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37)
00837 %3C프리시즌 딜러편%3E 이건 미친 짓이야 =========================================================================
“별 일 없었지?”
“…….”
정효주는 퀭한 눈을 들었다. 눈 밑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눈동자에 이내 울먹임이 그렁그렁하게 차오른다. 유지웅은 왜 그런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무슨 일 있었어? 표정이 안 좋은데?”
“……내가 이거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힘들 게 뭐 있어? 그냥 도장만 쾅쾅 찍으면 되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두 푼도 아니고 수십 조가 왔다 갔다 하는데 어떻게 도장만 쾅쾅 찍어!”
“괜찮아, 괜찮아. 형식적인 절차라서 상관없어. 다음부터는 그냥 막 찍어주기만 하면 돼.”
태연하게 말하는 태도에 억울함이 밀려 왔다. 그래도 나름대로 그에게 손해가 안 가게끔 여기 저기 물어보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했는데, 저렇게 간단히 말하다니.
“……아무튼 다시는 나한테 이런 거 시키지 마.”
“그렇게 힘들었어?”
“몰라. 이제 좀 쉴래.”
아직까지 한국은 일단 공식적으로는 경제 봉쇄 국가다. 그렇다 보니 모든 수출입이 암시장을 통해 이뤄진다. 암시장은 전적으로 유지웅이 통제한다. 그런데 최종 결재 임무를 그녀에게 맡기고 중국과 미국에 갔다 왔다.
즉 지난 시간 동안 한국 경제의 운명이 그녀의 손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 그녀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다.
생각해봐라. 까딱 실수해서 서류 하나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수백억이 공중분해되고, 덩달아 많은 사람들이 큰 손해를 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벌써부터 그렇게 죽는 소리 하면 어떡해? 앞으로 이거 다 니거 해야 되는데.”
“……내가 왜?”
“또 같은 소리 하게 한다? 그럼 네가 안 하면 누가 해?”
시집 이야긴가 보다. 정효주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사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딱히 싫은 것은 아니다.
‘진짜 다른 사람 같아.’
황금매 레이드에서 죽다 살아나더니,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다. 예전의 유지웅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말 그대로 내용물이 뒤바뀌었다.
“아참, 혜주가 하도 여기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오늘 오라고 했는데. 괜찮지?”
정효주는 살짝 자신 없는 듯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괜찮고 말고가 뭐 있어. 그냥 오라고 하면 되는 거지, 내 눈치는 왜 봐?”
“그래도 여기 네 집이잖아.”
“너 시집오면 니 집이기도 하지. 뭐, 그 전에 이사 갈 거지만.”
“어, 이사가?”
정효주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으리으리한 펜트하우스를 놔두고 어디로 이사를 간다고?
“응. 그래서 김포공항 샀잖아. 거기에 집 지으려고.”
“김포공항 엄청 넓잖아. 설마 전부 다는 아니지?”
“응? 전부 다인데?”
“……농담이지?”
“내가 그런 걸로 농담하게 생겼어?”
잠시 상상해보고 정효주는 소름이 돋았다. 그냥 부지 한쪽을 떼어내서 집을 지으려는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한다. 그 넓디넓은 공항 면적 통째로 집을 짓겠다니, 대체 얼마나 큰 집을 지으려고?
“지금 짓고 있는 중인데, 한 번 가볼래?”
“아, 아냐! 됐어, 나는…….”
“우리 결혼하면 같이 살 집인데? 정말 안 봐도 돼?”
“…….”
정효주는 솔깃했다가, 이내 그 의미를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손사래를 쳤다.
“무슨 소리야. 난 결혼한다고 한 적 없잖아.”
“안 한다고 한 적도 없지.”
“어, 그런 게 어딨어?”
“어딨긴, 여깄지.”
“아, 뭐야.”
정효주는 질색을 하면서도 놀리는 게 마냥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유지웅은 짓궂게 킥킥거리면서 계속 말장난을 걸었다. 그렇게 사이좋게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인터폰이 울렸다.
“혜주야?”
“응.”
정효주는 얼른 문을 열어 주었다.
잠시 후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정혜주가 들어섰다.
“오빠, 나 왔어.”
“넌 이 언니는 보이지도 않니?”
“응, 언니. 나 왔어.”
“완전히 엎드려 절 받기네. 어서 앉아.”
“우와……. 이게 정말 오빠 집이야?”
정혜주는 표정이 잔뜩 상기돼 있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연신 우와 우와 하며 집안을 둘러보기 바빴다. 200평대의,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인테리어는 어린 소녀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정혜주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았다.
“자가는 아니고 월세.”
“그래도 월세가 어디야. 이런 집은 월세 얼마나 해?”
