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61)
00861 %3C프리시즌 딜러편%3E 테러범, 그리고? =========================================================================
“그럼 우리 계속 여기 있어야 해?”
“적어도 며칠만이라도. 괜찮아.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정효주는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유지웅은 자신만만했다. 분명히 이름 모를 블랙 몹은 칼리타를 물리치고 난 직후에 등장했다. 적어도 사흘은 넘기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쩌면 오늘 당장이라도 나타날 수도 있다.
‘설마 내가 과거로 왔다고 미래가 바뀌거나 그렇지는 않겠지? 아무리 나비 효과라지만…….’
유지웅은 문득 공상과학 소설에서 읽었던 타임 패러독스나 나비 효과 등을 떠올렸다. 자신의 등장이 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까 문득 신경이 쓰였다.
‘역시 너무 설치고 다녔나?’
조금 그런 반성을 하다가도 잠시도 지나지 않아 금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야. 인류를 지키려면 이 방법 밖에 없어. 미래의 나도 결국 막아내지 못하고 그렇게 휩쓸리고 말았잖아.’
로버를 쓰러뜨린 후 균열의 폭주를 저지하기 위해 묠니르(오리나가 변화한 망치)를 던져 넣었다. 그 과정에서 시공간의 뒤틀림에 휘말려 과거로 오게 되었다.
때때로 걱정이 된다. 미래의 지구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그 시대의 효주는 잘 지내고 있을까? 어쩌면 자신이 과거로 왔기 때문에 그 미래는 더 이상 우주 시간축에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미래를 완전히 뒤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반드시 균열을 막아내고 말겠어.’
희대의 테러리스트라는 악명을 얻었지만, 그런 사소한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이유다. 어차피 균열이 뻥 하고 터지면 모든 게 무로 돌아갈 텐데, 그런 자그마한 문제에 신경을 쓸 이유가 전혀 없다.
‘설령 진짜 역사에 테러범과 독재자로 악명을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유지웅은 다시 한 번 굳은 결심을 했다. 그런데 이미 절반 이상은 역사에 그런 기록이 남지 않았나?
“써, 그런데 써는 몇 년 후에 습격한다는 무시무시한 괴수는 대체 어떤 존재입니까? 써는 블랙 몹도 단숨에 무찌를 만큼 강한데도 두려워할 정도입니까?”
“음…….”
유지웅은 문득 의문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로버의 강함은 어느 정도나 될까? 지금의 자신에 비해서 말이다.
그는 왼손을 내려다봤다. 왼손에는 오리나가 깊이 잠들어 있다. 그리고 오리나는 화이트급 괴수로, 레드 결정체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신은 화이트급 괴수에 앱서버로서의 능력을 더한 정도가 될 것이다. (레드 결정체 + 보호막)이란 공식이 성립된다.
그리고 로버와 치른 전투는 어땠지?
‘진짜 겨우 무찔렀지…….’
모든 이들이 3종 S급 장비로 무장한 공격대원 240여 명, 자신과 정효주, 나미와 나디아, 그리고 브라우니와 오리나까지.
그야말로 역사에 다시없을 화려한 드림팀이었다. 이런 전력을 가지고도 무시무시한 전투 끝에 겨우 무찌를 수 있었다. 그나마도 휘버의 잔존 사념이 로버의 인격을 흔들어놓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으리라.
“내가 6명이 한꺼번에 덤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야.”
“그, 그 정도입니까!”
“그게 진짜야?”
정효주와 쿤겐 모두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둘은 누구보다 유지웅의 힘을 잘 알고 있다. 바로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결정도 10만이 넘는 블랙 몹을 몇 초도 걸리지 않아 단숨에 때려잡는 레이더 아닌가. 그의 앞에서는 옐로고 레드고 블랙이고 간에 갓 태어난 생쥐나 다름없다.
유지웅 같은 인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시없을 기적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최소 다섯이 더 필요하다고? 그러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정효주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너, 지금 그거 장난하는 거 아니지?”
로버(라고 정확히 언급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이번 미국행에서 처음 들은 정효주는 설마 그 정도까지 엄청난 이야기일 줄은 몰랐다.
‘아, 그러고 보니 효주한테도 자세한 설명을 안 했네.’
