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7)
00087 불만이 있다고? =========================================================================
‘다들 왜 그러는 거지? 난 많이 나눈 거 같은데?’
묘한 예감이 떠나지 않았다. 유지웅은 집에 돌아와서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결정체를 팔고 얻은 유통마진은 처분 문제가 애매했다. 공격대 공동이익으로 봐야 할지, 자기 개별이익으로 봐야 할지. 그래서 그 돈은 일단 처분을 유보했다.
하지만 원정 의뢰 프리미엄은 달랐다. 그건 해당 국가가 자신에게 따로 지급한 개별이익이다. 지급 대상이 공격대가 아닌 그 개인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그건 그에게 소유권이 있고, 독일 때 프리미엄을 나눈 것은 첫 원정을 기념해서 베푼 ‘특혜’일 뿐이었다.
‘효주가 염려한 게 이거였나?’
독일 때 정효주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며 그에게 충고했다.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정효주를 불러 의논했다. 자기 고민을 털어놓고 의견을 구했다.
“나도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느끼긴 했어.”
“정말? 근데 왜 말 안 했어?”
“물증도 없는데 떠들 순 없잖아. 대원들이 네 앞에서만 입 조심하는 줄 아니? 내 앞에서도 그래.”
감이 빠른 정효주는 어느 정도 ‘이럴 것이다.’라고 예감은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말을 하지 않았다. 증거 없이 문제를 키우는 꼴이었으니까.
본래는 문제가 커지기 전에 나서서 해결하는 게 맞다. 유지웅이 단순한 공격대장이었으면 정효주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레드 몹 공격대는 유지웅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바꿔 말하면, 유지웅이 속한 공격대가 곧 레드 몹 공격대가 된다.
그래서 그녀는 방관했다. 일부러 말은 않지만, 오히려 대원들이 돈 문제로 갈등을 틔워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 번쯤 길들여놔야 돼.’
유지웅은 카리스마 있게 집단을 휘어잡는 리더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만만해 보이는 이미지였다. 만약 그가 냉철하고 흔들림 없는 리더 이미지였다면, 오늘 일정 발표회에서 프리미엄 분배를 가지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도 아니고, 뭐야?’
정효주는 그게 속상했다. 원정 프리미엄은 분명히 유지웅에게 준 돈이다.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그가 독식하기를 바랄 뿐이다. 남자친구가 손해 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누가 감히 이기심으로 폄하할 수 있을까?
손해까지는 좋다 치자. 안 줘도 되는 프리미엄을 나눠 받았으면 감사할 줄 알아야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뭔가? 정효주는 그게 기분 나빴다.
‘좀 확 휘어잡고 그러면 좋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쉬웠다. 때문에 그녀는 오히려 대원들이 한 번쯤 들고 일어서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그래야 눌러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그렇게까지 용기 있는 대원은 또 없다는 게 딜레마다.
“장 팀장님이 그러던데? 독일 때처럼 대원들이 프리미엄 분배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을 거라고. 사람 심리가 원래 그렇대. 이거 어떻게 해야 돼?”
“틀린 말씀은 아니네.”
“근데 프리미엄은 나한테 준 거니까 내 돈이잖아. 그걸 나눠주든 말든 그건 내 맘이고. 대원들이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아. 그래서 5차 레이드 끝나고 분배하면서 그걸 잘 설명해야겠어.”
“그럼 나는 공격대 분위기 파악 좀 해볼게.”
“분위기 파악?”
“응.”
정효주가 살짝 웃었다. 어딘지 매서운 미소였다.
“물어볼 사람은 많아.”
“이 자리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던 지웅이 귀에는 절대 안 들어갈 거예요. 그건 제가 보장해드리죠.”
변길섭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다. 정효주는 팔짱을 끼고 다리까지 꼰 채 느긋하게 그를 주시했다. 나이는 그가 네 살 더 많지만, 분위기는 정효주가 압도하고 있었다.
“정말 별 일 없어요. 괜히 오해하고 계세요.”
“제가 믿을 것 같아요?”
“…….”
“지웅이야 공격대 내부 알력이든 뭐든 간에 그런 사소한 문제는 신경 안 써요. 원래 성격이 그래요. 자기랑 상관없는 일은 잘 눈길을 안 주죠. 근데 왜 그런지 알아요?”
목소리가 다소 매서웠다. 변길섭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레드 몹 공격대는 또 만들 수 있으니까요.”
“잘 아시네요. 지웅이 걔, 프라임 공격대 유지에 집착 같은 거 없어요. 이거 잘못 돼도 레드 몹 공격대 또 하나 만들면 그만이니까. 그래서 신경 안 쓰는 거예요.”
프라임 공격대와 유지웅의 관계는 철저한 일방통행적 예속 관계라 볼 수 있다. 유지웅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것도 아쉬울 게 없다.
“숨긴다고 능사가 아니에요. 오빠, 작은 문제를 덮어주면 언젠가 큰 문제로 커져서 튀어나오는 거 아시잖아요?”
