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49)
00849 %3C프리시즌 딜러편%3E 이건 미친 짓이야 =========================================================================
한편 지켜보던 정효주는 쿤겐이 너무 간단히 설득되자 기가 막혀 말문을 열지 못했다. 유지웅이 어깨를 가볍게 툭툭 건드리고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뭐해? 돌아갈 준비하자.”
“돌아가? 벌써?”
정효주가 더듬더듬 반문했다. 말투에 서운함이 느껴진다. 둔한 유지웅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왜 그러나 생각하던 유지웅은 아하 하고 탄성을 냈다.
“너 챙겨주려던 건 쟤가 득해버렸으니 이번은 어쩔 수 없네. 다음에 더 좋은 걸로 구해줄게. 히카리 잡으면 분명히 더 좋은 게 나올 거야. 아, 맞다! 그게 있었지!”
“뭐, 뭐가?”
“맞다! 맞다! 나 바본가 봐! 왜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지?”
‘더 좋은 거 구해줄게.’라고 말을 하다가 퍼뜩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오래 되었고, 또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일도 아닌 탓에 잊어버린 사건이다.
‘이름 모를 블랙 몹이 있었지, 참!’
칼리타에게 먹혔다가 살아난 후, 정효주는 녹서스 스톤이 체내에 흡수된 게 아니냐는 미 정부의 의심을 받았다. 덕분에 신체검사를 해야겠다는 요구에 맞서느라 유지웅과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당시 미 정부는 둘의 출국을 금지했지만, 때마침 이름 모를 블랙 몹이 등장한 뒤 자폭으로 휴스턴 일대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안슐의 힘을 빌려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그래, 그 녀석!’
그게 정확한 시기가 언제더라? 대충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유지웅은 갑자기 마음이 초조해졌다.
“귀국은 잠깐 미뤄야겠어. 아직 할 일이 남았어.”
“할 일? 또 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돌아갈 준비를 하자고 했다가 금세 말이 바뀌자 정효주는 영 못 미더웠다.
“응. 방금 느꼈는데, 텍사스 어딘가 블랙 몹 한 마리가 또 서성이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느껴지지가 않아. 그래서 기다려야겠어.”
“그, 그 놈도 잡으려고?”
“그럼 결정도 10만짜리를 그냥 버려두고 갈까? 돈으로 따지면 얼만지 알아? 자그마치 10조 원이야, 10조 원! 근데 10조 원으로는 살 수가 없는 물건이라고! 프리미엄이 장난 아닌데.”
자그마치 10조 원. 양심을 속이며 말을 하느라 유지웅은 속이 뒤집힐 뻔했다.(그에게는 ‘겨우’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 수치다) 겨우라고 가치 절하하면서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주장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퍼플은 일단 드무니까.’
돈만으로 따지면 사실 퍼플 결정체는 그에게 큰 가치는 없다. 그러나 퍼플은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희귀 물건이다. 애초에 퍼플 결정체는 결정도 1에 1억 원으로 책정하는 화폐 환산법 자체가 적용이 안 된다.
퍼플 결정체 이상은 한 나라를 준다 해도 팔지 않는 전략 물품이기 때문이다. 얼마 구하지도 못할 뿐더러, 전생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들마저 퍼플을 합성하는 데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레드는 성공)
‘앞으로 겨우 두 개 밖에 없어.’
온전한 퍼플 결정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이제 두 번 뿐. 휴스턴을 날려버릴 무명의 블랙 몹과 히카리뿐이다. 그 두 개는 반드시 획득해야 했다.
“알았어.”
텍사스 어딘가에 블랙 몹이 있으니 대기타야 한다는 말에 정효주는 납득을 했다. 여러모로 못 미더운 소꿉친구지만 지금까지 레이드에 있어서는 허언이 없었다.
무엇보다 어제 블랙 몹을 단숨에 때려잡는 인상적인 광경을 직접 본 게 컸다. 그가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보이는 게 아니다.
“그런데 저 여자애는 어떻게 설득한 거니?”
정효주는 그 점이 궁금했다. 유지웅은 아직까지 미국에서는 흉악한 테러리스트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런데 어떻게 저 여자를 설득했을까?
“응. 쟤는 되게 쉬워.”
“……쉽다고?”
누가 들어도 오해하기 딱 좋은 말에 정효주는 저절로 눈빛이 험악해졌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애거든. 나와 함께 괴수의 침공에서 인류를 수호하자는 말이 먹혔지.”
“그, 그런 게 정말 먹힌단 말이야?”
물론 정효주도 듣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같이 인류를 지키자는, 그런 어린이 만화에서 용사들이나 할 법한 말에 설득될 수가 있어? 그게 가능해?
“응. 그리고 강한 걸 숭상하는 애라서 더 쉬웠고. 내가 레이더 중에서는 원탑이잖아? 안 그래?”
“…….”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할 말이 없다. 레이더 중의 으뜸이라면 단언하건데 유지웅을 말한다. 그 외에는 있을 수가 없으며, 비교대상조차 없다. 군주 레이더라는 별칭마저 생겨나고 있을 정도니.
“그나저나 카네기 가문에서 난리를 피울 텐데……. 쿤겐, 이리 와봐.”