“몰라. 얼마더라…….”
유지웅은 금액이 얼만지 생각해내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워낙 사소한 일이라 오래 전에 다 까먹었다.
“나중에 계약서 뒤져보면 나오겠지. 한 이삼천 했던 거 같은데, 더 했나?”
“이, 이 삼천? 월세가? 정말로?”
정혜주는 기겁을 했다. 아니, 무슨 남들 연봉이 한 달 월세로 나가? 나름 세상 물정에 빠삭한 편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세상이었다.
갑자기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아직 오빠랑 사귀는 거 아니랬지?”
“어? 으, 응. 근데 왜……?”
정효주는 불안한 눈으로 동생을 바라봤다. 친동생이다 보니 누구보다 영악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오빠, 꼭 언니랑 사귈 필요 있어?”
“……무슨 소리야?”
“내가 언니보다 더 어리고 이쁜데. 난 어때?”
유지웅은 음료수를 마시다 말고 그대로 뿜었다.
* * *
대통령 집무실.
홀로 남겨진 남기철은 호화로운 의자에 앉아 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가 된 기분이다.
이윽고 인기척이 느껴지고, 문이 좌우로 열렸다. 비서 및 보좌관을 거느린 대통령이 들어오자, 남기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인사했다.
“편히 앉아요.”
“알겠습니다.”
대통령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마주 앉았다. 그 미소가 남기철한테는 더욱 불안했다. 뭔가 이상해. 예감이 아주 좋지 않아. 라고 온몸의 세포가 외치고 있었다.
“왜 호출했는지 혹시 이유를 짐작하고 있습니까, 남 국장?”
“……전혀 모르겠습니다.”
“아니, 알고 있을 텐데요. 남 국장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짐작할 거 아닙니까.”
말투는 부드럽지만 묘하게 추궁하는 느낌이 실려 있다. 아니, 추궁이 맞으리라. 남기철은 긴장해서 마른침을 삼켰다.
“공격대 연합, UR을 창설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혹시 그에 관해서 들은 바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없습니다.”
“그럴 리가요. 사전에 의견 조율이 된 게 있으니 유지웅 딜러가 남 국장 이야기를 꺼냈겠지요. 남 국장이 UR 창설에 관해 전폭적인 조언을 해줬다고 생각되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괜찮습니다. 이미 공개된 사항이니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정부도 유지웅 딜러와 한 배를 탄 입장이니까요.”
“그러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어허, 그렇게 빼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어이가 없었다. 아무래도 대통령은 유지웅과 자신이 UR에 관해 이미 사전에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전혀 들은 바가 없는 그로서는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만약 UR이 UN급 국제기구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 이는 우리나라가 다시 국제 사회로 진출하여 재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아니, 유지웅 딜러가 밀어붙인다면 분명히 그렇게 될 거라 믿습니다. 우리 정부가 해줄 것은 없습니까?”
큰일 났다. 이미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하고 답답한 마음을 짓누르던 남기철은 문득 대통령의 눈을 보았다. 깊게 침전된 음흉함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입가가 미묘하게 씰룩이는 것이 마치 웃음을 참는 듯이 보인다.
그 순간 깨달았다.
‘다 알고 계신다!’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고, 처음 듣는 이야기다. 대통령도 분명히 그것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체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도 깨달을 수 있었다. 대통령에게는 UR의 창설, 그리고 정부 인사가 그 의장을 맡는 게 중요하다. 자신이 사전에 알고 있었든지 모르고 있었든지 상관없다. 그저 자신을 의장에 꽂아 넣기만 하면 이득이다.
대통령은 국력 강화를 위한 국정 의지가 대단한 인물이다. UR같은 좋은 건을 놓칠 리가 없다.
‘느낌이 좋지 않아.’
UR의장? 객관적으로는 분명히 영광된 자리다. 그리고 확실한 권력을 담보하는 직위다.
그러나 어쩐지 불길했다. 그 자리를 맡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엄습했다. 그래서 짐을 싸다가 잡힌 것인데…….
“UR 창설은 이 나라를 위한 기반이 되어줄 겁니다. 이 나라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국민으로서 잘 부탁합니다. 남 국장.”
“아, 알겠습니다.”
대통령 면전에서 거절을 하는 것도 이상해서 일단 얼떨결에 알았다고 대답은 했다. 그 뒤로 간단히(무려 세 시간이 넘도록!) UR 및 앞으로의 국제 정세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혼이 반쯤 나간 채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뉴스에서 대특종이 터졌다.
「속보! 최재형 대통령 사임하나?」
남기철은 뭔가 더러운 배반감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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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 정치를 한다는 건 미친 짓이야. 난 이곳을 떠나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