사근사근하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에 변길섭은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 정효주는 기가 막힌 미인이었다. 게다가 시원하게 어깨를 드러낸 원피스를 입고 있어 눈을 둘 곳을 찾기도 힘들었다. 누가 그랬던가? 남자는 미인에 약한 슬픈 동물이라고.
“공격대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거 저 눈치 채고 있어요. 하지만 그냥 텃새 싸움인 거 같아서 신경 안 썼을 뿐이죠. 그런 거까지 공격대장이 나서는 건 아니니까요. 근데 어제 일정 발표 때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그 대원의 개인적인 호기심일 뿐이에요. 정말 공격대에는 별 일 없습니다.”
“자꾸 숨기실 거예요? 그런다고 해결 될 건 없을 텐데.”
“…….”
“오빠 입장 이해해요. 몇 몇 물 흐리는 대원들 때문에 공격대 분위기 이상해지는 거 싫겠죠. 그걸 지웅이가 알아서 괜히 태풍 몰아치는 것도 원치 않을 테구요. 하지만 감춘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변길섭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사실대로 털어놔야 할까? 대원들이 돈 분배 때문에 이리저리 갈등하고 있다고? 유지웅이 면세금을 너무 많이 가져가는 거 아니냐고 은근히 불만을 품고 있다고? 결정체 매각을 통한 유통마진의 분배도 당연히 나눠 줄 거라 기대하고 있다고?
오랜 정공 생활을 해온 변길섭은 돈 문제가 공격대를 뒤흔드는 비수라는 것을 이해했다. 문제는 유지웅이 절대 갑이라는 것.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멍청한 대원들과, 그런 선동적인 분위기에 휩쓸리는 평범한 대원들을 다독여서 예전 분위기로 되돌려 놔야 했다. 유지웅이 알지 못하게 말이다. 그게 다른 파트장들과 합의한 내용 아니었던가?
“……정말 아무 일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말씀 드릴 테니까요.”
한껏 기대하고 있던 정효주는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실망한 게 아니라,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실망한 것이다. 나아가 유혹이 통하지 않은 것에 실망한 것이다.
‘……임자 있는 년이 무슨 미인계야. 내 잘못이지.’
그녀는 공략을 수정하기로 했다.
변길섭의 연락을 받은 다른 세 명의 파트장까지 합해서 모두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안색은 심각했다.
“큰일이네요. 탱커장이 눈치 채고 있다니.”
“그럼 공대장님도 안다는 거잖아요? 두 분이 연인이니까.”
“어쩌죠?”
중간 관리직의 슬픈 비애다. 조직의 유지를 위해 상부와 하부를 조율하고, 중간에서 얻어터지는 게 일인 사람들. 다른 공격대였으면 권력층으로서 떵떵거렸겠지만, 프라임 공격대에서 파트장은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낼 수 없는 중간관리직에 불과했다. 프라임 공격대의 힘과 위세가 유지웅 한 명으로부터 나온다는 특수한 구도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털어놓는 건 어때요?”
“안 돼요. 그랬다가는 무슨 피바람이 불지 알고요?”
“이게 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는 멍청한 대원들 때문이라고요! 그저 돈에 눈이 멀어서는!”
“맞아요. 내 돈이 아니라는 걸 대체 왜 인정 못하는 거죠? 우리는 그냥 주는 대로만 받는 것도 감지덕지인 것을.”
프라임 공격대는 돈을 많이 번다. 너무 많이 번다는 게 갈등의 시초가 되었다. 프라임 공격대의 주축인 유지웅이 가장 많은 돈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것을 질투하는 이들이 생겨났다는 게 갈등의 시초였다.
‘공격대장? 보호막 능력? 대단한 건 인정해. 알아. 하지만 우리도 레이드에 힘을 보태잖아? 우리가 없으면 보호막 능력자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레드 몹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거 생각하면 최소한 면세금 가져가는 거만이라도 좀 깎아줘야 하는 거 아냐?’
‘헥스톨 때는 리타이어도 했으면서 기어이 면세금 70% 다 가져갔어. 그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충전 장비 사용한 것도 그래. 물론 보조 힐러들이 좋은 활약 보였고 결과적으로 잘 되긴 했지만, 그래도 사전에 우리에게 한 마디라도 의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힐러 입장은 대체 왜 생각 안 하는 거냐고.’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문제였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비율로 따지면 대략 20% 정도? 심각한 건 그런 이들이 선동하면서 다른 대원들까지도 동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전부가 들고 일어나면 공대장도 양보할 거야. 혼자서는 절대로 레드 몹 잡을 수 없으니까.’
중도 입장의 대원들도 그런 명분에는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유지웅에게 거스르자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아주 조금의 항의를 통해 아주 조금의 양보를 얻어내자는 것뿐이다. 그 달콤한 유혹에 많은 이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 이 분위기를 공대장님이 알면 큰일이에요. 어떤 피바람이 불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끼리 봉합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아시잖아요? 우리말은 잘 먹히지도 않는다는 거. 이러다가 정말로 5차 레이드 끝나고 나서 대원들이 분배 가지고 항의할지도 몰라요.”
“진짜 미쳤어요. 3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공대 분위기 다 흐리고 있어요.”