유지웅이 소리쳐 부르자 대기 중인 신입 사원처럼 긴장하고 있던 쿤겐이 쪼르르 달려왔다. 환자복 아래 가려진 가슴이 크게 출렁거린다. 앳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사기적인 스펙 앞에, 정효주는 잠시 묵념을 했다.
D학점과 F학점. 그 승리자는 과연…….
“요즘도 가문하고 사이가 안 좋아?”
“제 가문을 어떻게 아십니까?”
쿤겐은 조금 긴장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그가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본명을 알고 있던 게 기억났다. 혹시 이 남자는 가문과 연관이 있는 사람은 아닐까…….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 정도도 모를까 봐? 아무튼 요즘 가문이랑 사이는 어때? 좋아, 나빠?”
Yes or no, 둘 중 하나만 골라라, 쿤겐에게는 이런 질문처럼 대답하기 편한 질문도 없었다.
“나쁩니다.”
“그래, 잘 됐네. 친권이니 뭐니 그런 걸로 귀찮게 할 노인네는 혹시 없겠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무마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 정도 배짱과 자신감은 있어야 내 부하 1호답지.”
유지웅은 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얻은 행운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고 있겠지?”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엄청나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퍼플 결정체는 돈으론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이다. 나라 하나를 떼어줘도 절대 팔지 않을 물건이지.”
“죽을 때까지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쿤겐은 한쪽 무릎을 꿇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탐스러운 은발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따스한 햇볕이 은발에 맺히며 눈부신 광택을 반사한다. 환자복 사이로 드러난 팔뚝은 가느다라면서도 희고 곱다. 뭉툭한 환자복도 그녀가 지닌 아름다움을 퇴색하지는 못했다.
“…….”
정효주는 조금 묘한 눈으로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사실 그녀도 미모로 치면 어디 가도 뒤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쿤겐은 탱커의 미모에 은발 미소녀라는 강점까지 추가되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알면 됐다.”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써.”
다행히 시원시원한 유지웅의 멘트에 그녀는 조금 불안감을 놓을 수 있었다.
한편 유지웅은…….
‘으아, 쿤겐 머리 기르니까 완전히 색다르네. 근데 왜 머리를 길렀지?’
모델이나 연예인을 하면 아주 딱일 듯하다. 전생에서도 최고의 미모를 자랑했지만, 긴 머리가 여성스러운 매력을 한층 덧칠하면서 남자를 아찔하게 만든다. 효주 앞에서 태연한 척 하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
머리가 긴 것 때문에 역으로 이번 생에서는 남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도 가졌다. 안슐리제라는 표본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다행히 쿤겐은 육체적으로 완전한 여성이었다. 남자라면 도저히 적응 못할 것 같았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데 써, 질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냐? 해봐.”
“퍼플 결정체를 흡수해서 제가 매우 강해졌다는 것은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써는 블랙 몹을 매우 쉽게 상대하셨습니다. 그럼 써의 무력은 대체 어느 정도 수준인 겁니까?”
“음……. 내가 지구 어느 곳이든 타격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건 내 서브 스킬이고, 주력은 아니야. 내 주력이 바로 뭐냐면…….”
꿀꺽. 쿤겐은 물론이고 정효주도 마른침을 삼켰다.
유지웅의 진실한 클래스를 놓고 여러 모로 말이 많다. 원거리 딜러냐, 근접 딜러냐, 탱커냐.
레드 몹을 주먹으로 때려잡는 걸 보면 근접 딜러인데, 로켓포 세례도 버티는 걸 보면 탱커다. 그런데 지구 전체를 사거리에 두고 있는 장거리 공격을 보면 또 원딜이다. 대체 어느 클래스가 진짜인 걸까?
“힐러다.”
“……?”
“……?”
이 순간 정효주와 쿤겐의 마음은 놀라우리만치 하나로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 양반이 지금 뭐라고 헛소리를 한 거야?
유지웅은 얼이 빠진 표정을 보고 납득했다는 듯이 끄덕이고는 시원스럽게 말을 이었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알겠어. 하지만 지금 레이더 분류 기준으로 따지면 힐러가 맞아. 정확히는 치료하는 힐러가 아니라 피해를 안 입게 하는 서브 계열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적의 공격으로부터 피해를 안 입게 해주는 보호막을 쳐주는 거야. 즉 나는 오펜스 계열이 아니라 디펜스 계열이라는 소리지.”
“…….”
아마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들으면 땅을 치며 기막혀 하리라.
오펜스 계열이 아니래! 그렇게 영국과 중국을 묵사발 내놓고는 ‘난 사실 평화적인 사람이야.’ 이런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자기는 창이 아니라 방패라고 한다. 그럼 지금까지 실컷 창질을 한 건 대체 뭐야?
문득 정효주가 기겁해서 외쳤다.
“잠깐, 너 그거 들으면 시집와야 된댔잖아! 그만큼 중요한 비밀이라며!”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데? 잘 됐다. 기왕 들었으니 효주 너 이참에 시집와야겠다.”
“나 혼자만 들은 게 아니잖아!”
“…….”
“…….”
“……어, 그러네? 에이, 됐어. 중요한 것도 아닌데 그냥 넘어가, 넘어 가.”
이 남자, 혈압 오르게 만드는 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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