이번 생의 효주는 전력적으로 도움이 되지도 않는데다가, 애초에 위험한 싸움에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로버의 위험성을 진지하게 알리지 않았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이야. 내가 모두 여섯 명이 있어도, 그리고 다 함께 덤벼도 겨우 이길까 말까 한 상대야. 더 무서운 것은 그 상대가 지키고 있는 존재지.”
“더 무서운 게 있단 말입니까?”
“그래. 바로 균열이라는 거지. 그 놈을 무찌르고 균열을 막지 않으면 인류에게 희망은 없어. 모두 죽어.”
정효주는 갈팡질팡했다. 유지웅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몰랐다. 내용만 보면 너무 허황되었다. 차라리 지어낸 거짓말이라 보는 게 나을 정도로.
하지만 그의 얼굴이 너무 진지했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서까지 장난을 칠 사람은 아니다.
또 다른 이유에서 정효주는 불안한 감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 모든 걸 알고 있는 거야?”
“…….”
“너, 정말 요즘 많이 변했어. 황금매 잡다가 죽다 살아나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것만 같아.”
“다른 사람이 내 행세라도 하는 것 같아?”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냥…….”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지 몰라 정효주도 머뭇거렸다. 유지웅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다정한 체온에 그녀는 시선을 슬쩍 돌리며 내리깔았다.
“나는 유지웅이야. 너와 함께 태어났고, 함께 자랐고,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할 유지웅이지. 다른 사람이 아니야.”
“…….”
“내가 어떻게 그 일을 알고 있는지 설명은 못하겠어. 말해줘도 넌 못 믿을 테니까. 다만, 운명이 그 괴수를 막으라고 나를 선택했어. 이건 진실이야.”
“어떻게? 증거 있어?”
“내가 얻은 이 힘.”
“……아.”
정효주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무어라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유지웅의 힘. 현대 인류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 그 무지막지한 힘. 죽음의 위기를 겪고 난 뒤 어느 날 느닷없이 얻게 된 그 힘. 세계를 지배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는 그 막대한 힘.
그러한 힘을 얻은 것이 운명이라면, 그 운명이 그에게 길을 내려주었다는 것도 사실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에 정효주는 가슴이 꽉 막히고 말았던 것이다.
“써! 놀랍습니다! 운명이 선택한 남자라니요! 아아! 정말로 대단합니다! 훌륭해요!”
쿤겐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벅차오르는 감동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두 손을 꼭 잡은 채 방방 뛰는 모습이 영락없이 행복에 빠진 소녀다. 뛸 때마다 길고 아름다운 은발이 어둠에 찰랑거린다.
“그렇군요! 제가 칼리타의 블랙 결정체를 취하게 된 것도, 그리고 써의 사람이 된 것도 인류를 구하라는 운명의 계시였군요! 납득했습니다! 그리고 감동했습니다!”
“쿤겐. 저기, 그게 아니라…….”
“이 쿤겐 슐제거. 아니, 테레사 앨지노어. 몸과 영혼이 영원히 소멸할 때까지 써의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써를 도와 인류를 그 흉악한 마수의 앞발에서 구해내겠습니다!”
쿤겐은 진지하게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건 뭐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 아니라 진짜로 죽을 기세다.
정효주의 눈빛이 살짝 안 좋게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분 좋은 여자가 어디 있을까? 쿤겐은 누가 봐도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미녀고, 그런 여자가 자기 몸과 마음을 모두 다 바치겠다는데, 옆에서 보면서 어떻게 열불이 안 나?
“쿤겐, 그럴 필요 없어. 너는 너무 약해.”
“하지만 블랙 몹의 결정체를 얻지 않았습니까? 써의 위력 앞에서는 초라한 반딧불이나 마찬가지 신세지만, 그래도 지구상 누구보다 강력한 레이더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부디 제가 몸 바치고자 함을 거절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게 대체 프러퍼즈야, 뭐야? 정효주는 조금 전의 무거움이 마구마구 날아가려는 것을 느꼈다.
잠시 말문이 없던 유지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숙연함이 담긴 음성이었다.
“정말 그 길을 함께 걷길 원해?”
“Yes, sir.”
“……좋아. 아주 험난한 길이 될 거야. 후회해도 봐주는 거 없어.”
“당연한 바입니다.”
굳건한 눈빛이 서로간에 오고간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정효주가 나섰다.
