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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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케인은 만약을 대비해서 탱커 하나와 힐러 하나를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물론 허리가 부러지도록 바짝 숙이고, 또 많은 수당을 약속해야 했다. 탱커나 힐러쯤 되면 마피아도 그리 무섭게 여기지 않는다. 아니, 레이더가 마피아 고위직 노릇을 겸하는 경우도 많다.
그가 초청한 탱커와 힐러는 마피아 고위직은 아니었으나 타주 마피아와 긴히 연결되어 있었다. 케이넌파의 이름으로 윽박지르기에는 조금 걸리는 처지다. 그래서 후한 대가를 약속해서 정중히 요청했다.
여자와 함께 있던 근접 딜러가 날뛸 때를 대비한 보험이었다. 오펜스 레이더는 같은 오펜스, 혹은 디펜스 레이더가 아니면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췄건만, 할케인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어, 어떻게?’
청년이 순식간에 빠져나가 블루 결정체를 낚아챌 때만 해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예상 범위였다.
그러나 사방을 포위한 조직원들의 일제 사격에도 멀쩡한 순간 할케인은 일이 단단히 글렀음을 깨달았다.
‘탱커다!’
그는 속으로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쩐지, 아무리 딜러라지만 혼자서 너무 당당하다 싶었다. 총기에도 끄떡없는 강인한 육체가 있으니까 저리 자신만만했으리라.
그렇다면 혹시 저 여자는 힐러는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할케인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불행하게도, 상대는 그에게 느긋하게 대책을 세울 여유를 주진 않았다.
“내 시급이 얼만지나 알아? 응?”
“켁! 켁! 켁켁……!”
할케인은 당하고 있는 것을 본 부하는 주저 없이 외쳤다.
“덮쳐! 덮치라고!”
한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백인 탱커, 스컬은 속으로 가벼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가볍게 용돈이나 벌어볼까 하는 마음에 왔다가 진흙탕에 발 담그게 생겼다.
‘망할!’
스컬이 보기에 선글라스를 낀 저 동양인 청년은 클래스가 탱크가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방에서 빗발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맞고 멀쩡할 리가 없다.
탱커끼리 싸우면 전투가 길어진다. 다행히 그에게는 힐러가 있었다. 그는 부디 동양인 탱커의 일행인 은발의 미소녀가 레이더는 아니기를 바랬다. 그럼 전투가 더 지저분해진다.
‘설마 둘 다 탱커는 아니겠지?’
뛰어들 준비를 하면서 그는 불안한 예감이 휩싸였다. 만약 둘 다 탱커라면 이쪽의 필패다. 은발의 소녀가 백업 힐러를 제압하면 곧바로 2vs1 전투가 돼버리니까.
정말 괜히 왔다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달려드는 그때였다.
퍼억!
둔탁한 타격음이 울린 것 같다. 왜 울린 것 같냐고?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있기 때문이다. 온몸의 감각이 차단된 듯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 감각, 오랜 기억 속의 잔재가 이것이 무엇인지를 끄집어냈다.
바로 수 년 전, 레드 몹의 공격에 직격당했을 때도 이런 느낌을 맛봤다. 아마 충격 수치가 4였던가. 즉사 바로 아래 단계의 충격 수치였던 걸로 기억한다.
“꺄아아악!”
힐러의 비명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따스한 기운이 몸에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힐을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제대로 얻어맞았으면 몸이 회복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치유가 됨에 따라 그는 가장 먼저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통증조차 마비될 정도로 타격을 입은 몸이, 힐이 들어오면서 비로소 아픔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으으…….”
간신히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스컬은 온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You so so so so so weak. Hahahaha.”
엉망진창 발음이지만 뭐라는지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약자에 대한 조롱이자 멸시였다.
그러나 분한 마음이 들기에 앞서 의구심이 들었다. 뭐야? 상대도 같은 탱커 아니었어? 그런데 이런 가공할 파워가 말이 돼?
탱커는 딜러에 비해 공격력이 낮다. 같은 탱커끼리 싸우면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 된다. 서로 단단한 데다가 공격력은 약하니, 티타늄 장갑을 두른 전차끼리 권총으로 싸우는 양상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자, 내놔! 기브 미 머니! 기브 미 머니!”
“Oops! Oop! Oop! Oop!”
“내놓으라고! 기브! 미! 머니! 날 귀찮게 한 배상금!”
앞으로 나선 쿤겐이 친절하게 통역했다. 정신을 차린 스컬은 다시금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볼 생각이었다.
‘보, 보인다!’
그리고 봤다. 청년의 손가락 하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의 두뇌는 혼란에 빠졌다.
설마 주먹도 아니고, 겨우 새끼손가락 하나에 자신이 방금 그 처참한 꼴을 당한 거라고?
그 새끼손가락이 슬쩍, 말 그대로 아주 슬쩍 자신을 건드렸다. 그 순간 가슴팍에서 어마어마하나 충격이 느껴지며, 그는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힘껏 뒤로 나가떨어진 그는 벽을 우르르 뚫고 한참을 더 구르고 나서야 멈춰 섰다.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멱살 잡혀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 할케인은 물론이고, 조직원들도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미동도 하지 못했다.
“저, 저 여자를 붙잡아!”
할케인이 고통스러워하던 와중에도 소리를 질렀다. 정신을 차린 조직원들이 얼른 쿤겐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래! 저 여자만 잡으면 된다! 설마 미녀 상사가 붙잡혔는데도 저 괴물같은 탱커(정말 탱커가 맞아?)도 더 이상 발악을 하지는 못하겠지.
그러나…….
“어딜 감히!”
퍽! 푹! 짜악! 쿵!
