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784)
00784 %3C프리시즌 딜러편%3E 이래도 천민같아? =========================================================================
대통령은 떨떠름한 속내를 감춘 채 이형준 회장의 표정을 살폈다. 주름진 얼굴에는 별다른 동요가 보이지 않는다. 세계적인 대기업을 일궈낸 철혈 경영자답게 표정 관리는 완벽했다.
‘나는 대체 왜?’
현 정부는 대기업과 사이가 별로 안 좋다. 대통령이 펼치는 친서민 정책 때문이다. 집권 초기부터 대통령은 부자 증세를 시작했고 대기업을 규제했다. 당연히 이형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나이로 유세를 떨고자 하는 건 아니나, 이 늙은이가 그래도 비교적 오래 살았습니다. 일성그룹을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일궈내면서 본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습니다. 유난히 가슴에 남는 게…… 한 번에 취하려고 하면 탈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시군요.”
대통령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소 긴장했다.
“대통령님의 남은 임기 동안 현 정부에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일성을 몰아세우는 건 그만 두시지요. 일성이 무너지면 당장 이 나라 경제도 무너지고, 무수한 실업자가 생겨날 겁니다.”
“무슨 뜻인가요? 일성을 몰아세우다니요?”
“김범석 일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대통령님.”
이형준은 의연하게 말했다. 그로서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대통령이 승낙하든, 승낙하지 않든 적지 않은 부담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제가, 아니 일성이 해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입니다. 이것마저 거절하시면 일성그룹은 나름대로 생존책을 도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온힘을 다해서요.”
이형준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살을 베어 내주는 심정, 그 진중함이 엿보였다. 기만이 아니다. 일성이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정치적 양보였던 것이다.
당연히 받아들여야 옳았다. 대통령이 친서민 정책을 펴고 있다 하나 대기업을 모두 말려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대기업이 자신의 정책을 거들어주는 것이지, 대기업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대통령은 더욱 황당했다.
“어떤 마음이신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한테 무엇을 원하시는 건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마지막 양보를 그렇게 무시하시렵니까?”
“아니, 아닙니다. 일성이 비록 부의 독과점이 심하긴 하나 한국 경제의 큰 축인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일성이 붕괴하면 당장 그 여파가 적지 않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고요. 일성이 정책적 보조로 입장을 바꾼다면 저야 환영할 일입니다. 최대한 혼란을 줄이고, 제가 추구하는 정책선 위로 안전하게 내려앉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는지 이형준의 눈빛이 다소 누그러졌다.
“저는 현 정부가 일성을 몰아세우고 있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짚이는 바가 없으니 그 부분에 관해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형준의 눈빛이 깊이 가라앉았다. 의례적으로 표시하는 부정이 아니었다. 대통령은 정말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는 것은…….
“유지웅 딜러와 현 정부가 친밀하게 지내고 있는 관계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짧은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대통령은 이형준의 질문에서 비로소 모든 전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은 이형준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대답에서 대통령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정말입니까?”
“예. 오히려 우리는 유지웅 딜러가 일성그룹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나 하고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아무런 연고가 없는 인물치고는…… 중요한 것들을 당연한 듯이 알고 있었습니다.”
“…….”
이형준은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과연 대통령의 말대로다. 유지웅은 중요한 것들을 당연한 듯이 알고 있다.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혹시 제3의 다른 세력이 뒤에 있나? 그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이용하는 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다. 김범석만 해도 그렇다. 그렇게 중요한 건수를 인터넷에 대놓고 떠들어대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제3의 세력이 있다 해도, 그런 결과를 원하고 유지웅에게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님. 아무래도 다른 배후 세력이 유지웅 딜러와 함께 하고 있는 듯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 일성은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아닙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이미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해 현 정부를 돕겠다고 약속도 한 마당이다. 이런 판국에 못할 말이 뭐가 더 있을까. 이형준은 과감한 부탁을 던졌다.
“이번 사태는 분명 우리측의 실수로 불거진 일이 맞습니다. 이미 후회하고 있고, 최선을 다해 수습할 의지도 있습니다. 부디 정부에서 중재를 해주길 바랍니다.”
“중재를 말입니까?”
“유지웅 딜러가 해외 판로를 모색하는 것도, 이대로 김범석 문제가 불거져서 일성이 몰락하는 것도, 어느 쪽도 이 나라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무겁게 끄덕였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둘을 화해시키고, 모든 트러블을 없었던 일로 되돌리는 게 가장 출혈이 적다. 그게 나라에도 또 도움이 될 것이다.