유지웅에게 고하자니 어떤 피바람이 불지 겁이 나서 그럴 수가 없다. 그렇다고 자기들끼리 덮자니 능력 부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판국이었다.
“탱커장님한테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건 어때요?”
“원점이잖아요. 공대장님한테 말하는 거랑 뭐가 달라요?”
“그래도 탱커장님은 우리가 미리 이야기하면 우리 입장을 이해하시지 않을까요?”
“길섭 씨 같으면 누구 편을 들겠어요? 회사 오너인 애인 편을 들겠어요, 회사 직원 편을 들겠어요?”
그 말에 변길섭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 2팀 힐러장인 채성희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박현정 씨는 왜 아까부터 한 마디도 안 해요?”
“……아, 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박현정은 뭔가 숨기다 걸린 사람처럼 깜짝 놀랐다. 그것을 보고 다른 셋은 조금 이상하게 여겼으나, 다시금 심각한 의논에 빠져 들었다.
입을 다물고 다른 세 명을 흘끔거리던 박현정은 마음속으로 두 손을 다잡았다.
‘미안해요…….’
두 시간 전.
만나자는 정효주의 연락을 받고 박현정은 드디어 올 것이 왔음을 깨달았다. 목소리부터 심상치 않았다. 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정효주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바깥을 하염없이 구경하고 있었다. 청초해 보이는 그 모습은 여자로서 질투가 날 만큼 아름답고 예뻤다. 게다가 스무 살. 한창 피어나는 시기가 아닌가?
레이드 대원 제일의 부자를 남자친구로 두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할까? 박현정은 그녀가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아니요. 조금 밖에 안 기다렸어요. 뭐 시킬까요? 전 아이스 커피.”
“저도 같은 걸로요.”
종업원을 불러 주문을 마쳤다. 물끄러미 박현정을 바라보던 정효주가 입을 열었다.
“변길섭 씨한테 이야기 다 들었어요.”
“……!”
“파트장분들끼리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노력하신 것은 이해해요. 은폐한 것은 뭐라고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많이 서운한 것은 사실이에요.”
“……죄송해요.”
박현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 변길섭! 결국 미인계에 넘어가고 말았구나! 하여튼 남자란!
“정확히 누구누구죠?”
“……딱히 주동자 같은 건 없고요, 그냥 서른 명이 조금 안 되는 대원들끼리 불만스러워하는 정도예요. 문제는 다른 대원들이 거기에 휘둘리고 있다는 거죠.”
“텃새 문제인가요? 돈 문제인가요?”
“돈이 문제죠. 다들 돈을 너무 많이 받다 보니 눈에 뭐가 쓰였나 봐요.”
“구체적인 반발 움직임은요?”
“그건 아직까지는…….”
대답을 하던 박현정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다 알고 있는 상대가 물어볼 게 아니었던 것이다. 정효주가 이제야 알았냐는 듯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그냥 언니 떠본 건데 쉽게 넘어오셨네요. 변길섭 씨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박현정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아, 이야기만 안 했을 뿐이지 문제가 있다는 건 못 숨겼어요. 남자들, 원래 그런 거 잘 못하잖아요? 그래놓고 자기는 입 안 열었으니 안 들켰다고 혼자 방심하죠.”
“…….”
“솔직히 협조 구할게요. 저한테 털어놨다는 거 다른 분들에게 알리지 마시고, 대원들 불만 쌓이는 거 그냥 놔두세요.”
“……왜요?”
박현정은 눈치가 빠르다. 왜 놔두라는 건지 짐작이 가면서도 확인을 위해 물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정효주는 느긋하게 한 모금 마셨다. 박현정은 입맛이 써서 잔을 입술에 데기만 했다.
“지웅이는 공격대 내부 알력이나 텃새, 불만 그런 거 별로 관심 없어요. 왠지 아시죠?”
“……언제든 갈아엎을 수 있는 입장이시니 그렇죠. 저라도 그럴 거예요.”
모든 것을 백지화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절대적 갑의 위치가 지닌 힘이다.
“최악의 경우 다 갈아엎고 새로 대원을 충원해도 돼요. 그래서 지웅이는 느긋해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그건 쉬운 길을 어렵게 돌아가는 셈이죠. 충분히 밟아 눌러서 길들일 수 있는데, 아예 손을 놓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유지웅은 절대 갑이다. 정 안 되면 공격대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그건 시간을 낭비한다. 정효주는 차라리 불만 종자를 솎아내고, 공격대 리빌딩을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박현정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불만 쌓이게 놔두라는 게, 혹시 반발자들을 골라내시겠다는 건가요?”
“이쯤에서 본보기를 보이고 선례를 남길 때가 됐으니까요. 안 그래요, 언니?”
“……알았어요.”
본의 아니게 박현정은 파트장들을 배신하고 정효주 쪽에 붙게 되었다. 다른 이들에게 미안하긴 했으나, 그녀는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굵직한 동아줄을 잡은 셈이니.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1조 3,000억 원의 유통마진이 유지웅의 계좌에 머물러 있다는 게 대원들에게 알려진 것이다.