 특별히 별도의 생산라인이 필요한 부문에 한해서는 생산설비 제조에 필요한 비용도 투자하겠습니다. 이 경우 생산설비의 소유권은 당연히 회장님께 있습니다.”
회의실에는 정충현 부장과 세 명의 이사가 참석해 있었다. 그들은 다소 멍한 표정으로 김기영의 설명을 들었다.
박승철 이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저 친구, 국내 영업파트1 소속 아니었나? 자주 얼굴을 본 것 같은데?”
“그, 그랬습니다만.”
정충현 부장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박승철 이사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재차 추궁했다.
“근데 프레젠테이션이 왜 저렇지? 저건 마치…….”
낯선 모습은 아니다. 박승철 이사도 소싯적에 저 비슷한 발표를 많이 했다. 차이점은 장소였다. 회사에서 상사들을 상대로 하는 발표가 아니라, 협력업체에 나가서 잔뜩 긴장한 사장 이하 임직원들에게 하곤 했으니까.
왜 대기업 직원이 협력업체에 나가서나 할 법한 발표를 지금 이 자리에서 듣고 있어야 하는 거지? 그 점이 박승철 이사가 가진 의문점이었다.
“어제까지만 그랬습니다.”
“어제까지만? 그럼 지금은?”
“유지웅 레이더가 채용한 직원 자격으로 왔습니다. 우리가 보낸 사업 제안서에 관해서 할 말이 있다면서요.”
“뭐야?”
박승철 이사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어제까지는 일성의 직원이었다가 칼을 거꾸로 쥐었다는 것 아닌가? 어떻게 하루 만에 그럴 수가 있는지,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괘씸한 것은 괘씸한 것이고, 사업은 사업이다. 어쨌거나 유지웅은 일성그룹에서도 신경 써서 끌어들이려고 하는 중요한 인재였고, 저들은 유지웅이 고용한 직원들이었다. 지금은 감정적으로 나설 게 아니라 그에 걸맞는 대응이 필요했다.
“제안을 들어보면 우리 일성에 단순히 결정체 정제 업무만을 맡기겠다는 뜻 같소만.”
“네, 그렇습니다.”
“정제 비용 지급이 끝인 거요? 그 외 다른 것은 없습니까?”
“다른 것을 더 지급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
“정제를 해준다면 정제 비용만 지급하는 게 원칙 아닙니까? 따로 로열티라든가 수익 분배를 바라시는 겁니까?”
박승철 이사는 소싯적에 협력업체에서 저런 발표를 많이 해봐서 잘 안다. 저것은 ‘무슨 개소리?’라는 말을 정중하게 돌려서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왜 줘?’ 정도쯤이 되겠다.
화가 난 박승철 이사는 더 이상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노골적인 표정을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국내 최고 대기업과 척을 지고도 과연 장사를 잘 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모르실 리가 없을 텐데.”
바로 어제까지 일성 직원이었으니 일성이 한국에서 지닌 파워를 잘 알지 않느냐. 뭐 그런 비아냥이었다.
그러나 김기영은 침착하게 받아쳤다.
“저는 어제까지만 해도 일성 직원이었습니다. 원래라면 비서실장인 제가 이렇게 직접 제안 발표를 하러 올 처지가 아닙니다만, 아직 비서실 인력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번만은 직접 온 것입니다.”
“비서실장? 참 대단한 감투를 쓰셨군.”
“귀사의 무례함을 참고 넘어가는 것도 오늘까지입니다. 또한 회장님의 의중을 친절히 알려주는 것도 이번까지입니다. 앞으로는 일방 통보식으로 비즈니스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 알고 대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김기영은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발표 자료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나갔다. 박승철은 노골적으로 그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다소 좌불안석에 떨던 정충현 부장이 박승철의 눈치를 보다가 부리나케 쫓아나갔다.
다른 이사들이 급히 물었다.
“자네, 왜 그랬어? 굳이 자극할 필요는 없었잖나?”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일성의 밥을 먹던 애송이가 배를 갈아탔다고 콧대를 세우는 게 어처구니없어서 그랬네. 자네들은 그 꼴을 보고도 배알이 안 뒤틀리던가?”
“그래도 참아야지. 더 이상 우리 회사 직원도 아니고 유지웅 레이더가 채용한 직원이라지 않은가.”
“그래봐야 말단 직원이야. 하룻강아지가 지금 여우의 위세를 등에 업었다고 대호의 무서움을 모르는 모양인데, 친절하게 가르쳐줄 필요가 있네.”
“거야 그렇지만.”