일성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친서민 정책을 펴는 그로서는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존재다. 그러나 일성이 현재 나라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 최고통치자 입장에서는 둘을 화해시키는 게 가장 바람직한 결정이다.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일성그룹도 현 정부의 정책에 최대한 보조를 맞추겠습니다.”
* * *
유지웅이 김범석을 알고 있는 이유는 사실 별 거 없다. 과거로 오기 전, 일성 그룹의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찾아온 임원의 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그는 한국은 물론이고 국제 세계에서 이미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별 부담 없이 김범석을 소환해서 물어봤다.
‘정말 일성그룹 비자금이 100조 원이 넘어요? 거의 200조 원 가까이 된다던데?’
‘그, 그렇습니다. 회장님!’
오십이 다 된 김범석은 유지웅의 말 한 마디에 벌벌 떨며 고개를 조아렸다. 얼마나 위축이 되었는지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거나 그런 생각 자체를 일절 하지 못했다.
‘그 모든 걸 김범석 실장님이 관리하셨고요?’
‘마, 맞습니다! 송구합니다, 회장님! 제발 말씀을 낮춰 주십시오!’
‘예? 말을 낮춰 달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제 아버지뻘이신데…….’
‘어찌 회장님처럼 대단한 분에게 아버지뻘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회장님, 부디 말씀을 낮춰 주십시오! 그냥 김 실장, 아니 이놈저놈하고 부르셔도 됩니다! 차라리 그래 주십시오!’
알고 보니 김범석은 상사가 진지하게 존댓말을 하면 더 위축된다고 한다. 경직되고 고리타분한 대기업에 오래 몸을 담그고 있어서 그렇다나?
그의 눈으로 보기에 유지웅은 자신 같은 인물은 소리 소문 없이 제거할 수 있는 권력자다. 그런 대단한 인물이 존댓말을 하니 오히려 더 부담되고 질겁을 한 것이다.
유지웅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심리였다. 무슨 노예도 아니고, 아무리 직급이나 직위가 낮다 하나 연장자이니만큼 존대를 해주는 게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연장자 본인이 말이다.
“김범석 씨, 이래도 안 온단 말이지?”
회상에 잠겨 있던 유지웅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어떡하면 김범석을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 수 있을까.
“욕심 많은 인간이라 이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아니, 이제는 액수 문제가 아닌가?”
이미 당근은 충분히 제시했다. 이 정도에도 혹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당근으로는 효력을 볼 수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채찍을 들어야 말을 듣겠어.”
유지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일을 깎고 있던 정효주가 그의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고민하는 거 같던데, 생각 정리 됐어?”
“어, 대충. 과일 깎았네?”
“응. 먹을래?”
“응. 줘 봐.”
정효주는 접시에 가지런하게 담은 과일을 내밀었다. 유지웅은 손으로 과일 조각을 두 개씩 집어서 한 입에 털어 넣었다.
“나 동영상 찍을 건데 좀 도와줘.”
“또?”
“응.”
“이번에는 뭐 찍으려고?”
“아, 범석 씨가 도통 올 생각을 안 하잖아. 아무래도 채찍을 들어야겠어.”
정효주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도 그를 도와 동영상 촬영 및 편집을 했다. 그렇게 찍은 동영상이 다시 유튜브에 올랐고, 단기간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범석 씨,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와? 내가 설마 말만 해놓고 약속 안 지킬 것 같아?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이렇게 공언했는데 쪽팔리게 그럴 것 같아? 나 그렇게 자존심 없는 사람 아니야.」
화면 속의 유지웅은 뭐가 그리 기분 나쁜지 살짝 뒤틀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범석 씨는 무조건 나한테 와야 돼. 나야 신사라서 약속도 잘 지키고 내 말 안 듣는다고 위해를 가하지도 않아. 하지만 일성은 달라. 아마 지금쯤 범석 씨가 푼돈에 눈이 멀어 나한테 붙을 수 있다고 좌불안석일 걸?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아? 일성이 범석 씨를 가만히 놔둘 것 같아?」
동영상을 보고 있는 누군가는 아마 안색이 파리하게 질렸을 것이다.
「우리 밀당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 * *
그 시각, 인천국제공항에서는…….
“헉헉. 첫 글 보자마자 비자금 자료 챙겨서 달려왔는데 성격이 왜 이렇게 급하신 거야…….”
김범석을 최초로 콜(Call)하고, 이제 사흘 밖에 안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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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흘이나 걸려?”
“모두가 회장님처럼 전용기를 타고 다니진 않아요.”
“전용기가 없으면 전세기를 타고 다니면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