“나도 할래.”
“효주야?”
“못 막으면 어차피 인류가 다 죽는다며? 그럼 나도 할래. 이번에 잡는 블랙 몹에서 결정체 나오는 건 나 준댔잖아. 그 힘으로 강해져서 나도 함께 싸울래.”
“너는 안 돼.”
“왜? 쟤는 되고 나는 왜 안 되는데?”
유지웅은 말문이 막혔다. 그야 너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니까, 네가 위험에 처하는 건 싫으니까, 그런 상투적인 대답을 했다가는 가만 두지 않겠다고, 그렇게 정효주의 눈빛은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네가…….”
“지금 하려는 말 계속 했다가는 나 화낼 거야?”
“…….”
“결혼하자 그랬잖아. 평생 함께 하자 그랬잖아. 그런데 너가 가는 길에 나는 함께 갈 수 없다고? 너 설마 언제 시집오겠냐고 한 것도 다 장난이었어?”
“장난 아닌 거 알잖아.”
“그럼 왜 나는 안 되는데?”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정효주는 울거나 눈물을 글썽거리지 않았다. 뜨거운 자존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당당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동반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도 함께 갈 거야. 네가 걷는 길이 무슨 길이든지 간에, 너 혼자 보내지 않을 거야.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네 옆에서 너를 돕고 싶어. 그게 내 마음이야.”
“효주야.”
“내 마음, 짓밟을 거야? 정말 그럴 거야?”
“…….”
유지웅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쿤겐의 청을 받아들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긴 침묵이었다. 정효주는 참을성 있게 그의 말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쿤겐도 한쪽에 조용히 비켜서서 없는 듯이 존재감을 지우고 있었다.
드디어 유지웅이 말문을 열었다.
“맞아. 너는 그런 여자였지. 예쁘고 상냥하고……. 하지만 누구보다도 강한…… 내 파트너.”
“……지웅아?”
정효주는 조금 당황스럽게 그를 불렀다. 유지웅은 대답 대신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어리석었어. 좋아. 우리 함께 가자. 우리가 손을 잡으면 로버가 얼마나 위험하든지 간에 무찌를 수 있을 거야.”
“……지웅아.”
정효주의 눈가에 작은 눈물이 맺혔다. 쿤겐은 감동 가득한 얼굴로 두 사람이 조용히 손을 잡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손끝이 살짝 가늘게 떨리긴 했지만,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본인조차도 몰랐다.
“그럼 너도 악명을 쌓아야겠다. 난 테러범 포지션이니까 넌 독재자가 어때?”
“뭐? 독재자?”
뜬금없는 소리에 정효주는 당황했다. 분위기 기껏 좋았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지금은 강제적으로 세계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해.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는 안 돼. 그럴 시간이 없어. 그래서 내가 테러범이라고 욕을 먹으면서도 강경하게 나가는 거야. 폭력적인 게 더 빠르고 효율이 좋아.”
“나, 나도 그래야 돼?”
“응. 성인군자 포지션으로 나라를 바꾸고 세계의 힘을 하나로 모으려다가는 그 전에 모든 게 끝장나. 우리에게는 지금 시간이 없어. 그러니 욕 엄청 먹더라도 빠르고 확실하게 행동하는 게 좋아.”
“…….”
정효주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하필이면 독재자라니. 테러범과 독재자 커플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조합인가.
반면 쿤겐은 신이 나서 물었다.
“과연! 이해했습니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악명이나 평판 따위는 중요치않다는 거군요! 감동했습니다!”
“이해해주니 고마워.”
“써, 그럼 저는 어떤 포지션을 맡으면 될까요?”
“쿤겐? 음……. 그래! 너는 매국노를 맡아라.”
“매국노요?”
“미국을 나한테 갖다 바쳐. 인류 구원 프로젝트에서 미국의 힘을 빼놓을 순 없잖아?”
“과연! 그렇군요!”
“내가 힘으로 미국 어떻게 하려다가는 시간도 시간이고 소모전이 클 것 같아서, 아예 네가 미국을 나한테 갖다 바치는 것도 좋겠다. 너 마침 미국인이잖아?”
그날 복숭아나무 아래서 그렇게 테러범, 독재자, 매국노가 결의를 맺었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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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 혼성 전대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