다른 이사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룹 측에서 신경 쓰는 건 유지웅이지, 김기영 따위가 아니다. 김기영의 심기가 조금 거슬린 것 따위는 일말의 신경을 쓸 가치도 없다.
레드 몹을 때려잡는 레이더? 분명 희귀하고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봐야 일개 레이더요, 개인이다. 게다가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앳된 애송이 아닌가. 일성의 힘이라면 얼마든지 구워삶을 수 있다.
오랫동안 일성에서 근무하며 이사까지 올라선 이들의 생각은 모두 똑같았다. 무적 근딜이라 해도 감히 한국에서 일성을 거스를 순 없다. 그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내 최고 기업의 이사로서 가지는 자부심이자, 회사에 대한 믿음이었다.
“어차피 한국에서 일성을 거스르고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유지웅이라는 그 친구도 곧 깨닫게 되겠지.”
* * *
“반응이 시원찮았다고요?”
“예.”
“흠. 김 실장님 생각은 어떻죠?”
바로 어제까지 근무했던 조직이다. 누구보다 일성의 생리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김기영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시간을 들이면 일성을 설득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자칫 회장님의 위세를 얕잡아보지 않을까 염려 됩니다. 차라리 그들을 고려하지 않고 이쪽에서 직접 정제와 유통에 착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흠. 계속 하세요.”
“SKK에너지를 비롯한 다른 유통업체도 일성의 영향력을 깊이 받고 있습니다. 지분과 혼맥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고요. 굳이 국내 유통을 생각해서 피곤하게 가는 것보다는, 해외 직판으로 방향을 잡는 게 나을 듯합니다.”
“그럴까요?”
“예. 아쉬운 건 우리가 아니니 굳이 저들을 신경 쓰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도 국내에 공급을 풀고 그래야 일자리도 늘어나고 사람들 살기도 편해질 텐데……. 할 수 없죠. 저도 느릿느릿하게 가는 건 답답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예!”
김기영은 힘차게 대답했다. 그와 함께 유지웅 밑으로 취직한 다른 두 비서는 다소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하루아침에 저렇게 달라질 수가 있지? 일성이라면 껌뻑 죽던 그 상사는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아참. 여기, 이거요.”
“이게 무엇입니까?”
“블루 결정체요. 시간도 남고 심심하기도 해서 두어 마리 잡았어요. 처분해서 경비로 일단 보태든가 하세요.”
그러면서 유지웅이 비닐로 대충 감싼 푸른 구슬 두 개를 떡하니 내놓자 다른 두 비서는 기겁을 했다. 아니, 저 두 개를 합치면 원가만 해도 1조 원은 넘어갈 텐데! 저런 엄청난 보물을 시장 비닐봉지에 싸서 갖고 다니는 건 대체 뭐야!
“알겠습니다. 그리 하겠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김기영의 태도였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비닐봉지를 두 손으로 받아들고는 고개를 숙인 것이다. 도합 1조 원이 넘는 귀금속을 손에 들었음에도 그는 조금도 떨지 않았다.
“블루 결정체 독점 판매망을 세계적으로 구축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서둘러 주세요.”
“예.”
“아참, 그리고 제가 어젯밤에 전화로 말씀드린 것 말인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김기영이 송구한 얼굴로 대답하자 유지웅의 얼굴에도 실망이 어렸다.
“흑석동 주위에 활주로를 건설한다는 것은 행정, 현실적인 문제가 심각합니다. 토지 수용 문제도 있고, 활주로 소음 문제도 있고……. 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흠, 이번에는 꼭 집에 활주로를 두고 싶었는데…….”
“대신 제가 다른 방안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김포 공항을 인수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김포 공항을요?”
“예. 김포 공항을 다 밀어버리고 자택을 새로 지으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활주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건설 시간도 단축할 수 있고요.”
“오, 그거 좋네요. 그대로 진행해주세요.”
유지웅은 좋아라 하며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다른 두 비서는 정말 놀랐다는 눈으로 김기영을 바라봤다.
몇 가지 보고를 더 마치고, 승인을 얻은 뒤 김기영은 팬트하우스를 나왔다. 그제야 부하 비서들이 물었다.
“실장님, 정말로 김포 공항을 매입해서 회장님 사택을 지으실 생각이신가요?”
“그거 밖에는 방법이 없지 않나. 아무리 엄청난 돈이 있어도 당장 서울 시내에 활주로를 짓는 건 불가능해. 이건 돈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야.”
“하지만 김포 공항을 무슨 수로 매입합니까? 적자가 좀 있다고는 해도 정부에서 쉽게 허락을 하겠습니까?”
김기영은 간단히 대답했다.
“망하게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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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전 직장의 떼를 벗지 못한 김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