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81)
00781 %3C프리시즌 딜러편%3E 내가 천민? =========================================================================
그룹 비자금. 리베이트, 회계 조작 등을 통해 불법적으로 빼돌린 은닉 자금을 말한다. 정치 자금 제공 등의 목적을 위해 형성해둔 비밀 자금이지만 오너 일가를 위한 사적인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일성그룹이 아무리 국내 최고의 대기업이라 하나 182조 원의 비자금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그만한 현금을 흔적 없이 오랫동안 빼돌리기 위해서는 전방위에 걸친 정교한 조작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체 비자금에 관해서 아는 이는 이형준 회장을 비롯하여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손자인 이재형도 비자금을 관리하는 주체가 누군지 여태 몰랐을 정도였으니까.
“그냥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자칫하면 그룹 전체가 공중분해 될 정도로 심각한 사안입니다.”
“김범석, 그 자는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습니까?”
“이미 회장님께서 통제권을 직접 가져오셨습니다. 김범석은 현재 해외 체류 중이고요.”
“다행이네요. 일단 비자금이 흩어질 일은 없어졌으니.”
“지금 그보다는 비자금에 관해서 유지웅 딜러가 어떻게 알았느냐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이재형은 상상해보았다. 만약 김범석의 존재가 검찰 혹은 언론에 흘러들어간다면? 비록 일성에서 권력과 언론을 꽉 틀어잡고 있다 해도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182조 원에 달하는 비자금 아닌가. 적어도 회장 정도는 책임지고 독박을 써야 성난 국민을 달랠 수 있으리라.
“입을 다물게 해야겠군요.”
“연락을 했습니다만,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오너 일가 중에서 나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모시겠습니다.”
이재형은 황 실장과 급히 본사를 출발했다. 대기 중이던 세단에 올라 여의도로 향했다.
“이곳입니까?”
“예, 최상층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흠. 돈을 아주 쓸 줄 모르는 바보는 아닌 것 같은데…….”
200평대 케즈빌 펜트하우스. 국내 최고 재벌 일가인 이재형의 눈에는 그렇게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하고 인정할 만한 클래스는 된다. 매매가만 500억은 거뜬히 넘어가니까.
앞장을 선 황실장이 호출벨을 눌렀다. 잠시 후 스피커로 청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구세요.」
“아까 문자로 연락드린 일성그룹 황진우 실장입니다. 잠시 좀 뵐 수 있을까요?”
「찾아오라고 한 적 없을 텐데요.」
“무례한 건 알지만 꼭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대단히 매우 무례하지만……. 좋아요. 제가 지금 나가죠.」
‘이참에 이것들을 제대로 한 마디 해줘야겠어.’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이 언뜻 들렸다. 이재형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지금 들으셨습니까?”
“네……. 너무 신경 쓰지 마시지요. 인터폰을 끄기 전에 한 말이 무심코 들린 겁니다.”
“이 자가 지금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황 실장은 걱정이 되었다. 젊은 이재형이 분노에 눈이 멀어 일을 그르치는 건 아닌지 하고.
상황만 보면 지금 불리한 건 일성이다. 힘의 격차 때문이 아니라, 일성이 잃을 게 많기 때문이다. 어떻게 유지웅이 김범석을 알고 있는지에 관해서도 아는 바가 하나도 없지 않은가.
유지웅은 막말로 잃을 게 없다. 그가 잃을 것은 일성의 입장에서는 거론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이다. 일개 스무 살 레이더의 인생은 일성의 관점에서는 먼지와도 같으니.
잠시 후 정문이 열리고 트레이닝복 차림의 청년이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이미 얼굴을 알고 있던 황 실장이 급히 말했다.
“유지웅 딜러입니다.”
“저 애송이가요?”
목소리가 너무 큰 게 아닌지 황 실장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거리가 있어 유지웅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쪽을 발견하고 똑바로 걸어왔다. 눈빛을 보는 순간 황 실장은 쉽지 않겠구나 하고 직감했다. 저건 단순히 만용으로 가득 찬 눈동자가 아니었다. 무언가 믿는 바가 자가 가질 수 있는 자신감 가득한 시선이었다.
“혹시 일성에서 오신 분들?”
“예. 제가 황진우 실장입니다. 이쪽은 이재형 전략기획본부장님 되십니다.”
“유지웅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유지웅은 파란 트레이닝복에 손을 대충 찔러 넣고 터덜터덜 앞장을 섰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것 때문에 이재형의 불쾌감은 더욱 커졌다.
유지웅이 안내한 곳은 케즈빌 상가 한쪽에 위치한 조용한 커피숍이었다. 이재형은 장소도 그렇고, 삐딱한 태도도 그렇고 마음에 드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소를 따질 만한 시간이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내가 일부러 연락 무시하는 걸 모르지는 않으셨을 텐데요.”
유지웅은 대뜸 그렇게 나갔다. 황진우는 일이 쉽지 않겠다고 느꼈다. 보통은 일부러 연락을 무시했더라도 그것을 굳이 언급하여 빌미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유지웅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이 보였다.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거나, 젊은 혈기로 인한 무대포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어느 쪽이든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다.
“어려서 그런가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는 것 같군요.”
참다못한 이재형이 다소 위협적으로 말을 꺼냈다. 황진우가 그러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으나 이재형은 개의치 않았다.
“귀하가 일성이 어떤 곳인지 잘 몰라서 그러시는 것 같은데, 일성은 대한민국을 견인하는 거대한 힘입니다. 어디서 이상한 소문 하나 주워듣고 와서 겁박을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소립니다.”
“겁박을 한 기억은 없는데요. 오히려 그쪽에서 되도 않는 개소리를 하긴 했죠.”