쿤겐이 가볍게 주먹과 발길질을 몇 번 휘두르자 조직원들은 순식간에 멀리 나가떨어졌다. 당황한 어떤 조직원이 저도 모르게 그만 방아쇠를 당겼다.
툭. 데구르르…….
쿤겐의 팔을 맞은 총알은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그녀의 팔에는 불그스름한 자국이 희미하게 탄흔을 남기고 있었다. 그마저도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사라졌다.
“탱커다!”
“미친! 둘 다 탱커였어!”
탱커는 소형화기가 통하지 않는다. 적어도 바주카포 정도는 가져와야 어찌해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걸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설령 구한다 해도 이런 건물 안에서? 다 같이 죽자는 거나 마찬가지다.
탱커 둘이 난동을 부린다면? 절대 일반인으로는 막을 수 없다. 중화기를 보유한 연대 병력쯤은 투입해야 한다. 마피아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상황을 깨달은 알드히리에스는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그걸 놓치지 않고 쿤겐이 외쳤다.
“써! 저 자가 보스입니다!”
“좋았어! 쿤겐, 이 녀석 잡고 있어!”
“Yes, sir!”
유지웅은 들고 있던 할케인을 그대로 쿤겐에게 던졌다. 그녀는 부드럽게 그의 멱살을 인계받았다.
손이 자유로워진 유지웅은 도망치려는 알드히리에스는 그대로 쫓아갔다. 용감한 부하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지만,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툭툭 휘두르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자빠졌다.
“으, 으아아악!”
알드히리에스는 멱살이 잡히는 순간 비명을 지르며 권총을 마구 난사했다. 그러나 총알은 그의 미간을 뚫지 못한 채 힘없이 바닥에 툭툭 떨어지기만 했다.
괴물이다. 탱커의 단단함을 직접 목격한 알드히리에스의 감상은 그러했다. 아니, 어떻게 바로 코앞에서 쏜 총알이 사람을 관통하지 못한단 말인가.
“쿤겐, 내 말 통역해.”
“예. 말씀만 하십시오.”
“난 급전이 필요해서 결정체만 팔고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네가 허튼 수작을 부리는 바람에 내 시간만 낭비했다. 그에 따른 배상금을 내놔야겠다.”
쿤겐이 영어로 통역했고, 알드히리에스는 동아줄을 잡은 심정으로 정신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얼마의 돈을 주어 이 괴물을 쫓아낼 수만 있다면야…….
“원래 내 시급을 그대로 청구하면 네놈 전재산을 갖다 바쳐도 파산인데, 난 좀 많이 자비롭단 말이지. 그래서 딱 지금 네가 갖고 있는 현찰 중에서 들고 갈 수 있는 것만 갖고 가겠어. 아, CD 같은 것은 당연히 포함이야.”
유지웅은 자신이 참 자비롭다고 생각했다. 공항동 시세대로 배상금을 청구하면 이 녀석은 백퍼센트 파산이다. 전 재산을 갖다 바쳐도 0.01%도 배상하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개인채무회생제도라는 멋진 제도를 응용해 녀석에게 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No! No! Please! Please forgive me!”
“뭐라는 거야?”
“제발 용서해달랍니다. 그건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뭐야? 내가 이렇게나 자비를 보였는데? 그런 것도 못하겠단 말이야!”
유지웅은 분노했다. 그는 왼손으로 알드히리에스를 높이 들어올린 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살기 가득한 그 눈빛에, 산전수전 다 겪은 마피아 대부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그가 오른손을 옆으로 뻗었다. 손바닥에 푸른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비거가 응축되고 있는 것이다.
알드히리에스는 기겁했다. 설마! 겨우 한 번 거부했다고 자신을 죽이려는 것인가!
타앙!
그때였다. 보스를 구원하기 위해 충실한 부하가 용기를 쥐어짜내 쓴 총알이 유지웅의 얼굴을 스쳤다. 선글라스가 부서지며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 대부는 문득 어디선가 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서 봤지, 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코, 코리아 테러리스트! 유지웅!”
할케인의 비명이 찢어지듯이 실내를 울렸다. 순간 대부의 안색도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마, 맙소사!’
이럴 수가! 다른 이도 아니고 바로 그 자였다니! 16만 명의 목숨을 하루아침에 날려버린, 그 흉악한 테러범이라니!
악당의 배짱이라는 게 있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 해도 사람 목숨 한 번 못 끊어본 심약한 녀석이라면 어떻게든 배짱을 부려 기선을 제압하면 된다. 대부도 방금 전까지는 그리 하려고 했다.
그러나 악당에도 급이 있다. 뭐? 배짱을 부려? 기선 제압? 런던 시민 16만 명을 한순간에 증발시키고도 ‘아몰랑! 나몰랑!’ 해대는 냉혈한을 상대로? 그런 건 미국 정부라 해도 못한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두 다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거 전부 다 드리겠습니다!”
“쿤겐, 이 녀석이 뭐라고 하는 거야?”
“원하는 대로 다 준다고 합니다.”
“이미 늦었다고 해. 난 지금 몹시 화가 나 있다고.”
쿤겐이 통역을 하자 대부는 사시나무 떨듯이 경련을 일으키며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덩치 큰 남자가 멱살을 한 손에 잡힌 채 허공에 대롱대롱 들린 채로 비는 모습이 참으로 애처로웠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합니다.”
유지웅은 한참을 고민했다. 사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쯤 효주가 거의 헐벗은 차림으로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텐데…….
“좋아, 그럼 비밀 금고로 안내하라고 해.”
“예.”
“내용물이 내 마음에 안 들면 구족을 멸한다고 해.”
“알겠습니다.”
구족을 멸한다는, 지극히 동양적인 위협에 알드히리에스는 쉬지 않고 벌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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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에도 클래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