“개소리? 지금 뭐라 했습니까?”
“블루 결정체 사업인가? 그거 일성이랑 안 한다고 하니까 뒤에서 언론이랑 전문가들 부추겨서 국부 유출이니 뭐니 이상한 기사 냈잖아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군요.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야 필요 없고, 내가 그랬다면 그런 건데요?”
“이보세요!”
결국 이재형이 소리를 질렀다. 유지웅은 코웃음을 치며 손을 살살 흔들었다. 그 모습이 더욱 그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아, 내가 이럴까 봐 연락 다 씹은 거예요. 당신네들은 진짜 말이 안 통하거든. 이재형 씨, 당신은 도대체가 나이를 먹어도 먹지 않아도 변한 게 하나도 없……. 아니, 이건 됐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재형은 가슴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말투…… 뭔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상대는 마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듯해 보이지 않은가.
“뭐, 내가 자세히 알아야 할 만큼 당신이 대단한 사람인 것도 아니고요. 아무튼 나는 그래도 옛 인연도 있고, 미안한 것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좀 잘 해주려고 했는데 일성이 그 기회를 걷어찼어요. 그리고 난 원래 두 번은 없어요. 내 앞에서 기회 얻으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만 수십억은 되거든.”
“…….”
이재형과 황진우는 당혹스러웠다. 저 터무니없는 자신감의 근원은 대체 뭐지?
유지웅은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차라리 잘 됐네. 이번에는 복잡하게 얽힐 것도 없으니까 아예 싹 밀어버리고 백지부터 새로 시작하면 되겠어. 안 그래도 저번에 정에 약해서 그룹 비자금 문제 칼질 제대로 못한 거 마음에 걸렸는데, 잘 됐어. 아무튼 앞으로 일절 연락하지 마세요.”
“이봐요. 당…….”
휙!
갑자기 유지웅이 오른손을 밖으로 뻗었다. 그의 손에서 튀어나간 빛이 커다란 바위 조각을 그대로 덮쳤다. 소리 없이 잘린 바위 조각이 툭 떨어지며 굉음을 냈다. 길을 가던 행인들이 놀라서 멈췄다.
명백한 위협에 이재형의 이마에도 식은땀이 송골송골 솟았다. 유지웅은 차갑게 웃으며 얼굴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호흡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 그는 비웃음을 담아 말했다.
“내가 어떤 사람 같아?”
“…….”
“아마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거야.”
“다, 당신…….”
“돌아가. 앞으로 귀찮게 연락 말고.”
유지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케즈빌 빌딩 안으로 사라졌다.
“황 실장…….”
“예, 본부장님.”
“지금 저 자가 저를, 우리 일성을 협박한 겁니까?”
“…….”
황진우는 완전히 깨달았다. 유지웅과 일성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둘 중 하나는 이제 죽어야만 한다.
* * *
「지금까지 안락하게 돌봐준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욕심.」
「레이더 특혜, 과연 어느 선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식민시대에 태어났으면 나라를 팔아먹고도 남았을 사람.」
보수 언론의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일성 측에서 작정하고 나선 것이다. 확실하게 힘의 우위를 보여주고 찍어 누른 뒤에 협상을 하든 뿌리를 제거하든 할 작정이었다.
보고를 받은 이형준 회장은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결국 이 방법 밖에 없는가? 애석한 일이야…….”
“죄송합니다, 회장님.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 아니 저희와 대화를 할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자기주장과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는 지극히 오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만해도 충분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네. 어떻게든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는데…….”
실무에서 손을 놓은 이형준 회장은 유지웅과 최초 협상이 어떻게 틀어졌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저 유지웅과 적대 관계가 된 게 안타까울 뿐이다.
“그 청년이 김범석과 비자금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꼭 알아내야 하는데.”
“지금 다방면에 걸쳐 조사 중입니다. 일단 김범석은 비자금 관리에서 완전히 손을 뗐고, 그룹의 보호 아래 도피 생활 중이니 더 이상 염려하실 부분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친구 잘 숨기게. 앞으로 절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예.”
김범석만 잘 숨긴다면 비자금에 관한 물증이 수면 위에 떠오르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가장 확실한 패를 쥐고 있으니, 이제 국내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그룹의 영향력을 이용해 상대를 조여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제목 : 도피 중인 김범석 봐라. 눈팅하는 거 안다.
「나, 요즘 일성이 되도 않는 헛소리하고 뒤로 수작질 부려서 많이 거슬린다. 그래서 일성 좀 박살을 내려고 한다. 김범석 씨, 당신 비자금 입막음으로 얼마 받았어? 천억도 안 되지? 내가 착수금 1조 원에 완료보수 3조, 성공보수로 4조, 총 8조 원 줄 테니까 일성그룹 비자금 관련 자료 다 들고 나한테 와라.」
유지웅이 올린 게시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비자금에 관련된 그룹 관계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죽을 때까지 정치적, 법적 안전도 보장한다. 물리적 안전은…… 최대한 보호는 해주겠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건 자살 공격에는 나도 답이 없어서 100%는 보장 못하고 99%는 보장한다. 대신 일성이 수작 부리면 철저한 복수를 약속한다.」
마지막 한 줄은, 미국에서 화려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편할 날 없는 도피 생활을 하던 어느 중년인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8조 원이다. 인생을 건 배팅인데, 남자라면 해봐야지?」
============================ 작품 후기 ============================
“김범석 씨, 얼마 받았어? 천 억도 안 되지?”
“99억 받았는데요…….”
“뭐야? 역시 없이 살던 것들은! 내가 반올림해서 10조 줄게.”
“지금 비행기 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